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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요 - 더 클래식 <1집 : 마법의 성> (1994)

「마법의 성」 한 곡만으로 명만의 반열로 - 더 클래식 <1집 : 마법의 성>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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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이라는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이승환 「내게」, 이소라 「처음 느낌 그대로」, 한동준 「사랑의 서약」등의 곡은 전혀 낯설지가 않죠. 이런 감성적인 멜로디를 써낸 작곡가가 바로 김광진입니다. 「편지」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솔로 3집이나, 「동경소녀」가 수록된 솔로 4집도 대중음악의 명반으로 꼽히는 앨범이죠. 이런 아름다운 멜로디의 시작은 바로 1994년,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미성의 목소리로 하나의 동화를 완성한 「마법의 성」이었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곡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 곡은 지금까지도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고, 광고음악에서도 꾸준히 들을 수 있죠. 김광진과 박용준이 함께 했던 더 클래식의 1집입니다.

더 클래식 <1집: 마법의 성> (1994)

우리 음악가들의 소망은, 너무도 진부하고 고정된 틀에 구속된 대중가요의 히트 양식과 충분히 격리되어 있으면서도 수용자들에 대한 호소력을 잃지 않는 곡을 써내는 것이다. 기존의 패턴에 젖지 않으려면 주류에서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는 공포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탈속(脫俗)의 실험으로 음악대중의 흡수력마저 챙기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행여 그런 독자적 행보가 서구의 답습이나 모방이라면 더 볼썽사납고, 유행에의 수동적 추수(그에 따른 성공의 단맛)만도 못한 결과에 처하게 된다. 히트방정식에 대한 굴욕적 봉사도 아니고, 해외 트렌드로 잠행해 우월적 자기만족에 희희낙락하는 것도 아니라면 그것은 과연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야 할까. 도대체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덩치는 커졌지만 정체성과 관련한 혼돈의 실망은 더 깊어진 1990년대, 그리하여 그런 절묘한 새로움의 출현은 과욕이라는 판정이 나올 때였던 굴곡의 시대에 우리는 지금 생각하면 있을 법하지 않은 희한했던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희박한 가능성이 의외로 실현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 곡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해는 1994년이었다.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 속 멀리 그대가 보여. 그대 나의 손을 잡아 보아요. 우리의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죠.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우리 앞에 펼쳐질 세상이…

김광진과 박용준의 듀오 ‘더 클래식’의 노래 「마법의 성」, 그해를 대표하는 곡으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이후의 세월도 가뿐히 뛰어넘은 대중음악의 명작으로 홀연히 부상한 이 곡은 댄스음악의 어지러운 화염 속에서도 웰 메이드 곡은 산다는 생존의 조건을 웅변했다. 실제로 이 곡에 힘입어 더 클래식은 기세등등했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김건모의 아우성 속에서도 엄청난 량의 앨범을 팔았다. 힙합이든 록이든 코믹송과 상업적 발라드 스타일 이외에는 좀처럼 주류의 입성을 허락하지 않는 지금 음악계의 소심한 작태와 비교하면 그 시절은 상대적으로 너그러웠다는 것을 시사한다.

춤 리듬의 가공한 확산에 두려운 신열(身熱)을 경험한 뮤지션과 팬들은 이 곡에 심지어 국민 건전가요라는 과분한 찬사를 안겼다. 이 경우 ‘건전’이란 낱말은 군사독재 억압의 상흔이 아닌 남녀노소를 포괄하는 긍정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굳이 이 말을 꺼렸던 사람들은 대신 ‘어른을 위한 동요’란 어휘를 썼다.

미소를 지은 인물은, 때 묻지 않은 감수성과 비범한 곡 제조 능력을 음악대중에 인식시킨 팀의 작가 김광진이었다. 이 앨범은 가히 그의 맛깔 난 작곡솜씨의 전시장이다. 김광진의 범대중적 히트작은 「마법의 성」밖에 없지만 한동준의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사랑의 서약」, 이승환의 「내게」 「덩크슛」,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등 그가 이전에 솔로로 발표한 곡들은 상당수 다른 가수가 불러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더 클래식’ 이전에 낸 개인 앨범은 서태지와 아이들 광풍에 매몰되어 철저히 패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너 서클에서는 주요 작곡가로서는 이름이 꽤 퍼져 있는 상태였음을 말해주는 사실이다.

「마법의 성」은 그 모든 곡들 속에서도 돋보인다. 자신의 버전은 물론 아직 변성기를 겪지 않았던 백동우의 미성을 빌린 버전을 통해 수요자들의 가슴에 잊혔던 동심의 순수가 잠재되어 있음을 일깨운 이 곡은 비올라 첼로 바이올린 등 클래식 악기의 앙상블에 철저히 신세를 졌다. 능숙한 코드의 변화에 실린 아름다운 멜로디를 부각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테고, 그래서 팀 이름도 더 클래식으로 낙착되었을 것이다. 늘 잠복해있으나 필요할 때마다 잠에서 깨어 호흡하는 서정성의 그 간헐적 슈퍼파워!

세월이 흐르면서 「마법의 성」은 고전으로 승격, 다른 가수들의 리메이크와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지금까지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다. 심지어 외국의 명연주자인 앙드레 가뇽(Andre Gagnon)도 라이브 목록에 이 곡을 추가시키기도 했다.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의 키드들은 동방신기의 버전을 듣는다. 김광진은 “많은 아이들에게 이 곡을 알려준 동방신기가 고맙다”라고 했다.

만약 단점이라면 서정성과 악수하는 엄숙함 정도라고 할까. 댄스음악과 땅을 가르는 게 서정적 음악이라면 엄숙함은 분명 보수 안정적이다. 하지만 댄스 주류와 대치한 비주류적 숨결이었다는 점에서는 정반대로 공격적인 성질도 지닌다. 그 엄숙함은 그러나 다음 곡 「오비이락」에서 단숨에 해체된다. 여기서 코러스는 돌출적 경박함과 재치의 위험한 줄타기에서 재치 쪽으로 표를 던지게끔 한다.

앨범의 제작자 이승환이 부르는 「Jerry Jerry go go」(로큰롤 초기영웅 제리 리 루이스에게 바치는 곡)는 김광진이 반드시 클래시컬한 유재하라인에 속해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마법의 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선율 감이 빼어난 발라드 「서툰 이별」도 아낄 것이다. 그도 아쉬웠던지 나중 자신의 2번째 독집에 이 곡을 다시 수록했다. 한상원의 기타와 박용준의 피아노가 잘 어울린 「그녀의 모든 아침」과 감각적인 「뭐 그렇지」, 역시 이승환이 부르는 「엘비나」 등도 종합선물을 선호하는 듯한 김광진 특유의 무정형 작곡의 산물들이다. 그는 결코 동심의 나라에만 살지 않는다.

「마법의 성」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고만고만한 곡들이라서 이 앨범을 명반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 곡 하나만으로도 거뜬히 가치의 용량은 초과한다. 철저히 「마법의 성」에 맞춰진 앨범 재킷도 예쁘다. 김광진도 그 매직 디자인에 기뻐했다. 댄스 광란의 분위기에서 무공해 음악이 보여준 위력, 순수의 승리라고 할 찬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곡은 대중가요의 유한성과 타락의 숙명적 철조망을 끊었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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