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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 쇼>
‘닥본사’하고 얘기합시다
축제와 각종 행사 사회자로 시작해서 객석과 호흡을 주고받는 것이 제일 편하다던 김제동은 대중들에게 자신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환경을 찾았습니다.
간혹 대중문화를 다룬 기사들이나 블로고스피어에서 언급되는 ‘여론’이나 ‘네티즌들의 반응’이란 단어가 과연 실체가 있는 건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기사를 보시다가 종종 이런 문장들을 만난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아직 차갑다” 내지는 “과연 부정적인 여론을 OO가 어떻게 돌파해 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등등의 문장들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과연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말하는 ‘여론’이라는 건 객관적인 집계 과정을 통해 수집된 보편적인 의견일까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화식하는 인간이 다 그렇듯, 기자나 파워 블로거라고 해서 언제나 사실을 객관적으로만 반영할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애착을 가진 대상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좀 더 우호적인 글을, 자신이 달가워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더 가시가 선 글을 쓰게 될 겁니다. 세상 모든 사물의 뒤태를 숨 막히게 찬양하는 P 기자나, <중천>과 <괴물>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악의적이라 할 만큼 무차별적으로 생산하다가 영화인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바 있는 K 기자를 예로 들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대중문화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같은 대상이라 하더라도 보는 사람마다 평가가 천양지차로 갈리니 말입니다. 리뷰라는 것 자체가 ‘글쓴이는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의견을 표출하는 글이니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또 칭찬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판하는 사람도 있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고요. 문제는 기자나 블로거들이 글을 쓸 때 자신의 의견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여론이 그렇다’고 여론을 끌어들이는 경우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라’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와 같은 인류 공통의 오래된 규범들이나 ‘월드컵 16강 진출’ ‘김연아 금메달’과 같이 범국민적인 공감대가 고르게 형성되는 이슈들이 분명 존재합니다만,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찬반이 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4대강 사업, 보편적 무상 급식과 같은 거대한 문제부터, <무한도전>이 더 재미있느냐 <1박2일>이 더 재미있느냐, 하는 일견 사소해 보이는 문제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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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저는 김제동이 자신이 안팎으로 마주했던 벽을 어떻게 뛰어넘었는가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10월 무렵 그는 외적으로는 자신의 <스타 골든벨> 하차를 둘러싼 정치적인 이야기들과 자신이 말아먹은 프로그램들에 대한 책임론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동시에 내적으로는 자신이 맡았던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을 겁니다. 그 무렵 <북극의 눈물>을 연출했던 조준묵 PD와 함께 시도해 보았던 MBC 파일럿 프로그램 <오마이 텐트>는 비교적 높은 시청률과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정규 편성되지 못했지요. 그 과정에서 방송문화진흥위원회 회의석상에서 흘러나왔다는 ‘KBS에서 하차시킨 진행자를 한 달도 안 되어서 MBC가 덥석 쓰는 건 MBC의 자존심에 대한 훼손 아니냐’는 돼먹지 못한 언사 역시 적잖이 심기를 괴롭혔을 겁니다. 더 이상 방송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기 쉽지 않고, 설령 방송에 나온다 하더라도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가 힘든 시점에 부딪힌 셈입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 봉착한 연예인들이 택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대중의 시야에서 벗어나 자영업이나 밤무대를 뛰며 생활비를 벌거나, 다시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방송 스타일을 바꿔 전혀 다른 환경에 스스로를 던지는 것이죠. 그러나 김제동은 좌절한 상태에서 무너져 내리지 않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러나 너무도 그다운 방법으로 문제를 돌파합니다. 그는 2년 전부터 이런 형식의 공연을 생각해 왔다며 자신의 이름을 건 소극장 공연을 열고 그 안에서 무대와 객석 간의 턱을 없애고 형식의 제약 없이 관객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습니다.
원래 축제와 각종 행사 사회자로 시작해서 객석과 호흡을 주고받는 것이 제일 편하다던 김제동은 대중들에게 자신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환경을 찾았습니다. ‘김제동’이라는 콘텐츠 자체가 문제라 생각하고 고치는 것이 아니라, ‘김제동’이라는 콘텐츠를 가장 효율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할 새로운 플랫폼을 고안한 겁니다. 김제동이 공중파에서 처음 주목을 받았던 프로그램이 앞에 앉혀 놓은 관객들을 상대로 말을 부리던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본격 스탠드 업 코미디를 표방했던 <폭소클럽>이었고, 그가 A급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프로그램 또한 관객들이 원형 경기장처럼 세트를 둘러싼 형태의 <야심만만>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김제동은 다시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자신의 원류로 돌아온 셈이지요.
