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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게임으로 ‘은유놀이’를 해보자

네모게임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심심풀이 빈칸 채우기를 했다. 먼저 “월드컵은 □□□다.” 초딩 은서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평소에도 사랑해마지 않던 치킨의 특정 부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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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빗댄다!
- 밑도 끝도 없이 비슷한 낱말 떠올리며 멋진 ‘메타포’를 쏘아 올리기 -

“월드컵은 닭다리다.”

네모게임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심심풀이 빈칸 채우기를 했다. 먼저 “월드컵은 □□□다.” 초딩 은서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평소에도 사랑해마지 않던 치킨의 특정 부위였다. 왜? “축구할 때마다 사람들이 집에서 통닭을 시켜먹기 때문에.” 중딩 준석은 “월드컵은 전쟁이다”라고 말했다. “세계대전처럼 죽기 살기로 겨루잖아.” 그밖에도 눈물, 웃음, 빨강, 휴식 시간(공부 안 하고 티브이 볼 수 있어서) 등등의 답이 이어졌다. 다음으론 ‘아빠’와 ‘엄마’라는 제시어를 주고 정의를 해보라고 했다. “아빠는 박카스다.”(집에서 놀게 해주기 때문에) “엄마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다.”(표정이 극단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렇게 놀다보니 자연스레 글쓰기 기초 트레이닝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은유가 없는 글은 황량한 사막이야

네모게임은 결국 ‘은유놀이’다. 은유란 무엇인가. ‘은유’라는 낱말로 은유놀이를 해볼까? 나는 이렇게 규정하고 싶다. “은유는 대포다.” 함포, 대전차포, 야포, 박격포, 자주포, 그리고 메타포가 있는 것이다. 말장난이라고? 맞다. 메타포(metaphor)는 실제 대포가 아니라 은유를 뜻하는 영어단어일 뿐이다. 완전 엉터리는 아니다. 메타포는 비유와 상징이라는 장약과 탄환으로 작동되는 대포다. 죽은 언어들이 널브러진 울타리를 넘어 생생한 표현을 쏘아 올린다는 점에서 진짜 대포다. 메타포를 멋지게 발사하면, 빵 터진다. 감동이나 웃음으로, 또는 허를 찌르며 폭발한다. 사람은 죽지 않는다.

은유가 없는 글은 사막이다(이것도 은유다). 곧이곧대로만 쓰면 황량하고 정감이 떨어진다. 독자들의 마음에 와 닿게 이야기를 전하려면 무언가에 빗대는 비유법이 필요하다. “인생을 살며 다 이루고 가는 사람은 없다”라고 하는 것과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라고 하는 것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전자엔 맛이 없다.

은유를 하기 위해선 연상을 해야 한다. 무언가 밑도 끝도 없이 비슷한 낱말들을 떠올려야 한다. 옛날 어린이들 사이에 구전됐던 다음 노랫말은 은유의 기초를 말해준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조금 무리이긴 하지만, 이렇게 되면 “원숭이는 백두산”이라는 규정도 인과관계를 책임질 수 있다. 끊임없이 연관된 단어와 관념을 찾는 과정 속에서 은유는 완성된다.

‘원숭이는 백두산’도 책임질 수 있다?

은유의 친구는 직유다. 내 경험으로, 이 둘은 중·고등학교 국어시험에 꼭 등장했다. 지문을 주고 특정한 표현이 어떤 비유법에 해당되는지 묻는 문제였다. ‘~하는 듯’ ‘~처럼’이 직유라면 ‘A는 B다’식의 표현은 은유다, 라고 배웠다. 국어시험에서 틀리지 않는 것보다는, 실제 쓰는 글에서 써먹을 줄 알아야 한다. A4용지 분량의 글 한 편을 쓴다면 직유와 은유가 5개 이상 들어가도록 해보자. 최소한 다섯 가지 표현 정도는 빗대는 것이다. “내 친구는 나무젓가락이다”라는 쉬운 비유부터 시작한다. 수준이 높은 은유를 사용하려면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 토대는 독서와 경험과 사색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 빗댄다면(!) “아는 만큼 빗댄다.”

은유에 관한 글이니만큼 마지막도 은유로 끝내자. 글은 똥이다! 끙끙대면 결국 나온다. 쾌변이냐가 중요하다. 아, 오늘은 만성 변비였다.

***

왜 스페인이 무적함대야?


네모게임 고문을 시작했다.

경찰서 피의자 조서 작성 장면을 연출이라도 하듯, 앉은뱅이책상에 자리잡고 노트북을 켠 뒤 준석과 은서를 앞에 앉혔다. 닥치는 대로 제시어를 주고 네모빈칸을 채우도록 했다.

네모게임으로 고문을 자행하다

글쓰기는 □□□다.

