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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똥과의 전쟁, 뒤집어서 생각해 봐

아빠 앞에선 말 없고 무뚝뚝하기만 하던 준석이, 글 속에선 천연덕스럽고 유머러스하게 갖가지 이야기를 풀어냈다. 동생 은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상적인 대화엔 등장하지 않던 기발한 언어가 글 속에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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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식은 내가 몰랐던 놈이야
- 개과천선 포기 2AM 그룹 나쁜 아빠가 발견한 ‘수다의 바다’

개과천선은 포기했다.

나는 나쁜 아빠다(칼럼 문패를 ‘나쁜 아빠의 글쓰기 홈스쿨’로 제안했을 정도다). 나쁜 아빠는 좋은 아빠의 반대말이다. 일반적 기준으로 볼 때,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낸다면 좋은 아빠일 공산이 크다. 나는 얼굴을 볼 틈이 없었다. 일에 몰두하거나 노는 걸 즐기는 ‘그룹 2AM’(새벽 2시에 귀가하는 이들)의 일원이었다.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 음, 아무래도 계속 이렇게 살 것만 같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개과천선은 포기했다.

‘연재 식량’ 확보를 위해 ‘채찍’을 휘두르다

다만 최소한의 죄의식은 피할 길 없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아들은 중학교에 들어갔고, 딸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코앞이다. 눈 깜짝할 사이 몇 년이 흐르면 훌쩍 커 버린다. 지금은 내가 꼬마들과 놀아 주지 않지만, 조금만 있으면 꼬마들이 나와 놀아 주지 않는다. 대화도 통하지 않으리라. 관계는 더더욱 삭막해질 테다. 무관심했던 아빠를 두터운 침묵으로 응징할지도 모른다. 늦기 전에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던 와중에 불현듯 머리를 스친 아이템이 ‘글쓰기’였다. 그래, 함께 글을 써 보자.

이 프로젝트를 결심하자마자 ‘채찍’을 휘둘렀다. 나에겐 말고, 꼬마들에게만 휘둘렀다. 마감일을 정해 두고 과제를 줄기차게 내준 뒤 ‘빚 독촉’에 나선 것이다. “10년 넘었으니 인생 꽤 살았네. ‘나의 인생’이란 주제로 총 정리해 봐.” “세뱃돈 받았지? 그 얘기 괜찮겠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희들 생각을 적어 봐.” 미리 ‘연재 식량’을 다량으로 쌓아 놓는 ‘원시적 축적’이 필요했다. 그래야 나에게도 쓸 거리가 생길 테니까.

아빠는 계속 과제를 내주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쓰기와 연결시켰다. “새똥을 맞았다고? 더러운 기분을 적어 봐.” “아깝다. 반장 선거에 출마했다 떨어졌다니. 심경 고백을 하는 거야.” 아이들은 신이 나 일사천리로 글을 휘갈기기도 했지만, 싫증을 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졸린다며, 컴퓨터 게임을 한다며, 학교 숙제를 못 했다며, 시험 준비가 더 급하다며, 주제가 마음에 안 든다며…….

그럼에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아들 준석이 처음 쓴 글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속엔 내가 몰랐던 준석이 있었다. 아빠는 녀석이 어중이떠중이 중딩일 거라고만 여겼지만, 어느새 관찰력과 어휘력은 성큼 자라 있었다. ‘아니, 얘가 내 아들이었나? 언제 이렇게 컸지?’ 그만큼 내가 무심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더 결정적인 발견은 아이의 수다였다. 아빠 앞에선 말 없고 무뚝뚝하기만 하던 준석이, 글 속에선 천연덕스럽고 유머러스하게 갖가지 이야기를 풀어냈다. 동생 은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상적인 대화엔 등장하지 않던 기발한 언어가 글 속에 꿈틀거렸다. 맞춤법이나 논리 전개의 완성도 따위는 나중의 문제였다.

초·중딩 부모들에게 새로운 놀이 방법을 권함

초·중딩을 자녀로 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글쓰기는 부모 자식 간의 대화를 즐겁게 증폭시켜 주는 새로운 놀이 방법이다. 시큰둥하게 굴면 한 편 쓸 때마다 용돈이라도 쥐여 주며 꼬드겨 보라. 시시껄렁한 생활 속의 소재라도 멋대로 쓰라고 해보는 거다.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아이들의 속내가 묻은 수다를 접하게 된다.

