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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색으로 승부하다 - 정인 & 라이밴드 & 뜨거운 감자

론 화려한 기교를 듣는 재미도 있겠지만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고유의 음색이 아닐까 합니다. 피나는 연습과 노력으로도 분명 이뤄지지 않는 게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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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화려한 기교를 듣는 재미도 있겠지만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고유의 음색이 아닐까 합니다. 피나는 연습과 노력으로도 분명 이뤄지지 않는 게 있으니까요. 독특한 음색으로 피처링에 이름을 올리며 팬들에게 깊이 아로새겨진 가수 ‘정인’이 드디어 솔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역시 강렬한 음색으로 여러 앨범에 참여한 바 있는 ‘라이’의 ‘라이밴드’ 데뷔작도 눈에 띄고요. 마지막으로 ‘뜨거운 감자’가 ‘가상의 영화 앨범’이라는 색다른 방식으로 신작을 발표했네요.

정인 - <From Andromeda> (2010)

정식 신고가 조금 늦었다. 2002년 리쌍의 「Rush」에 피쳐링 보컬로 참여한 이후, 5인조 혼성 밴드 지 플라(G-Fla)의 멤버로 활약은 해 왔지만 ‘정인’이라는 이름 두 글자로 솔로 앨범을 내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아담한 키에서 새어 나오는 기이하면서 이색적인 목소리를 주도적으로 그려 낸 첫 번째 앨범은 새 천년으로 접어들며 잠재력을 만개하고 있는 여러 여성 보컬들과 어깨를 겨눈다.

정인의 솔로 앨범을 들은 청취자라면 이전의 결과물들과는 상이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번 앨범은 리쌍의 길이 관여한 부분과 그 이외의 것으로 양분된다. 전자가 「Show」 「살아가는 동안에」 「Girls on shock」이라면 후자는 「미워요」와 「고마워」로 단정할 수 있다. 양자 모두, 펑키하고 소울이 묻어나는 감성보다는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는 대중성을 강화했다.

드럼과 베이스라인의 바운스가 부각된 힙합 비트가 「Show」에서 트랙을 장악하고 있으며, 댄스홀에 어울리는 「Girls on shock」은 박정아(길과 뗄 수 없는 관계인)와 쥬얼리의 래퍼 하주연이 참여하여 의외의 준수한 매치를 자아내고 있다. 게다가 「살아가는 동안에」에서는 길 자신이 코러스에 참여하여 특유의 걸쭉하고 선 굵은 목소리로 조력하기까지에 이른다. 신인이지만 이미 낯익은 정인을 위한 길의 수위 조정이 위의 3곡에서 암시된다.

이지 리스닝적인 면모는 타이틀곡 「미워요」에서도 맥락을 같이한다. 명확한 기승전결과 흡인력을 머금은 멜로디 작법은 이적의 손에서 이뤄졌다. 더하여 대작을 염두로 한 방대한 스케일의 스트링 편곡까지 타이틀곡의 필수 요소는 모두 갖추고 있다. 3분 20초 동안 압축된 시간을 휴지(休止) 없이 롱 테이크로 끌고 가면서 여성 청취자들의 감성을 대변해 주는 가사 요소가 각종 차트에서 정인이 선전하고 있는 이유다.

마지막 트랙 「고마워」는 의외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곡일지도 모른다. 소담한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지만 그 위에서 정인은 매우 자유롭게 노래한다. 어떻게 보면 앨범 내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진솔한 순간일 수도 있으며, 10년 뒤의 포크 듀오를 꿈꾸는 그녀의 소박한 꿈이 담겨 있는 복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이후 행보를 지레짐작하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안드로메다에서 온 그녀의 속내를 어찌 알겠는가.

- 글 / 홍혁의(hyukeui1@nate.com)

라이밴드(Rhy Band) - <Crhy> (2010)

노래 부르는 이의 음색은 그 가수 자신, 또는 그가 속한 밴드에게 무척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느끼기에 근사하거나 독특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는 대중에게 노래를 각인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훌륭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곡이라고 할지라도 보컬의 음 빛깔이 어떤가에 따라 그 노래의 풍미가 더 살아나기도 하며 때로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니 그것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타고났든 오랜 훈련을 통해서 가공해 냈든 가수에게 음색은 결코 미미하게 여길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라이밴드(Rhy Band)는 청취자들에게 그룹의 이름과 노래를 알리기에 좋은 조건을 지녔다. 팀 보컬리스트 라이의 음색이 무척 강렬해서 몇 초만 들어도 노래는 빠르게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허스키하면서도 거친 기운이 느껴지는 톤과 울림은 많은 이가 매력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귀를 낚아채는 특징 덕분에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곡에서는 사내아이가 분방하게 뛰어노는 것 같은 인상이 들기도 한다.

「Thank you」와 「진짜를 원해」는 자유롭고 억센 표출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노래다. 질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잽싸게 흐르는 연주 위에서 그녀는 달음박질하듯 잾기들과 호흡하고 있다. 어느 정도 힘 있는 반주와 센 음성이 서로의 공통부분을 살리며 어울린다. 특히, 연극과 뮤지컬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동한 라이가 대사를 외우는 것처럼 노래하는 「진짜를 원해」는 특색 있는 목소리가 더욱 빛나 흥을 보강한다.

