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도 디스코가 들립니다. 길거리에서, 라디오에서, 빌보드 차트에서, 가요 차트에서. 음악계가 전부 ‘일렉트로니카’와 ‘디스코’의 세상입니다. 이 ‘창궐’에 전조를 띄운 그룹이죠? 고고스타가 새 앨범을 발표하고 돌아왔습니다. 뿅뿅대는 장난기 넘치는 음악은 여전하네요. 신보를 발표하고 돌아온 크리스 브라운, 알앤비의 신성 크리셋 미셸의 2009년 수작도 소개합니다.
고고스타(GoGo Star) <성난 인형극> (2010)
정력적인 내달림이 특징인 반주와 달리 세 편의 노래들에는 어느 정도 비애감이 서려 있다. 몸을 흔들기 좋은 빠른 템포의 뉴 웨이브 사운드가 고삐를 늦출 줄 모르고 시종 이어지지만, 가사를 들여다보면 타인에 대한 불신, 외로움, 허무주의적으로 향락에 순응하는 태도도 동시에 내비친다. 반승반속의 애매함이 그래서 일단은 도드라져 보이는 우울한 댄스곡의 완성이다.
상반되는 사항으로 인해 음악은 빨리 덥혔다가 그만큼 신속하게 식는 듯하고 노랫말은 아주 미적지근한 온도로 예열 상태로 죽 유지되는 것만 같다. 속도감과 힘을 겸비한 프로그래밍이 초반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인상을 안긴다면 습기를 머금은 이야기는 노래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남기는 역할을 한다. 경쾌한 사운드의 반주와 가사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듣는 이가 밴드의 음악을 인식할 수 있게끔 차례로 공략하는 격이다.
거센 록 비트와 신시사이저 연주가 쾌활함을 연출하는 「포이즌 80's」, 곡을 인도하는 키보드 선율이 1980년대 유로댄스의 흥을 재현하는 「샴페인」,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경계를 아우른 듯 뉴 웨이브와 테크노가 결합한 위에 디스코 소스가 곁들여진 「성난 인형극」 모두 춤추기를 부추기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들 노래가 담은 말들은 다소 어두운 성질의 것이어서 춤을 추고 나서도 묘한 기분을 제공한다.
2007년 말에 결성해 2008년 EP <GoGo Party!> 와 이듬해에 정규 데뷔작 <Not Disco But Disco>를 발표하며 인디 신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고고스타(GoGo Star)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일관된 태도를 유지해 왔다. 다소 음습한 분위기의 가사를 디스코, 신스팝을 적극 흡수한 펑크록에 실어 표현한 것. 우스꽝스럽고 아동 취향에 가까운 내용을 내세워 이례적이었던 것은 「빠리미용실 간 제임스」나 「내가 우뢰매」 정도였다.
그간 발표한 곡들과 이번 비정규 음반이 내쉬는 숨결을 종합한다면 침잠하는 듯한 노랫말과 이에 반대되는 빠르고 센 반주로 형성하는 비장함이 고고스타 음악의 특성일 것이다. 그러나 일정 규모의 ‘비장함’ 외에 ‘비장미’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게 아쉽다. 과거 서구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특정 트렌드에 대한 탐미로 박력과 속도를 내세우는 중에 완급을 가하거나 긴장감을 유발하는 요소가 부족해 부산스러운 감만 돌출된다. 노랫말이 여운을 보낸다고 해도 음악의 직선적인 표출 때문에 큰 힘을 내지 못한다.
단순한 구조에 스피디한 전개로 잽싸게 인상을 심는 작업은 중요하다. 한 번 들어간 인상을 오래 남길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노랫말과 악곡이 고르게 융합해 상승효과를 이루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 요구된다.
-글 / 한동윤(bionicsoul@naver.com)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 <Graffiti> (2009) 각 방면에 두각을 나타냈던 위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었다고 익히 알고 있다.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도 불과 열여섯의 나이에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건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첫 싱글
「Run it」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등극한 것은 차세대 R&B 히어로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으니 썩 좋지 못했던 평단의 반응은 일단 보류해도 좋았다. 아니라 다를까 클럽에서 불붙은 호응도에 힘입어 차트 1위 곡이 연이어서 터져 나왔다.
허나 영웅에게도 시련은 있는 법. 다만 위기의 모양새가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것이 문제다. 맞다. 당시 여자 친구, 리아나(Rihanna)와 벌어진 야밤의 활극은 R&B 신성인 그를 하룻밤에 인간쓰레기로 추락시켰다. 재기가 가능하겠냐는 조소 섞인 우려 속에서 어쨌든 새 앨범
<Graffiti>는 나왔다. 시작부터 반은 지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어쩌겠나. 인과응보다.
<Graffiti>를 내놓으면서 크리스 브라운 본인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프린스(Prince)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에 필적할 만한 음악적 시도를 꾀했다고 밝혔다. 전설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대목에서 훈훈함을 느낄 새도 잠시, 1번 트랙 「I can transform ya」는 혹시나 했던 기대를 냉정하게 저버린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보코더 사운드로 휘감은 힙합 비트는 특화될 것도 새로울 것도 전혀 없다.
틈새를 잘 들여다보면 그의 언급이 무색하지는 않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유로 댄스 비트의 향취가 새어나오는 「I.Y.A」가 그나마 눈길을 끄는 정도이며 그가 인용한 전설들과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함량 미달이다.
