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를 종단하면서 지구가 참 작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구가 작다고 해서 이번 여행이 쉬웠다는 말은 아니다. 오천 원짜리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거리에 있는 이웃 나라에 가보는 것이 꿈만 같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관련된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떠난다는 것이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만, 덜컹이는 현지 버스를 타고 때로는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내려온 길들은 편하게만 자라온 우리 두 사람에게 인내성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된 여정이었다.
하지만 막연한 열정, 삶의 작은 조각을 과감히 투자할 이유, 함께 떠날 이 그리고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면 기온이 60도에 육박하는 사막횡단도 가능한 일이었다. 삶의 기쁨 안에서 보낸 이 2천 시간의 여정은 우리 기억의 언저리에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다가올 그 어떤 미래도 두렵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 테다.
우리 두 사람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모르겠다. 아프리카에 남아 평생을 정착하게 될지도, 어느 날 오세아니아로 훌쩍 떠나 뉴칼레도니아와 같은 천혜의 섬에서 환경구호 활동을 하게 될지도, 서울이나 파리와 같은 대도시에서 번듯한 직장을 얻게 될지도, 아니면 남프랑스 시골 구석에서 까치밥나무 농사를 짓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확실한 단 하나의 사실이 있다. 아프리카의 오지이든 중동의 전쟁지구이든, 우연이 데려다줄 그 어디에서든 나는 언제나 그와 함께이리라는 사실이다. 그와 함께하는 한, 언제나 그의 가슴 한 뼘 크기만큼의 내 작은 파라다이스가 보장되는 셈일 테니 나의 삶은 언제든 충분히 완전할 것이다.
마음이 가볍다.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감격적인 기운으로 나의 존재를 휘감고 있음을 느낀다. 문득, 여행을 그만둠과 동시에 방구석에 먼지 쌓인 채 방치했던 배낭 한구석에서 지난 여행의 잔부스러기들을 받아내고 있던 푸른 노트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시큼한 냄새가 나는 종이뭉치를 쥔 엄지와 중지손가락 사이로 이상하리만큼 울렁이는 열정이 느껴졌다. 이것은 곧 이유 없는 욕구로 검은 펜대를 들게 하더니, 나는 어느새 차분하게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그래, 글을 쓰자. 나는 언제나 글을 쓰면 행복했으니.
‘우연― 그것은 뭐랄까, 두 점 사이에 놓인 운명 같은 것이었어. 너와 나 사이에 놓인 거리만큼이나 사소한 것, 그래서 우리가 언제든지 손을 뻗으면 맞닥뜨릴 수 있는 그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