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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말해봐, 뭐가 어쩌고 어째?

귀마개를 쓰고 과장스럽게 악을 쓰는 연예인. 상대방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뒤돌아 다음 사람의 귀에 대고 어떤 소리를 내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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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뼈와 살을 고르는 밤
- 사소한 팩트 틀리지 않고 핵심만으로 간추려 흥미있게 풀어내려면 -

“응? 뭐가 어쩌고 어째?”

귀마개를 쓰고 과장스럽게 악을 쓰는 연예인. 상대방은 연방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뒤돌아 다음 사람의 귀에 대고 어떤 소리를 내지른다. 고함치기와 의아한 대꾸의 릴레이. 한국방송의 장수 오락프로그램이었던 <가족오락관>의 오래된 풍경이다.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제목이었던가. 네댓 명으로 구성된 양 팀끼리 처음에 뿌린 특정 단어나 문장이 마지막까지 얼마나 정확히 전달되느냐를 놓고 겨루던 게임이었다. 다들 귀가 막힌 채 입 모양이나 감으로만 맞추다 보니 애초의 말이 생뚱맞게 바뀌곤 했다. 그럴수록 시청자들은 배꼽을 잡았다.

귀마개도 안 꼈는데 왜 못 알아먹지?

현실세계에선 어떨까. 귀마개를 착용하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없다.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 환경이라면, 사람들은 다른 이의 말을 무리 없이 옮길 수 있을까. 책이나 영화에서 본 내용을 제3자에게 쉽게 전할 수 있을까. 오늘의 주제는 ‘남의 말 요약하기’다. <가족오락관> 게임에선 기껏 몇 개의 음절로 구성된 낱말이나 짧은 문장이었지만, 현실에서 오고가는 것은 복잡한 사실관계가 얽힌 ‘이야기’다. 물리적인 듣기를 넘어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화한 뒤 또 다른 이에게 간결하고 센스 있게 배달하는 일은 글쓰기 실력의 내공을 판가름할 만한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에러가 발생하면 귀마개를 쓰지 않고도 악을 쓰게 된다. “무슨 말이야? 뭐가 어쩌고 어째?”

“한낮에 이도령이 산책을 나가서 춘향이를 만났지. 둘은 본 순간 사랑을 하게 되었어. 또 어느 날 이도령은 과거시험을 보러 서울에 가고 말았지. 춘향이는 슬펐어. 사또는 춘향이를 만났어. 춘향이가 수청을 거부하자. 춘향이를 엄청나게 괴롭혔지. 하지만, 다행히도 이도령이 과거시험에서 급제해서 암행어사로 돌아와 사또를 붙잡고, 춘향이를 구해서 춘향이와 사이좋게 오랫동안 살았대.” (고은서)

소설 『춘향전』을 읽고 초딩 은서가 요약한 내용이다. 은서는 무려 여섯 번을 줄였다. 처음엔 에이(A)4 종이 한 장 반을 채웠다. 절반을 줄이라고 했다. 그런 뒤 또 절반을 쳐내라고 했다. 그러길 여러 차례. 짧은 분량에 『춘향전』의 요점을 정리했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다. ‘사또의 등장’은 특히 뜬금없다. 중딩 준석의 다음 글은 상대적으로 노련한 편이다.

“16살 이도령은 방자와 함께 남원 광한루에 갔다가 춘향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도령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간다. 그 사이 새로운 사또가 등장,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고 하지만 지조 있는 춘향이가 그것을 거절함으로써 감옥에서 칼을 쓰고 있게 되며, 이도령은 어사가 되어 옛 고향인 남원으로 오는데 그곳에서 춘향이가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춘향을 구한 다음 사또를 혼내준다는 것.” (고준석)

복잡한 걸 간단하게 하는 건 ‘창의력’

준석의 글은 정확하고 조리 있는 편이다. 재미는 없다. “정확하게, 조리 있게, 재미있게”는 남의 이야기를 요약할 때 필요한 세 가지다. ‘정확하게’는 팩트(사실)의 엄밀성을 말한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파하기도 만만치 않다. 사소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꼭 생겨서다. ‘조리 있게’는 간추리는 능력이다. 뼈와 살을 잘 골라내 상대방이 알아먹기 쉽게 구성하기다. ‘재미있게’는 말을 흥미롭게 주무르는 테크닉이다. 여기선 생략한다. 복잡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압축하기는 ‘창의력’에 해당한다. 창의적 요약은 튼실한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

이야기를 넘어 ‘맥락’도 요약하라

“이리 오너라~ 알고 놀자~”

『춘향전』 판소리 가사를 그렇게 바꿔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업고 놀자”라는 가사가 18금 뉘앙스라서가 아니다. 똑바로 알지 못하고 쓰기 때문이다.

