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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사막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다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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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한 탓에 버스여행의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사하라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천근만근이 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경찰검문소로 가는 택시를 탔다.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전날 밤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한 탓에 버스여행의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사하라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천근만근이 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경찰검문소로 가는 택시를 탔다.

검문소의 맞은편에는 정체불명의 공터가 있었는데 이곳이 이른바 ‘사하라 정류장’으로, 여기에 서사하라 사막을 종단해 모리타니아로 가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개인 차량들이 항상 서너 대는 대기하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사하라행 운전사들 중의 한 명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모리타니아의 전통의상인 연하늘색 가운이 텁텁한 바람에 날려 비쩍 마른 무릎이 훤히 드러났다.

“누아디부, 누아디부!”

쉰 목소리로 목적지를 외치는 그에게 어설픈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택시 트렁크에 실려 있던 우리 배낭을 쏜살같이 잡아채어 자신의 차 트렁크 안에 실어 넣었다. 그의 차 안에는 이미 모리타니아인 남녀 두 명이 모로코에서 산 각종 야채며 곡식들을 무릎 위에 보듬은 채 차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운전사가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려 출발 신호를 보냈다. 우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오케이를 연발하자 코 끝에 걸친 커다란 선글라스 너머로 퀭한 눈이 미소지었다.

이렇게 꿈에 그리던 서사하라 사막의 종단 여정이 시작되었다. 모로코와 모리타니아의 국경에 맞닿은 도시 누아디부Nouadhibou까지는 여덟 시간 정도가 걸릴 예정이었지만, 해안가의 잘 닦인 도로를 달리는 것이라 더위나 갈증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을 듯했다. 다만 차창이 반쯤 밖에는 닫히지 않는 고물 자동차였던지라 끊임없이 불어오는 세찬 모래바람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무심한 태양은 소리도 없이 우리의 머리 위를 내내 맴돌았다. 나는 서서히 가열되고 있는 차체의 고무 이음새에 조심스레 어깨를 기대며 창밖을 응시했다. 휘몰아치는 바닷바람에 일제히 춤추듯 옮겨가는 모래 언덕의 모습이 어쩐지 무표정으로 발을 구르는 현대 무용수의 몸짓 같았다.

아, 대자연이 이토록 빠른 리듬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전에 목격한 적이 있던가. 횡격막처럼 팽팽한 대지와 창공 사이에 마치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대자연의 음악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수평방 킬로미터 안에 겹겹이 즐비한 모래 언덕들이 신들린 듯 움직이고 있었다.

시공의 창조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요구하지 않은 채 그저 가벼운 제 몸을 굴려 앞으로 나아가다가 이미 지나온 길 위를 다시 뒷걸음질 쳐 가는 모래 알갱이들의 모습이 인간의 자화상과 닮아 있었다. 지구의 모든 구성물들이 각기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렇지만 어딘지 닮은 이유로 삶을 소진하는 모습이 왠지 모를 슬픔으로 다가왔다. 삶이 슬프다는 것을 누가 알아줄까. 일각의 변함없이 온 사막에 균등한 빛을 내려 뿌리는 태양의 너그러운 자태만이 대자연의 오랜 진리를 섭렵하고 있는 듯했다.

도로변에 범람한 모래알갱이들이 자동차 타이어에 웃박혀 구를 때마다 타닥타닥 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사구沙丘는 날름이는 뱀의 혀처럼 알게 모르게, 그러나 확실히 빠른 속도로 움직여 아스팔트로 닦은 도로마저 침범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사막지대에 1천 년도 끄떡없을 풍만한 도로를 닦아 놓은 사람의 야망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원래 사하라 사막은 인간이 농사를 짓던 풍요로운 땅이라고 한다. 지금은 스산한 바람이 백황색 공간을 맴도는 끝없는 이 대지 위에, 저 아득한 옛날에는 푸른 초목이 만연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하라는 인간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취약한 땅이었다. 모래 위에 뿌리 내렸던 푸른 줄기들은 인간이 키우던 가축들의 먹이가 되어 하나 둘 사라져갔다. 시간이 흐르고, 대대로 씨를 뿌려온 사람들은 그다음 해에는 아무것도 거두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사하라는 땅 속 깊은 곳에 모래와 암석으로 침잠해 있던 제 본래 모습을 드러냈고, 불어오는 바람과 기약 없는 시간에 의해 산산이 흩어져 오늘까지 허공을 맴돌게 된 것이다.

점차 사막이 깊어져갔다. 의연히 솟은 하얀 언덕들이 그림자처럼 저만치 멀어지더니, 이윽고 유령처럼 뻗은 다갈색 암석들이 우리의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오랜 세월 사포결의 바람에 깎여 건드리면 툭하고 무너질 것만 같은 기암괴석들이 제 몸에 숭숭 뚫린 구멍들 사이로 휘파람을 불어댔다. 잘게 쪼개진 암석 조각들은 방랑하는 모래바람과 함께 도로 근방까지 다다라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그때 갑자기 고무 타는 냄새가 나더니 차가 멈추어 섰다. 아스팔트의 열기를 이기지 못한 타이어가 순식간에 녹아내린 것이었다. 사하라의 고속도로에서는 꽤나 자주 일어나는 일인지, 운전사는 물론 차에 탄 다른 승객들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차 문을 열고 나가 기지개를 켰다.

운전사가 타이어를 교체하는 사이, 우리는 송곳처럼 날카롭게 뻗은 암석 위로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마치 초식동물들의 대이동 행렬처럼 경건한 움직임으로 밀려 나아가는 거대한 사구들을 바라보았다. 신기루인 듯 혹은 환상인 듯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펼쳐지는 장대한 광경에 마음이 아려왔다.


도시에서 태어나 살다 도시에서 죽었다면 절대로 경험하지 못했을 전율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사하라였다. 사막을 가르고 쭉 뻗어 있는 고속도로 위를 편하게 달려오고 보니 나 어릴 적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건너던 사막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하라 사막은 내가 처음 경험한 아름다움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도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빠져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허리춤에서 카메라를 꺼내 벌써 사진 대여섯 장쯤을 찍었을 텐데, 지금의 그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서 먼 곳에 던진 시선을 거둘 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언제 다시 이런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을까 싶어, 일초 일각을 다투며 엄습하는 낯선 감동을 가슴 속에 새겨넣고 있었다. 능숙한 운전수가 타이어를 지체 없이 교체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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