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적 뮤지션들이 실종되었다고 개탄이 터져 나오는 2000년대에도 마니아, 평론가들의 높은 지지와 대중적 인기까지 한 몸에 받는 가수들이 있습니다. 알리샤 키스, 카니예 웨스트, 존 레전드, 그리고 존 메이어가 그들입니다. 항상 찬사를 누려온 존 메이어가 이번에 신보를 발표했네요. 여전히 그만의 블루스 향이 짙습니다. 그러나 조금의 변화도 보이네요.
코믹 3인조이자 친근한 이미지의 주인공들, 그룹 쿨의 리더 이재훈도 솔로 앨범을 내놨습니다. 15년 활동 동안 처음 선보이는 솔로 음반입니다. 리드 싱어는 항상 그였는데, 역시나 가창력만큼은 오랜 활동의 공력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플럭서스에서 신인 그룹 안녕바다를 선보입니다. 일렉트로니카를 하는 인디 밴드인데, 훈훈한 ‘안경남’들이 모인 그룹이라 ‘안경 바다’라고 불리기도 한다죠. 더블유 앤 웨일의 배영준 씨가 참여했습니다. 기대가 되는 신인입니다.
존 메이어(John Mayer) <Battle Studies>(2009)
‘우리 시대의 노래꾼’ 존 메이어가 컴백했다. 지난 2006년 만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작품 <Continuum> 이후 3년 만이다. 블루스, 포크, 소울 등 미 대중음악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여전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배가 고픈가 보다. 영국 음악에까지 손을 내밀었다. 첫 곡 「Heartbreak warfare」는 점점 상승하는 유투의 전매특허 사운드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처연한 기타와 애조 띤 존 메이어의 보컬이 광채를 발하는 「All we ever do is say goodbye」는 콜드플레이의 아련한 감성을 받아들였다.
또한 담백한 보컬과 윤기 넘치는 기타는 연일 타블로이드 신문을 장식하던 옛 여자 친구 제니퍼 애니스톤과의 이별 그 후를 노래한다. 실연당한 남성들을 위한 안내서이다. 첫 싱글로 발매된 서정적인 포크 팝 「Who says」, 세련된 블루스 팝 넘버 「Perfectly lonely」 등에서 존 메이어는 사랑의 잔해는 결국 ‘전쟁’이었음을 일갈한다.
그러나 존 메이어는 사랑에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루저가 아니었다. 오히려 ‘위너(Winner)’의 위용을 도도히 뽐내고 있다(모든 것을 초월한 듯 먼 곳을 응시하는 재킷 사진을 보라!). “계속해서 싸울 겁니다 / 모두들 계속해서 싸우죠 / 난 포기하지 않아요 / 방황도 하지 않죠”라고 말하는 「War of my life」에서 그의 자신감은 최고조에 올라 있다. 패자의 역습이다.
그의 ‘강심장’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블루스를 했다’라고 전해지는 전설의 블루스 뮤지션 로버트 존슨의 대표곡이자 에릭 클랩튼이 거쳐 간, 크림의 재해석으로 유명한 「Crossroads」에서 절정에 달한다. 기념비적인 블루스 명곡은 키보드처럼 소리를 만들어낸 존 메이어의 기타와 스티브 조단의 둔탁한 드럼에 의해 철저하게 해부 됐다. 전작에서 보여준 지미 헨드릭스의 「Bold as love」의 커버를 훨씬 능가하는 해체, 조합이다.
존 메이어는 별일 없이 산 적이 없다. 화려한 사생활 때문에 타블로이드 최고의 뉴스 메이커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고, 뛰어난 음악성을 담고 있는 작품들로 인해 아티스트의 대접을 받은 지도 오래다. 어찌 보면 뮤지션의 이력에 오점을 남기는 지점일 수 있지만, 존 메이어는 영리하게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잘 돌파해 나간다. 음악 내공이 강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이번 음반이 대답이다.
- 글 / 안재필(rocksacrifice@gmail.com)
이재훈 <First Whisper>(2009) 첫 곡 「아름다워」는 피아노 반주와 보컬만 등장하는 곡이다. 쿨의 이재훈이라고 하면 율동을 추며 발랄하게 웃고 있을 것 같은 연상을 일으키지만 여기엔 그런 것은 없다. 오히려 싱어송라이터의 느낌이 난다.
솔로 앨범인 데다가 주특기도 가창력이었으니 가장 적절한 선택은 발라드였을 것이다. 하지만
<First Whisper>는 적어도 몇 곡에서 이보다 한 발 더 들어간다. 흔히 ‘대중적이다’ ‘상업적이다’고 불리는 일체의 편곡을 삼갔다. 오히려 이것들을 빼는 데에 집중했다. 「겨울풍경」도 반주라곤 어쿠스틱 기타 밖에 없다. 울어주는 현도, 코러스도, 심지어는 베이스와 드럼도 없다.
