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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zy for crash! 각각의 무대도 뜨거웠지만, 아폴로18과 김바다, 크래쉬가 함께 열창한 무대는 단연 압권이었다. | |
오늘 밤의 헤드라이너 펫샵보이즈를 정갈한 심신으로 영접하기 위해, 같은 숙소에 머무는 이웃들은 긴 취침 & 휴식 모드에 들어갔다. 오후 세 시. 그린 스테이지에는 아폴로18이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아폴로18놈들입니다”라고 다소 과격한 인사를 던진 아폴로18의 최현석은 “지산 물가 XX 비싸. 서민들이 마음껏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해줘!”라고 소리를 질러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대낮의 태양열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Crazy for crash로 묶인 피아, 김바다, 크래쉬의 무대는, 단연 용광로 같은 록의 무대를 선사했다. 툭툭, 몸에서 땀이 낙하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방금 수영장에서 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땀에 젖어 잠시 숙소로 되돌아갔다. 열을 식히고 나와 보니, 어제와는 또 다른 분위기. 훨씬 더 많은 인파가 지산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 많은 인파, 한층 세지는 음악…… 분위기는 최고조를 향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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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보다 한층 돋보였던 장기하의 공연. | |
빅탑 스테이지에는 장기하가 열창하고 있었는데, 무대를 둘러 싼 잔디밭과 통행로에 사람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두런두런 마주보고 앉아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보다 음악에 열광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능수능란하게 관객 반응을 유도하는 장기하와 그에 호응하는 환호로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관객들은 전주만 듣고도 환호한다. 그런 음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장기하는 무대 위에서 승승장구했다. ‘미미 시스터즈’ 대신 ‘목젖들’이라는 코러스와 함께 무대에 섰는데, 함께 공연을 본 선배는 덕분에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을 “헤드라이너를 제외한 공연 중 최고이자 한국 아티스트 공연 중 최고”로 꼽았다. 작년에 비해 훨씬 세련된 무대매너와 보컬의 역량이 돋보였다는 이유다.
부지런히 그린 스테이지로 향했다. 시간이 겹치지 않게 해서 대부분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끔 배려한 것은 땡큐지만, 이렇게 스테이지 사이가 멀다니, 틈틈이 오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빅탑 스테이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움직이지 않는다. 고대하는 뮤트매스 공연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헌데 뮤트매스 공연은 제 시간이 되도 시작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몇 십 분이 흐르고 나서야 등장한 그들은 경쾌하고 힘찬 사운드로 관객들과 첫 인사를 대신했다. 귀에 쏙쏙 꽂히는 힘 있는 후렴구 덕에 사람들이 이내 노래를 따라 부른다. 키보드에 물구나무로 올라서서 연주한다는(!) 기이한 퍼포먼스를 꼭 확인하고 싶었는데, 이거 시간이 지나도 보여줄 기색이 없다. 제일 유명한 곡인 「spotlight」도 아껴두고 꺼내질 않는다. 사람들은 오래 기다려주지 못한다. 빅톱 스테이지에서 펫샵보이즈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시간이 되어 지체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 펫샵보이즈, 그날의 무대는 언제나 내 맘속에!(Always On My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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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중년 닐 테넌트, 이날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 |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이 눈에 띄게 불어나고 있다. 기꺼이 앞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깨를 맞댔다. 이 순간을 위해 축적해준 체력을 쓸 때가 됐다. 펫샵보이즈가 등장하자, 객석이 출렁출렁 파도친다. 흔들리고 부딪치고 그렇게 다 함께 춤을 춰댄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커다란 모자를 벗자, 선연히 드러나는 백발의 닐 테넌트! 그에게서 전혀 녹슬지도 변치도 않은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광경은, 좀 감동적이었다.
감칠맛 나게 노래하는 펫샵보이즈와 혼신의 몸동작을 보여주는 댄서들! 이날의 완벽한 무대는 최근 발매한 앨범 영상에 담긴, 2009년 런던 아레나 공연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노래 분위기에 맞춰 절묘하게 바뀌는 배경화면과 무대 장비들, 노래의 스토리와 감성을 담아낸 댄스는 풍성한 볼거리를 연출했다. 펫샵보이즈는 매 곡마다 의상을 달리하여 한 시도 무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게 했다.
사람들은 「Go West」를 애국가처럼 다같이 떼창했고, 「Always On My Mind」를 부를 때는 다들 자지러지며 열광했다. 선배가 말한 ‘80년대 고고장의 추억’ 같은 건 없지만, 그들은 ‘현재에도’ 충분히 멋졌다. 펫샵보이즈가 들어가고, 앵콜을 환호할 때 사람들이 반주 없이 허밍으로 「Go west」를 불렀다. 이 공연 하나를 보기 위해서 지산에 왔다고 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굉장한 무대였다. 노신사들은 마지막까지 정중하고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떠났다.
축제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오늘은 토요일 밤이 아닌가! 댄스 플로어는 더욱 화끈하게 달궈졌고, 잔디밭에는 공연이 끝난 지 한참인데도 사람들이 그대로 둘러앉아 있다. 한쪽에서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그대로 누워서 잠든 사람들도 보인다.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토요일 축제의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허나 일찍부터 땀을 빼서 그런지, 나는 펫샵보이즈 공연이 끝날 때쯤 몸이 있는 대로 늘어져 있다. 밤을 불태우자는 권유를 만류하고, 숙소 앞까지 혼자 기어간 것까지만 기억이 난다. 내일이 있어서 별로 아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