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계에서나 가요계에서나 언제나 황금 콤비들은 존재하죠. 엘튼 존(Elton John)과 버니토핀(Bernie Taupin),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과 할 데이비드(Hal David),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2008년 세상을 떠난 작곡가 이영훈과 이문세가 있습니다. 이들은 1980년대 가요계의 ‘무적함대’라고까지 불렸죠.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이영훈의 세련된 선율과 이문세의 정확한 곡 해석력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리메이크가 되며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들 콤비의 화려한 데뷔를 알린 합작품이자 밀리언셀러 시대의 포문을 연 이문세의 3집입니다.
이문세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 (1985)
이문세 리메이크 열풍이 거세다. 그의 재평가에 대한 중론이 대두될 만큼 이수영, 성시경, 서영은, 리즈, 김범수, JK 김동욱, 조성모 등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후배가수들이 줄줄이 ‘이영훈(작사·작곡) 이문세(노래)’에 도전하고 있다. 가요계의 리메이크 난립이 일목요연하게 이문세 음악으로 정리되는 상황.
현재 가요판도를 쥐고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70년대 태생 가수들이 처음 음악을 듣게 될 시점에, 이문세가 그들 가까이에 있었고 음악정서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지 않고는 이문세의 80년대 명곡에 집중적으로 몰려드는 기이한 형국이 일기 어렵다. 이문세는 그들 내부에 깊이 저장된 노래들을 불러온 셈이다.
비단 70년대 생들뿐만 아니라, 이문세의 <3집>은 80년대 중·후반 당시의 젊은 여성들의 정서도 붙들고 있었다. 한 50대 남성의 증언을 듣는다. “이문세가 뜨기 시작할 때, 회사 후배 여성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했지. (내가)기혼이었기에 망정이지, 미혼이었다면 몹시 분개했을 것 같다.”
중년에 접어든 지금의 이문세가 라이브 무대에서 노래하는 <3집>의 옛 레퍼토리들은 주름진 인생과 묵은 경험들이 녹아들어 여성 팬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지만, 그때 그 시절의 이문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유독 여성적인 감수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이문세는 이영훈과의 첫 합작품이자 첫 성공작인 이 기념비적 앨범부터 방송디스크자키 외에 가수로서의 명성을 덤으로 얻게 된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이영훈의 음악은 당시로선 보기 드문 구조적 아름다움을 띠고 있었으며, 가요보다 세련된 팝을 선호하던 여성청중들에게 막대한 음악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영훈도 이를 계기로 유명작곡가로서 대접받기 시작한다. 그들 스스로도 그 때의 갑작스런 큰 인기에 대해 “겁이 났다”고 묘사할 정도다.
최근에 리즈가 리메이크한 「난 아직 모르잖아요」의 빅 히트는 연쇄적으로 다른 곡들에게도 이어진다. 이별의 심정을 휘파람에 투영한 「휘파람」, 사랑고백이 쉽지 않아 가슴앓이를 한다는 내용의 「할말을 하지 못했죠」, 2004년에 성시경이 다시 부른 「소녀」 등이 연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1986년에는 조용필의 인기를 넘어섰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난 아직 모르잖아요」에 대한 호응은 대단했다. 1980년대 중후반 가요역사를 규정하기 위해서 이문세란 이름 세 글자가 없이는 곤란하다. 일본 활동으로 인해 조용필이 잠시 국내에 부재한 탓도 있었겠지만 당시 이문세의 인기 상승, 아니 급상승은 가공할 수준이었다.
이문세 노래의 생명력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절제’ 때문이다. 메이저풍의 발라드 곡이지만 무척이나 슬펐던 멜로디를 그는 슬픔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억제하고 통제된 감성으로 소화했던 것이다. 이영훈의 고급스런 멜로디와 이문세의 해석력의 결합은 오히려 보컬 과잉이 만연한 지금에 상대적으로 더 빛을 내고 있다.
이문세의 해석은 노래 방식에서도 색다르게 나타난다. 오케스트라 편곡을 덮여놓으면 클래식이나 다름없었던 이영훈의 멜로디를 대중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이문세는 유연한 연음방식을 버리고 대신 끊어서 부르게 된다. (신승훈이 모창을 할 때면 이런 특징을 더 부각시키곤 한다.)
다른 인기곡들에 비해 약간 소외된 듯 했지만 연인들의 노래방 레퍼토리로 꾸준히 불려지고 있는 유재하 작품 「그대와 영원히」는 이영훈 음악과 유사하다 할 수 있겠지만, 이정선이 만든 「야생마」와 「혼자 있는 밤, 비는 내리고」의 포크적 감성은 일관성이 약간 결여된 감이 있다. 하지만 가요 품질의 일대 진전을 견인한 업적이 돋보이는 앨범이란 위상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문세는 5집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최고의 곡으로 선정했지만 앨범으로는 “오늘의 나를 만든 상업적 성공작이자, 음악적으로도 맑고 순수한, 그래서 미친 듯이 만들었다”며 3집을 최고로 꼽는다. 당연한 일이다. 이 앨범을 이문세를 떠올리는 동시에 ‘발라드’란 장르도 배태했다. 그가 나온 뒤 변진섭. 김민우, 신승훈 등 무수한 가수들이 출현해 발라드라는 연애편지를 쓰는 게 열병처럼 번져나갔다.
-수록곡-
[앞면]
1. 할 말을 하지 못 했죠 (작사: 이영훈 / 작곡: 이영훈)
2. 난 아직 모르잖아요 (이영훈 / 이영훈)
3. 야생마 (이정선 / 이정선)
4. 빗속에서 (이영훈 / 이영훈)
5. 혼자 있는 밤, 비는 내리고 (이정선 / 이정선)
[뒷면]
6. 휘파람 (이영훈 / 이영훈)
7. 소녀 (이영훈 / 이영훈)
8. 하얀 느낌 (이영훈 / 이영훈)
9. 그대와 영원히 (유재하 / 유재하)
10. 어허야 둥기둥기 (건전가요)
글 / 엄재덕(ledbest@hanmail.net)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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