「겨울풍경」과 「아름다워」는, 만약 듣는 내내 계속해서 쿨 시절의 이재훈을 떠올린다면 지금까지 그의 목소리를 통해 나온 곡들 중 가장 허전한 곡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 곡은 그가 발표한 곡들 중 가장 이재훈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곡이기도 하다. 2명의 멤버도 없고, 받쳐 주는 악기도 극소수다.
여과 없이 가창력이 드러나면서 늘 ‘재미있는’ 이미지로만 간주되던 이재훈의 ‘실력파’로서의 면모가 선명히 부각된다. 그는 사실 평범한 음색을 가졌고, 소울, 록, 재즈 어느 곳에도 속하기 힘든 애매한 창법 색(色)을 구사하지만 15년 활동이란 경험을 무기로 감정의 악센트를 능란하게 주무르며 누구보다도 곡을 맛깔스럽게 부른다. 잘 귀 기울여 들어보면 결코 두 노래가 허전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보컬만으로도 굴곡을 확실히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곡들이 2곡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보컬리스트’로, 혹은 포크에 가까운 미니멀함도 구사해버릴 줄 아는 담력 있고 초연한 가수로 이미지를 반전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이재훈은 대중성을 염려한 것 같다. 타이틀곡 「눈의 선물」은 나르샤의 도움을 빌려 자신의 올드한 이미지를 지우려 한 곡이다. 「못난 이별」도 발라드 감성의 노래에 굳이 최신 유행의 일렉트로니카 편곡을 덧입혔다. 앨범은 ‘다른 면도 있네?’라며 흠칫 놀라게 해놓고는 금방 이 호감을 유보시키게 만든다.
여전히 나는 나대로 대중적인 것을 하겠다고, 하지만 다른 면도 유심히 들어봐 달라는 이중의 요구일 것이다. 한쪽은 이 앨범이 ‘뻔한 앨범’의 늪에 빠지는 것에서 구원했고, 한쪽은 그런 구원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재훈 그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는 실력이 있지만 그것을 항상 대중들과 가까운 범위 안에서만 펼쳐냈다.
<First Whisper>에서도 이것은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듣는 마음도 마치 거울처럼 똑같이 이중적으로 갈라진다. 분명 인정할 바가 있음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함을 감출 길이 없다.
- 글 / 이대화(dae-hwa82@hanmail.net)
안녕바다 <Boy's Universe>(2009) 여기 당신 앞에, 깨알 같이 써내려간 감성과 일상이 혼재해있는 ‘소년의 우주’가 놓여 있다. 당신은 그 속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소년의 우주에는 병든 양이나 숫양이 떼를 지어 놀고, 희망과 절망의 감성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비록 장미나 여우는 찾을 수 없지만 ‘안녕바다’의 앨범은 어딘가 동화
『어린 왕자』와 많이 닮았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만나는 가슴 한편 씁쓸한 감정들 그리고 보컬의 헤어스타일까지도!
안녕바다는 2007년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에서 ‘숨은 고수’로 선정되며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같은 해 인디 신의 공인 절차 중 하나인 EBS 헬로 루키로 선정되면서 또 한 번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승환, 언니네 이발관 공연의 오프닝 밴드로 참여하면서 카페 회원 1,500여 명을 거느린 인디계의 아이돌 급이다.
첫 번째 미니 앨범은 팀의 색깔을 잘 보여 줄 수 있는 5곡을 엄선했다.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콘셉트 앨범으로 우주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다만, 그 색깔이 공상 과학적이기보다는 어린 시절 호기심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우주에 가깝다. 가사에도 별, 은하수, 밤하늘을 노래하며, 무엇보다 별빛이 쏟아지듯 빛나는 사운드가 아름답다.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는 세련되고 신비스러운 우주의 음색을 시원하게 쏟아낸다.
‘난 그대와 바다를 가르네’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밴드는 앨범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소개하기도 그리고 기억되기도 힘든, 한마디로 입에 착착 붙지 않는 밴드명 때문이었다. 그래서 팀 이름을 조금 줄이고, 변형시켜 ‘안녕바다’로 개명했다. 1집 역시 이런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전체적으로 록적인 무게를 빼고 팝적인 색에 중심을 두어 대중에게 훨씬 친숙한 앨범을 만들었다. 또한 「Beautiful dance」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는 댄스와 랩을 시도하며 자신들의 음악적 범위를 넓혔다.
이들은 클래지콰이, 더블유 앤 웨일, 러브홀릭스 등 대중성과 음악성의 줄타기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플럭서스 소속사의 새로운 야심작이기도 하다. 실제로 더블유의 배영준, 한재원, 김상훈이 프로듀서로 참여해서 앨범의 안정감과 완성도를 높였다. 안녕바다는 인디 음악과 대중가요의 브릿지 역할을 희망한다. 그들의 우주를 만나고 나니, 당찬 포부가 가볍게만 들리지 않는다.
- 글 / 김반야(10_ban@naver.com)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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