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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그때 그 감성으로 돌아오다 - 베란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 킨(Keane)

19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거친, 지금은 20대 후반, 30대 초·중반이 되었을 이들에겐 음악적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에 심취하던 마지막 ‘라디오 키드’ 세대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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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거친, 지금은 20대 후반, 30대 초?중반이 되었을 이들에겐 음악적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에 심취하던 마지막 ‘라디오 키드’ 세대라는 것이죠. 당시 한창 붐을 이루던 싱어 송 라이터의 팬 베이스도 어쩌면 이들 덕에 더 견고해졌을지 모릅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나 여고생들의 감성을 자극하던 ‘전람회’의 김동률, 세련된 음악 스타일로 청감을 사로잡던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 이상순이 만났습니다. 심플한 모던 록 사운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앨범 <Day OFF>네요. 그리고 이 1990년대의 싱어 송 라이터의 바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에피톤 프로젝트> 마지막으로 기타 없는 록 밴드로 잘 알려진 킨(Keane)의 <Night Train>입니다.

베란다 프로젝트(Verandah Project) - <Day OFF> (2010)

김동률은 이번에도 선율의 포인트를, 리듬의 주체를 기타에서 구현하고 있다. 1997년, 이적과의 프로젝트 앨범 <카니발>의 구별점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미 「기억의 습작」 「 취중진담」에서 검증된 선율, 「이방인」을 위시한 「새」 「유서」에서 활용한 깊이 있는 스트링 편곡은 그를 ‘고급스러운’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입지를 견고히 다지게 했다. 그럼에도 선율과 화성에 접근하는 작법 방식이 늘 그렇듯, 그의 음악에는 ‘한 번쯤 미쳐보는’ 유쾌한 리듬이 없었다. 비트를 맞추는 신시사이저의 건반까지도 그에게는 ‘선율’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당시 기타와 드럼 연주가 가능하던 패닉의 ‘이적’에게서 리듬을 수혈한 그의 선율을 이 시기에 한 번 더 도약하게 했음은 분명한 사실. 「롤러코스터」 「그녀를 잡아요」는 ‘리듬’과 ‘선율’이 만난 이들의 합작품이 얼마나 최상의 조합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 이후의 솔로 앨범이 보여주듯, ‘Bk!’ ‘정재일’ 등의 확실한 리듬 프로그래밍이 버팀목이 되는 한 그의 유려한 멜로디 메이킹은 그칠 줄 몰랐다.

상기하듯, ‘베란다 프로젝트’는 김동률의 리듬 파트너가 누구인지부터 시작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번에는 애시드 재즈의 스타일리시한 리듬을, 춤추기 좋은 그루브감을 그려내던 그룹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 ‘이상순’이다. 화성보다는 리듬의 접근이 쉬운 기타가, 이보다는 코드의 조합이 쉬운 피아노의 멜로디가 만나면 어떤 음악이 나올까.

좀 더 ‘펑키(funky)’를 지향했다면 ‘롤러코스터’의 접근에 가까워지고 발라드와 재즈 터치를 동경했다면 이전의 ‘전람회’, 그리고 김동률의 솔로 앨범과 다름이 없었을 터. 이번 <Day OFF>의 해답은 ‘모던 록’이다. 건반의 시원한 컴핑으로 시작하는 「기필코」는 꼭 ‘롤러코스터’에서 들릴 법한 탄력 있는 기타의 리듬플레이, 피아노와 기타의 주고받는 연주는 그들의 지향을 압축한다. ‘딱 한 살만 어려도 좀 더 쉬울 것만 같아……/왜 난 천재과가 아닌 걸까'라고 한탄하는 가사는 꼭 「그땐 그랬지」로 다시 돌아간 24세 청년들의 치기 어린 투정이다.

이제는 여기서 한 층 더 록 스타일 무장한 「Good Bye」로 그들의 사운드를 확장한다. 한 가지 재밌는 감상 포인트는 그루브감을 잃지 않는 기타의 연주를 떼어 보고, ‘전람회’의 곡들에서 스트링을 걷어낸 듯한 선율을 떼어보면 이들이 몸담은(혹은 몸담았던) ‘롤러코스터’ ‘전람회’의 사운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는 것. 단순히 장르의 변화와 두 뮤지션의 분명한 음악적 색깔의 분리선을 강요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감성을 잘 조합한 유연한 감성이 인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경계가 조금 모호한 타이틀 곡 「Bike riding」은 조금 아쉬운 결정일 수밖에 없다. 재즈적인 터치와 사운드의 조율은 네덜란드의 한가로운 한 장면을 떼어놓은 것 같지만 그 이미지를 화폭에 담아놓는 것 이상은 아니다. 앨범의 컨셉과는 그리 어색하진 않지만, 이 편안함과 무난함을 내세운 곡은 자칫 두 음악적 브레인의 그렇고 그런 뻔한 작법으로 비칠 수 있다.

문득 펼쳐지는 익숙한 패턴을 ‘답습’이라는 틀에 가두어 놓지 않는 여유로움이 있다면, 네덜란드에서 ‘베란다’ 있는 집을 동경한, 그래서 답답한 공간에서 한 번쯤은 숨통을 트일 수 있는 그런 나지막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자신이 표현할 수 없는 단조로운 소리 패턴의 틀을 새로운 접근으로 담아내는 것이 ‘프로젝트’라 정의한다면 함께 있기에 나올 수 있었던 「Train」의 감성이 그렇듯, 진지하지만 또 유쾌한 ‘프로젝트 합작품’이 바로 여기 있다.

