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케이블 TV에서 제이슨 스타뎀과 웨슬리 스나입스가 주연한 영화 <카오스>를 봤습니다. 교묘한 방법으로 강도짓을 벌인 일당들과 그들을 쫓는 형사의 대결을 그린 작품인데요, 여기에서 범인의 우두머리는 ‘카오스 이론’으로 형사들의 심리를 자극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불안정하고 불규칙적으로 보이면서도 나름대로 질서와 규칙성을 지니고 있는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이론이죠. 길의 무한한 예능 출연 덕에 인지도를 높인 힙합 그룹 리쌍과 독일의 싱어송라이터 버나드 에더, 고운 음성이 매력적인 발라드 가수 이수영, 이들을 잇는 질서와 규칙성은 무엇일까요?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습니다.
리쌍(Leessang) <Hexagonal>(2009)
한 명의 래퍼, 한 명의 싱어로 꾸며진 리쌍은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꾸준한 히트곡을 내놓는다. 올해 초 발표한 5집 <伯牙絶鉉(백아절현)>은 조용하게 묻히고 말았지만, 신보 <Hexagonal>은 그룹의 능준함을 증명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한 해에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으면서도 이들의 사운드가 다채롭게 들리는 건 장르에 속박되지 않아서다. 음악이란 틀 안에 지정해 놓는 보이지 않는 규정이 뮤지션을 옥죄어 올 때가 있지만, 작곡과 프로듀싱을 담당하는 길은 다양성을 확보한 덕분에 그런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그래서 힙합보다 팝이란 단어가 더 어울리는 앨범이다. 「우리 지금 만나」에선 올드 록의 배경을, 개리의 랩과 비트가 굳건하게 버티는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는 길과 정인의 싱잉(Singing)을 통해 알앤비의 감성을 이끈다. 김광석의 곡을 리메이크한 「변해가네」에서의 변신은 밴드 사운드의 맛도 살려 놓는다.
뚜렷이 그려진 멜로디 또한 듣는 재미를 살린다. 장기하와 얼굴들, 이적, 루시드 폴(Lucid Fall), 캐스커(Casker), 김바다, YB 등 보컬 중심의 곡은 물론이고 래퍼 비지(Bizzy)가 피처링한 「일터」, 타이거 JK,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가 찬조한 「Canvas」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선율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게 리쌍을 위한 것인지, 출연자들을 위한 것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곡에 어울리는 가수를 섭외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탄생부터 참여자를 위해 맞추어 졌다면 그건 피처링을 위한 곡이다. <Hexagonal>보다 해당자의 앨범에 더 어울린다는 얘기다. 장기하의 리드 보컬 뒤에 아기자기한 코러스를 넣은 「우리 지금 만나」는 주도권을 잡았지만, 「부서진 동네」 「Run」 「Dying freedom」은 섭외된 사람의 자취만 남는다.
게스트의 대거 기용은 화려한 감은 있으나 결과적으로 좋은 효과를 나타내지는 못한 것 같다. 개성에 맞춰진 곡은 개별적으로 듣기엔 좋지만, 같이 듣기엔 산만해진다. 앨범으로 놓고 봤을 때, ‘리쌍의 프로젝트 앨범’이란 느낌이 강하다.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Hexagonal>은 인맥과 음악의 넓이가 과하게 담겼다. 예능에서 오버는 심신이 지친 시청자를 즐겁게 해줄 확률이 높지만, 음악에서 오버는 반사작용의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려주는 앨범이다.