그리고 이 새로운 플랫폼에서는 여태껏 사람들이 김제동의 취약점이라 생각했던 그 모든 점들이 견고한 장점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관객 한 명 한 명과 직접 대화하고,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자신과 친한 사람들을 무대 위로 불러내어 무대 뒤의 자연인 김제동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증언을 듣고, 마침내 연예인 김제동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한두 번쯤 마주쳤을 법한 총각 김제동이란 생각이 들 무렵 관객들에게 큰절을 하며 예의를 갖춰 쇼를 마무리 짓는 그 모든 과정은 김제동이 지닌 특성을 약점에서 장점으로 바꿔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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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개그도 콘텐츠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이 없으면 시들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플랫폼을 찾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때로는 우직할 정도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여정을 걸어온 결과가 <무한도전>과 같은 무시무시한 프로그램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만약에 트렌드에 맞지 않는 것, 시청자들에게 어느 수준 이상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들을 가차 없이 바꾸는 게 옳다면 유재석은 <유재석의 감개무량>이 끝났을 때 진작 유재석식(式) 오합지졸물(物)을 관두는 게 옳았겠지요.
마찬가지로, 방송가에서 그 흔적이 사라진 지 십수 년이 지나서 요즘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개그인 김정렬의 ‘숭구리당당’과 ‘하빠야’가 다시 등장한 것은 개그 트렌드가 돌고 돌았다거나 개그의 복고 바람이 불어서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김정렬이 코미디언 직계 후배들의 존경 어린 눈빛 속에서 이젠 전설처럼 자료 화면으로만 남아있던 ‘하빠야’를 직접 실연해 보일 수 있고 또 그 명성에 걸맞은 리액션을 받을 수 있던 것은, 바로 지속적으로 출연해서 자신의 개인기를 선보이기 적합한 포맷, 호흡을 맞춰 줄 동료?후배들, 충성도 높은 시청자층이라는 삼박자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최적화된 플랫폼 <세바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때 일주일에 열 개가 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박리다매 전술로 공중파에 진출했던 김구라가 지금은 준 A급에 가까운 대접을 받으며 2009년 MBC 방송연예대상 버라이어티 부문 최우수상을 거머쥘 수 있게 된 것 역시 그가 자신의 독설을 가장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플랫폼 <황금어장-라디오스타>를 만났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김제동은 마치 90년대 후반 컬투 일당들과 백재현이 비슷한 시기에 대학로에서 직접 대중을 만나는 공개 코미디라는 플랫폼을 마련했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토크 콘서트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창안해 낸 겁니다.
만약 김제동이 지적받았던 대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세상에 대해 갖추는 예의’를 떼어 버렸더라면 그에게 어떤 독창적인 콘텐츠가 남는지 생각해 보면 아찔합니다. 물론 그의 입담과 재치야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만, 어디 그 정도의 입담이 한국 예능계에서 드문 수준의 재능입니까. 중요한 것은 그 입담과 재치로 얼마나 독창적이게 진짜배기인 내용을 담아내는가, 하는 겁니다.
김구라의 현란한 언변에서 ‘40대 중년 아저씨의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속물근성’을 떼어 내면, 이경실에게서 ‘길을 걷다가 한 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억척스러운 아주머니의 주책스러운 솔직함’을 떼어내면, 박명수의 악다구니에서 ‘먹여 살릴 식구는 많은데 하루하루 몸은 예전만 못하고 젊은 놈들은 치고 올라오고 내 자리는 어쩐지 불안해 보이는 절박함’을 떼어내면 그게 보는 사람의 진심을 파고들어 웃음을 자아낼 수 있겠습니까. 김제동에게 ‘착한 사람 이미지, 공익 이미지’을 걷어 내라는 것은 김제동이 김제동일 수 있도록 하는 핵심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윤형빈이 ‘왕비호’라는 가면을 쓰고 성공한 것은 그 이전까지 대중들에게 윤형빈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각인을 찍은 적이 없기 때문에 가능했던, 더군다나 역할극을 전제로 한 콩트 코미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모험이었습니다. 김제동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갑자기 ‘나도 독한 개그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미지를 급선회해 봐야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쌓아 올린 스스로의 유산을 홀라당 까먹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겁니다.
