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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평양냉면의 맛 - 『소풍』

나는 자칭·타칭 냉면 좀 먹는 사람이었다. 요즘은 인터넷에 냉면 정보가 널려 있지만, 십수 년 전만 해도 서울의 5대 냉면집의 스타일을 주르르 꿰거나, 어느 냉면집의 족보를 읊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몇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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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은 냉면의 종류에는 물냉면과 비빔냉면, 회냉면에 칡냉면, 야콘냉면이 있고 응용으로 섞기미냉면이나 물비빔냉면이 있다는 등의 대도시 거주 냉면광들의 신경질적인 이론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냉면 전문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냉면은 오로지 평양식 물냉면, 그 하나뿐이라고 단언한다.

- 성석제, 『소풍』 중에서

십몇 년이 지나 이젠 까마득한 기억이 되고 말았는데, 어찌 하다 보니 냉면 맛만 혀에 남아 있는 여행이 됐다. 20대 후반에 갔던 중국 여행 얘기다. 중국에서 냉면이라니. 그 얘기를 하기 전에 나를 실어 날랐던 그 배를 먼저 말해야겠다. 인천항에서 서른 시간을 넘게 항해한 배는 나를 천진(天津)에 내려놓았다. 권컨대, 아무나 배로 1박 2일 여행을 하는 건 아닌 듯하다. 그 무료한 여정은 끔찍했으며, 서해의 두툼하고 누런 바닷물 빛조차 심통난 중국인 같았다. 땀에 절어 색이 바랜 것으로 보이는 요리복ㅡ이랄 것도 없는 허섭한 남방셔츠 따위의ㅡ을 입은 무뚝뚝한 요리사가 퍼주는 중국식 ‘뱃밥’ 역시 끔찍한 경험이었다. 나의 동행인은 그 밥을 훈련소 짬밥 이후 최악의 식사 리스트에 올려놓았을 정도다.

그때만 해도 중국은 우리에게 엄연히 적성 국가여서, 중국보다 중공(中共)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신문은 국제 농구 경기라도 보도하면, ‘한국, 이충희-김현준 쌍포로 중공 격파’ 따위의 기사를 내기도 했으니까. 그런 ‘붉은 나라’행을 정부 당국은 심히 저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묘수가 바로 적성 국가 방문자 교육이었다. 중국이나 소련, 그밖에 공산권 국가에 가려는 사람들을 단체로 모아 반나절짜리 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강남에 있는 무슨 관광교육원인가 하는 곳에서 국가 정보기관의 직원이 나와 직접 교육을 했다. 간첩 신고 요령ㅡ신발에 흙이 묻어 있거나 담뱃값을 모르는 사람……ㅡ을 닮은 그 교육 내용이란 게 별로 기억에 남을 만한 게 없다. 단 하나,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에 함부로 가지 말라는 대목에선 눈이 번쩍 띄었다. 강사는 ‘특히 평양식 냉면을 먹으러 가는 경우가 많은데 조심하라’고 겁을 주었다.

