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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내 조부모, 내 부모, 그리고 나」 금속판에 유채와 템페라, 30.7x34.5cm, 1936, 뉴욕, 현대미술박물관 | |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54년)의 어머니
마틸데 칼로(Matilde Kahlo)
결혼 전 성은 칼데론(Calderon)
프리다 칼로는 열여덟 살 때 끔찍한 교통사고를 겪었고, 그 후 치료를 위해 자주 입원해야 했다. 처음에는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 했는데, 어머니가 목수에게 부탁해 누운 채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젤을 만들어 주었다. 이후로 평생 동안 그녀는 자신의 삶을 묘사하는 그림들을 그리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을 그린다. 자주 외롭고,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린 특이한 가계도는 그녀의 출신 배경을 잘 보여 준다. 그림 아래쪽 한가운데 그려진 어린 프리다는 멕시코시티의 코요아칸에 있는 자기 집 뜰에 서 있다. 그녀는 이 파란 집에서 태어나 죽었고, 이제 그 집은 그녀의 작품들을 보존하는 박물관이 되었다. 부모님의 모습은 그들의 결혼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다. 프리다가 들고 있는 붉은 리본 중 한쪽은 아버지를 빙 둘러 올라가 아버지의 부모님에게 닿는데, 이들은 독일 출신으로 그들이 건너온 바다 위쪽에 그려져 있다. 리본의 다른 쪽은 어머니를 빙 둘러 올라가 어머니의 부모님에게 닿는데, 이들은 험한 산과 멕시코 특유의 선인장 들판 위쪽에 그려져 있다. 어머니의 허리띠에는 탯줄로 연결된 태아로서의 프리다가, 그리고 그 아래쪽에는 수태 장면이 꽃가루받이하는 선인장과 나란히 그려져 있다.
마틸데 칼로는 수녀원에서 자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아주 엄격했다. “어머니는 종교에 대해 히스테리컬했다. 우리는 식사를 할 때마다 기도를 해야 했다”고 프리다는 회고했다. 어머니는 딸의 결혼 상대가 부유하지만 추하고 불신자일 뿐 아니라 공산주의자인 디에고 리베라인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혼사진을 바탕으로 한 부모의 초상은 그녀가 자신의 가계를 강조하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자기가 태어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인데, 이것은 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무렵의 작품인 듯 어머니는 흰 천에 덮인 모습이다. 장면 전체는 출산하는 여신을 새긴 아즈텍 조각과도 비슷한 동시에,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 즉 마테르 돌로로사(mater dolorosa)의 이미지에 지배되고 있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출생 연도를 실제보다 3년 후인 1910년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1910년은 멕시코 혁명이 일어난 해였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어머니를 그리다>는 매주 수요일, 총 10회 연재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