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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와 연어의 악연 -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나는 에코를 이 수필로 처음 만났다. 지독히도 게으른 독자였던 셈이다. 그러니까 메인 요리는 먹어보지도 못하고 심심풀이 땅콩을 한 점 집어먹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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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호텔에서 묵을 때 나는 웬만하면 미니바를 건드리지도 않는다. 밤새 퍼마셔서 목이 타 붙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종의 트라우마에 빠졌기 때문인데 순전히 움베르토 에코 탓이다. 그의 글은 설득력이 있는 데다가 이름처럼 독자들에게 메아리 깊은 ‘에코’를 남기곤 한다(딴소리지만, 요즘 진짜 메아리를 듣기 어렵다. 산에서 ‘야호’를 외치는 건 꼴불견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저 포복절도할 걸작 수필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을 기억한다면, 내 말에 다들 동의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혹시 그의 그 글을 읽지 않은 이를 위해 나의 트라우마의 근원을 밝혀주어야 하겠다. 그 수필의 대강은 이렇다. 에코가 북구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그는 그 나라에서 유명한 연어를 한 마리 샀다. 방의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가져갈 요량으로 미니바에 가득 차 있는 쓸데없는 음료와 술을 빼고 연어를 넣어두었다. 그랬더니 그 호텔의 직원들이 매번 연어를 끄집어내고 음료와 술을 도로 미니바에 넣었다. 며칠간 이 소동은 반복됐다. 결국 연어는 상해 버렸는데, 더욱 기가 막힐 일은 에코가 호텔을 나설 때 생겼다. 호텔 직원은 에코에게 엄청난 양의 음료와 술값을 청구했다. 냉장고 미니바에 설치된 자동 계산 기능 때문이었다. 미니바에서 무언가를 꺼낼 때마다 찰칵찰칵, 미터기가 올라가듯 자동으로 계산을 해주는, 호텔 쪽에서 보면 편리하기 그지없는 장비가 에코를 난감한 상황에 빠뜨렸던 것이다.

어쨌든 이 칼럼을 통해 에코는 유머를 섞어 융통성 없는 사회를 규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설사 희대의 술고래가 묵었다고 한들 며칠 밤 사이에 수십 병의 위스키와 코냑, 수십 리터의 음료를 마시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나는 에코를 이 수필로 처음 만났다. 지독히도 게으른 독자였던 셈이다. 그러니까 메인 요리는 먹어보지도 못하고 심심풀이 땅콩을 한 점 집어먹었다고나 할까. 그나마 『장미의 이름』 같은 대중적 저작도 영화로나마 보았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하여간 그의 글은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이 처음이었다. 아는 독자들이 있을 텐데, 이 수필이 들어 있는 한국어 번역본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원래 제목이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우스운 것은 그다지 시장의 반응이 화끈하지 않았던 책이 제목을 바꾸고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더라는 점이다. 새로 번역을 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누구의 말대로, 단지 제목 하나 바꿨을 뿐인데 말이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에코, 아니 에코의 글을 다시 만난 건 이탈리아에서였다. 길을 걷던 나는 신문판매대에서 『레스프레소 L'espresso』를 발견했다. 이탈리아의 명망 있는 시사주간지인데, 나는 에코가 이 잡지에 글을 쓴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어서 알고 있었다(『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 실린 칼럼들도 대부분 이 주간지에서 실렸던 것들이라고 한다). 그래도 설마, 했었는데 주간지를 펴보니 에코의 그럴듯한 캐리커처와 함께 칼럼 하나가 실려 있는 게 아닌가. 그의 나라에서 이탈리아어 잡지에 실린 글을 보는 건 참 기분이 묘했다. 이런 걸 ‘원전’을 만난 감동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의 한심한 이탈리아어 실력과 사전을 총동원해도 그 칼럼은 해독이 거의 불가능했다. 당신 같으면 ‘안드로메다 성운의 기지 트레가트나의 사령관 호모삐두르데스의 첫 번째 일기와 일치하는 문헌목록 나-563-As의 두 번째 항목에 동의하십니까?’ 따위로 일관하는 그의 독특한 풍자법을 알아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구나 무슨 상징인지는 모르되, 칼럼 안에 정규(?) 언어 외에도 ’§гк??ζ‘ 따위의 글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혹시 이탈리아에도 외계어가 유행하는지).

