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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이 지나도 노래가 나오지 않는 파격에… - 산울림 <제2집> (1978)

팬들은 첫 앨범부터 1997년에 나온 13집까지 산울림의 앨범 모두를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으로 꼽겠지만 당대 청춘과 사회에 미친 산울림의 음악적 회오리는 데뷔작과 이 2집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고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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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혁명적이었던 첫 앨범의 파장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1978년 5월, 그러니까 처녀작을 낸 지 6개월 만에 산울림은 숨 가쁘게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당시 청춘들의 이성 상실은 계속되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라는 긴 제목의 노래를 들었을 때 3분이 지나도 노래가 나오지 않는 파격에 청취자들은 또 한번 아연실색했다. 기타 퍼즈 톤과 강렬한 솔로가 빚어내는 사이키델릭 터치는 지금의 감성 잣대로는 잴 수 없는 무한 몽환과 중독을 전하는 것이었다.” (리뷰 중에서)

산울림 <제2집> (1978)

그땐 정말 정신이 없었다. 1977년 12월부터 해가 바뀐 겨울 내내 「아니 벌써」를 위시해서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문 좀 열어줘」 「불꽃놀이」 「안타까운 마음」 「그 얼굴 그 모습」 등 첫 앨범의 수록곡들이 쏟아져 나와 어지러이 전파를 수놓았다. 당대 관행과 달리 데뷔 앨범에서 타이틀 곡 하나가 아닌 다수의 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는 것만으로 이미 산울림은 경이였다.

그것은 그 무렵의 대중가요에서는 들을 수 없는 파격적인 가사의 충격이었고, 오래간 다져진 3형제의 연주 하모니를 가지고 펼치는 로큰롤의 파괴력이었다. 결코 탁월한 연주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잠시 움츠리고 있던 록의 본능적 폭발이 되살아난 것에 젊음은 환호했다. 송골매 출신의 배철수는 이렇게 회고한다. “이전까지 대중가요 가사에는 운율이 있어야 했지만 산울림은 산문적인 어법을 노랫말에 심은 것이었다. ‘3코드’라는 사실도 새로웠다. ‘이런 식으로도 음악을 할 수 있구나!’ 나는 산울림의 「아니 벌써」를 국내 최초의 펑크(punk) 히트송으로 간주한다.”

가히 혁명적이었던 첫 앨범의 파장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1978년 5월, 그러니까 처녀작을 낸 지 6개월 만에 산울림은 숨 가쁘게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당시 청춘들의 이성 상실은 계속되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라는 긴 제목의 노래를 들었을 때 3분이 지나도 노래가 나오지 않는 파격에 청취자들은 또 한번 아연 실색했다. 기타 퍼즈 톤과 강렬한 솔로가 빚어내는 사이키델릭 터치는 지금의 감성 잣대로는 잴 수 없는 무한 몽환과 중독을 전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피었네」의 ‘하’ 하는 숨, 「이 기쁨」의 ‘아’ 하며 솟구치는 메아리는 이전의 어느 곡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사이키데릭 총기였다. 둘째 김창훈이 써서 1977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차지했던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는 산울림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동시에 팬들에 대한 서비스였으며 야릇한 내용의 차분한 발라드 「둘이서」는 가사를 음미하며 방 안의 불을 끄고 들어야 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만큼 히트한 「노래 불러요」는 당대 청춘의 송가이자 음악의 찬가였다. 젊음은 모이기만 하면 「노래 불러요」를 노래 불렀다.

전통음악의 비장한 톤을 실험한 「떠나는 우리 님」과 친근한 멜로디 속에서 끝내 사이키델릭 분위기를 놓치지 않은 「안개 속에 피어난 꽃」도 빼놓을 수 없었다. 나중에 김창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낭송 톤의 포크 「기대어 잠든 아이처럼」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하나도 버릴 곡이 없었다. 대학 1학년 때 수업을 빼먹고 집에 돌아와 「내 마음 주단을 깔고」와 「이 기쁨」에 몽롱해지고 「둘이서」와 「기대어 잠든 아이처럼」을 눈감고 누워 주구장창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LP를 턴테이블에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나중 판이 튈 때까지 하염없이 들었던 그 맹목적인 열정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건가.

팬들은 첫 앨범부터 1997년에 나온 13집까지 산울림의 앨범 모두를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으로 꼽겠지만 당대 청춘과 사회에 미친 산울림의 음악적 회오리는 데뷔작과 이 2집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고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대 어른들도 그랬다. “도대체 산울림이란 가수가 누구야? 뭔데 이렇게 애들이 난리법석인 거야?” 어쩌면 후대들에게 산울림의 정체성을 전하고자 한다면 이 두 장의 초기 앨범을 소개해야 하지 않을까.

이 폭발적인 록과 함께 1978년 봄, 그들의 인기는 폭발했다. 젊은이들의 음악이기에 텔레비전에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그들은 TV에도 출연해 「아니 벌써」와 「노래 불러요」를 연주했다. 이제 겨우 2장의 앨범을 냈을 뿐인데 자그마치 열 곡 가까운 노래들이 라디오를 잠식했다. 산울림은 이 노래들을 가지고 그해 봄과 가을의 캠퍼스 축제를 석권하고 정복했다. 모처럼 ‘돌아온 록’에 대학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의 대학 축제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휩쓴다) 그들은 대학 축제 무대에서 「아니 벌써」와 「내 마음 주단을 깔고」를 고집스럽게 앨범 버전 그대로, 긴 전주와 중간 연주를 그대로 라이브로 재현했다.

아마추어리즘으로 규정되는 산울림의 음악이 왜 당대의 젊은이를 그토록 삽시간에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그 시절의 국내 대중가요는 청춘의 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못했다. 록도 없었고 자유분방한 노랫말도 없었다. 그래서 젊은 세대는 여전히 음악 하면 팝송을 들었다. 김창완은 말한다. “그때 사람들이 팝송을 들었던 것도 실은 팝송이 대단한 음악이라기보다 우리 가요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울림이 성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울림이 등장하면서 우리 음악 수요자들은 비로소 팝과 함께 ‘오랫동안 무시해 오던’ 가요에 귀를 돌리기 시작했다. 산울림이 음악 역사에 우뚝 서있는 것은 난공불락으로 여기던 팝에 가요가 음악적 도전의 깃발을 올렸다는 데 있다. (1980년대 조용필과 이문세에 와서 마침내 팝과 가요가 역전된다.) 김창완의 말대로 그 시대 청춘들은 산울림의 「내 마음 주단을 깔고」 「노래 불러요」 「안개 속에 핀 꽃」을 듣고 변화와 자유로 대변되는 청춘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이 앨범에 작약하는 청춘의 포효가 있다. 찢어지는 듯한 퍼즈 톤에 그들의 불만이, 사이키델릭 분위기에 그들의 갈등이, 나른하게 펼쳐지는 긴 전주에 그들에게 도사린 욕망이, 단순한 코드에 그들의 순수가, 로큰롤의 덩치 큰 울림에 그들의 용틀임이 있다. 그래서 이 2집은 음악적 앨범인 동시에 시대적 앨범이다. 지금과 비교해 녹음 사운드의 질이나 연주력으로 재단할 성질의 음악이 아닌 것이다. 그때 정말 많은 젊은이들이 산울림의 음악을 듣고 그들 마음에 주단을 깔았다.

-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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