김제동은 마치 ‘당신이 틀렸다. 당신의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맞서,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재기해 보이며 반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에 틀린 웃음은 없다. 그 모양과 종류가 각기 다른 웃음만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말이죠. 물론 방송과 공연을 통해 알려진 김제동이라면 아마 제 말에 손사래를 치며 겸손을 떨 겁니다.
‘아니다, 외부로부터 어떤 변화 요인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형적인 식민지적인 생각이다. 변화는 너의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외부의 변화에 맞설 수 있는 힘도 네 안에 있다’라며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인용하거나(토크 콘서트 <노브레이크> 2009년 12월 25일 자 공연 중), ‘오히려 진행자로서의 제 자질에 대해 반성해 보는 계기로 삼았노라’(경향신문 <김제동의 똑똑똑> 2010년 3월 17일 정연주 전 KBS 사장 편 중)라고 말할 사람이지요. 자신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사람이 못 되며 단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가장 잘 담아낼 플랫폼으로 점프함으로써, 김제동이란 콘텐츠가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덕분에 김제동이 슬럼프를 겪고 있는 동안에도 그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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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은 이제 자신이 방송 시장에서도 유효한 콘텐츠라는 것을 다시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2010년 5월 6일부터 Mnet에서 자신의 이름을 달고 방영되는 <김제동 쇼>를 진행하게 되었거든요. 사실 그 소식을 듣고 걱정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Mnet과 김제동이 잘 어울리는 조합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고요. 그런데 첫 촬영 현장에 대한 평은ㅡ제가 본 한도에서 말씀드리자면ㅡ다녀온 방청객에서부터 시작해서 신문 기사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호평이었습니다.
주어진 대본 석 장마저 ‘이거 없이 날것으로 진행하겠다’며 밀어 두고서는 관객들과 어울려 2시간 넘게 진행한 첫 녹화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담당 PD가 ‘기대 이상이다. 이렇게 관객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프로그램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는 걸 보니 제작진도 몹시 만족스러웠나 봅니다. 밤늦게까지 진행된 녹화로 방청객들이 귀가 편을 걱정할 무렵 ‘첫 녹화에 와 주신 관객 여러분들께는 특별히 제가 택시 70대를 불러 놨으니 타고 돌아가시면 된다. 택시비는 얼마가 나오든 제가 부담하겠다’라고 말해 방청객들을 감동시켰다는 훈훈한 미담도 제공했습니다. 저도 그 현장에 함께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아쉽게도 시간이 맞지 않아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대신에 <김제동 쇼> 공식 트위터(twitter.com/kimjedongshow)에서 제공하는 실황 중계 녹화본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2시간 40여 분 분량의 녹화 중계를 보니 <김제동 쇼>는 <노브레이크>와 대동소이한 구성인 것 같습니다(TV 토크쇼도 거의 똑같은 포맷으로 밀어붙인 것이 김제동의 판단이었을지 제작진의 판단이었을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통 토크쇼가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오늘날 입담 하나로 매진 사례를 이룩한 김제동의 방법론을 그대로 활용한 것은 첫 녹화가 할 수 있는 가장 전략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녹화 세트장은 <노브레이크> 서울 공연 무대가 그랬던 것처럼 3면을 객석으로 채워서 방청객들이 무대를 내려다보는 구조였고요, 공연 오프닝에 쓰였던 오프닝 필름도 내레이터만 바꿔서ㅡ김C에서 하하로ㅡ그대로 틀어 줬습니다. 공연 때 그랬던 것처럼 메인 게스트를 부르기 전에 30분이 넘는 시간을 재담으로 채웠고요, 방청객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들도 그대로였습니다. 마지막 인사는 큰절로 올리는 것 역시 공연 그대로였지요(덕분에 그냥 깊이 허리 숙여 목례를 하려던 보조 MC 김형석은 화들짝 놀라 얼결에 같이 큰절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또 자신과 친분이 깊은 게스트를 무대에 올리는 것도 그대로였는데, 첫 녹화의 게스트가 정지훈(비)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시의적절성과 첫 방송의 성공을 위한 게스트의 폭발력까지 함께 고려한 섭외였단 생각이 들더군요. 김제동은 정지훈 역시 무대 위에서 방청객들과 직접 질문을 주고받도록 유도하며 방청객들을 적극적으로 쇼의 중심으로 끌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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