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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심한 감정을 노래하다 - 토이 <내 마음 속에>(1994)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여전히 아름다운지」의 서정적인 발라드로만 토이의 음악을 그리는 팬들이 많을 텐데요. 이들에게 슬로우 랩을 시도한 『내 마음 속에』는 조금 더 특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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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을 건드리는 깨끗한 선율, 예쁜 소품 가게에 들어선 것 같은 아기자기한 감각, 웬만한 악기 구성과 코드워크는 간단하게 마무리하는, 그 간결함을 우리는 ‘토이 감성’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90년대 싱어 송 라이터의 붐과 맞물려 그 감성을 함께한 ‘라디오 키드’들에게 음악 작가 ‘유희열’의 음악은 특별하죠.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여전히 아름다운지」의 서정적인 발라드로만 토이의 음악을 그리는 팬들이 많을 텐데요. 이들에게 슬로우 랩을 시도한 『내 마음 속에』는 조금 더 특별할 것 같습니다. 토이의 데뷔작 <내 마음 속에>입니다.

토이 <내 마음 속에>(1994)

사실 1990년대는 ‘이미지’를 앞세운 댄스 음악의 폭격으로 여리고 외로운 감성들이 몸 붙일 수 있는 공간이 더욱 축소된 상태였다. 한때 김현철 등을 배출하며 비주류지만 엘리트 가요 역할을 자처해온 기획사 ‘동아음악’이나 ‘하나음악’도 맥없이 스러져갔다.

토이 1집이 중요한 위를 점하는 것은 바로 사라져 가던 그 정서를 계승했다는 것, 더 나아가 TV가 아닌 라디오를 중심으로, 시각이 아닌 청각으로 엮인 유대 집단이 형성되는 데에 물꼬를 틔웠다는 데에 있다. 여타 ‘유재하 가요제’ 출신의 뮤지션들보다도 유희열의 마니아 집단이 더욱 크고 공고하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그것은 뛰어난 ‘음악적 주조술’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서울대 음대 출신, 제4회 ‘유재하 가요제’ 대상 수상 등의 행적이 말해주듯 그는 소위 음악 엘리트였다. 음대 출신이라는 경력이 클래식에 정통했음을 말해준다면, ‘유재하 가요제’ 대상 수상과 큰 히트를 기록했던 윤종신의 5집과 6집 음반을 프로듀싱 한 데뷔 전의 이력 등은 그가 향해 있는 대중음악 노선을 의미했다.

실력파 믹싱 엔지니어인 윤정오와 유희열이 만나 객원 싱어 체제를 구축하며 꿈꾸던 ‘한국형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의 첫 결과물은 필연적으로 당시 가요 질(質)의 격상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었다.

「햇빛 비추는 날」에서 들려오는 유희열의 소박하고 건조한 목소리마저 「어떤 날」을 닮아있을 정도로, 토이의 음악은 조동익과 이병우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어떤 날의 두 아티스트가 세션으로 참여한 이 음반은 당시 가요계가 건진 보석이었다.

퓨전 재즈의 향취가 물씬 풍겨오는 세련되고 도회적인 음악이 가득 찬 앨범의 수록 곡들은 건드리면 터질 듯 여리고 애상적인 가사와 음향들이 듣는 이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반복 청취한다면 요즘 말로 중독성이다.

그것은 1995년의 겨울, 조규찬의 보컬로 자그마한 소리 상자를 통해 추위에 얼어붙은 마음을 훈훈히 녹여주던 토이의 「내 마음 속에」가 들려주고 있었다. 실제로 015B의 멤버 장호일이 듣고 놀라움을 표시하며 함께 음악 작업할 것을 제안했다는 일화가 숨겨진 이 곡은 슬로우 랩이 시도된 나름의 실험적인 곡이었다.

조규찬의 가느다란 미성이 불러내는 감미로운 선율과 서툰 멋을 부릴 줄 아는 유희열의 느릿한 랩이 부드럽게 교차한다. 이 곡은 앨범 속지에 그려진 그림처럼 깊은 밤 전봇대에 기대선 남성들의 기다림에 대한 공감을 종용하며 잔잔한 인기를 누렸다.

「내가 너의 곁에」 주는 감정 선도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비교적 밝은 노랫말을 지닌 이 곡은 연약한 영혼들을 어루만져 주는 노랫말을 지녔고, 김문선이라는 여성의 새치름한 음색이 타고 흐르는 코러스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널 잊게 된 날부터」 「내 마음속에」와 더불어 대중 정서와 유희열의 음악이 이상적으로 합치된 곡이다. 특히 장필순의 허스키 보이스가 매력적으로 사운거리는 「널 잊게 된 날부터」는 음반의 또 다른 백미로, 첫 번째 작품에만 함께했던 음악 작가 윤정오의 재능이 그리워지는 대목이다.

또한 어릴 적부터 영화음악에 가슴을 설레곤 하던 유희열 자신의 지향을 벌써부터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조직했다는 ‘세검정파’에서 제목을 따온 듯한 「세검정」이 반추하는 추억은 두 개의 파트로 나눠진 한 편의 퓨전재즈 드라마다. 이후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 송으로 쓰여 작은 성공을 맛보았던 「라디오 헤븐」의 탄생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고, 좀 더 본격적으로 연주 음악으로 선회한 5집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우리는 토이 1집에서 아름답게 채색된 서정 가요를 맛보았다. 단 한 곡도 내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충만한 만족감이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일회성의 댄스 가요계에서 궁지에 몰리던 과거 지향적이고 추억 친화적인 낭만파들이 라디오라는 아지트를 얻게 되었다는 것은 주류를 향한 작은 냉소와도 같았다.

좀 더 대중에게 호소했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여전히 아름다운지」 등의 이전에 이미 그것들을 가능케 했던 이른 바 ‘토이 감성’은 바로 이 음반에서 가장 순수하고 또렷하게 발현되고 있다.

그것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샘이었다. 젊은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행복한 순간들 보다는 외톨이처럼 홀로 고독을 곱씹는 한 남자의 모습을 소소하게 채색해내는 일이야말로 음악 감독 유희열이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름하고 구석진 술집에서 한 잔의 술을 앞에 두고 이별한 이를 기억 속에서 불러내어 감상에 빠지는 사람들, 토이의 음악은 그 소심한 이들의 대변인이자 소설과도 같은 풋풋한 첫사랑을 그려보는 어린 중고생들의 애인이었다. 또한, 시끄러운 사회 현안과는 담을 쌓고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이 열렬한 라디오 키드들만의 ‘문화 지대’ 발판이 되었다.

사랑 때문이건 삶의 괴로움 때문이건, 상처받은 젊은 날의 단상들이 희뿌연 안개처럼 자욱하게 흩어진 토이의 처녀작은 그 매끄럽고 도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심한 감정을 노래한다. 그리고 유희열이라는 음악코드 창조자는 <올댓 뮤직>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과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 등을 통해 여전히 사소한 일상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청년 음악작가로서 그들만의 리그를 꾸려나가고 있다. 여기에 토이 1집은 그 따뜻한 정감으로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아련한 감상으로 채워준 음반이 되어 남아있다.

- 글 / 김소연(mybranch@hanmail.net)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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