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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르의 향연 - 소히 & 이상민 & 검정치마
2005년 <앵두>로 브라질 음악 팬들에게 깊이 아로새겨진 ‘소히’의 2집, 긱스 출신의 드러머 ‘이상민’, 그리고 ‘검정치마’는 3곡의 신곡이 추가된 스페셜 에디션 앨범을 발표했네요.
언젠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음악적 편견은 인종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조금은 과장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음악에 대한 편향적인 생각과 편견은 음악의 다양한 접근과 상상력을 막는다는 점에서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닐 테죠. 따뜻한 봄날, 매력적인 후크송도 좋지만, 가끔은 느슨한 흐름의 보사노바로, 혹은 강렬한 연주 앨범으로 다양한 장르를 감상해 보는 건 어떠세요? 2005년 <앵두>로 브라질 음악 팬들에게 깊이 아로새겨진 ‘소히’의 2집, 긱스 출신의 드러머 ‘이상민’, 그리고 ‘검정치마’는 3곡의 신곡이 추가된 스페셜 에디션 앨범을 발표했네요.
소히(Sorri) - <Mingle> (2010)
우리나라 브라질 음악의 저변은 예상 외로 탄탄한 편이다. 일반 대중들은 몇몇 가수들이 자기 앨범에 양념처럼 끼워 넣은 보사노바의 분위기를 흉내만 낸 히트곡들만을 떠올리고 말겠지만, 진지한 자세와 탐구 정신으로 브라질 음악을 시도하는 뮤지션들이 다수 존재한다.
우리나라 인디 문화의 젖줄인 홍대와 신촌. 전성기였던 1990년대 후반만큼의 인기와 관심은 더 이상 쏠리지 않더라도, 펑크와 그런지 그룹들이 대부분이던 예전에 비해 장르의 다양화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다원화된 세계 속에는 브라질 음악도 포함되어 있으며, 소히는 그 선두에 서 있는 여가수이다.
소히는 솔로 데뷔 앨범 <앵두>를 통해 평단의 호평과 함께 나름의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었다. 정통 브라질 음악을 표방했던 앨범의 비대중적인 성향을 감안한다면, 그만큼의 성공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타이틀곡 「앵두」는 잠시지만 TV 광고에서 BGM으로 사용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밝고 상큼한 앨범의 수록곡들에 대한 대중의 호응도 괜찮았다.
2집의 음악적 모토는 1집의 확고한 방향성과 달라진 바가 없다. ‘섞다’는 의미의 앨범 타이틀 <Mingle>은 한국 음악과 브라질 음악을 융합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음악적 지향을 단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MPB(Musica Popular Brasileira - 보사노바 이후의 브라질 대중음악)와 삼바, 보사노바를 비롯한 브라질 음악의 다양한 스타일이 감성의 골격을 이루고, 잘 골라 쓴 가사와 쉬운 멜로디로 대중의 감성에 호소한다.
타이틀곡인 「그럼 그렇지」는 MPB를 표방한 곡으로, 아기자기한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부르기 쉬운 후렴구가 듣기 좋다. 앨범 첫 트랙 「좋아」는 빠른 템포의 보사노바 곡으로, 나일론 기타 연주가 만드는 가벼운 리듬감이 나른하면서도 경쾌하다. 1집의 히트곡 「앵두」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들로, 보다 섬세해진 리듬의 표현과 깊어진 감성을 확인할 수 있다. 앨범의 서정성을 대표하는 「산책」은 회상 조의 가사와 진중한 소히의 음색이 잘 어울린다.
「거짓말」과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소히는 삼바에 접근한다. 「거짓말」은 조앙 질베우뚜(Joao Gilberto)풍의 미니멀 보사노바 편성으로 시작하여 속도감 있는 삼바로 반전된다. 「집으로 가는 길」은 까바끼뉴(삼바의 정체성을 이루는 악기로 보기엔 작은 기타처럼 생겼다)를 전면에 등장시키며, 대가 빠울리뉴 다 비올라(Paulinho Da Viola) 스타일의 성인 취향 삼바를 재연했다. 후렴부의 절묘한 스트링과 중반부에 트롬본의 삽입으로 한껏 운치를 살린다.
「짜릿한 입맞춤」과 「Boa Tarde」 「Re-love」는 프로듀서 이한철의 감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곡들이다. 「짜릿한 입맞춤」은 이한철이 노래도 불렀으며, 보사노바의 나일론 기타 연주와 디지털 사운드가 절묘하게 결합했다. 「Boa Tarde」는 일렉트로니카까지 아우르는 MPB의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 주는,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곡이다. 「Re-love」는 반다 블락 히우(Banda Black Rio)풍의 브라질리안 펑크(Funk)를 디지털 사운드로 표현하려 했다.