그건 냉면 때문이었다. 유별나게 냉면을 좋아하는 나는 졸다가 그 강사의 냉면 얘기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 말라고 하면 더 가고 싶은 법인데, 게다가 냉면이라니! 그것도 진짜 평양식이랄 수 있는 냉면을 진짜 평양 사람의 시중을 받아가며 먹을 수 있다는 데야 어찌 회가 동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진즉에 북한 사람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던 이들조차도 그런 교육을 받으면 한 번쯤 그 유명하다는 북한 식당에 들러 보게 마련이었던 것 같다. 베이징의 국제무역센터 안에 있던 그 식당ㅡ금강산인지 해당화인지 이젠 이름도 아득한ㅡ에 가는 길에 나는 꽤 심리적 부담도 있었지만, 그 식당 입구쯤에서 ‘남조선말’을 쓰는 일군의 남한 사업가들의 목소리에 적이 안심이 됐다. 그들은 이 식당에 한두 번 드나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식당의 메뉴가 무엇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랭면’을 시켰다. 누구는 그 식당의 전속 악단의 솜씨가 뛰어났다거나(북한 최고의 전자 악단인 보천보 악단 출신이라고들 하는 말도 있었다), 복무원인지 봉사원인지 하는 아가씨들의 미모를 칭송하는 얘기들을 하던데, 나는 그것조차 기억이 희미할 뿐이다. 그래, 두 옥타브쯤 높은 그 아가씨들의 목소리만은 기억에 남는 것 같은데 그것조차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남북 합동 공연의 사회자 목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 기억의 망막에는 그저 그 무채색의 냉면 한 그릇이, ‘닭알’ 반 개와 오이절임이 올려져 있던 슬픈 냉면만이 떠오른다. 나는 그 시절 꽤 감수성이 축축한 민족주의자였나보다. 임수경 씨의 방북 사진을 표지로 삼은 한 월간지를 오려 깨진 내 방 창문에 붙여 두었던 나를 생각하면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냉면이 슬퍼질 것까지야 없는 일인데도 꽤 우울했던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실향민과 아무 상관없던 내 집안 족보를 보면, 그런 아마도 학습된 바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어쨌든 냉면처럼 기구한 민족 음식도 드물 것이니까.

출처: //www.prkorea.com/

나는 자칭·타칭 냉면 좀 먹는 사람이었다. 요즘은 인터넷에 냉면 정보가 널려 있지만, 십수 년 전만 해도 서울의 5대 냉면집의 스타일을 주르르 꿰거나, 어느 냉면집의 족보를 읊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몇 안 되었다. 다들 자기가 아는 냉면 지식은 꽁꽁 숨겨두었고, 친구들과의 냉면집 모임에서나 한마디씩 풀어놓을 뿐이었다. 장충동 어느 집은 메밀을 사철 빻아 쓰는데, 여름이 가장 메밀의 질이 떨어지니 그때를 피해야 한다는 둥, 서대문의 어느 집 주방장은 종로 어느 집 출신인데 그 집 막내딸과 바람이 났다가 쫓겨나서 차린 집이라는 둥(그래서 맛이 원조급이라는 것까지), 백 퍼센트 순도 메밀면을 먹으려면 안주인과 어느 정도 교분이 있어야 한다는 둥, 그 유명한 선주후면(先酒後麵)의 법도를 모르면 진짜 ‘냉면쟁이’가 아니라는 둥의 얘기들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서로의 내공을 겨루다가 평양식 육수의 황금 비율, 즉, 고기에다가 동치미를 섞는 비율의 정통성을 놓고 아고라의 소피스트들에 버금가는 대격전을 펼치기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인물들이었다.

나는 그 시절, 냉면을 놓고 소설을 한 편 쓰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강호의 냉면 거사들이 육수의 황금 비율이 적힌 비서(秘書)를 찾아가는 일대 로망이었다. 비전되는 절대 육수의 비밀을 아는 퇴계로 냉면집의 막내딸 같은 인물도 설정하는 단계까지 갔었는데,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건 결정적으로 분단이 가져다준 슬픈 역사였다. 예를 들어 내가 원고지 천 장짜리 그 ‘냉면전(傳)’을 무사히 집필하고, 냉면 세계의 유력한 샛별이 되었다고 치자. 어느 날, 김용이나 전철우가 텔레비전에 나와 “아, 그 책. 그거 완전히 엉터립니다. 평양에 그런 냉면이 어디 있어요?” 하고 한마디만 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사상누각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세종기지 출신 앞에서 펭귄 알 까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비록 평양은 아니지만, 내가 두 눈으로 평양의 냉면을, 아니 평양식의 냉면을 보게 되었으니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나는 듯하다. 나는 그 어여쁜 봉사원에게 “이거, 진짜 평양냉면이지요?” 하고, 어리광을 부리듯 동의를 구했고 그이는 냉면의 얼음이 다 녹을 만큼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아마도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네. 대부분 조국에서 가져온 것이랍니다. 물이야 북경의 물이지만요. 하지만 순금의 순도가 어디 백 퍼센트여서 순금이라고 부릅니까. 이만하면 진짜 평양랭면이라고 해도 좋지 않겠어요?”