한 가지 유의하자면, 되도록 사춘기 전에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그 이유는 첫째, 부모와의 대면 접촉을 극도로 기피할 때가 되면 글을 주문해도 ‘씹힐’ 가능성이 높아서다. 둘째, 나이를 먹을수록 초현실적인(!) 엉뚱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용이 반듯해지고 재미없어진다는 얘기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기분이 이상하다. 뭐야 이거, 나 나쁜 아빠 맞아? 개과천선 포기한다고 했다가, 전향서를 써 버렸다.

생동감은 어떻게 생겨날까

“나 새똥 맞았어.”

한 달 전 은서가 아빠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집 앞에서 새에게 험한 꼴을 당했다며 투덜거리는 내용이었다. 나는 답신을 보냈다. “다음엔 말똥 맞아라 ㅎㅎ.” 그랬더니 다시 날아오는, 조금은 뻔한 문자. “아빠 미워!”

몇 년 전 공원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가 보닛과 앞 유리창이 새똥 범벅으로 얼룩진 적이 있다. 잘 지워지지 않아, 세차에 애로가 많았던 기억이 새롭다. 머리에 새똥 맞은 적은 없다. 진짜 웃기다. 내 머리가 새들의 화장실? 그런 일이 정말 생기나 보다.

은서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저 새를 튀겨 먹고 싶다

새똥 맞은 날
나는 4월 초에 학원 공부가 끝나고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가던 중이었다.
엄마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나무를 지나가고 있는데…….

푸직!

뭔가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난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이라서 머리를 만져봤다.
응? 이 말랑거리고 칙칙한 비린내 나는 냄새가 나는 것은 뭐지?
악~ 새똥! 아~ 드러워~ 라고 말하면서 투덜거렸다.
엄마는 집에 가서 머리 감자고 하면서 자꾸 픽픽 웃으며 불쌍하다고 했다.
그 때는 좋았던 엄마도 조금은 싫게 느껴졌다.
새똥 맞은 그 날.
나는 그 날 기분이 나빴다.
어쩔 땐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곤 했다.
난 손을 비누를 아주 많이 묻혀서 싹싹 손을 닦았다.
그 다음 아빠에게 새똥을 맞았다. 위로를 좀 해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아빠는 위로는 커녕.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음엔 말똥 맞아라.
라는 문자를 보냈다. 나는 그 때 아빠가 너무 미워졌다.
그 때 든 생각이, 이제부턴 아빠에게 잘 해주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그 다음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샴푸를 꺼내고 머리 감을 준비를 하였다.
그러고서 들어오라고 했다.
난 사실 여자지만, 머리 감는 것이 싫다. 왜냐하면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축축하고, 물방울이 툭, 툭 떨어져서 춥기 때문이다.
난 그 새 때문에 새똥도 맞고 머리도 감았다. 난 그 새를 잡을 수만 있다면 튀겨서 먹을 수 있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내 고통이 어떤 것인지 느껴보게 해 주고 싶었다. 난 이런 새똥 맞는 것은 만화에나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로 느껴보니 그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얼마나 슬픔이 많은 지를 느껴볼 수가 있었다.
내가 느낀 것처럼, 그 새도 내 아픔을 느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새를 잡는 것은 100% 무리이다. 왜냐하면 그 새는 일방적으로 순간적으로 내 머리 위의 나무에서 똥을 쌌기 때문에, 내가 그 새를 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봤다고 해도, 그 새는 이미 어딘가에 갔을 것이다. 여기에 남아있다고 쳐도 새는 한 마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새도 새의 한 종류일 테니 그 종류의 수많은 새 중에서 그 새를 찾는 것은 100%불리한 것이다.
난 4학년, 어린애이다. 그래서 기억을 잘 잊고 깜박거리지 않는다.
안 늙은 것도 좋고, 어린 것도 좋고, 기억을 잘 잊지 않는 것도 좋지만, 나쁜 기억을 잊지 않는 것은 슬프다.
난 거울을 보며 계속 그 새똥 묻은 곳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그 새를 욕하면서 저주하기까지 했고,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께 그 새가 번개에 맞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난, 그 날이 운수좋은 날 인줄 알았는데, 보니까 운수가 않 좋은 날이었다. 그 날은 잠을 잘 못잤다.
잠을 못 잔 이유는 그 새 때문이었다.(2010. 4. 10)

새똥과의 전쟁, 뒤집어서 생각해 봐

사실 새똥은 어린이들의 중요한 화두다. 이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나도 잘 몰랐으리라. 이번 기회에 ‘새똥’에 관해 검색해 보았다. 어느 포털 지식 검색창에 가보 니 관련 질문이 무려 1,307건이나 떠 있었다(2010년 4월 26일 현재). 대부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올린 것으로 보였다. “새똥을 맞으면 재수가 좋다는 데 사실인가요?” “새똥 맞는 꿈 해몽 좀 해주세요.” “사람이 새똥 맞고 죽으려면 새똥이 몇 미터에서 떨어져야 할까요?” “새똥은 왜 흰색인가요?” “새똥에 있는 내용물 좀 알려 주세요.” “개똥은 약에도 쓴다는데 새똥은?” “새똥에 맞았는데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을까요?”