- 글 / 이종민 (1stplanet@gmail.com)
버나드 에더(Bernhard Eder) <Bernhard Eder>(2009) 요즘처럼 강한 비트의 음악과 가수들이 선보이는 화려한 춤에 길들여져 있는 10대, 20대 청취자들에게 포크 음악을 들려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이 나타낼 행동이 자못 궁금하다. 고루하고 따분한 것으로 여겨 손사래를 치는 이가 대다수를 차지할 테고, 일부는 ‘이건 무슨 음악이에요?’ 하며 신세계를 경험한 듯 놀라움을 표할 것도 같다. 비트와 리듬, 거세게 반복하는 훅을 앞세운 노래가 득세하는 근자에 포크 음악은 자연스럽게 그 호소 대상을 30대 이상의 성인들로 옮겼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19세기에 출생한 이래 광산과 철도 노동자들 사이에 구전가요로 발전, 1960년대에는 록과 결합하면서 그 시대 대중음악의 주요 문법으로 자리매김해 저항 음악의 대표 장르가 된 포크는 어쿠스틱 악기, 특히 기타 연주를 기반으로 단순하고 직설적인 선율로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경험이나 개인 관심사를 표출한다. 애써 치장하지 않은 순박한 멜로디와 담담한 톤으로 내뱉는 자기 고백적 노랫말은 이 장르가 보유한 제일의 미덕, 이것의 매력은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단박에 퍼지지 않는다. 자극을 최고 가치로 두는 최신 유행곡들과 달리 오래 두고 들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포크 뮤지션 버나드 에더(Bernhard Eder)의 음악 역시 그런 뭉근함으로 음악 팬들의 귀를 노크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출시되는 버나드 에더의 앨범은 지난 두 앨범의 수록곡 중에서 방송을 많이 탄 것, 대중에게 특별히 더 어필한 작품들로 채워졌다. 데뷔작 <The Livingroom Sessions>에서도 첫 곡을 장식한 「Cute」는 어쿠스틱 기타가 곡을 잔잔하게 리드하는 가운데 중반부에 들어간 바이올린 연주가 애잔한 분위기를 증가한다. 자신에게 정말 특별했고 무척이나 귀여웠던 옛 연인에 대한 기억으로 행복하지만, 지금은 자기를 더 좋아해주는 누군가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거기서 오는 감정 상태를 더블링으로 연출한 보컬로 드러낸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진솔한 고백이 느껴지는 「This song」이나 누군가를 갈망하는 진지한 마음이 배어나는 「Hold me tight」도 수수한 멜로디로 청취자들을 유혹할 것 같다.
2집 <Tales From The East Side>에서 뽑은 노래 중 백미는 「Left to lose」일 것이다. 사랑이 끝난 뒤에 남겨지는 덧없음과 건조한 슬픔이 느껴지는 곡으로, ‘모든 바람은 다 불어 버렸어요. 모든 계절은 다 가 버렸고요. 당신은 당신 인생에서 결코 사랑하는 사람을 가져 본 적이 없었죠. 당신이 기다리는 게 무엇이죠? 이제는 매달릴 이유조차 없는데’라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써 내려간 가사가 애잔하게 다가선다. 이 밖에도 「Polen #1」은 아코디언을 곁들인 왈츠풍의 연주로 재밌게 들리며 「The season song」, 「Polen #2」는 현악 연주를 강조해 서정미를 전면에 나타낸다.
그만의 어법으로 윤색한 노래들도 그냥 지나치기 아쉽다. 영국의 신스팝 그룹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의 1990년 히트곡 「Being boring」을 포크 버전으로 듣는 것은 매우 색다르다. 펫 샵 보이즈의 트리뷰트 밴드인 웨스트 엔드 걸스(West End Girls)가 리메이크한 적이 있지만, 동일한 전자음 탓에 특별한 차이를 못 느꼈던 반면에 버나드 에더의 버전은 담백한 멋이 앞서서 한결 가볍게 들린다. 또한, 영국의 록 그룹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명반
<OK Computer>에 실린 「Climbing up the walls」 커버곡도 눈에 띈다. 기이하고 음산한 소리를 내던 오리지널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 보통의 경우라면 어떻게든 젊은 세대에게 거장으로 통하는 그들과 비슷한 형태를 내려고 아등바등했을 텐데 버나드 에더는 신경도 안 쓰는 듯 포크로 여과해 낸다. 톰 요크(Thom Yorke)와는 상반되는 낮은 톤에 기타 하나에만 의존해 곡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통해 강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포크는 젊은 세대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르였으나 지금은 힙합과 댄스 음악에 묻혀 예전만큼 힘을 못 내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그 자체로서 활발한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많은 뮤지션, 특히 실력 있는 싱어송라이터들을 배출하고 있다. 버나드 에더는 우리에게 익숙한 영미권 가수가 아니기에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번 스페셜 에디션을 통해서 한국의 음악 팬들에게 그의 목소리와 노래를 강하게 어필할 것으로 예상한다. 오래 들을수록 부피를 더해 가는 편안함이 차트 상위권을 맹진하는 트렌디한 음악과는 180도 다른 매력을 선사할 것이다.
