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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이름으로 살았던 인생 이야기

『이름 뒤에 숨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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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충돌로 겪는 이민 2세들의 정체성 찾기라는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줌파 라히리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자분자분하게 풀어나가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저/박상미 역 | 마음산책
2000년 퓰리처상 수상(『축복받은 집』)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인도계 미국작가 줌파 라히리의 장편소설. '고골리'라는 특이한 이름과 이질적 문화 사이에서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이민 2세 청년의 삶을 통해 '이름이 개인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이름이나 문화적 배경은 한 인간의 정체성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이름은 영어에서도 고유명사로 분류된다.

한 사물을 다른 것과 구분짓는 명칭으로, 남들이 나를 구분해서 지칭할 때 이름을 부른다.

내 경우는 특히 ‘지연’이라는 이름이 유행인 시절에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한 반에 같은 이름의 친구들이 꼭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내 이름이 특별하다거나, 꼭 나와 맞는다는 등의 각별한 인식을 하지 않았던 듯하다. 지금은 모 유명 연예인의 이름과 비슷하여,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악수를 청하듯 으레 주고받는 농담처럼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를 언급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연예인의 이미지와 비슷하지도 않지만(물론 외모도 많이 다르다!), 이름이 그 사람의 첫인상이나 편견을 갖게 만들 수도 있기에 꽤 신경 쓰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처럼 흔한 이름이 아닌, 너무나도 특별한 이름 덕에 인생이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이 소설의 주인공인 고골리가 그러하다.

주인공인 고골리는 미국 국적의 인도인으로, 이런 특이한 이름을 갖게 된 (고골리 강굴리) 사연이 있다. 인도의 경우, 친척의 연장자가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고골리의 증조할머니께서 손자의 이름을 직접 적어 보낸 편지가 머나먼 미국 땅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게 문제였다.

20대에 인도에서 기차 사고를 당하여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던 고골리의 아버지는, 죽음의 순간 손에 쥐고 있던 고골리의 문학책과 손전등으로 사고 현장에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사고의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고국을 떠나 머나먼 미국 땅에서 아내와 함께 이민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고골리’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자, 생사를 넘나들었던 고국에서의 아픈 추억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골리’를 그는 첫 아이인 아들의 이름으로 짓고, 심지어 아들의 생일 선물로 고골리 전집을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들인 ‘고골리’는 이러한 아버지의 사연도 모른 채, 정작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어진 이 특별한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어릴 적, 방학 때마다 행사처럼 치렀던 고향인 벵골에서의 휴가와 미국에서도 정기적으로 갖는 동족들의 모임이 그에게는 힘들었다.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인도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어찌 보면 평범한 미국 시민으로서의 삶을 위해 ‘닉킬’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다. 아이비리그의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회사에 취직하고, 뉴욕 맨해튼의 상류계급의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꿈꾸는 삶을 추구하지만, 결국에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해 자신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인도와 미국의 문화적 차이,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가치관의 차이가 이 소설에서는 ‘고골리’와 ‘닉킬’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말해주는 것은 주인공이 그토록 집착했던 이름뿐만이 아니다. 내가 걸친 옷의 브랜드가 그렇고, 작품 속의 뉴욕 맨해튼의 메디슨 거리가 그렇고,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이 나를 대표하고, 삶을 대표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아버지께 선물 받았던 고골리 단편 모음집을 읽기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 단편 모음집을 선물하면서, 고골리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언젠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 속에서 나왔다, 라고 했다.”


고골리의 ‘외투’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고, 맨해튼의 고급 상점이기도 하며, 그의 고향인 벵골이기도 하다. 정작 외투를 벗었을 때는, 무엇으로 나를,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주인공이 아버지의 나이가 되면서 깨닫게 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상상을 해본다.

문화적 충돌로 겪는 이민 2세들의 정체성 찾기라는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줌파 라히리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자분자분하게 풀어나가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줌파 라히리

1967년 영국 런던에서 인도 벵갈 출신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곧 미국으로 이민하여 로드 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보스턴 대학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같은 대학에서 르네상스 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으로 펜/헤밍웨이 문학상,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지금까지 29개 국어로 번역되어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2002년 ‘구겐하임 재단 장학금’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은 2003년 뉴요커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이자, 출간 이후 전미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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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지연 도서 MD

학습/참고서 담당이나 참고서 리뷰를 올리지는 않는다. 드라마, 영화, 음악 등 비교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좋아하며, 리뷰를 올리는 도서의 분야도 예술로 한정되어 있다. 싫어하는 것은 본인을 떡실신하게 만드는 초중고 교육과정 개정과 와인!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저/<박상미> 역13,5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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