- 글 / 조이슬 (esbow@hanmail.net)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 - <유실물 보관소> (2010)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에선 ‘FM계’ 스타일의 음악이 있다고 한다. 1990년대 한국 FM 라디오에서 주로 활동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일컫는 말이다. 윤상, 토이(Toy), 김동률 등 이름만 거명해도 순식간에 어떠한 카테고리를 형성할 정도다. 그만큼 그 시절 갖고 있던 추억과 향수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이 부류에 속하는 음악가들의 활동이 차츰 줄어들게 됐고, 뉴미디어의 공습으로 입지가 좁혀진 라디오에는 자연스레 명맥을 이어주는 이가 드물어졌다. 새로운 신인들 모두 ‘FM계’의 음악을 좋아했다고들 말하지만, 그때의 감동을 전수하는 이는 찾기 어렵게 된 것. 이러한 상황에서 차세정의 원 맨 팀 ‘에피톤 프로젝트’는 잊히는 1990년대의 감수성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굳이 딱 어느 팀이라고 꼬집으라면 토이에 근접하다. 차분하게 반주되는 건반의 울림과 건조하게 읊는 차세정의 목소리는 유희열이 가진 코드와 들어맞는 면이 있다. 듀엣으로 부른 「한숨이 늘었어」 「이화동」은 물론이고 피아노 연주곡인 「좁은 문」 등 전체적으로 겹쳐지는 이미지들이 발견된다.

물론 그 안에서도 에피톤 프로젝트만의 선을 살리는 곡들이 있다. ‘루싸이트 토끼’의 보컬 조예진이 참여한 「반짝반짝 빛나는」는 일렉트로닉 코드를 적절히 배합하는 그만의 감각이 숨 쉬는 곡. 「선인장」 「해열제」에선 통기타가 주도하는 리듬이 따뜻한 발라드를 이끌어 낸다. 과거에 경험했던 온도가 다시 체온으로 흡수되는 순간이다.

문제는 이런 일치가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반복’이란 단어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포착하는 소소한 일들을 가사에 옮겨 담은 것이나, 제목으로 선택된 단어의 아이템들이 모두 ‘FM계’에서 충분히 접한 소스들이다. 프로그래밍 사운드를 적절히 배합하며 창작자 나름의 신(新) 감각을 창조하려 했지만, 그가 체험한 옛날의 영광이 너무 짙어 헤어 나오지 못한 거 같다. 오마주(hommage)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1990년대를 회상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적절한 종합선물세트가, 1990년대를 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도우미로서의 괜찮은 역할을 할 거 같다. 다만, 그 이상의 안내와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이 <유실물 보관소>의 장점이자 단점. 잃어버릴 뻔했던 한 시대를 움켜잡은 것은 좋으나, 그와 동시에 현재와 미래에도 통할 수 있는 남다른 변신이 필요하다.

- 글 / 이종민 (1stplanet@gmail.com)

킨(Keane) <Night Train> (2010)

많은 록 그룹 중에서도 킨(Keane)은 유독 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팀이다. 피아노 록으로 대중들의 감성을 흔들었던 2004년을 지나 강한 록 음악을 선보인 2006년작 <Under The Iron Sea>, 또 2년 뒤 발매된 <Perfect Symmetry>에선 뉴 로맨틱스/신스 팝 취향의 곡들을 쏟아내기까지 했으니 데뷔 적 「Everybody’s changing」 속에 담겼던 메시지를 참으로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변해야 산다’는 모토를 제대로 이행 중인 킨의 정신은 신보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Perfect Symmetry> 이후 두 해 건너 빛을 본 <Night Train>은 전작의 투어 도중 작업한 곡들을 모은 것. 잘되면 좋고 안돼도 리스크가 적은 EP의 특성을 십분 살린 본 작에는 청자의 구미를 당길 만한 시도들이 눈에 띈다.

래퍼 케이난(K’Naan)과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첫 싱글 「Stop for a minute」를 통해 킨의 하드웨어적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록과 흑인 음악의 만남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시도는 매끄러운 결과물로 탄생했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풍부한 코러스에 더해진 톰 채플린(Tom Chaplin)과 케이난의 구성진 목소리는 마치 한 몸처럼 곡 속에 녹아들어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다. 영화 『록키』 시리즈의 주제가인 「Gonna fly now」를 샘플링한 그들의 또 다른 협력곡 「Looking back」도 결과물이 근사하다.

일본 아티스트 티가라(Tigarah)와 함께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Ishin denshin (You’ve got to help yourself)」도 인상적인 곡. 우리나라 말로 이심전심을 뜻하는 곡은 각자의 언어로 노래한 톰과 티가라 간의 보컬이 특히 매력적으로 상이한 두 문화의 크로스 컬처가 이채롭게 와 닿는다.

상기한 곡들이 하드웨어적인 변화였다면 「Clear skies」는 오롯이 그들이 창조해낸 소프트웨어적인 변화다. 전작과 본작에서 간간이 기타를 첨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타 없는 밴드라는 이미지가 강한 킨이기에 기본 골격을 기타로 구성한 「Clear skies」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는 피아노 록으로 한정된 그룹의 음악을 더욱 확대할 수 있는 동시에 여타 다른 그룹과의 차별성을 스스로 걷어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로 인식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과감한 실험보다는 안정적인 변화를 모색한 작품이다. 래퍼와의 콜레보레이션이나 팀 라이스-옥슬리(Tim Rice-Oxley)가 「Your love」에서 리드 보컬을 맡는 등의 시도들이 EP인 본작의 본새를 봤을 때 일회성 이벤트로 그칠 가능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끊임없이 다른 것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룹의 상업적인 성과는 데뷔 때와 비교해 다소 낮아졌을지 모르나 그룹의 음악이 지닌 가치는 서서히 상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행보라고 할 만하다. 자가발전의 올바른 사례로 꼽을 만한 그룹의 바람직한 비정규작이다.

- 글 / 성원호 (dereksungh@gmail.com)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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