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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fferent와 wrong은 그냥 다른 거예요 - 『이슬람 정육점』

아랍어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단어다. 일상의 작은 일 하나까지 알라의 은총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무슬림들의 신앙을 대변하는 한마디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슬람과 무슬림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교 때 들었던 한 강의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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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손홍규 저 | 문학과지성사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눌러살게 된 터키인이 상처투성이의 한 아이를 입양하면서 그 상처를 보듬어 안는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이다. 전작 『봉섭이 가라사대』, 『귀신의 시대』 등을 통해 도시화된 폭력적 환경 속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적인 삶과 인간성 소멸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려온 작가 손홍규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깊고 오랜 상처와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집약적으로 형상화했다.

알 함두릴라.

아랍어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단어다. 일상의 작은 일 하나까지 알라의 은총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무슬림들의 신앙을 대변하는 한마디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슬람과 무슬림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교 때 들었던 한 강의에서 시작됐다. 한국중동학회를 역임하셨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선생님?께 들었던 이슬람교 개론이라는 수업. 한 학기 동안 당신의 목표는 이슬람에 대한 모든 편견과 오해를 풀어내는 것이라 단언하시면서 한 학기 내내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 강의였다.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니. 그렇게 이슬람과 인연을 맺고 졸업논문도 이슬람을 주제로 썼으니, 그 수업은 내 진정한 대학생활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루 다섯 번씩 정한 시간에 알라에 기도를 올리며 살아가는 경건한 무슬림들의 생활은 내게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 ‘다름’(different)과 ‘틀림’(wrong)의 차이가 무엇인지 똑똑하게 알게 되었다.

different와 wrong은 그냥 다른 거예요
정말 미스터리합니다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급격한 세속화는 이슬람 사회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아직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문화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꾸란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도 그중 한 가지다. 그런데 이슬람 정육점이라니, 돼지고기를 썰어서 판매하는 무슬림이라니,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그것도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으로 참전하여 눌러앉은 사람이란다. 전쟁의 참혹한 흔적을 몸에 새겨 넣은 흉터를 가지고 이국땅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하산 아저씨,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 채 상처투성이로 살아가는 그의 의붓아들. 이들은 different와 wrong을 거의 동일한 단어로 여기는 한국사회에서 갖은 선입견과 편견, 폭력적인 시선 속에 살아간다.

주인공이 자란 고아원 원장의 시선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시선이다. 공원 화장실 앞에서 하산 아저씨를 보고 움츠려든 청년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소설 속이나 현실이나 마찬가지로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와 같은 시선이 판을 친다. 침대에 사람을 눕히고 그가 침대보다 작으면 몸을 늘려서 침대에 맞추고 침대보다 크면 잘라서 침대에 맞췄다는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가 왜 이리 많은지.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다른 사람의 존재와 생각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폭력적인 시선이 다름과 틀림의 의미를 동일화하는 중요한 원인이라 생각한다.

소수자로 살아가기 힘든 한국사회. 작가는 이태원 이슬람 사원 주변에서 살아가는 ‘지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실제 우리 사회는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세계보다 더 암울한 것 같다. 참 우울하다.

우리가 타인을 거울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내부의 모순을 모순으로 여길 능력이 없기 때문이란다. 타인의 모순된 행동을 통해서 나를 유추해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타인을 거울로 삼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미지의 영역에 내버려둔 채 한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p.170)

『여럿이 함께』에서 신영복 선생은 “不鏡於水 鏡於人”(불경어수 경어인)이라는 묵자의 말을 인용한다. 당시 사람들이 맑은 물을 거울로 삼았던 것을 고려하면, 이 말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지 말고 사람에 비추어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라는 뜻이다. 하산 아저씨 역시 타인을 거울로 삼는 삶을 이야기한다. 타인이 ‘틀린’ 사람이라면 鏡於人은 불가능할 것이다. 거울에 비춰보면 전쟁을 통해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거울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을 비춰보면 전쟁의 그늘에서 피폐해진 삶이 드러난다는 묵자의 가르침은 프로크루스테스로 가득한 우울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작이 될 것이다. 나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추어 볼 때, 다름과 틀림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고 똑똑하게 알게 되리라.