제목만 보아도 웃음이 나온다. 특히 새똥에 관한 확률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왜 이리 많은가. “뛰면서 새똥 맞을 확률과 걸어가면서 새똥 맞을 확률은?” “새똥이 눈에 맞을 확률은?” “새똥을 두 번 맞을 사람끼리 사귈 확률은?” “새똥 맞을 확률과 로또 맞을 확률을 비교해 주실 분?” 그중에 가장 기발한 내용은 이거였다. “메롱 하다 혓바닥에 새똥 맞을 확률은?” 메롱 하다 새똥을 맞는다면,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마?은 생크림 케이크 조각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이 지점에선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라는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새똥’에 관한 책도 있었다. 은서는 글 제목을 ‘새똥 맞은 날’로 정했는데, 그와 똑같은 이름의 어린이 산문집이 있었다. 김용택 시인이 지은 책 제목은 『우리 형 새똥 맞았다』였다. 외국 작가의 책 제목은 『새똥과 전쟁』이었다. 아, 정말 아이들은 새똥과 전쟁을 하는구나. 새들은 어린이들을 정말 만만히 여기는 걸까.

아무튼 은서는 새에게 엄청난 적개심을 품었다. 응가를 한 새를 튀겨 먹고 싶을 정도다. 새똥은 은서가 싫어하는 머리 감기까지 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기억이 너무 좋은 어린이로 하여금, 나쁜 기억을 잊지 못해 슬프게 했다. 몇 번이나 복수를 다짐하게 했다.

나는 은서에게 새를 미워하지 말라며 달랬다. “새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새라고 그러고 싶었겠어?” 그러면서 다시 써보라고 했다. 새의 입장에서 말이다.

새도 나를 튀겨 먹고 싶을지 몰라

새똥 맞은 날 2
새똥 맞은 그 날, 나는 그 새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 새 때문에 내가 싫어하는 머리도 감고, 기분까지 안 좋았다.
그 이유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똥을 내 머리위에 쌌기 때문이다.
그 때는 너무 너무 그 새가 미웠다.
하지만, 그 때는 내 생각만 고집한 것 같다.
새도 입장, 원인, 결과가 있을 텐데 말이다.
새의 입장을 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새도 일부러 나에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히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새들은 모두 똥을 살 때 밑을 보지 않고, 눈 감고 똥을 싼다. 그러니, 나를 보고 똥을 쌀 리가 없다. 그럴 이유가 없다. 내가 그 새를 미워한 것처럼, 내가 그 새에게 그 새가 일부러 그랬다고, 자꾸 우기면 그 새도 내가 그 새를 미워한 것처럼 나를 미워할 것이다. 내가 그 새를 튀겨 먹고 싶었던 것처럼. 그 새도 날 튀겨먹고 싶을 테고, 내가 그 새를 욕했던 것처럼, 그 새도 나를 욕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엄마, 그리고 그 새에게 투덜거렸던 것처럼, 그 새도 자기 엄마, 그리고 나에게 투덜거릴 것이다.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 새도 나에게 미안해 할 것 같다. 뭐, 어쨌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니깐, 나도, 사실은 그 새에게 똥을 묻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처음엔) 하지만 3일……? 정도 지나니, 그 새똥 맞은 일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 때는 정말로 정말로 그 새가 미웠는데…… 이젠 별 것 아닌 것 같다. 그 새가 일부러 해서, ㅋㅋ ㅎㅎ 하며 픽픽 하며 웃는지, 아니면, 정말로 미안해서 하나님께 용서를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생각만 고집해서는 안 되겠다. 하지만 새똥에 대한 것만 풀렸지, 정확히 그 새에 대한 것은 풀린 건지 안 풀린 건지 모른다.
조금은 풀렸다. 하지만 완전히는 안 풀렸다. 나도 새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아무리 참아도, 완전히 잊혀지지는 못할 것 같다. 내 꿈이 만화가 인데, 그 만화의 소재로 이 새똥맞은 이야기를 넣으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인기도 얻고, 유명한 만화가가 될 수 잇을 것이다. (창피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인기를 얻는 것이니 괜찮다.) 하지만 더럽다고 댓글을 달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그게 정상이니깐, 내가 천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천재라면, 기억력은 물론 공부까지 최상급이다. 기억력까지 최상급이라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미워도, 난 참아야 한다.(2010.4.10)

