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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 뽈과의 감격적인 만남

레오의 첫인상은 뭐랄까, 흙을 뒤져 먹을 것을 찾는 돼지들과 길거리 개들이 한산한 거리 풍경을 이루는 가운데, 한쪽에 하릴없이 모여 앉은 동네 젊은이들이 여유로움과 적막감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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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의 첫인상은 뭐랄까, 흙을 뒤져 먹을 것을 찾는 돼지들과 길거리 개들이 한산한 거리 풍경을 이루는 가운데, 한쪽에 하릴없이 모여 앉은 동네 젊은이들이 여유로움과 적막감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레오의 첫인상은 뭐랄까, 흙을 뒤져 먹을 것을 찾는 돼지들과 길거리 개들이 한산한 거리 풍경을 이루는 가운데, 한쪽에 하릴없이 모여 앉은 동네 젊은이들이 여유로움과 적막감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푸석푸석한 붉은 땅 위에 띄엄띄엄 떨어진 농지들과 진흙을 뭉친 돌로 지은 소박한 가옥들, 그리고 달거리장이 서길 기다리며 텅 비어 있는 공터가 마을이 가진 전부를 설명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레오는 흙과 돌만으로 이뤄진 단순하디 단순한 시골마을이었지만, 오히려 뚜렷한 표지標識가 될 만한 눈에 띄는 건물들이 없어서 골목으로 무작정 들어섰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기가 십상이었다. 이곳에 이미 두 번이나 와본 그조차 한동안 거리 곳곳을 기웃거리며 생판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에 휩싸여야 했던 것은 그런 까닭에서였다. 다행히도 그가 4년 전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려 레오에서 유일하다는 여인숙을 찾아냈다.

우리는 방 안에 짐을 풀자마자, 마을 젊은이들의 휴식처로 유명한 마끼인 <꼴롱브>라는 맥주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찾아 나섰다. 바로 그의 대자인 뽈이었다.

뽈은 마끼 앞에 앉아 있다가 멀리서 걸어오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힙합바지에 흰 티셔츠, 챙모자를 푹 눌러 쓴 그의 모습이 서울의 홍대 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여느 20대 초반의 젊은이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태양에 닳고 닳아 거의 분홍빛으로 바래버린 그의 빨간 모자가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일 테지만.

든든한 모습으로 자란 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기쁨에 차오르고 있었다. 둘은 잠시 감동받은 표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더니 이내 환한 웃음과 함께 서로의 어깨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제 어엿한 성인으로 재회한 두 사람은 오랜 우정의 장본인으로서, 어느새 시간이 만 들어낸 감격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기쁨과 흥분을 가라앉히며 마끼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오랜 회포를 풀기 위해 스피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를 잡아 앉았다. 미장이 일을 마치고 온 뽈의 친구가 뒤늦게 합석하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시원한 콜라를 한 병씩 들이키는 사이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뽈은 10년 전부터 변함없이 함께하고 있다는 여자친구 자랑에서부터 꿈을 찾아 레오를 떠난 다른 젊은이들의 근황에 이르기까지, 레오의 잡다한 소식들을 전하면서 그동안 레오가 그리웠을 그를 미소짓게 하 는 정겨운 이름들과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꺼냈다.

물론 연초에 고등학교 자격시험에 합격한 감동적인 사건으로도 특별히 할 말이 많았다. 벌써 5년째 학비를 보내주고 있는 그의 순수한 우정에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뽈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코트디부아르로 일을 하러 떠났던 부모님을 어릴 때 잃고 고아가 된 뽈은 사촌누나 손에 근근히 커 오면서 열여덟 살이 다 되도록 학교에 한번 가보지 못했었다고 한다. 하루 먹고살기에 돈 백 원도 귀한 이곳에서 1년에 이십만 원쯤 되는 학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프리카 대부분의 시골에서는 고등학교를 마치는 것은 고사하고 정규교육조차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하지만 뽈은 언제나 학업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그와의 인연이 뽈의 인생에 희망의 불을 지펴주기 시작했다.

5년 전, 원예학교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아프리카의 농가들을 방문하던 중 레오에 잠시 머물게 된 그는 매일 저녁 그의 숙소로 찾아와 교육의 기회를 갖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을 토로하던 뽈에게 믿음을 느껴 결국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건네게 되었다.

이제 뽈은 3년 내로 와가두구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프리카에 설립된 의학 대학교에 지원해, 훗날 에이즈 백신을 만드는 아프리카발 프로젝트의 일선에 서고자 하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뽈은 이것이 지난 5년 간 자기와 함께 꿈을 꾸어준 그의 덕이라며 참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 모습을 바라본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뽈의 친구도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나는 이들의 눈빛 위에 머물던 경건함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젊은이들의 겸손한 얼굴 위로 저녁노을이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여행에 지쳐 피곤했던 우리는 다음 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뽈과 그 친구가 숙소까지 바래다주고 싶다며 기어코 따라나섰다. 마끼를 나와 나란히 걷는 우리 네 사람 곁으로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급한 커브를 돌며 붉은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그때, 불그레한 흙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뽈의 얼굴에서 무언가 투명한 것이 반짝이는 듯했다. 어쩌면 숨죽여 흘리던 한 줄기 눈물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하얗고 두툼한 손이 뽈의 검고 마른 손을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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