- 글 / 한동윤 (bionicsoul@naver.com)
이수영 <9th Dazzle>(2009) 천하의 이수영도 변화를 거부하거나 방기할 배짱은 없었다. 아무리 ‘가요계의 여제’ ‘발라드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어도 보컬 정체성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다양한 접근을 해왔던 그였다. 바로 이 점이 평단에서도 환영받을 만한 요소였던 것. ‘이수영 표’라 불리는 발라드는 물론 록, 미드템포에 이르기까지 좀 더 다양한 선곡을 탐색해도 어색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특유의 톤에 있었다.
때론 너무 강한 비음이, 고음부의 얇아지는 음색이 지적되어도 그건 순전히 개인적인 호불호일 뿐, 데뷔 후 굳건히 ‘발라드의 여왕’ 자리를 지키는 그녀에게 보컬의 역량을 따지기란 사실 우스운 일일 터. 스트링의 두터운 울림위에 수놓는 동양적 선율(「I believe」 「Never again」), 편성의 규모와 선율의 스케일이 큰 「휠릴리」에 이르기까지, 마치 목울대를 흔드는 듯한 그녀의 바이브레이션이 아니었더라면, 그 곡을 온전히 지배하는 감정처리가 없었더라면 이는 쉽게 얻어질 수 있는 타이틀은 아닐 것이다.
경력과 관록이 오랠수록 톤을 낮춰가는 것이 수순일까. 무언가 파격적인 변화만이 도전이라 생각했던 건 옛날이다. 필요 없는 건 줄이고, 기존의 패턴을 유지하면서 보컬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다면 과거의 성공그래프가 어땠든 그 곡을 선택하는 여유까지 부린다. 이 의지는 타이틀 곡 「내 이름 부르지마」에서도 읽힌다.
블루스 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곡이 기존의 팬 베이스를 확보해주리라 속단할 수 없다. 오히려 지금껏 그가 해왔던 스타일의 「아이예」 「사랑하지마」가 더 돋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녀라고 왜 이 사실을 몰랐겠는가. 이는
<Grace>에서 「사랑도 가끔 쉬어야죠」가 아닌 「시린」을 후속곡으로 염두에 두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허울만 좋은 변화를 도전이라 칭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의 울림에 귀 기울인다. 좀 더 낮게, 좀 더 감미롭게.
블루스의 느슨한 흐름에 뛰어난 선율이 그의 음색과 만났으니 그 서정성이란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전복적 변화는 없다하더라도 그는 분명 톤을 낮추고 있다. 고음으로 치솟아도 과하거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우리에겐 「다 줄거야」로 잘 알려진 멜로디 메이커 조규만의 음률이 빛나는 건 이 때문이다.
음악적 완성도로 치자면 가장 ‘이수영다운’ 「아이예」도 빼놓을 수 없다. 여전히 함께한 작곡가 황성제는 이전 감성을 어떻게 신보에 담아내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했고 이는 브라스와 그녀의 코러스가 빚어내는 묘한 리듬감으로 귀결된다. 스윙감각을 제대로 살린 「Doobidooo」는 목소리 자체에 이펙트가 걸린 듯 상쾌함을 들려주고, 이젠 보컬 브랜드가 된 이수영식 한(?)스러운 가창이 돋보이는 「사랑하지마」도 놓칠 수 없다.
전작 「이런 여자」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미지근한 성공을 거둔 탓에 신보의 방향 설정이 쉽지 않았을 줄 안다. 「내 이름 부르지마」만으론 얼마만큼의 쾌거를 올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기우도 잠시, 과거에 천착하는 미련함 대신 자신의 구획을 넓히려 가능성을 이곳 저곳 시험해보는 영민함으로 구명대를 삼는다.
결국, 그 이름도 경이로운 3단 꺾기와 온갖 퍼포먼스를 내세운 여가수들이 점멸하듯 스러져갈 때도 온전히 목소리 하나로 곡을 장악하던 그 파괴력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9th Dazzle>에서의 과단함은 가수로서의 표현력을 동반함으로써 설득력을 갖추었다.
- 글 / 조이슬 (esbow@hanmail.net)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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