한 사람의 그림자가 온 지구를 덮는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하산 아저씨는 부단히 그를 학교에 보내려고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고아이면서 무지막지한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에게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될 돌연변이를 보는 듯한 경멸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의 흉터를 보고 낄낄대며 웃는 고아원 원장과 부인의 대화를 보고 작가는 단언한다. “상처받은 사람을 놀리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나’는 자기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자신이 왜 고아가 되었는지, 오른쪽 쇄골 아래 큼지막한 흉터가 왜 생겨났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대신 그의 주변에는 그와 동일한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또한 만나는 수많은 ‘얼굴들’을 스크랩하면서 자신의 존재와 흉터의 의미를 조금씩 발견해 나간다.

신부의 그림자 속에 있을 때면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내 몸의 흉터가 사라지고 파인 곳이 메워지고 새살이 돋고, 돋았던 곳이 가라앉으며 소름이 슬며시 가라앉듯 까닭 모를 서글픔도 사라졌다. 누군가 내게 상처를 주려고 시도한대도 그 순간만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부의 그림자는 지구를 덮고도 남을 만큼 컸다. 상처를 덮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일이니까.(p.60)

흉터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저마다 그 흉터를 감추려고 뭔가 대단한 사람인양 떠벌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을 아닐까. 종교지도자인 전도사와 이맘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처와 흉터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역시 사람의 몫이라는 점이다. 한 사람의 그림자가 온 지구를 덮을 수 있다는 작가의 외침이 가슴 한 켠에서 깊이 울려 퍼진다. 하산 아저씨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자기 몸에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는 주인공 역시 ‘아버지’라는 존재로 인해 그 자신의 흉터를 뛰어넘어 이 더럽고 치사한 세계마저 입양할 수 있는 용기와 단호한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그림자에 대한 단상

최근 들어 한국사회를 가리켜 ‘다문화 사회’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하여 다문화 가정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우리와 다르게 생긴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는 것 같다. 다문화 사회이건 아니건 그 어느 사회에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덕목은 ‘인간존재에 대한 경외’다. 나와 다르게 살아가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를 거울로 삼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든 그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정육점 이야기는 무척이나 나를 우울하게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밟고 싶지도 않은 그림자가 될 것인가, 온 세상을 품을 수 있는 그림자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이제 내 몫이다.

덧.
손홍규 작가는 문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작품을 써 내려가는 작가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은 단어나 표현까지도 세심하게 다룬 그의 노력과 진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무릎을 치게 하는 수많은 표현 중 최고의 표현을 하나 꼽아본다.

“식은 햇살이 고양이처럼 은밀하게 들어와 식당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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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통 가톨릭 성자 집안에서 자라 이슬람을 전공하신 선생님은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이 세상에 돌아가지 않겠냐고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이희수 선생님을 알고 싶다면 그의 작가파일을 확인해 참고하시라.
(www.yes24.com/2.0/AuthorFile/AuthorFileD.aspx?authno=522)


손홍규

197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래, 도시화된 폭력적 환경속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적인 삶과 인간성 소멸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소설을 발표해왔다. 손홍규는 특유의 상상력 속에 독특한 유머와 능수능란한 아이러니를 구사하면서 인간사의 진리와 인간다움의 진리를 부단히 탐구하고 있으며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변혁하려는 굳건한 의지를 보인다.
김도훈 (도서 1팀)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미소지을 수 있는 별쟁이이자, 고성방가를 즐기는 딴따라 인생이란다. 책상에 붙어 있는 시간보다 운동장에서 보낸 시간이 많고,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믿음으로 지금도 노래하며, 뛰어다니고 있다.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라는 묵자의 말(不鏡於水 鏡於人)을 마음에 새기고, 사람들에 큰 관심을 가지며 살아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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