무리한 ‘글짓기’를 강요했는지도

“모든 새들은 모두 똥을 쌀 때 밑을 보지 않고, 눈 감고 똥을 싼다. 그러니, 나를 보고 똥을 쌀 리가 없다”는 문장이 주옥같다. 웬만해선 어른의 머리에서 나오기 힘든 표현이다. 동심이 살짝, 반짝 빛난다. 글 중반까지는 나름 이런 귀여운 말들이 흐른다. 그러다 “정확히는 모른다”로 시작되는 뒷부분부터 힘이 달린다. 흐지부지, 엉망이다. 은서를 다그쳤다. “도대체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 ‘(새에 대한 원망이) 풀린 건지 안 풀린 건지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나는 은서 앞에서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를 지켜보다 풀이 죽은 은서의 한마디가 걸작이다. “흥, 내가 새의 입장을 어떻게 알아?” 어, 그런가? 그 말도 맞다. 은서에게 무리한 ‘글짓기’를 요구한 것은 아닐까. 그래 쉬운 글부터 써라.

다음은 오빠 준석이다. 내가 몰랐던 아이의 눈높이에 깜짝 놀랐다는 그 문제의 글이다.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준석이의 첫 작품이다. 지난 1월 말이었다. 남이섬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와서 작성했다. 그것도 아빠의 노트북 컴퓨터에, 말도 안 하고 몰래 썼다. 일주일 뒤 그 파일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게 뭐지? 귀신이 썼나?”


남이섬에 갔다 온 소감을 발표하자면…….

남이섬에 갔다. 아니 정확하게 지명을 얘기하자면 우리는 춘천에 갔다 왔다.

우선 맨션 앞에 가서 개를 보았다. 두 마리의 개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크고, 한 마리는 작은 녀석이다. 둘 다 ‘이리 오라’는 몸짓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데, 큰 놈한테 가면 왠지 물 것 같다. 꼬리를 흔드는 게 반갑다는 의미를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작은 녀석한테 가서 머리를 보다듬어 주고 하는데 그 몸집 큰 녀석이 짖고 있다. 그래서 그 덩치 큰 녀석을 만지지는 못하고 다가가기만 하는데, 이런, 이번에는 작은 개가 짖는다. 큰 놈한테 가면 작은 놈이 짖고, 큰 놈한테 가면 작은 놈이 짖다니, 참 원, 누구한테 먼저 가야 할지

이번 여행은 좀 다르게 비유하자면 ‘엉망진창’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맨션 룸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장갑으로 (개 알레르기가 있어서 손으로는 만지지를 못한다.)개를 만지고, 룸에 폐인처럼 틀어박혀서 닌텐도를 하고 텔레비전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보고, 떡과 고구마와 닭갈비가 섞인 푸짐한 저녁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엉망진창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뿔싸, 장난기 많은 내가 또 한 건을 해내고 말았다. 밤 중에 하이킥을 보면서 동생과 놀다가 그만 인형을 찢고 만 것이다! 인형을 찢어서 여행 중에 엉망진창이 된 건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 인형이 이상한 아주 작은 구 모양으로 꽉 찬 인형이었을 줄이야! 우리가 장난을 치고 인형을 찢은 그 순간, 그것들은 튀어나왔다. 그것들은 아주 작은 것인 데다가 잘 튀어서 사방으로 다 튀었다. 걸어다닐 때마다 그런 것들이 다 발에 기생충처럼 붙어다닌다. 더더욱 머리 아픈 문제는 이불에도 다 튀어서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걸 다 없애기 위해 막무가내로 청소를 했다. 담당 아주머니께 청소기 요청을 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들킬까봐 요청하지 않았다. 우리는 겨우겨우 그걸 다 치웠고, 우리는 더러운 침대와 바닥에서 자게 되었다.

