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벌판에서 뛰어다니는 표범들과도 같은 기세의 나이지리아와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난 태극전사 23명이 드디어 대한민국의 첫 원정 16강 진출을 만들어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첫 출전한 이후 56년 만이다. 아시아의 축구 강호라지만 늘 월드컵 무대에서는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는데 홈그라운드가 아닌 원정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은 50년 넘는 묵은 소원을 이루어내고 이제 16강을 넘어 8강, 4강의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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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SA TODAY | |
나이지리아와의 승부에서 꼭 이겨야 한다고는 했지만 사실 반신반의했다. 홈그라운드와 같은 구장의 열기 속에서 우리 선수들이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반 시작하자마자 이청용 선수가 골문 앞에서 골키퍼와 충돌하는 장면을 보며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더욱 커져 갔었다. 결국 전반 11분에 차두리 선수가 우체를 놓치고 나서 나이지리아는 너무나 쉽게 한 골을 넣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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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SA TODAY | |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우리를 그냥 져버리지 않았다. 기성용, 이정수의 콤비 플레이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며 1대1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고 후반을 새롭게 출발했다. 더반이 과연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시작한 후반 3분 만에 박주영은 자책골의 아픔을 훌훌 털어낸 듯 골키퍼 바로 앞에서 원 바운드된 프리킥 골로 역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의 포효하는 모습 속에 그동안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는지 여태 보아왔던 골 세리머니 중에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을 정도였다.
사실 그동안 언론에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뚱~해보이면서도 내성적인 것처럼 비춰졌지만, 박주영은 동료들 사이에서 장난도 잘 치고 사랑받는 선수이기도 하다. 특히 역전의 상황을 지켜나가면 되는 상태에서 페널티킥 파울을 한 김남일 선수가 미워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에게 다가가 “형, 괜찮아요~”라며 격려해주었다니 그에게서 왠지 대인배의 향취가 느껴졌다. 아마도 먼저 아픔을 겪고 극복해 냈기에 그런 위로도 가능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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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SA TODAY | |
어쨌든 우리는 2대2 무승부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루어냈다. 선수들 간의 유기적인 플레이도 잘됐고 골문 앞에서도 과감한 슈팅을 아끼지 않았다. 한 달간의 짧은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춘 것에 비해 조직력도 잘 다듬어졌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간의 소통도 잘되는 것 같다. 물론 8강 진출을 위해서는 공격이나 수비 쪽에서 부진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야 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이제 무기 하나가 더 생겼다. 바로 자신감이다.
비록 몸은 피로하고 체력은 떨어졌겠지만 남은 사흘 동안 다들 로봇 차두리처럼 USB를 꽂고 100% 충전하고 나온다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실력과 운을 겸비한 우리 대표팀에 이제 자신감까지 더해졌으니 그야말로 ‘거침없이 하이킥’ 찬스가 온 것 아닌가? 돈과 명예도 함께 따라온다. 지금 이순간 죽을 것 같은 고통일지라도 이제 몇(?) 게임만 잘 치른다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조국을 위해서, 아니 바로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가 홈 어드밴티지에 의해서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번에 실력으로 제대로 한번 보여주자.
그나저나 새벽 경기의 후유증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꾸벅꾸벅 조는데 꿈속에서까지 월드컵이 진행형이다. 이거야 원!! 그런데 그 찰나에 박주영 선수가 골문 앞에서 헤딩 슛~ 골인하는 장면까지 눈앞에 아른거린다. 우루과이전 때 한 골 또 넣을라나?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잠에 취하는 수요일 저녁이다.
아, 허정무 감독님! “아직 양이 차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히딩크 감독의 “나는 아직 배고프다”와는 좀 다른 뉘앙스로 들리네요~ Hungry가 아닌 Enough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배부르게 충분히 누리고 오래 있다 오십시오~ 그리고 그 행운의 넥타이도 계속 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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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하 스포츠 전문 MC로 1971년 2월 22일 태어났다. 1995년 MBC 라디오 공채 리포터로 입사해 스포츠 전문 리포터로 활동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MBC 라디오 ‘이은하의 아이 러브 스포츠’ MC로 등극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여성으로서는 단독으로 스포츠 전문 MC로 활약하는 첫 번째 주인공이 되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기점으로 스포츠에 입문했으며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프로그램을 제작하였다. 그녀의 마이크를 거쳐 간 스포츠 스타들은 1,000여 명이 넘을 정도. 스포츠 리포터로 시작해서 스포츠 VJ, 스포츠 MC, 스포츠 칼럼니스트, 스포츠 캐스터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스포츠와 오랜 사랑에 빠져 있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뒤늦게 성균관대학 스포츠과학대학원에서 스포츠 사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허정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으로부터 “누구나 쉽게 축구와 사귈 수 있는 최적의 가이드”라는 찬사를 받은
『축구 아는 여자』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