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만한 댄스 리듬의 확산은 1990년대 중반 절정을 이뤘었죠. 그러나 한편에서는 정적이고 서정적인 ‘고급 발라드’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발라드’를 주 무기로 삼은 싱어 송 라이터가 붐을 이뤘던 시대도 바로 이 때였으니까요. 이즈음 굵직한 여가수의 등장을 알린 한 앨범이 있었습니다. 김현철의 프로듀싱 아래, 김광진, 조규찬, 고찬용 등의 참신하고 실력 있는 작곡가들의 곡, 무엇보다 독특한 개성으로 팬들을 사로잡은 목소리, 이소라의 데뷔작이었죠. 타이틀 곡 「난 행복해」는 말할 것도 없고 김광진의 곡 「처음 느낌 그대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이소라의 1집입니다.
이소라 <이소라 1집>(1995)
세련된 재즈의 분위기가 흡족하게 스며든, 도회적 느낌의 이소라 1집이 1995년 당시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포스트 서태지’ 시대의 가요계는 현란한 댄스 비트를 따른 발동작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어지러웠고, 대부분 그 발동작의 주인공들은 남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발자국이 무수히 찍힌 무대 위에 이소라가 남긴 그 해의 족적은 컸다. 먼저 가요 팬들은 ‘노래 잘하는 굵직한 여가수’의 등장을 보게 되었다. 단지 그런 선언적 의미를 넘어 그녀의 앨범은 음악적으로도 전곡이 탄탄했고, 결코 대중적 히트에 호소한 음반이 아니었음에도 말없는 다수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어 놓았다.
획일화된 댄스 뮤직에 지친 마음들이 이소라의 「난 행복해」가 들려주는 따뜻한 프렌치 호른 소리에서 안식을 찾았다. 특유의 허스키한 비음을 타고 흐르는, 서정적이면서도 흔치않은 재즈적인 멜로디와 가사는 충분히 많은 이들의 무드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갑작스런 스퍼트를 정당화해준 요소는 재즈그룹 ‘낯선 사람들’의 활동경력으로 다져진 출중한 보컬이었다. ‘풍만한’ 몸매와 수수한 외모마저 그의 가창력 덕분에 업그레이드(?)되어 평가될 정도였다. 텔레비전에도 가끔 빠끔히 얼굴만 비치고 들어가 버리던 이소라를 많은 사람들이 ‘모처럼 노래 잘하는 여가수’로 추켜세웠고, 그리하여 각종 가요프로 1위를 연속적으로 점령할 수 있게 되었다.
앨범은 고밀도의 완성도를 자랑했다. 김현철의 프로듀싱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 바로 이소라의 데뷔작이 아닌가. 이미 영화 <그대안의 블루>의 동명 주제가를 같이 불러 이소라의 바람 섞인 허스키 목소리를 기억해두었던 김현철은 그것을 세공하고, 거기에 특허 마크를 부여했다.
그는 앨범의 시그니처 송 「난 행복해」를 선사했을 뿐 아니라 자칫 비주류로 치부될 수 있었던 재즈적 발라드 중심의 앨범에 대중적 감수성을 불어넣었다. 김현철은 이소라라는 여성가수의 시대를 열어준 일등공신이었으며, 이소라의 데뷔작은 바로 그 김현철 프로듀싱의 개가였다.
김현철을 차치한 나머지 공신들의 면면도 속이 꽉 찬 실력가들이었다. 김광진이 선사한 「처음 느낌 그대로」는 그야말로 처음 느낌 그대로 꾸준히 리퀘스트되는 명 발라드의 한곡이 되었다. 외에도 「운명」, 탁월한 스탠더드 발라드 곡 「우연히」는 조규찬이, 낯선 사람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고찬용이 「권태」를 채워 넣었다. 이 알찬 곡들을 함춘호, 조동익, 배수연, 박용준 등 쟁쟁한 세션들이 소리로 빚어내었다.
공신들의 눈부신 활약은 이소라의 목소리를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앞서 지적했듯 이소라는 분명 노래 잘하는 가수로 만인의 인정을 얻어냈지만 그의 노래는 1995년을 풍미하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 노래를 잘한다는 가수들은 빠른 비트의 댄스 리듬에 힘 있는 목소리로 고음을 구사하는 게 유행이었으나 이소라가 선택한 것은 ‘절제’였다.
그녀의 허스키 보이스는 오히려 내지르기와 심한 꺾기 등을 피해가며 가장 독특한 개성과 매력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성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뽑아내는 「처음 느낌 그대로」의 애절한 여성의 마음을 짚어낸 가사는 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후려쳤다. 이소라 음악은 남자들에게도 압도적 사랑을 받았다.
당시 주류 곡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던 20대 중후반의 감수성을 정확히 짚어낸 음악이기도 했다. 대중적 친밀감을 불러일으킨 「난 행복해」, 「처음 느낌 그대로」만으로도 앨범은 충분한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또한 로맨틱한 재즈의 리듬과 부드러운 스트링과 트럼펫으로 멋을 낸 「고백」, 김현철과 장필순이 불렀던 「잊지 말기로 해」를 이문세와 같이 불러 낸 것, 인상적인 일렉트릭 바이올린 선율을 가볍고 경쾌한 선율에 덧붙인 「더위」 등도 새로웠다. 「우연히」, 「권태」 등 한껏 묻어나는 고급스러움 덕분에 조금은 대중과의 유리될 만한 곡들도 밀리언 셀링 음반에 담겨질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난 행복해」가 조용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이 곡이 1995년의 정점을 찍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곡은 참 좋은 곡'이라고 생각할 수 있던 시기적 상황과 맞물렸던 것이다. 많은 20대들은 너도나도 기꺼이 이소라의 고혹적인 목소리를 받아들였다.
획일화된 제작 풍토와 일회성 인기가 범람해 ‘노래’의 부재에 시달리고 있던 가요계에 이소라의 데뷔작은 '노래'를 가지고 온 앨범이었다. 지금 들어도 1995년이 낳았던 음악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콘텐츠가 아닐 수 없다.
여성이 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이고 성숙한 음색을 들려준 이소라는 음악적인 앨범도 상업적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몇 안 되는 여가수였다. 지금 이런 여가수를 찾긴 어렵다. 그만큼 가요계 풍토가 급변했다. 음악성을 녹여낸 앨범은 시장에서 참패하고, 성공한 여가수와 걸 그룹으로부터 음악적 포만감을 맛보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그가 거둬낸 100만장이 넘는 판매 수확은 정당하고도 뜻 깊은 것들이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음반에서도 1집의 드림팀이 합세해 김현철의 지휘 아래 「청혼」을 터뜨렸고, 이 초기의 음악적, 상업적 동반 성공은 이소라가 내는 앨범마다 높은 신뢰도를 부여했다. 그 출발선은 바로 「난 행복해」였고, 아직까지도 우리는 「처음 느낌 그대로」를 기억하고 있다.
글 / 김소연(mybran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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