그의 칼럼은 주간지 뒤표지를 제외한 마지막 페이지, 이 바닥의 전문용어로 표3 대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자리는 유명 주간지에서는 최고의 칼럼을 싣는 공인된 지정석으로 군림한다. 에코는 아주 오랫동안 이 자리를 차지하고 전 세계 독자들 배꼽을 빼는 칼럼을 써오고 있었다. 원컨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후속편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독자들은 기대해볼 수도 있는 일이겠다.

3년 전인가, 나는 소설가 김중혁과 에코가 사는 볼로냐에 간 일이 있었다. 볼로냐 하면 떠오르는 무슨 국제 아동 도서전 때문도 아니었고─김중혁은 그런 무게 있는 공식 행사에 잘 어울리는 소설가는 아니다─팔자 좋게 유서 깊은 도시 구경을 간 것도 아니었다. 마침 식당 오픈을 준비하던 나는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돌며 괜찮은 요리용 장비 따위를 입수하는 게 그 당시의 임무였다. 김중혁은 명목상으로는 글감 취재 삼아 따라나섰던 모양인데, 실은 이탈리아 요리사인 나의 안내를 받아 이탈리아의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실컷 먹겠다는 생각이 앞섰을 것이다. 그래 봐야 주머니 가벼운 나는 그에게 피자나 싸구려 파스타를 실컷 먹이면서 ‘진짜 이탈리아 음식의 영혼은 밀가루 음식에 있다.’라고 설레발을 떨던 기억이 떠올라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쨌든 그에게 많은 파스타를 먹였지만 볼로냐의 유명한 소스를 구경시켜 주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이름하여, 볼로네제 소스가 바로 이 도시의 유명한 소스다. 당신도 한국의 어느 이탈리아 식당에서 한 번쯤은 먹어보았을 그 소스다. 그렇지만, 이 도시의 어느 식당에서 볼로네제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주문을 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볼로네제란 뉘앙스 자체가 이미 이 도시 바깥에서 이질적 느낌을 담아 명명한 것이란 의미를 풍기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볼로네제란 볼로냐 ‘밖’에서 볼로냐 고유의 미트 소스를 이르는 말에 다름 아니란 얘기다. 전라도 안에 있는 어느 식당 메뉴판에서 ‘전라도식 ○○탕’ 따위의 명명법을 발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겠다. 이름 붙이기, 즉 명명이란 종종 그 주체의 의사 따위는 묻지 않는다. 하긴 박찬일, 김용삼 같은 우리 이름 어느 구석에 내 의지 한 토막이라도 붙어 있더란 말이냐. 할아버지나 대서소 아저씨의 즉흥 작명에 의해 한 인간의 평생의 ID가 생긴다는 건 참 묘한 일이긴 하다.

김중혁과 나는 볼로냐에서 볼로네제 소스 대신 파르마 햄만 잔뜩 먹었다. 볼로냐는 파르마와 가깝고, 당연히 질 좋은 파르마 햄을 만날 수 있는 도시다. 파르마 햄은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최고의 생 햄으로,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만든다. 언젠가 한번 이 햄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소금에 절여 짭짤한 맛을 내는 이 햄─그래, 바로 당신이 알고 있는 프로슈토다─은 와인을 부른다. 나는 대낮부터 취해서 이탈리아 반도 서쪽의 아드리아해로 가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곳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던 까닭이다.

이탈리아 반도는 참 희한해서 한국의 지형적 위치를 빼다 박았다. 기다란 반도의 모양부터 상당히 닮아 있다. 저어기, 백두산이 있을 즈음엔 알프스가 있고 제주도의 자리엔 시칠리아 섬이 있다. 우리의 동해쯤에 해당하는 바다에는 아드리아해가 있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상선을 띄워 물길을 내던 그 바다다.


나는 연어를 생각하면,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에 해당하는 동해를 떠올린다. 동해는 꽤 거대한 연어의 회유 지역이다. 남대천을 비롯한 동해의 하천으로 이맘때면 연어 떼가 올라온다. 연어의 뇌에 아로새겨진 기억회로는 틀림없이 고향의 바다와 강을 기억한다. 찬바람이 부는 새벽 주문진항에 가면, 연어를 만날 수 있다. 회유 길을 오른 연어는 다른 어종을 노리는 어부의 그물에 걸려 종종 새벽 어판장 옆 시멘트 바닥에 슬며시 놓여 임자를 기다리기도 한다. 한국에서 싱싱한 연어를, 그것도 자연산으로 만나는 건 꽤 신기한 일이다.