흥미로운 점은 리아나와의 재결합을 연상시키는 곡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가사들이야 사랑 노래의 주된 테마이긴 하다. 그러나 「Crawl」과 「So cold」과 같은 발라드 트랙에서 크리스 브라운은 자신의 용서를 누군가에게 두 손이 다 닳도록 빌고 있다. 이 같은 사과 공세로 이미 떠나간 버스가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무뢰한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순화시키기에는 효율적이다.
그의 재능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가창력도 그렇거니와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춤 실력 또한 발군이다. 어떻게 보면 젊은 날의 치기 어린 실수로 한 촉망 받던 아티스트가 평가 절하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Graffiti>는 이 같은 변호가 무색할 정도로 무색무취하다. 더욱이 상처로 얼룩진 극한의 상황을 과감하게 표현한 리아나의
<Rated R>과 비교했을 때에 그 초라함은 배가된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크리셋 미셸(Chrisette Michele) <Epiphany> (2009) 2007년 발표한 데뷔 앨범
<I Am>의 「Best of me」와 2년 터울을 두고 공개한 두 번째 정규 음반
<Epiphany> 수록곡 「What you do」로 크리셋 미셸(Chrisette Michele)의 음악은 우리나라 몇몇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주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면 상대방이 받기 전까지 잔잔한 음성으로, 또는 애절한 목소리로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응대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통화 연결이 되면 안부나 용건을 묻기보다 누구의 노래인지를 먼저 물을 수밖에 없을 만큼 그녀의 노래는 찰나에 여러 사람을 홀렸다.
마법은 빌보드 차트에서는 온전하게 발휘되지 못했다. 두 작품의 앨범 차트는 각각 29위와 1위로 선방과 완벽한 성공을 과시했으나 각각의 것에서 떨어져 나온 총 여덟 개의 노래 중 「If I have my way」만이 싱글 차트 100위권 안에 유일하게 진입해 무척이나 초라한 성적을 보유하게 됐다. 멋진 데뷔에 이어 가뿐하게 소포모어 징크스를 비켜간 그녀였음에도 주류에서 맘껏 놀기를 허락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크리셋 미셸이 한국에서나 좀 팔리는 ‘컬러링 가수’라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기와 트렌드에 대한 고집, 지나친 상업성의 바로미터가 된 메인스트림에 배격당할 뿐이지 전작에 이어 이번 앨범에서도 그윽하고 훌륭한 향을 내는 리듬 앤 블루스, 소울의 전령으로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빨리 반응하게 하고 머릿속에 잠류했다가 사라져 버리는 유행의 첨병들과는 다른 깊이를 선사한다.
큰 틀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으나
<Epiphany>는 1집의 「Good girl」 「Be OK」 「Let's rock」에서 보여 줬던 것처럼 힙합과 펑키한 요소를 접목한 곡이 확 줄어든 것이 특징이다. 유사한 분위기는 「Mr. Right」가 유일하다. 대신 로드니 저킨스(Rodney Jerkins)가 특유의 업 비트 스타일이 아닌 적당한 강세로 멜로디와 리듬을 절충한 「Playin’ our song」이나 비욘세(Beyonce)의 「Irreplaceable」이 겹쳐 연상되는 「Another one」처럼 미디엄 템포의 리듬 앤 블루스가 늘어났다.
요즘 널리 애청 되는 리듬감 있는 형식 외에도 앨범에는 아름다운 선율의 곡, 크리셋 미셸의 뛰어난 기량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두루 구비되어 있다. 니요(Ne-Yo)와의 듀엣곡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은 「What you do」가 정갈함을 매력으로 두었다면 두 번째로 싱글 커트된 「Blame it on me」는 가라앉는 분위기에 걸쭉하게 내보내는 보컬로 웅장한 음의 연결을 연출한다. 뒤이어 흐르는 「All I ever think about」은 발성을 완전히 바꿔서 전과는 색다른 분위기를 주조한다. 건반 루프와 그 사이에 끼어드는 전자음이 빠르게 각인되는 「Epiphany (I'm leaving)」는 셈과 여림을 오고 가는 코러스가 노래의 풍미를 더한다.
이 음반이 수치로 나타내는 성과는 전작에 준한다.
<I Am>과 마찬가지로 현재까지 4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고 싱글과 R&B/힙합 차트에서의 성적도 거의 비슷한 편이다. 좋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순위다. 200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R&B 여성 보컬 퍼포먼스’ 부문에 후보로 오르고 이듬해에는 ‘최우수 어반/얼터너티브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했던 것과 달리 이번 그래미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으니 이 점은 덜한 부분이다.
앨범의 가치는 수치와 등급, 트로피의 유무로 셈하듯 매겨지지 않는다. 들을수록 누군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서서히 이끌어 내는 것 같은 설렘과 고요하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감동이 그것들을 충당하고도 남는다. 통화를 기다리던 몇십 초안에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What you do」도 있지만, 끝까지 들으면 이 가수가 누구인지 묻고 싶어지는 곡들이 즐비하다. 주류 R&B 신에서 흔히 마주할 수 없는 향 진한 소울이 고혹한다.
-글 / 한동윤(bionicsoul@naver.com)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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