네모게임으로 고문을 자행하다.
“글쓰기는 선풍기다.”(준석) “왜?” “머리가 선풍기 날개처럼 마구 돌아가잖아요.” “시원하진 않잖아.” “난 머리가 시원한데.”

“글쓰기는 알바다.”(은서) “왜?” “아빠가 용돈을 주잖아.” 그렇다. 이 시점에서 이 연재물의 사소한 비밀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아빠는 아이들 글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원고료’라는 당근을 줘왔다. 통과된 글에 한해 편당 2,000원. 적다고 봐야 하나, 많다고 봐야 하나. 우리집 초딩과 중딩은 아직까지 이 액수에 대만족이다.

공부는 □□□다.

“공부는 외고다.”(준석) “뭐?” “주위에서 온통 외고, 외고 하잖아.” “그건 좀 그렇다. 아빠가 너한테 외고 가라고 부추긴 줄 오해하겠다.” “학원에선 중학생이 외고를 가야 성공한 걸로 이야기하는 거 알면서 그래.” “딴 거 없냐?” “공부는 히키코모리다.” “음.” “집안에 틀어박힌 은둔형 외톨이. 물론 나는 아니지만.”

“공부는 지옥이다.”(은서) “그렇게 힘들어? 딴 거 없니?” “공부는 네이버 지식인이다.” “모르는 건 거기서 찾으니까?” “아니. 공부하면 지식인 사이트처럼 머리가 쏙쏙 정리되니까?” “말이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공부는 경쟁이다.” “딴 거 생각해봐. 경쟁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 “공부는 라이벌이다. 공부는 싸움이다.” “쯧쯧.” “공부는 금메달이다.” “풋.” “공부는 선물이다. 시험 잘 보면 내가 만날 엄마한테 선물 사달라고 하잖아.”

날라리는 □□□다.

“날라리는 분홍슬리퍼다. 꼭 노는 애들이 신고 다니거든.”(준석) “괜찮네.” “아냐, 초록슬리퍼도 신는데. 날라리는 초록슬리퍼다.” “하나만 선택해.” “날라리는 핸드백이다. 핸드백 들고 다니거든. 아냐, 날라리는 화장품이다. 여자애들은 진하게 화장하더라.”

“날라리는 바보다.”(은서) “왜?” “바보니까.” “임마, 니가 더 바보다. 생각 좀 하라고.” “……….”

컴퓨터게임은 □□□다.

“컴퓨터게임은 황천길이다.”(준석) “황천길?” “너무 오래 하면 죽는 수가 있으니까.”

“컴퓨터게임은 비밀번호다.”(은서) “음, 그렇지 너희들은 비밀번호를 모르지.” “아직도 비밀번호를 몰라. 아빠가 좀 가르쳐주면 안 돼?” “……….”

교장선생님은 열중쉬어다

교장선생님은 □□□다.

“교장선생님은 왕이다.”(준석) “학교의 왕이라고?” “어, 학생이든 선생님이든 다 떠받들잖아.” “재미없다. 딴 걸로 해봐.” “교장선생님은 열중쉬어다.” “훈시할 때 너희들이 열중쉬어 하니까?” “아니. 교장선생님은 늘 뒷짐 지고 걸으시잖아.”

“교장선생님은 변덕이다.”(은서) “무슨 변덕?” “맨날맨날 바뀌잖아.” “뭐가 어떻게 바뀌시는데.” “몰라.” “헐.”

아파트는 □□□다.

“아파트는 꿀단지다.”(준석) “꿀단지?” “단지로 돼 있잖아. 흐흐.”

“아파트는 소파다.”(은서) “무슨 소파?” “그냥 소파. 소파처럼 편안하기 때문에.”

학원은 □□□다.

“학원은 레벨이다. 레벨로 학생 등급을 나누잖아.”(준석)

“학원은 사탕기계다.”(은서) “사탕을 줘?” “응. 갈 때마다 사탕을 줘.” “정말? 니가 유치원생이냐? 받지 마, 그거.”

네모게임은 □□□다.

“네모게임은 은유다.”(은서) “좋은 말로 할 때 딴 거 해라.” “네모게임은 창의력이다.” “빠꾸.” “네모게임은 게임이다.” “됐고.” “네모게임은 아빠의 강요다.” “됐다니까.” “네모게임은 뇌모게임이다.” “괜찮~다.”

“뇌출혈이다.”(이때 준석이 끼어들며)“네모게임은 뇌시경이다. 뇌를 들여다보며 생각을 해야 하니까.” “동생 따라 하지 마.” “네모게임은 머리박기다. 생각이 안 나면 머리를 박아야 하니까.” “그래 당장 요 책상에다 머리 박아라.” “네모게임은 썰렁한 개그다.”

