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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소녀 장덕, 사후 20년

그녀의 음악 세계를 기릴 수 있는 베스트 앨범 출시를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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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노래는 물론 곡을 쓰고 밴드를 지휘하는 실력파 여성 뮤지션이 제법 있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보기는 힘들었다. 음악에 관한 한 여성의 존재 영역은 어디까지나 가수에 머물렀다.

지금은 노래는 물론 곡을 쓰고 밴드를 지휘하는 실력파 여성 뮤지션이 제법 있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보기는 힘들었다. 음악에 관한 한 여성의 존재 영역은 어디까지나 가수에 머물렀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0년 2월 4일,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장덕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1978년 다섯 살 위 오빠인 장현과 함께 듀엣 ‘현이와 덕이’라는 이름으로 낸 첫 앨범에는 ‘장덕 작사 작곡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당시 가요계 풍토로서는 거의 보기 힘들었던, 여자가 곡을 쓰고 노래하는 이런 재능은 언론과 팬들의 경이감을 자극하면서 ‘천재 소녀’라는 찬사를 가져왔다. 현이와 덕이는 그해 「순진한 아이」 「꼬마인형」 「소녀와 가로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남매 듀오로 주목을 받았다. 이때 장덕(1962년) 나이 겨우 열여섯 살의 여고생이었다. 더구나 이 곡들 상당수가 더 어렸을 적인 중학생 때 작곡해 놨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람들은 더 놀랐다.

1975년에 이미 TV에 출연해 공식 데뷔했지만 장덕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안양예고 1학년 때인 1977년 1회 MBC 국제 가요제에서 그가 작곡한 「소녀와 가로등」이 진미령의 노래로 입상하면서였다(진미령이 인기 가수가 된 것은 이 곡 때문이다). 작곡가와 가수가 함께 무대를 꾸미는 게 당시 대회 규정이었기 때문에 곡을 쓴 장덕이 현장에 나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다. 빵모자를 쓴 깜찍한 외모의 장덕이 지휘봉을 흔드는 인상적인 장면을 지금도 많은 기성세대들이 기억할 것이다.

 



장덕은 이후에도 작곡자로서 이 대회 3회 연속 입상의 기록을 남겨 다시금 가요 관계자들의 감탄을 불렀다. 국제 가요제 이후 현이와 덕이의 히트와 함께 장덕의 행보는 그처럼 순조로운 듯했다. 더욱이 일본 만화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귀여운 외모 덕분에 장덕은 여러 영화에도 출연하면서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만능 엔터테이너’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헝클어진 가정환경은 그에게 안정을 빼앗았다. 아버지의 재혼에 따른 갈등, 자살 소동 그리고 1979년 갑작스러운 도미(渡美)가 이어졌다. 어머니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테네시 주립 대학에서 작곡 공부를 했고 1981년 결혼, 남편과 함께 그룹 활동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고 1983년 귀국해 음악적 재기를 꾀했다. 1985년 오빠 장현과 함께 현이와 덕이를 재결성해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의 히트로 그나마 숨통을 트기 시작했다.

다시 솔로로 독립해 1986년에 발표한 앨범에서 「님 떠난 후」가 <가요 톱10>에서 5주간 1위를 차지하는 대박을 치고 후속타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도 호응을 얻으면서 마침내 날개를 활짝 폈다. 당대 이선희, 정수라와 더불어 여성 트로이카 가수 체제를 구축했다는 평이 나왔을 정도의 큰 스포이트라이트였고 아마도 이때가 스물여덟 짧은 인생에서 장덕이 유일하게 환하게 웃어 본 시기였을 것이다.

이 무렵 가수 활동뿐 아니라 다시 한번 싱어송라이터의 재능을 발휘해 많은 동료 가수들에게 곡을 써줘 히트를 안겨 주었으며 그들의 음반 제작에도 참여해 작사, 작곡자를 넘어 프로듀서로서의 위상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녀는 사실상 한국 최초의 여성 ‘가수 겸 작?편곡자 겸 프로듀서’였다.

여기서 잊을 수 없는 곡은 1986년 이은하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친 「미소를 띠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다. 당대에도 세련된 선율과 고급스러운 진행으로 천재적 역량의 분출이라는 미디어의 칭송을 받았고 훗날 조성모와 왁스 등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면서 이 곡은 이제 가요사의 명곡 반열에 올라 있다. 2004년 드라마 <천생연분>에서 주인공 황신혜가 불러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성공의 즐거움은 그러나 우울증과 자폐증을 부르며 더욱 장덕을 짓눌렀다. 가장 성공한 「님 떠난 후」 앨범의 상당수 수록곡에 이미 극단의 비탄 정서가 흐르고 있었다. 기획사를 만들고 전국에 팬클럽을 조성하려는 의욕에 비례해 그녀의 삶에 대한 회의와 절망도 깊어졌고 안타깝게 약물 의존도도 높아만 갔다. 게다가 1989년 발표한 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는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불길한 제목처럼 그녀는 정말로 예정된 시간을 향해 치달려 갔고 결국 이 앨범은 그녀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장덕이 죽은 뒤 4개월 후인 1990년 6월, 전영록, 이선희, 김범룡, 임지훈, 최성수, 위일청 등 동료 가수가 참여한 장덕의 추모 앨범이 발표되었다. 타이틀도 유작을 따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로 붙여졌다. 그러나 장덕 사망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 몇 개월 후인 1990년 8월 16일에는 오빠 장현마저 설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서른네 살이었다. 남매의 연이은 요절에 대중들은 충격에 휩싸였지만 ‘망자에 대한 예우’ 문화가 확립되지 않은 우리 음악계와 팬들은 곧 이 천재의 죽음을 잊었다.

유재하, 김현식, 듀스의 김성재 그리고 김광석은 죽은 뒤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에 의해 전설의 위상이 부여되는 응당한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탁월한 음악을 선사하면서 늘 천재라는 수식이 따라다닌 장덕은 죽은 해, 그때 잠깐이었을 뿐 뚜렷한 추모 행사가 이어지질 않았다. 생전에도 비운, 사후도 비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님 떠난 후」와 「미소를 띠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만으로도 우리에게 이러한 크기의 여성 뮤지션이 존재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그가 일찍 떠난 것이 음악 역사의 거대한 손실임을 슬퍼하고, 우리가 그를 쉬 잊는 것도 비극이라는 점을 깨쳐야 할 것이다. 마침 올해는 장덕 사후 20년이다. 요란한 TV 스페셜 프로그램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후대가 그의 음악 세계를 기릴 수 있는 베스트 앨범은 출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린 너무 현재에만 골몰한다.

-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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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진모(대중문화평론가)

학력
고려대학교 사회학 학사

수상
2011년 제5회 다산대상 문화예술 부문 대상
2006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공로상

경력
2011.06~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영상물 등급위원회 공연심의위원
내외경제신문 기자

음악웹진 이즘(www.izm.co.kr)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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