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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독특한 사운드와 목소리가 있을까 - 탐 웨이츠(Tom Waits) <Rain Dogs>(1985)

여기에 세상에서 가장 괴팍한 목소리로 전 세계의 마니아들을 열광시킨 남자가 있습니다. 술과 거리 생활에 찌들어 목소리에서마저 뒷골목의 어둔 습기가 연상되는 탐 웨이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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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가수의 생명력은 가창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가창력의 기준은 참 모호하기 마련이죠. 여기에 세상에서 가장 괴팍한 목소리로 전 세계의 마니아들을 열광시킨 남자가 있습니다. 술과 거리 생활에 찌들어 목소리에서마저 뒷골목의 어둔 습기가 연상되는 탐 웨이츠입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자적 향을 가졌기에 상식을 초과하는 목소리로도 보편적 명가수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명반 <Rain Dogs>를 소개합니다.

탐 웨이츠(Tom Waits) <Rain Dogs>(1985)

이렇게 독특한 사운드와 목소리가 있을까. 상업성에 찌든 지금에 과연 이러한 괴팍한 아티스트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도시의 유랑인으로서 소외와 퇴폐가 물씬하고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탐 웨이츠(Tom Waits)의 음악 세계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창성과 각별함으로 덮여 있다. 그에게 늘 따라붙는 ‘비트 시인(Beat poet)’이라는 수식은 적절하며 정당하다.

그는 아티스트란 개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 그리고 실험적 영토 개척을 절대적 필요조건으로 하는 존재임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아무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스타덤을 누려도, 아무리 뛰어난 웰 메이드 앨범을 잇달아 선사해도 이것이 없으면 아티스트라 불릴 수 없다.

그가 1975년부터 발표한 앨범 가운데 빌보드 차트 80위권 안의 순위에 들어간 것은 하나도 없다. 거의 100위권 중반대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10주도 안되어 사라지곤 했다. 1999년에 내놓은 재기 앨범 <Mule Variations>만이 최초로 톱 40에 진입했을 뿐(30위), 이전의 앨범들은 깡그리 상업적 참패를 면치 못했다. 1985년에 발표한 이 앨범 <Rain Dogs>도 181위에다 겨우 7주간 차트에 머무는 데 그쳤다.

주류 음악이 전부인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는 뮤지션과 평단의 찬사 속에 마니아의 뜨거운 선택을 받았으며 특히 주류 가치와 질서의 전복을 내건 인디 문화가 팽창한 1990년대 중반 이후 갈수록 영향력과 위력이 증가, ‘어어부 프로젝트’와 같은 국내의 인디 밴드에게도 음악적 영감을 제공했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철저히 묻혀 있다가 1990년대의 젊은 세대에게 ‘발굴되어’ 재평가된 셈이다. 이 무렵 수입 음반으로 탐 웨이츠의 것을 구입하는 음악 마니아들도 꽤 늘어났다.

그의 음악은 어두운 풍경을 떠올린다. 곡을 듣자마자 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저분한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도시 뒷골목이 반사적으로 머리에 그려진다. 벽은 온통 상스러운 욕설의 낙서로 도배되어 있고 술에 쩐 손님들이 북적대는 허름한 카페와 카바레, 거기에는 담배 연기가 뿌옇게 덮고 있다. 당연히 그것을 표현하는 탐 웨이츠의 목소리도 마치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고 ‘꺼억꺼억’ 토하는 것 같이 들린다.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멋지게 표현한다면 <롤링스톤>의 비유처럼 ‘도시의 비극적 왕국’이라고 할까. 탐 웨이츠 같은 외모의 남자가 창부처럼 보이는 여인의 목에 마지못해 안긴 듯한 표지 사진부터가 불길하다.

