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사이저와 클럽 댄스. 요즘 음악계를 움직이는 양대 키워드입니다. 일반 팝에서부터 록, 힙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음악계에 침투해 이젠 어느 음악에서나 쉽게 둘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신보들 역시 이 트렌드와 떼어놓을 수 없는 앨범들입니다.
케샤(Ke$ha) <Animal> (2010)
습작을 타이틀곡으로 당당하게 내민 지드래곤 덕분에 국내에서 플로 라이더(Flo Rida)라는 래퍼의 인지도는 높아졌으나 문제의 곡에 찬조 출연한 당찬 신인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Right round」의 표절 시비는 그 새내기한테까지 양명(揚名)의 혜택을 주지 않았다. 까짓것, 아시아 작은 나라에서 이름 좀 덜 알리면 어떤가, 조금 있으면 더 큰 세계가 그의 존재와 능력을 알아줄 텐데. 아직은 「Right round」의 도우미라는 직명이 떨어지지 않고 있으나 팝 음악의 샛별 케샤(Ke$ha)는 이미 세상을 매혹할 준비를 마쳤다.
일찍이 첫 싱글 「Tik tok」은 2009년 여름과 가을에 강한 에너지를 분출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찍었으며 유럽 각국과 호주, 캐나다의 차트 상위권을 다 휩쓸었다. 공식적으로 다운로드 횟수만도 60만이 넘으니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제대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동네 노는 언니의 온종일 마시고 취하고 반복하기를 그린 노랫말과 임팩트를 확실하게 나타내는 강렬한 전자음 반주는 젊은이의 심장을 뛰게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싱글 히트의 탄력으로 앨범 흥행을 도모하는 그녀다.
2010년 새해의 들목을 장식하는 데뷔 앨범 <Animal>은 듣는 이의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경쾌하다. 또한, 업 비트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로 버무려진 수록곡들로 말미암아 음반이 곧 파티며 클럽이라는 생각을 들게 할 듯하다. 이집션 러버(Egyptian Lover)의 프리스타일 고전 「Egypt, Egypt」 멜로디를 차용해 전달력을 높인 「Take it off」, 오락기에서 나올 법한 전자음으로 귀여운 맛을 살린 「Blah blah blah」,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학생의 두근거리는 마음이 발랄한 선율로 표현되는 「Stephen」 등 밝고 명랑한 공기로 가득하다. 작곡과 전체적인 호흡을 조율한 맥스 마틴(Max Martin)과 닥터 루크(Dr. Luke)의 프로듀싱은 앨범을 무척 매끄럽게 가공하고 있다.
프로듀서들의 원조가 곡들의 태를 세련되게 가꿔 주지만, 보컬리스트로서 케샤가 괜찮은 기량을 발휘하기에 노래가 더 멋스러워질 수 있었다. 「Your love is my drug」은 시원하게 내지르는 코러스로 청량감을 확보하며 「Dinosaur」와 「Party at a rich dude's house」에서는 완전히 로커로 변신해 맘껏 목청을 울려 댄다. 이렇게 앨범은 ‘동물적’인 댄서블함과 ‘동물적’인 지름을 함께 내보인다.
「Tik tok」을 통해서 누구의 곁다리가 아닌 솔로 뮤지션으로 당찬 위용을 과시한 케샤는 데뷔 앨범으로 일렉트로팝의 재간꾼 자리를 예약하는 중이다. 래핑과 싱잉을 합친 것 같은 보컬 스타일도 특징적이며 노래도 깔끔하게 소화하는 능준함이 그녀의 가치를 높여 준다. 몇 차례의 라이브 무대로 선보인 의욕 넘치는 퍼포먼스로 인해 레이디 가가(Lady GaGa), 어피(Uffie) 등과 비교되니 활동이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다. 첫 작품은 케샤가 「Right round」의 피처링 가수, 달러를 넣은 튀는 이름의 가수만으로 남지 않을 인물임을 강하게 천명한다.