새벽 주문진항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오징어 집어등을 환하게 밝힌 고깃배들이 가득 들어차 문자 그대로 대낮을 방불케 할 만큼 밝다. 저 멀리 희붐한 동이 트면서 먹장구름 같은 바다가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다. 그 푸른빛과 집어등의 노란 불빛은 자연과 인공이 만들어붳 절묘한 색 대비를 이룬다. 거기서 운 좋게 연어 한 마리를 산다면 주문진의 새벽은 기막힌 추억거리로 남게 된다.

이 계절의 주문진항 연어는 먹는 법이 따로 있다. 모든 영양이 집중된 알을 먹는 것이다. 살은 알토란 같은 에너지를 알에 내주고 마지막 바닷길을 헤엄쳐 오느라 단물이 다 빠져 버린 상태다. 연어 한 마리를 발견했다면, 알주머니가 얼마나 실한가 실눈을 뜨고 살펴보는 게 좋다. 고른 연어는 배를 갈라 내장을 버리고 알집을 꺼낸다. 소금을 쳐서 오래 운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연어알을 레몬즙을 친 뜨거운 물에 담갔다. 그래야 연어알의 비린내가 가시고 입에 찌꺼기를 남기는 알 껍데기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연어알은 마치 갓 강원도 내륙의 이가 시리게 차가운 하천에 부화한 것처럼 영롱한 빛을 낸다. 연어야말로 가장 뚝심 있는 고기라 할 수 있는데, 그건 방출하는 알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좁쌀처럼 많은 알을 낳아서 확률을 높이려는 거개의 고기와 다른 기품이 있다. 연어는 먼 대양을 가로지르던 꼬리의 힘과 고향을 찾아가는 회귀본능의 유전자를 그 알에 하나씩 심어주었을 것이다. 나는 연어알을 초밥에 올려 씹었다. 바다 냄새가 났다.

에코는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에서 북구의 특산물인 질 좋은 연어 한 마리를 샀다. 그렇다. 볼로냐는 연어와는 별로 상관없는 도시인 것이다. 그렇다고 연어를 먹지 않는 건 아니다. 볼로냐의 어느 슈퍼마켓이든 연어 몇 토막쯤은 진열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팔리는 연어는 대부분 에코가 여행했던 북구의 나라에서 온다. 한국도 제철에 약간의 연어가 시장에 풀리는 걸 빼면, 모두 유럽산 가두리 양식 연어를 먹는다. 꽁치나 고등어살을 먹고 자란 연어에게선 그 먹은 생선 맛이 난다고 한다.


연어를 먹을 때면 나는 꼭 떠올리는 요리사가 있다. 레오 강이라는 영국식 이름으로 알려진 친구다. 그가 언젠가 홍대 앞의 작은 브라스리에서 연어를 구워 팔았다. 그의 커리어에 비추어보면 턱없이 외지고 소박한 식당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그곳을 사랑했다. 그의 연어살은 달고 진했다.

“아니에요. 연어는 껍질이에요. 살은 마지막 껍질을 먹기 위해 그냥 배를 불리는 거죠. 껍질을 먹어서 배가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그의 연어 접시를 먹는 법이 있다. 그의 말처럼 껍질을 먹는 것이다. 갈비탕 속에서 가장 실한 갈빗대를 마지막에 뜯듯이, 냉면 속의 달걀을 아껴두었다가 국물을 다 들이켠 후 씹듯이 껍질을 먹는다. 향초 냄새가 밴 껍질은 바삭하다. 차가운 대양의 바다에서 그 보드라운 살을 보호하던 껍질이다. 껍질을 버터와 기름 속에서 얇은 습자지처럼 반투명하게 익힌다. 잘못 익히면 껍질은 양피지처럼 질겨진다. 그 타이밍을 아는 건 기본기가 탄탄한 요리사다.

움베르토 에코는 아마도 한동안 연어 요리를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액의 미니바와 바꾼 상한 연어가 밥맛을 돌게 할 리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그가 껍질을 바삭하게 구운 연어를 제대로 만났다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여간 그는 연어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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