은서가 그렇다. “이도령의 이름이 뭔지 알아?” “이몽룡.” “근데 왜 도령이라고 해?” “…….”

이때 준석이 끼어든다. “양반집 자제를 가리켜 도령이라고 하는 거잖아.”

계속 은서에게 물었다. “이 도령은 어느 시대 사람이니?” “음. (한참을 생각하다가 연필을 굴리듯) 조선시대요.” “그런 건 왜 하나도 안 썼니? 최소한 어느 시대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일인가는 알려줘야지.” “…….” 맘에 안 드는 은서의 글을 소개한다. 『춘향전』 독후감 판본 중 그래도 제일 나은 한 편을 골랐다.

수청 신청을 거부한 용감한 춘향!

이도령은 맑은 날씨에 산책을 나갔어. 길을 가다가 저 먼 곳에 한 처녀가 있었지.

그 처녀의 이름은 남원에서 제일 유명한 미인인 춘향이었어.

이도령은 춘향이에게 한 눈에 반했지. 이도령은 하인에게 춘향이를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했어. 춘향이는 고집이 세서 계속 하인의 말을 안 따랐지만, 몇 번이나 꼬셨기 때문에, 춘향이는 결국 이도령에게 가고 말았어. 하인이 꼬신대로 귀티가 팍팍 났지.

둘은 사랑에 빠졌어. 이도령은 밤마다 춘향이의 집에 몰래가서 놀았어.

어느 날, 이도령이 과거시험을 보러 서울으로 올라가야 했지.

춘향이는 슬펐지. 사랑하는 사람이 몇 달 동안이나 요 근처에 없으니 말이야.

춘향이와 춘향이의 엄마는 이도령에게 울고 불며 때렸어. 이도령은 꼭 돌아오겠다고 했지. 이도령이 간 후에 좋고 나쁜 소식이 있었어. 나쁜 소식은 남원에 나쁜 사또가 왔어. 여자만 밝히는 사또였지. 사또는 춘향이를 계속 찾았지. 춘향이는 가는 것을 계속 거부했지만, 끌려왔지, 수청도 거절해서 결국 춘향이는 큰 칼을 씌우고 기생 열녀가 됐지.

좋은 소식은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었다는 것이야. 다행히도 암행어사 마패를 꺼내서 춘향이를 구했지. 그 둘은 행복하게 영원히 살았대나. 이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은, 대부분 사람들은 사또가 수청을 원하면 임자가 있어도, 무조건 수청을 드는데, 수청을 거부하니, 춘향이가 참 용감하다고 생각했고, 나도 그렇게 용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 못한 단어는 반드시 물어볼 것

은서의 글엔 맥락이 없다. 줄거리 요약만 있다. 최소한의 시공간 배경은 생략했다. 내친김에 『춘향전』에 등장하는 몇 가지 용어 테스트에 들어갔다. “수청이 뭐야?” “같이 자는 것, 아니 잠드는 것.” “그게 뭔데?” “뭐긴 뭐야 잠드는 거지.” “사또는 뭐야?” “높은 사람.” “지금으로 치면? 아니 우리 동네로 치면?” “음, 고양시장?” “열녀는 뭐야?” “남자들이 수청을 신청하면 임자가 있다면서 거부하는 것.” “암행어사는?” “자신의 신분을 가리고서 범행을 푸는 것.” “범행을 풀어?” “범인을 잡는 것.” “차라리 ‘나쁜 사람을 잡는 것’이라고 해라.”

꽝은 아니다. 완전히 모르면서 쓴 글은 아니라 다행이다. 모르는 건 아는 척 위장하지 말고, 미리 아빠에게 묻거나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냈어야 한다. 자기 머리로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고 쓴다면 그 결과물은 어설플 수밖에 없다.

칭찬할 만한 점도 있다. 남원에 나쁜 사또가 왔다는 것과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됐다는 것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으로 분류해서 읽기 편하게 정리해주었다. 자기식으로 기준을 세워서 설명한 것은 대견하다. 다음은 준석의 글이다.

개콘, 장화홍련, 춘향

춘향전, 내가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 책이다. 전설의 고향이니 수업 시간 영상이니 등등 많이 보기는 했지만, 정작 한 번도 읽어 본 적은 없는 책이다. 그러다 어제인 토요일, 아빠의 권유로 읽게 된 이 책을 소개한다.