- 글 / 한동윤(bionicsoul@naver.com)
우스 드 라켓(Housse De Racket) <Forty Love> (2008) 일렉트로니카, 록, 프렌치 팝 등이 유쾌하게 버무려진 우스 드 라켓(Housse De Racket)의 데뷔작은 오랜 산고 끝에 완성됐다. 어렵게 만든 음악을 저장해 놓은 하드 드라이브를 날려 버리는 대형 사고를 겪은 이들은 모든 것을 새롭게 제작해야 했고 아이디어를 재검토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결과는 전에 구상했던 것보다 더욱 직접적이고 치밀하며 호전적인 작품으로 나타났다. 첫 작품부터 콘셉트 앨범이라는 사실이 이를 일러 준다.
2008년 10월 출시되었고 2010년 1월 국내에 라이선스된 본 작품은 테니스, 록 음악, 타향살이 등을 소재로 한 남자의 혼란스러운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머리가 배추로 변하는 변태 살인마를 소재로 한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의
<L'Homme a Tete de Chou>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듣는 공상과학물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처럼 듀오는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작같이 무게감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젊은이들의 감성과 소통할 수 있도록 형식 면에서 조금은 힘을 뺐다.
이야기는 밝지 않다. 한 테니스 선수가 그웬돌린(Gwendoline)이라는 여자를 사랑했지만, 온전하게 사랑을 쟁취하지 못하자 그녀의 관심을 사기 위해 운동을 그만두고 가수가 되어 돌아온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스타로 변신했음에도 그웬돌린은 여전히 냉랭함으로 일관할 뿐이다. 거기에 상처받은 남자는 어찌할 줄 몰라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결국에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길을 선택한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성을 진부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짰다는 게 사랑 노래 특유의 상투성을 벗어 던진다. 결말은 비록 어두울지라도 나름대로 참신함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음악은 반대로 꽤 밝고 흥겨운 편이다. 가벼운 맛으로 가사에서 오는 무거움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Forty love, I want your love’라는 가사를 감춘 듯이 전달하는 인트로 격의 첫 곡 「Forty love」를 들으면 넓은 규모의 장대한 일렉트로니카가 나오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음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록의 비중이 더 큰 노래를 감상하게 된다.
‘난 미래를 위한 엄청난 계획이 있어. 그녀에게 어필하기 위해 난 이런 인물이 될 거야. 스티비 원더, 잽 앤 로저, 어스 윈드 앤 파이어, 아이즐리 브라더스’라고 미래를 다짐하는 경쾌한 록 넘버 「Oh yeah」, 현장감이 느껴지는 연주로 흥을 돋우는 「Gwendoline」, 펑크로 방향을 바꿔 단순미를 한껏 과시하는 「1-2-3-4」는 록에 열광하는 청취자들에게 소구력을 보일 것 같다. 특히, 「Oh yeah」는 라코스테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면서 유럽 각지에 팬들을 확보하는 데 공을 세웠다.
가사와 다양한 스타일의 전개가 빚는 향연은 다른 곡에서도 발견된다. 그웬돌린에게 고백하는 내용을 그린 「Champions」는 2분을 지나 나오는 기타 솔로와 합창, 신시사이저의 삽입 등 아트 록적인 면모를 풍기는 변주가 무척 멋스럽다. 테니스를 관두고 록 스타가 되어 돌아와 무대에 선 모습을 표현하는 「Synthetiseur」는 전자음악과 록의 차진 배합으로 강한 흡인력을 나타낸다. 또한, 고즈넉한 분위기가 다프트 펑크의 「Veridis quo」와 교차되는 「Dans l'avion」은
‘우주를 유영해요. 자줏빛 구름과 노란 구름 사이에서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을 찾고 있죠. 우주 바깥의 깊은 곳에서 난 길을 잃고 말았어요’라며 사랑에 실패한 이의 씁쓸한 심정을 나타내는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주인공의 심경을 읽을 수 있는 「Le virage」는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여운을 남긴다.
