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맥닐 휘슬러, 「회색과 검정의 배열 제1번: 화가의 어머니」 캔버스에 유채, 144.3x162.5cm, 1871, 파리, 오르세 미술관 | |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 1834~1903년)의 어머니
애나 마틸다 휘슬러(Anna Mathilda Whistler)
결혼 전 성은 맥닐(McNeill)
이 그림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어머니의 초상’일 것이다. 「회색과 검정의 배열 제1번」이라는 추상적인 제목으로 휘슬러는 이 그림의 요체가 차분히 가라앉은 색채들의 조화에 있음을 말하려 했지만, 보는 이의 시선은 어머니의 엄격하면서도 단아한, 세월의 조락에도 반듯하고 정갈한 모습에 머물게 된다. 이 그림이 수많은 어머니날 카드와 포스터와 우표로 제작된 것만 보더라도 그 호소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림 속의 어머니 애나 맥닐은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으로, 일찍부터 아들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았다. 토목기사인 남편의 부임지인 러시아에 살게 되었을 때, 그녀는 어린 아들의 그림이 스코틀랜드 화가 윌리엄 앨런의 눈에 띈 것을 발판 삼아 그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미술학교에 입학시키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1849년 마흔다섯 살에 과부가 된 그녀는 고향인 코네티컷 주의 작은 마을로 돌아가 옹색한 살림을 꾸려나갔다. 이 시기 제임스는 방황 끝에 화가가 될 결심을 하고 파리로 가서 공부했으며 몇 년 후 런던에 정착했다. 1863년 애나는 런던의 아들에게 가서, 188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한 집에서 살았다.
이 「어머니의 초상」은 우연의 소산이었다. 휘슬러는 새 그림을 시작하기 위해 기다리던 모델이 나타나지 않자, 어머니에게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첼시에 있던 집 뒤편의 어둑한 방에서 아들 그림의 모델이 되었다. 처음에는 선 자세로 모델이 되었으나, 며칠이 지나자 너무 힘들어져서 (당시 그녀는 예순일곱 살이었다) 의자에 앉은 자세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녀의 반듯한 자세는 네모진 벽이나 캔버스와 평행을 이루며, 그림에 강조된 다른 수평 수직적 요소들과 빈틈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휘슬러는 이 그림을 그리느라 한동안 애를 먹었으며, 어머니는 자기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제임스가 재차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기쁘게도 어느 순간 갑자기 걔가 이렇게 외치더구나. ‘오, 어머니, 이제 됐어요!’ 그러고서 내게 키스했단다.” 그녀는 아들을 위해 모델을 서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석 달 동안 수십 차례나 그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1938년 펜실베이니아 주 애슐랜드에는 이 그림을 바탕으로 한 2미터 높이의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그 명판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