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설치된 커다란 원형식탁 위에서는 이미 각국의 다양한 음식들이 무르익고 있었다.
우리와는 반대로 가나의 이웃나라인 코트디부아르에서부터 시작해 고향인 영국까지 육로로 올라가고 있는 어느 여행자, 모리타니아가 너무 좋아 떠나질 못하고 지난 몇 달 간 정착할 구상을 하다가 이제 막 일자리를 찾았다는 프랑스 여자, 그리고 우리처럼 사하라 사막을 건너 내려온 세 명의 스위스인들이 다 같이 모여 앉아 하루의 여독을 풀어내는 자리였다.
우리도 그들 곁에 앉아 팔팔 끓는 라면 냄새를 풍기며 한밤의 여유에 합세했다. 누악쇼트의 여인숙에서 우연히 만난 일곱 명의 이방인들이 고요한 사막의 한자락에 둥그러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들 피곤에 지친 얼굴들이었지만 저마다 들뜬 목소리로 자신의 여행담을 늘어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각자 다른 곳에 살다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여행을 떠나오게 되었지만, 우리는 모두 북아프리카의 낯선 한곳에 모여앉아 지구에서의 삶이 허락하는 그 커다란 감동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어떤 이는 10대 시절부터 서아프리카 육로 횡단을 꿈꾸어 왔기에, 어떤 이는 휴가차 가벼운 마음으로, 또 어떤 이는 50년 간 살아온 익숙한 고향 마을과 가장 대조적인 풍경을 찾아서 이곳에 다다랐다. 여행을 위한 여행으로, 목적을 위한 목적으로, 지구의 넓디넓은 표면 위를 항해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이 모두 닮아 보였다.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직접 자가용을 끌고 아프리카를 세로 지르고 있는 마리안느 부부는 조금 다른 사연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부르키나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Ouagadougou였는데, 자동차 가득 실어 온 옷가지와 동화책들을 와가두구에 있는 여러 보호소의 고아들과 미혼모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스위스에서부터 이 먼 길을 온 것이었다. 이 인심 좋은 부부는 끌고 온 자동차마저 와가두구의 인권단체에 기증할 생각을 하고 스위스로 돌아갈 비행기표까지 이미 사 두었다고 했다.
이 부부와 동행하고 있는 중년의 스위스 남자 미셸은 고향에서부터 몰고 온 그의 정든 자동차를 중고자동차 거래시장으로 유명한 말리에서 싼 값에 팔기 위해 이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난방기기 설치업자인 미셸은 아프리카를 좋아해서 이번 육로여행만도 벌써 스무 번째라고 했다. 냉방기기 전문가였다면 좋았으련만 직업상 추운 유럽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휴가철만 되면 차를 이끌고 아프리카까지 내려온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했던 수차례의 아프리카 여행에 지쳐 이제는 녹슬 대로 녹슨 자신의 자동차를 처분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이번 여행이 꼭 마지막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여기 두 젊은이는 무슨 일로 아프리카에 오셨나…….”
본인의 얘기를 마친 미셸이 이제 대화의 화제를 우리 두 사람 쪽으로 돌리려 하고 있었다.
순간 왜인지 그와 나는 동시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가나라는 나라에 도착하기 위해 힘겨운 여행길에 올라 있기는 하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이 여정을 시작한 것인지는 짧은 한마디로 이루 다 설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마치 누군가의 거대한 손에 떠밀리듯 젊음의 제2막에 들어서버린 상태에서 우리는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고, 새로운 삶의 형태를 이룩해야만 했으며, 지난 학업생활 동안 늘 꿈꿔왔던 이상을 좇아 스스로를 던져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과 젊음의 상관관계를 찾아내야만 했다.
아, 그와 나는 그동안 대륙 반대편에 살던 연인을 그리워하는 깊은 애심에 시달렸고, 사회의 부조리에 순응하기 위해 삶의 정체성에 쓸데없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으며, 드넓은 우주의 존재를 알면서도 쉬이 다가가지 못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번민으로 지쳐가야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떠났던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아프리카의 허허벌판에서부터 시작해 우리 두 사람의 진정한 삶의 터전을 찾아내고, 일궈내기 위해서.
여행 중에 아프리카를 찾아온 다른 수많은 이방인들을 만나고, 또 그들과 한데 섞여 이방인이 되기도 하지만 저 길을 지나는 사람도, 이 길을 떠나는 사람도, 그리고 그 길에 머무는 사람들조차 서로가 원래부터 닮아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 어떤 목적에 의해서든 여행 혹은 인생이라는 것은 지구라는 행성 전체를 삶의 영역으로 삼은 채 제 한 몸 거할 그 작은 자리 하나 찾는 이들의 이런저런 섞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