음악을 접하고 나서도 그룹 이름에 대한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팀 이름은 ‘라켓 커버’라는 뜻. ‘housse’가 영어 ‘house’와 철자가 비슷해 하우스 음악을 아우른다는 의미를 내포하려는 목적에서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타이틀
<Forty Love>의 작명에서도 재치가 드러난다. 테니스 경기에서 포인트는 ‘0(러브, love)’ ‘15(피프틴, fifteen)’ ‘30(서티, thirty)’ ‘40(포티, forty)’ 이런 식으로 매겨진다. 서버의 점수를 먼저 부르는 방식에 따라 포티 러브라고 하면 40:0의 스코어로 서버의 통쾌한 완승을 가리킨다. 음악계를 지배하겠다는 자신감과 자축의 메시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데뷔작은 그룹만의 강직함과 스타일을 확실히 드러낸다. 대중성을 전면에 두고 어떻게든 이름을 알려 보려는 것이 보통 신인들이 하는 생각이며 태도인데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 듯 두 청년은 콘셉트 앨범과 록, 전자음악의 퓨전이라는 고집스런 선택을 했다. 동네의 한 음악 학교에서 만난 소년들이 친목 이상으로 이룬 훌륭한 결과가 여기에 담겨 있다. 통쾌한 완승을 노리는 멋진 신고식이다.
- 글 / 한동윤(bionicsoul@naver.com)
도끼(Dok2) <Thunderground EP> (2009) 근래 힙합 트렌드를 대변하는 몇 가지 키워드 중의 하나는 더티 사우스(Dirty South)일 것이다. 미세하게 쪼개지는 비트가 특징이면서, 티아이(T.I), 릴 웨인(Lil Wayne)등을 슈퍼스타의 ?열로 인도한 남부 지역의 화끈한 사운드는 국내에서도 적잖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에 반하여 국내 힙합 아티스트의 완벽한 더티 사우스 시도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 남짓의 최근 일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프로듀서 겸 래퍼 도끼(Dok2)가 전형적인 더티 사우스 앨범을 발표한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프로듀싱 작업을 거쳐 그가 선택한 노선이 더티 사우스라는 사실은 그리 어색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미 또래 나이대의 경쟁자를 마땅히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삼촌뻘 나이의 힙합 뮤지션들과 비교해도 결코 밀린다고 볼 수 없는 실력에서 오는 자신감과 가장 맞닿아 있는 구역은 더티 사우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Thunderground EP>에서 대번에 짐작할 수 있는 모토는 분명 자신감이며, 이는 더티 사우스 뮤지션들의 태생적인 본능이기도 하다. 타이틀곡인 「It`s me」부터 앞으로의 창대한 계획을 위한 출사표가 웅장한 신시사이저 루프 위에서 펼쳐진다. 그렇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과 지나친 나르시시즘으로 폄하되지 않는 이유는 그에게 기대되어 오던 추상적인 잠재력을 구체적인 결과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도끼의 성장세는 랩 스킬에서 두드러진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전달력의 영역에서 비약할 만한 진전이 발견되고 있다. 약간은 어두운 보이스 톤의 특성을 살려 차별화된 플로우 스타일을 구축한 것이 그 예이다. 가사의 측면에서 정제미가 일면 아쉬운 것이 사실이지만, 「I`m back」처럼 그가 국내에서 허슬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웨거(Swagger) 트랙을 가장 맛깔나게 요리하는 래퍼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사실 이전까지 도끼가 두각을 드러냈던 영역은 프로듀서의 자질이었다. 그가 주목받은 데에는 다작 프로듀서로서 쏟아낸 트랙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던 이유도 있지만, 각 트랙마다 결코 어느 하나 쳐지지 않는 완성도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EP 앨범에도 당연시되어온 샘플링 작법을 지양하고 손수 제작한 비트를 당돌하게 내놓았다. 또한 「64%」에서 한 트랙을 64마디의 랩 가사로만 채운 시도에서는 실력 증명에 앞선 강한 자존심이 느껴진다.
<Thunderground EP>는 최근에 도끼의 작업물에서 감지되어온 더티 사우스 스타일을 작정하고 응집한 콘셉트 앨범이다. 따라서 에픽 하이(Epik High)가 이끄는 맵 더 소울(Map the soul)로 레이블을 옮기고 발표하는 첫 앨범이지만 음악 스타일의 변화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스스로를 한국 힙합의 나침반이라고 일컬은 그가 추후 정규 앨범에서 가리킬 지향점은 어느 곳일지 기대가 적지 않다.
-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제공: IZM
(
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