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에서 나는 소박하고 이야기가 있는 작은 마을을 찾아 다녔다. 하루는 분명 24시간인데 12시간인 것처럼 숨도 쉬지 않고 바삐 돌아가는 서울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여유로움 가득한 작은 세상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마치 두 손안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을 내이완內灣을 만났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라오지애老街(우리나라 재래시장)가 나를 맞이하였다. 내이완 라오지애에는 내가 찾아갔을 때가 겨울인데도 이름 모를 과일들이 지천이었다. 큰 잎사귀로 과일을 코디한 센스며 색이 예쁜 처음 보는 색색의 과일들이 도시의 쇼윈도의 옷만큼 화려하게 나를 유혹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마냥 걷기만 해도 좋을 평온한 풍경 속으로 쭉 걸어 들어갔다.
‘앗! 여기는 어디?’ <만화발명 전람관> 이라는 표지판을 보았다. 기찻길이 지나가는 길 건너편이라서 지하도를 이용해야 했다. 그 곳에는 타이완에서 가장 유명한 류씽칭劉興欽 만화가의 집이 있었다. 딱히 박물관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생가도 아니고 그냥 류씽칭 만화를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이 그에 대한 사랑으로 빚어 만든 아기자기한 곳이었다. 이곳은 어디를 가나 온통 낙서 아니 만화 작품들로 넘쳐 난다. 벽이란 벽은 모두 방문한 사람들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은 다른 곳이었다면 혼나거나 지워 버려야할 얼룩이었을 텐데, 여기만큼은 오히려 소중하고 개성 있는 만화풍 작품으로 존중받고 있었다.
한쪽에는 마치 나 어릴 적 만화방을 보는 듯 만화책이 가득했다. 그 곳에는 아버지와 딸이 만화 삼매경이다. 그 모습이 재미나서 사진을 여러 장 찍어도 만화세상에 푹 빠진 부녀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 지독하게 만화를 좋아해서 동네 만화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늘 그곳에 있다 보니 주인아줌마 대신 가게를 봐주면서 만화방집 딸처럼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만화방 출입을 단속했다. 그래서 나는 몹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동네 만화방을 졸업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만화를 사랑한다. 이곳에 만화영화를 틀어주는 TV가 있었는데,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정신은 모두 만화에 가 있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나는 뜻밖의 풍경에 신나서 돌아다니다가 이곳을 운영하는 분을 만났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인은 처음 방문이라며 무척 반가워 해주시고 여기 저기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데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만화 자전거>가 있었다. 타이완에서는 예전에 <만화자전거>가 마을에 찾아와 재미있는 만화를 보여주며 읽어 주었다고 한다. 오랜 옛날 이 마을 저 마을 누비고 다녔을 웃음보따리 <만화 이야기 자전거> 상상을 해보니 만화자전거 앞에 앉아 만화 이야기를 들으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평온한 마을풍경에 서서 지나간 이 마을이 주는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곳에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크기의 내이완 기차역이 보이고 기차는 가끔씩 지나갔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류씽칭 만화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 담고 타이완인 들은 이 작가의 만화 이야기로 어린 시절 행복지수를 높이고 살았다고 회상해준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자니 열혈 만화 애호가인 나에게는 이곳이 만화성지처럼 느껴졌다. 재미를 가득품고 있는 장난감 같은 작은 마을 내이완에서 나는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