이글스(Eagles)가 리메이크한 「Ol' '55」가 수록된 1973년 앨범 <Closing Time>(차트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래 탐 웨이츠는 R&B와 재즈 분위기의 편성 아래 도시 방랑자들의 넋두리를 담은 그의 트레이드마크 로큰롤 사운드를 확립했다. 수작으로 평가된 1983년의 앨범 <Swordfishtrombones>에 이어 정확히 2년 만에 가지고 돌아온 그는 <Rain Dogs>로 한층 거칠어지고 세지고 여러 요소들이 ‘짬뽕된’ 독창적 사운드 플랫폼을 구축한다. <롤링스톤>의 표현에 따르면 ‘그의 보컬은 더 누더기처럼 헤지고, 작곡은 더 이것저것을 절충하고 있으며, 편곡은 한층 고물 지향이 두드러진’ 앨범이다.

절충적 곡 쓰기라 함은 전보다 카바레적인 느낌의 곡뿐만 아니라 본인의 말대로 ‘아팔라치아와 나이지리아 사이 약간의 상호작용’ 같은, 다시 말해서 이것저것 섞여 국적 장르 불명의 노래를 써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탐 웨이츠의 음악 정체성이다. 하지만 절충은 대중이 듣기에 더 수월하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Jockey full of bourbon」 「Hang down your head」 「Time」「Downtown train」 등의 곡들은 전 앨범의 어떤 곡들보다 듣기가 무난하다.

음악이 독특한 만큼 그가 전하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앨범 타이틀인 ‘레인 독스’는 도시에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을 잃어버린 군상을 빗길에 집에 가는 길마저 못 찾고 방황하는 개로 비유하고 있다. 이를테면 ‘로스트 소울(lost soul)들’로 가득 찬 도시의 뒷골목을 그려냄으로써 현대 삶의 왜곡과 병폐를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Tango till they're sore」의 경우는 창문에서 뛰어내린 한 친구를 그린 곡이며 「9th & Hennepin」은 미네아폴리스의 도넛 가게에서 창녀 때문에 싸움에 휘말린 기억을 더듬고 있다. 마니아들의 애청곡인 「Time」은 ‘역사가 아무리 모든 꿈에 성자들을 심어 주어도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시간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허무적 터치가 지배하고 있다. 탐 웨이츠의 음악이 1990년대에 다시 부상한 것은 독창적 음악 외에 이러한 고독과 소외의 메시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막상 들으면 낯선 이름과 이미지와 달리 친근한 곡들이 청각을 자극한다. 명징한 기타 현음을 술주정 보이스에 실은 「Downtown train」은 호소력 있는 멜로디 덕분에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가 1989년에 리메이크해 빌보드 3위의 히트를 기록, 원작자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낭만성을 숨기지 않고 있는 「Jockey full of bourbon」은 지난해 말 우리 재즈 가수 나윤선이 재해석했다. 마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부르는 듯 들리는 「Hang down your head」과 「Time」는 마니아와 대중이 공히 애청하고 있는 앨범의 보석이다.

최초로 탐 웨이츠 자신이 프로듀스한 앨범인 덕분에 비록 급히 꾸린 밴드 멤버들이지만 모두들 그가 짜놓은 난폭하고 음산한 미로를 불평 없이 잘 따르고 있다. 가히 ‘탐 웨이츠 밴드’의 앨범이라 할 만하다. 기타 마크 리봇과 더블 베이스의 래리 테일러 그리고 마림바, 퍼레이드 드럼, 톱, 퍼커션 등 타악에서 분전한 마이클 블레어 등 멤버들이 빚어내는 사운드는 탐 웨이츠 사운드 구상의 근사치를 실현해주었다. 「Big black Mariah」에는 롤링 스톤스 키스 리처드의 기타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롤링스톤>지는 “소음으로 가득한 탐 웨이츠의 세계가 통산 10집이 되는 <Rain Dogs>에서 만큼 아름다운 적은 없었다.”며 앨범의 전하는 ‘안티(anti) 미학’을 고평하고 있다. 1989년 말에 선정한 이 잡지의 ‘1980년대의 베스트 앨범 100선’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21위를 차지했다.

어두운 도시 뒷거리의 역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앨범.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름답게 들리는 앨범이다. 도시의 삶이 제공하는 이 역설의 정서가 탐 웨이츠와 이 앨범의 핵심이다. 탐 웨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괴상하고, 멍청한 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그랬기에 이 이상한 걸작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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