천천히 흐르는 노래에서는 굵고 메마른 음성이 애절함을 키워 또 다른 맛을 낸다. 타이틀곡 「데려가」는 사랑의 추억과 아픈 기억을 모두 가져가라고 애원하는 노랫말이 그녀의 오묘한 목소리에 실려 애처로움을 연출하며 「Dear my J」는 이와 반대되는 밝은 정황임에도 약간의 애틋함이 풍겨 나온다. 후자의 곡에서는 자신이 지닌 목소리의 매력과 2000년대 초반 힙합 크루 오디시(ODC)의 멤버로 활약한 이력을 동시에 살려 감정이 잘 전달되는 래핑을 펼치기도 한다.

보컬의 독특한 음색이라는, 노래의 재미를 증가해 줄 수 있는 요소와 치장의 도구는 충분히 갖춘 상태다. 하지만 이것이 밴드의 유일한 무기가 되어서는 수많은 밴드가 뜨고 지는 각축장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음악에서 더러 발견되는 메부수수한 방식, 극히 평범한 문법에 대한 보완이 요구된다. 밴드의 장점은 살리되 부족한 부분을 메워 가는 작업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 글 / 한동윤(bionicsoul@naver.com)

뜨거운 감자 - <시소(seesaw)> (2010)

상상할 수 있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상상 가능한 음악이다. 그렇다고 고도의 청취력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들으며 이미지를 끌어낼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했을 때 이해하며 곡을 들었다는 생각에 미칠 수 있을 정도의 앨범이다.

현재, 모 공중파 방송 예능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는 김C. 예능인과 뮤지션을 오가며 1석 2조(?)의 문어발식 활동을 하는 일련의 만능 연예인 대열에 끼는 그다. 그의 본업이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뜨거운 감자’라는 밴드의 멤버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이제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지난 「비 눈물」을 발표하며 한 몇 차례의 방송 활동과 프로그램 중 적당히 자기 PR도 서슴지 않는 그이기 때문이다. 김C의 외도 덕분에 뜨거운 감자의 대중성은 이제 그렇지 않을 때와 비교해 한껏 상승됐다.

14중주 현악이 배치되고 주로 젊은 층에서 소구되는 힙합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도 뜨거운 감자 본연의 느낌은 지워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았다. 대중을 고려해 함께 즐길 만한 부분을 적절히 배치하되 결코 주류 음악의 흐름에 모든 것을 타협하지 않는 뚝심이 있다.

주목할 것은 발상의 전환이 담긴 앨범이라는 점이다. 트랙에는 분명 「시소」라는 메인 테마곡과 남과 여의 테마송으로 추측되는 「M theme」과 「W theme」가 수록되어 있다. 배경에 깔릴 수 있는 연주 음악만도 무려 5곡이다. 여느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형식과 똑 닮아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 음악을 위한 영화가 부재하다는 것.

음악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영상을 상상해야만 볼(see) 수 있는 상상의 영화 그리고 그 영화 속 상상의 사운드 트랙(Imaginary Sound Track). 말 그대로 발상 그 자체는 상당히 괜찮다. 음악과 영화 간, 예술적 가치의 우위를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영화에서 음악은 영화의 장면을 이해토록 돕는 영감을 불러내는 부가물처럼 쓰인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하지만 이 음반은 그 일반적 통설을 달리한다. 음악이 주가 되고 영화가 따라오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무한한 필름 롤을 머릿속에서 떠올려 보라는 역발상(!).

트랙을 훑어가다 보면 남성적인 액션이나 싸늘하고 위협적인 공포보다는 여성적인 멜로의 감성이, 희극보다는 비극이, 배경의 웅장함보다는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에 초점을 둔 영화가 그려진다. 그 문은 오프닝 트랙 「시소」에서 가장 강하게 배어 나온다. 첼로의 묵직한 선율과 두꺼운 드럼의 킥이 만나 앨범의 전반적 분위기가 마이너의 정서에 중력을 뒀음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앨범의 타이틀인 「고백」은 사랑을 고백하는 설렘이 경쾌한 리듬의 기타와 드럼의 밴드 스킬, 거기에 바이올린의 선율이 결합돼 러브스토리의 개화를 알린다. 스토리의 절정에 쓰일 법한 「빈방」은 빠른 템포의 진행이 다가온 이별에 혼란스러운 남자의 감성을 잘 대변하는 노래. 1980년대의 복고적 느낌을 주는 악풍이 일견 촌스럽기까지 하다. 이별하는 사람의 과거 회상 장면에 제격일 만한 곡이다. 관현악의 예리한 사운드가 신경질적인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것은 듣고 상상하는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아닐까.

<시소>는 대중의 보편적인 기호를 담보하지 못해 다수의 음악팬들을 현혹하기에는 어딘지 애매하고도 어려운 음악을 해 왔던 그들이 밴드 특유의 록 감성을 유지하되 고집스러움에 머무르지 않고 늘 고민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가상의 영화 음악 앨범이라는 생각의 변환만으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음악에 관심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 글 / 옥은실(lameta@gmail.com)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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