그 봉사원은 요리사도 모두 평양에서 선발되어 온 사람들이라는 얘기까지 덧붙여 자랑했다. 조국의 재료에 조국의 손맛이니 그야말로 진짜배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냉면의 맛은 그다지 내 맘에 쏙 들지 않았다. 육수에서는 특이한 흙냄새 같은 게 났으며 면이 굵은 것은 옳겠지만 구수한 메밀향이 나지는 않았다. 양은 사리 하나를 추가한 것보다 많았는데, 감칠맛이 떨어져 종내는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나는 그러면서도 끝내 그 냉면 편에 서서 내 못난 혀를 혼내고 있었다. 화학조미료에 찌든 내 혀가 이 맛을 어찌 알겠어, 분단 사십 년이 맛조차 갈라놓았구나……. 조국의 진짜 냉면과의 첫 상봉은 그렇게 어설프게 끝났다.

나의 여정은 조중(朝中)국경, 그러니까 북한과 중국의 한 국경 도시에 이르렀다. 멀리 북한으로 가는 다리를 별다른 감흥 없이 일별하고는 나는 어느 호텔로 내달렸다. 듣기로 그 호텔은 중국이 자본을 대고 북한이 운영한다는 곳이었다. 북한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더 정통적인 냉면, 아니 랭면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나는 담뿍 안고 있었다. 그 호텔 일 층에 있는 식당은 북경의 그 식당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국경도시 특유의 긴장이랄까, 북한과 더 가까운 곳, 다시 말해 수도 북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중국의 통치권이 잘 미치지 않는 듯한 기운을 느껴졌다. 자리에 앉아 엽차 한 잔을 받아 들고나니 그 이유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건 선이 분명한 적대감이었다. 우리가 비록 상밥(백반)과 랭면을 너희들에게 팔되, 자존심을 파는 건 아니라는 듯한……. 사실 식당 안이 으스스하긴 했다. 차림표조차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혁명 구호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다. 글자가 창이나 낫처럼 날이 서 있어서 식욕보다는 선동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렴 어떠냐. 나는 진짜 냉면 한 그릇이면 피부가 오이처럼 변하는 긴장 상태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건 그 도시의 냉면은 국경과의 거리만큼 더 북한과 가까이 있었다. 북경의 그 냉면이 제법 세련되었으나 뭔가가 빠진 듯한 맛이었던 데 비해, 구수하고 새곰새곰한 맛이 잘 살아나고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나는 북경의 그?들보다 훨씬 무뚝뚝한 봉사원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딴 질문을 하냐는 듯이 새뚝한 표정의 그이는 지나가는 말투로 대답했다.

“냉면 맛이야 동치미 맛이죠. 그래서 날씨가 추워야 제 맛입니다.”