춘향전의 내용의 첫 부분은, 선한 사또의 아들인 이몽룡이 16세인 어느 날 춘향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 내?은 지독하게 들어서 잘 안다. 『춘향전』 하면 음악이나 국어에나 꼭 들어가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몽룡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집을 옮기자, 신관 사또가 와서는 제일 예쁜 기생을 잡아 수청을 들라 명한다. 그러니 예상했겠지, 누구겠는가? 당연히 춘향이지. 이 소설에서 춘향의 의미는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굳센 마음을 가진 춘향이는 거절하고 결국, 사또의 명으로 칼을 쓰고 있게 된다. 『춘향전』을 패러디한 개콘 코너를 시청하며 알 수 있었던 부분이랄까?

그사이, 몽룡은 어사가 되어 원래 고향인 전라도 남원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춘향이 수청을 거부하여 칼을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춘향을 만나본다. 결국 사또의 부정행위를 안 몽룡은 사또를 크게 혼내주고 다시 춘향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

전설의 고향을 보아서 그런지 나는 이 소설에서 마치 장화홍련과 같이 춘향이 죽는 줄 알았으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아니었다’. 다 읽어 보니 내가 내용을 다 아는 듯하다. 단 몇 부분만 모르는 듯하다. 하여튼 재미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확실히 느낀 것 하나. ‘책은 역시 많이 읽어야겠구나!’

첫째, 책을 읽으면 지식이 풍부해진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 이 책에서의 예를 들어 보자면, 조선 시대에는 16살에 결혼을 한다. 양반이 기생과 결혼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기생은 천하고 양반은 높은 신분이었다. 사또, 어사라는 지금은 없는 직분이 존재하였다 등등.

둘째로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그 책 안에 들어가서 이몽룡과 춘향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실제는 아니다. 그러면서 배경 지식을 더욱더 많이 습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느낌도 조작하란 말이에요?”

줄거리는 준석이가 세련되게 요약했다. “이 소설에서 춘향의 의미는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니까 말이다”라는 부분처럼 나름 자신만의 언어로 요리했다. 개콘이나 <전설의 고향> 『장화홍련전』을 들먹이며 평가한 부분도 노련해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준석아, 결론이 성의 없기 짝이 없다. 가슴이 아플 정도다. 책을 읽으면 지식이 풍부해진다는 걸 느꼈다고?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우와, 이건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중학생이 유치원생이나 밝힐 만한 느낌을 표현했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내 기대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걸까?

아빠가 비분강개하며 성토하자, 준석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울먹일 듯 대답했다. “저는 그걸 정말 절실하게 느꼈단 말이에요. 그런 걸 어쩌란 말이에요.” 헉. 그럴 만도 하다. 얼마나 책을 안 읽었으면 『춘향전』을 처음으로 접했을까. 게다가 평소에 책하고는 담을 쌓고 사니 오랜만에 한 권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셈이란 말인가.

지지난주 은서에 이어, 오늘은 준석에게 심하게 실망한 날이다. 이제 결론을 맺을 때가 되었다. 두 가지만 말하겠다.

1. ‘맥락’도 요약하라.
어려운 말로 ‘내러티브’(narrative)라는 용어가 있다. 인과관계로 엮어진 이야기 구조를 말한다. 준석과 은서는 『춘향전』의 내러티브 요약에만 급급했다. 글의 앞에서든 뒤에서든 맥락을 정리해주는 일이 필수다. 그래야 내러티브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다. 맥락은 배경이다. 그 기본은 시공간이다. 더 나아가 현재와 비교해 다른 특이점을 찾아낼 수 있다. 더 욕심을 낸다면 판소리와 비교할 수도 있으나 준석과 은서에겐 무리한 주문인 듯해 취소한다.

2. ‘느낌’ 요약도 중요하다.
은서는 춘향이처럼 수청을 거부하는 용감한 여자가 되겠다고 결론을 맺었다. 은서의 평소 글쓰기 행태를 감안하면 이 정도는 선방이다. 거기에 비하면 준석의 마지막 부분은 거슬렸다. 어떻게 자연스러운 ‘느낌’을 억지로 조작하라는 거냐고 항의할지도 모른다. 맞다. 다만, 내 지적의 핀트는 다른 곳에 있다, 느낌이란 주관적이지만 객관의 반영이다. 독서로 쌓인 지력의 거울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느낌은 정체된다. 준석, 네가 고작 그 정도로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너의 독서량이 한심하기 때문이다. 느낌을 창의적으로 요약하라는 말은 독서로 지력을 기르라는 뜻이다.

춘향은 수청을 거부했다.
준석, 은서야 너희들은 사또의 부당한 수청을 거부할 처지는 아니다.
그럼 무엇을 거부할 것이냐.
너희들은 ‘막쓰기’를 거부해라. 제발 막 쓰지 마라.
둘 다 감옥에 가두고 칼 씌우고 싶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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