전쟁역사를 말하는 월드컵 은유의 딜레마

네모게임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보자. 이번엔 월드컵 특집이다.

스페인 축구대표팀은 □□□다.

독일 축구대표팀은 □□□다.

창의적인 답을 찾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 따르면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우승한 스페인 대표팀은 ‘무적함대’다. 독일 대표팀은 ‘전차군단’이다. 스페인과 독일의 월드컵 경기결과를 보도하는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은 그 말들로 도배가 되곤 한다. 도대체 왜 그렇지?

역사는 은유의 창고다. 인상적인 역사적 사실은 비유와 상징의 수단으로 두고두고 써먹힌다. 가령 예로부터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해서 한민족에 따라붙는 ‘백의민족’처럼 말이다.

‘무적함대’는 16세기 스페인의 왕립함대가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유럽의 바다를 휩쓸고 다니면서 붙은 별명이다. ‘전차부대’란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무시무시했던 독일 전차 때문에 붙었다. 개전 초기 기갑부대 화력으로 유럽의 여러 방어선을 뚫어 히틀러가 세계를 다 먹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신문에 실리는 ‘무적함대’와 ‘전차군단’이라는 제목을 볼 때마다 지겹다. 편집자들마다 너도나도 써서다. 신선미가 떨어진다. 일부에선 즐기는 마음으로 누려야 할 스포츠경기를 잔인했던 국가 간 전쟁에 비유하는 것에 대한 비판 의견도 있다. 은유의 딜레마다. (남 탓할 처지가 못 된다. 맨 위의 글을 보면 나 역시 은유를 대포에 비유했다. 글쓰기마저 전쟁놀음에 비유하고 말았다. 내가 잘못했다. 흑흑.)

월드컵 전쟁 은유는 이밖에도 또 있다. 터키 대표팀을 뜻하는 ‘투르크군단’(16~17세기에 전성기를 누리며 아시아·아프리카·유럽 3개 대륙에 걸친 영토를 통치했던 오스만투르크제국의 군대에서 따옴)과 스웨덴 대표팀을 뜻하는 ‘바이킹군단’(8세기 말~11세기 초 해상으로부터 유럽에 침입한 노르만 해적에서 유래). 군단, 군단, 군단 투성이다. 오렌지군단(네덜란드), 카나리아군단(브라질), 아주리군단(이탈리아), 코끼리군단(토고).

전쟁역사가 아니더라도 고유의 상징물이나 경기 스타일에서 따온 ‘은유적 표현’들이 대표팀마다 하나씩 있다. 태극전사(한국), 아트사커(프랑스), 울트라닛폰(일본), 신데렐라(크로아티아), 슈퍼이글스(나이지리아), 불굴의 사자(카메룬), 카르타고의 후손(튀니지)……. 월드컵은 숨 막히는 골의 승부이자, 은유의 각축장이다.

역사상식은 글쓰기를 풍부하게 하지

오늘의 결론을 맺을 시간이 왔다. 두 가지다.

1. 네모게임으로 놀아보자. 글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심심풀이 땅콩 추가다. 예전에 이 난에서 글쓰기 트레이닝의 일환으로 ‘끝말잇기’를 추천했는데, 여기에 하나 더 보태는 셈이다. 독자 여러분도 가족끼리 네모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보기 바란다. 앞서 말했듯이 ‘은유놀이’다. 웃고 떠들며 표현능력이 자라난다. 연상력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셈이다.

2. 역사공부가 중요하다. 글쓰기 기초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한반도와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관한 상식은 글쓰기를 풍요롭게 한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 장르는 인류 역사에 토대를 둔다. 역사를 많이 안다는 것은 이야기를 많이 안다는 뜻이다. 비유할 대상의 폭과 깊이가 그만큼 넓어지고 깊어진다. 말장난이지만, 히스토리를 알면 글 쓰는 과정에서 히스테리 부릴 일이 적어진다.

그럼 네모게임에 대한 글답게 대단원의 막도 네모게임으로 내려보자.

오늘의 글은 □□□다.

음…… 오늘의 글은 ‘바이킹의 회’다. 노르웨이산 연어회인지, 한국 해안에서 잡힌 우럭회인지, 아니면 중국 바다에서 잡힌 도다리인지는 알아서 상상하기 바란다. 그냥 해적들이 잡아먹는 회다. 무슨 뜻이냐고? 어린이들은 어른의 도움을 받아 뜻풀이를 하기 바란다. 바이킹의 회란…… “날로 먹었다”는 뜻이다. 준석아 은서야, 오늘은 글을 안 쓰고 말로만 했으니, 그러니까 날로 먹었으니…… 원고료는 없단다. 덕분에 나도 날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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