나는 냉면 한 그릇을 잘 비우고 그 호텔의 기념품점을 기웃거렸다. 어디선가 일군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물건 흥정을 하고 있었다. 노동 영웅의 그림이 새겨 있는 수출용 고급 담배가 인기 품목이었다. 나는 유리 장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책에 관심이 갔다. 마젠타가 과잉 인쇄된 것처럼 묘한 붉은색을 띠는 그 책은 ‘조선료리사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애당초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는지 책값은 터무니없이 비싸게 매겨져 있었는데, 나는 그걸 덜컥 샀다. 호기심도 있었겠지만 나는 진짜 평양냉면의 조리법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그 책은 내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반찬, 육류, 어류, 탕류 등의 목차에 ‘국수’도 있었고 당연히 ‘랭면’도 있었다. 나는 얼른 그 페이지를 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북한에서 출판된 거의 대부분의 자연과학 관련 책도 정치 교양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것 같다. 책 머리말은 물론 중간 중간 핵심 서술 옆에는 늘 수령의 교시가 적혀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밤(栗)이라는 항목을 펼치면 “수령님은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습니다. 건강에 좋고 맛 좋은 밤을 많이 심어 인민의 건강과 생활에 도움을…….” 랭면 편에도 어김없이 그 교시가 기록되어 있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민족의 대표 음식을 많이 먹자, 뭐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의 관심은 그게 아니었으므로 나는 얼른 조리법을 읽어 내려갔다. 안타깝게도 메밀 함량을 기록하지 않은 ‘메밀국수’의 중량이 쓰여 있었고, 닭알과 오이 같은 꾸미의 양이 적혀 있었다. 무엇보다 꾸미도 되고 육수도 되는 고기의 배합이 궁금했는데 특이하게도 평양냉면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고루 쓰이고 있었다. 이 고기의 배합은 상당히 중요하다. 육수의 맛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냉면은 면과 육수의 결합이 맛을 내는데, 면은 좋은 메밀을 어떻게 반죽해서 뽑는가가 열쇠라면 육수는 고기의 선택과 배합, 동치미나 김칫국물의 첨가가 맛을 결정짓는다. 그런데 여름에는 질 좋은 동치미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평양냉면은 겨울이 제 맛이며, 여름 냉면이 겨울 냉면을 할아버지라고 부른다는 말이 나왔던 모양이다. 냉면 애호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름에는 아예 냉면집에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도 이런 연유일 터이겠고. 그 호텔의 냉면에 들어가는 동치미가 북한에서 가져온 것인지 그 봉사원에게 더 캐물어 보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지만, 냉면 맛에 동치미 맛이 중요하다는 것도 냉면의 비밀을 푸는 한 열쇠가 되었던 것이다.

내가 냉면광이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입학과 졸업을 축하하는 가족 회식 자리는 무조건 냉면집을 선택할 만큼 냉면 애호가셨다. 살람살이가 빤해서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기호가 유별나서였는지 평양면옥이니 우래옥이니 하는 정통 식당보다는 시장통의 B급 집들을 더 좋아하셨다. 비싼 쇠고기를 쓰지 않는 집들이니 국물에서는 밍밍한 닭 냄새가 났다. 어머니는 그 냉면을 불과 서너 젓가락에 다 밀어 넣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국수의 물리적 통각이야말로 진정한 맛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도 어머니에게서 사사한 바일 것이다. 자장면이든 우동이든 냉면이든 두툼하게 말아서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몰아넣어야 제 맛이라는 내 주장 말이다.

이렇게 배운 ‘냉면질’은 수염이 채 나지 않았던 중학생 시절에도 자체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으니, 없는 주머닛돈을 털어 황학동으로 냉면을 먹으러 다녔던 것이다. 학교 앞 분식집 라면이 150원 하던 시절에 풍물시장이 있던 황학동의 포장마차에선 100원에 가볍게 냉면을 모시고 있었다. 냉면이란 모름지기 메밀과 어떤 고기를 넣은 육수의 배합이라는 전통의 공식을 허무는 C급 냉면의 역사가 거기 있었다. 태운 보릿가루를 섞은 밀가루 면과 화학조미료 육수의 그 냉면도 꽤 맛있었다. 아버지 따라 을지로나 장충동의 냉면 명가들을 순례하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부터 나는 청계천 일대에서 엉터리 냉면을 먹으며 B급 정서를 키워가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은 냉면 대신 파스타를 마는 주방장이 되었지만, 저 중국의 냉면 기행, 그리고 어려서 다녔던 시장통의 허섭한 냉면집 순례는 내 국수 인생의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한겨울, 눈이라도 펑펑 내려 아랫목이 그리울 때면 김치말이 국수나 냉면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평양 사람들이 대동강 물이 얼면 아랫목에 발을 묻고 동치미에 냉면을 말아 먹었다는 얘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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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성석제> 저13,300원(5% + 2%)

흥겨운 입담과 날렵한 필치의 작가, 성석제의 신작 산문집. 음식과 맛에 얽힌 추억 속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건져 올린 맛깔스러운 책이다. 저자는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행위가 곧 일상을 떠나 한가로운 순간을 음미하는 '소풍'과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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