「강강수월래」는 단조의 멜로디와 느린 템포, 단출한 악기 편성으로 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부드러운 MPB 「비온 뒤」는 후반부에서 강렬한 삼바로 급변하며, 앨범에서 구성과 편곡이 가장 돋보이는 곡이다. 두 곡은 장단(리듬)을 통해 국악의 느낌을 담으려 했다. 「나나나」는 전형적인 미국식 보사노바로, 플루트를 사용하여 고급스런 느낌을 강조했다.
데뷔 앨범을 통해 자신의 브라질 음악에 대한 욕구와 자신감을 마음껏 배출했다면, 2집은 보다 깊어진 음악적 감수성과 한층 진보한 브라질 음악에 대한 이해력을 보여 준다. 평단에 의해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받았던 다소 아쉬운 보컬도, 확실한 자기 색깔을 찾으면서 안정감을 찾았다. 「산책」의 깊은 서정은 그녀의 보컬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보사노바 앨범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일련의 보사노바 커버가 다수 수록되었던 1집과 달리, <Mingle>은 전 곡이 자작곡으로 채워져 있다. 특히 기타 연주와 멜로디, 가사의 자연스러운 궁합을 통해 그녀가 브라질 음악의 정도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다.
보사노바의 핵심은 언뜻 들으면 별것 아닐 수 있는 나일론 기타(Violao) 연주에 있다. 선구자 조앙 질베우뚜(Joao Gilberto)는 처절한 연구와 연습에 의해, 보사노바 기타 연주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 요체는 가사와 멜로디, 기타 리듬의 완벽한 조합에 있었다. 포르투갈어가 가지는 특유의 질감과 그 자체의 리듬, 그리고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현란한 코드 플레이를 조앙 질베우뚜의 기타는 완벽하게 포용했다.
이번 앨범이 돋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차근차근 들어 보자. 가사와 멜로디, 기타의 리듬이 얼마나 완벽하게 들어맞고 있는가를. 특히 포르투갈어에 최적화된 브라질리안 기타 연주와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한국어를 최대한 융합하기 위해, 작사와 작곡, 기타 연주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감상자로서 예측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젊은 여성들의 일상과 생활 심리를 섬세하고 정제된 어휘로 표현한 가사도 눈길을 끈다. 1집의 대표곡 「사람의 맘을 사로잡는 방법」에서도 두드러졌지만, 그녀는 쉬운 단어들을 적절하게 골라 쓰면서, 동년배 여성들의 공감대를 자극하는 가사를 쓸 줄 안다. 거창한 내적 탐구나 사회 비판의 메시지(「나나나」와 「Boa tarde」에 은근히 담겨 있기는 하지만)를 담아야만 좋은 가사는 아니다. 그 내용뿐 아니라, 앞서 언급한 브라질리안 음악과 조화의 측면에서도 탁월하다.
이 글을 보고 <Mingle>과 그 수록곡을 어려운 음악, 마니아용 음악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절대 ‘No!’임을 밝힌다. 이 앨범은 놀라운 음악적 성과뿐 아니라 대중적인 호흡도 놓치지 않고 있다. 이한철을 프로듀서로 기용하여 그의 친대중적인 감성이 자연스레 담겼고, 멜로디와 가사도 부르고 듣기에 부담이 없이 편안하다. 은은한 미소가 지어지는 앨범이다. 포르투갈 어로 ‘미소(sorri)’를 의미하는 그녀의 이름처럼.
그녀가 슬로코어 밴드의 잠의 베이스 출신이라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에 홍대 인근을 배회하던 이들에겐 나름 아이돌과 같은 존재였던 그녀.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보사노바와의 인연. 지인의 고백에 의하면 처음엔 기타를 전혀 치지 못했다고 하는데, 피나는 노력을 통해 데뷔 앨범에서 이미 상당 수준의 기타 연주를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브라질 음악을 전면 시도한 사실 자체만으로 그녀의 출발은 의미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만의 새 앨범이다. 그리고 그 4년 사이에 그녀의 음악은 더욱 성장했다. 정통 브라질 음악을 추구하는 국내 유일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 <Mingle>은 그녀의 위상을 확고하게 하는 앨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3월 말의 시점에서, 올해 발표된 최고의 앨범이다.
(개인적인 이야기: 최근에 그녀의 라이브를 볼 수 있었다. 상당수의 브라질인들이 관객석에 있던 공연인데, 그녀는 앵콜곡으로 곤자기냐(Gonzaguinha)의 대표곡 「O que e o que e」(뭐, 뭐)를 불렀고, 시종 조용하던 브라질 관객들이 그 순간만은 전부 합창을 하며 광분하는 것을 보며,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뮤지션이, 곤자기냐의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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