아함~ 여행 중 벌써 두 번째 날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셋째 날도 금방금방 다 지나갈 것이다. 여하튼, 오늘은 이곳에 온 목적인 남이섬으로의 출발을 하는 날이다. 남이섬은 배 타고 조금 가야 갈 수 있는 곳이다. 남이섬으로 가는 배를 타는 곳, 그곳에는 재미있는 게 많았다. 번지 점프, 먹을거리, 낚시, 정말 없는 게 없었지만, 우리는 다 포기하고 남이섬 가는 배를 타기로 하고 배에 탑승했다. 배는 좀 특이했다. 남이섬에 가니 대학생이 우글우글거렸다. 과연, 듣기로 대학생들이 엠티 여행으로 많이 온다더니, 그 말이 맞구나 실감했다. 하여튼 그곳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음식도 많았고, 그리고 사람도 많았고, 또 탈 것도 있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동생인 고은서의 떼쓰기와 옛날 도시락 이었다. 옛날 도시락은 그냥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을 법한 계란을 김치볶음밥에 얹어 놓은 건데, 맛이 기가 막혔다. 옛날엔 가난하다더니 이런 맛있는 걸 먹고 다녔나? 차라리 지금 학교에서 주는 급식 때 이런 반찬과 밥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난 뒤, 우리는 그냥 뭐 별로 재미도 없는 걸 탔다. 별로 기억에는 남지 않는다. 다음에는 운전 자동차를 탔다. 나도 운전은 해 보았는데, 운전 실력이 영 말이 아니다. 이러다 나중에 가서 운전도 못하는 사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 다음엔 동생의 아이스크림 사달라는 떼쓰기 다음은 춘천으로 돌아갔다.

세 번째 날이다, 아 벌써 마지막 날이구나. 오늘은 맛집으로 소문난 신선 칼국수로 갔다. 맛은 기가 막혔다. 물론 그 유명한 ‘너른마당’(집 근처 동네에서 이름난 맛집)의 칼국수 보다는 맛이 없었지만, 다음은 비발디 파크로 갔다. 여기를 가려면 좀 경사가 진 곳을 가야 하는데, 정말 그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입 모양만 하면 바로 ‘우웩’하면서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비발디 파크에 도착했을 때, 스키장이 보였다. 스키가 타고 싶었지만, 스키 보드와 스키복도 없어서 타는 건 개뿔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찜질방 갈래, 아니면 수영장 갈래?’ 했더니, 아직 울렁증의 기운이 남아 있었나 보다. 하도 정신이 없다 보니 아무 생각도 않고 찜질방을 선택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정말 후회했다. 비발디 파크를 다시 오는 날에는 무조건 수영장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찜질방도 나름 괜찮았다. 다만 음식 가격이 너무 비싸다.(2010.1.31)

“있는 그대로 잘 묘사했어”

여행 첫날, 펜션에 짐을 풀 때 준석이는 한참을 개 옆에 있었다. “그냥 개랑 노는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 와중에 여러 가지를 관찰했나 보다. 이 부분을 묘사한 대목을 읽으며 준석이를 다시 봤다. 여행 전반에 관한 감상을 두루뭉술하게 늘어놓지 않고, 두 마리의 개와 관련된 풍경을 집중적으로 묘사한 뒤 이를 전체적인 소감과 연관지은 점은 칭찬할 만하다. 펜션에서 실수로 인형을 찢게 된 에피소드를 그린 부분도 그렇다. 과찬을 해서 띄워 주자면, 무비 카메라를 들이대고 보여 주는 것 같다.

물론 준석이가 중학교 1학년 또래들에 비해 특별하게 글을 잘 쓴다고 보지는 않는다. 중학교 1학년의 평균적인 수준을 폄하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처음 쓴 글 치고는 생동감이 묻어났다. 끝은 약간 허무했지만.

아참, 그걸 안 썼다. 이제 여기쯤에서 글을 마치려다 어느 기자 후배의 코멘트가 뒤늦게 떠올랐다. 준석의 첫 글에 신기해하며 몇 명의 후배들한테 돌렸더니 누군가가 이메일로 소감을 보내왔다. “남이섬 여행을 ‘엉망진창’으로 단칼에 정의하는 판사 같은 냉철함과 ‘다가가기만 하는데, 이런’ 등에서 보이는 판소리적 언어 감각과 ‘들킬까봐 요청하지 않았다’ 등에서 보이는 영어식 유머감각…….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고은서의 떼쓰기와 옛날 도시락’을 배치하는 편집력, ‘영 말이 아니다’ 식의 표현을 하는 당돌함도……. ‘입 모양만 하면 바로 우웩 하면서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시적 표현력까지…….”

낯 뜨거운 상찬이다. 준석아, 잘난 척하지는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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