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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엔 처참하게 난도질 당한 염소 고기가...

마을의 입구는 북적이는 맛은 없었지만 조용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부르키나파소 사람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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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의 나라 이름이 갖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일상처럼 산재한 곳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다음 날이 밝았다. 이제서야 부르키나파소라는 나라를 그리고 보보디울라소라는 도시의 진풍경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4년 전 이곳에서 이틀 밤을 보낸 경험이 있었던 터라 나만큼 호기심에 흥분한 듯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4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버스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의 외곽에 숙소를 잡았기에 가끔씩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새로운 모습들과 마주하기도 했다.

마을의 입구는 북적이는 맛은 없었지만 조용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부르키나파소 사람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였다. ‘정직한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의 나라 이름이 갖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일상처럼 산재한 곳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게다가 보보디울라소가 속해 있는 남서 지방은 특유의 지리적인 풍요로움 때문인지 길거리 소시민들의 성실한 모습에서 은근한 여유와 미소까지 찾아볼 수가 있었다.

보보디울라소는 낮은 농업 생산성으로 굶주림에 허덕이는 부르키나파소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숲과 물이 풍부해 부르키나파소 제2의 수도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곳이다. 게다가 사탕수수가 대량으로 재배되고 있는 국가 최고의 명소인 벤포라 폭포수 지대와 멀지 않아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의 표정에는 잔잔한 생기가 있었다. 그늘에 앉아 망가진 자전거를 수리하는 노인의 이마 주름살에, 집에서 어머니가 발효시킨 히비스커스 음료수를 작은 봉지에 묶어 파는 어린 소녀의 미소 짓는 입꼬리에, 또 도로 한복판에 서서 전화카드를 파는 젊은 청년들의 힘주어 외치는 목소리에 왠지 모를 힘과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우리는 이제 막 하루가 시작되는 거리 곳곳의 부스스한 정경들을 지나 도시의 후미진 구석에 다다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자리 잡은 장사꾼들이 저마다 목청 높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세우고 있었다.

시장은 도시의 다른 어느 곳보다 가장 먼저 잠에서 깨어나는 장소이자, 아침 그 자체였다. 골목을 휘돌아 끊임없이 이어진 시장에는 각종 먹을거리부터 입을 거리까지 없는 게 없었다. 아기자기하게 들어선 모양새였지만 그 규모가 은근히 커 장이 끝날 때까지 한 바퀴도 채 못 돌 것 같았다.

시장의 입구에는 장난감처럼 자그마한 크기의 아프리카 피망과 가지를 파는 젊은 처녀들이 행인들의 눈을 하나씩 맞춰가며 장사에 여념이 없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양파와 감자 등 중간 크기의 채소들을 파는 아낙네들이 포진해 있었다. 바로 옆에서 바나나와 망고를 파는 이들은 왜인지 모두 어린 소녀들이었다. 어수선해 보이는 시장에도 무언가 불문의 규칙이 있는 듯싶었다.


골목의 꺾인 구석으로 나아가자 이번에는 갖가지 곡물을 담은 보따리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어떤 보따리 안에는 거위의 배설물처럼 보이는 까만 낟알들이 들어 있었다. 처음 보는 화려한 색감의 열매들을 말려 고운 가루를 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곁을 지나치자, 그 옆에서 생강과 아프리카 마를 깎아 팔고 있는 어느 노파의 깊은 주름살과 마주쳤다.

그런가 하면 소, 돼지, 염소 가릴 것 없이 처참하게 난도질을 해 놓은 정육점에서는 벗은 웃몸 가득 피를 뒤집어 쓴 남자가 지나가던 우리를 한사코 불러 세워 각 부위별로 고기 구경을 시켜주기도 했다. 재래식으로 만든 비누와 향료, 그리고 옷가지들이 즐비한 골목의 막다른 곳에는 유독 젊은 처녀들이 북적댔다.

우리는 시장 사람들의 노련한 장사 공세를 모두 뿌리치고 결국 입구에 앉아 있던 어린 소녀에게서 이백 프랑세파, 그러니까 단돈 육백 원에 바나나 한 송이와 망고 한 개를 사들고 시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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