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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사운드로 녹여낸 록의 변주 - 조용필 13집 <The Dreams>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손으로 잡으면 이내 사그라드는 모래성과 같은 소망에 대한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진한 공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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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여행을 떠나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가인이 된 조용필의 <2009 조용필 & 위대한탄생 전국투어 콘서트>가 9월 19일 원주를 시작으로 펼쳐진다고 합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가수’ ‘한국 대중음악의 제왕’ ‘가요계의 살아 있는 신화’ 같은 별칭을 들을 만큼 현존하는 제일의 아티스트지만, 최근에는 방송에서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오직 공연으로만 만날 수 있는 그이기에 라이브 실황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음반이 유일한 통로가 될 듯하네요. 꿈을 주제로 해서 만든 콘셉트 앨범 13집을 소개합니다.

조용필 13집 <The Dreams>(1991)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는’ 도시의 무정함을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어본’ 이들은 안다. 비루한 현실을 딛고 일어나 내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유일한 원동력은 꿈이란 것을. 세련된 사운드와 드라마틱한 가창이 빛을 발하는 조용필의 「꿈」은 꿈 하나로 각박한 삶을 이겨내는 모든 이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대중음악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의 핵심인 ‘위로’의 거대한 힘을 보여준 「꿈」 하나만으로도 조용필의 13집이자 회심작인 <The Dreams>는 그것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앨범에 새겨진 원대한 음악적 야망과 치열한 예술 혼을 생각한다면 「꿈」 하나로 만족할 수만은 없다.

이론의 여지없이 ‘국민가수’라는 칭호를 획득하는 조용필은 한국의 대중음악 역사를 논할 때 하나의 기준점이 되는 이름이다. 그만큼 그동안 조용필이 그려온 음악 세계는 넓고 엄청난 파급력을 지녔다.

위대한 가수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신세대들에게는 낯선 존재일 수도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음악 활동의 중심이 공연으로 옮겨가면서 그만큼 청소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탓이다. 시기적으로 조용필보다 좀더 가까운 서태지도 낯설어하는 아이들에게, 조용필은 그야말로 잡히지 않는 대상일 것이다.

그런 그를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조용필을 느끼게 하는 방법은 그들과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음반 하나를 들려주는 것일 테다. 거기서 흥미를 느껴 다른 음반에까지 손이 뻗친다면 그것으로 게임은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13집은 탁월한 선택이라 할 만하다. 당시는 물론이요, 이후에 나온 여타의 작품들과 비교해보아도 전혀 뒤지지 않는 사운드를 뽑아낸 앨범인 동시에 실로 록 사운드가 시험할 수 있는 매력의 최고치를 들려주는 앨범이다. 막연하게 옛날 가수의 작품이니 촌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겠다.

최고의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조용필은 한국 최고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그의 밴드 ‘위대한 탄생’과의 작업을 마다하고 외국의 정상급 세션들을 기용한다. ‘위대한 탄생’의 배제라는 과감한 선택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의 수준이 낮아서라기보다 서구 록 사운드의 본질에 대한 조용필 본인의 오랜 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용필의 선택은 옳았다. 당시 미국에서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세션맨들인 톰 킨(Tom Keane, 키보드/프로듀서), 마이클 랜도(Michael Landau, 기타), 닐 스투벤하우스(Neil Stubenhaus, 베이스), 존 로빈슨(John Robinson, 피아노)의 라인업은 고감도 사운드를 완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세련된 사운드로 녹여낸 록의 변주는 본인의 이전 작품들과도 차별화된다. 우선 장르적으로 록에 헌신했다는 점에서 순수함의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물론 3집에서 본격적으로 록을 시험하고, 4집에서부터 7집까지는 록 사운드 위주로 앨범을 채웠다. 그러나 이후 트로트, 민요 등 록과 잘 섞이지 않는 장르를 다시 껴안으면서 앨범의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에는 지구레코드와 10년간 열 장의 앨범을 내야 한다는 계약이 필연적으로 낳은 상업적인 고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13집은 백화점식 앨범 구성에 대한 세간의 비난을 잠재우는 작업이라는 의미를 획득한다. 지구레코드와의 긴 계약을 끝내면서 되찾은 자유는 결과적으로 록의 순수를 되찾아주었고, 최고의 사운드를 끌어내고자 하는 작가적 욕망에 불을 붙였다. 전곡을 자작곡으로 꾸릴 정도로 열정을 쏟아 부은 13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 그 자체다.

앨범의 첫 곡 「꿈」부터 줄곧 이어지는 감동적인 가사와 품격 높은 사운드는 물론이요, 록에서 가지를 친 다양한 시도는 듣는 내내 경탄을 자아낸다. 뉴웨이브의 영향이 느껴지는 「꿈꾸던 사랑」, 전형적인 팝 록의 문법을 수용한 「꿈의 요정」, 메탈의 깜찍한 변용 「아이마미」, 라틴 리듬을 록에 이식한 「장미꽃 불을 켜요」에 이르기까지. 지루할 새가 없다.

콘셉트 앨범이라는 것 또한 앨범 독해의 중요한 포인트다. ‘꿈’을 키워드로 하여 감동적인 서사를 엮어낸 앨범은 정말 드라마틱하다. 여기서 그리는 꿈은 그러나 화려하고 몽롱한, 그런 이미지적 환상은 아니다. 꿈이란 이름 아래 투영된 욕망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 자신의 오래된 이상향과 같은 것들이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손으로 잡으면 이내 사그라져 버리고 마는 모래성과 같은 소망에 대한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진한 공감을 자아낸다.

꿈이란 단어는 오랜 시간 음악적으로 알게 모르게 느꼈을 결핍감의 표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간절하게 꿈꿔왔던 음악적 이상을 순수하게 펼쳐 보일 수 있는 꿈과 같은 현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수도 있다. 「꿈의 요정」의 가사가 그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요정. 꿈이 아닌 가봐. 무슨 소원 말을 할까 가슴 두근거리네.” 감격스런 소회는 「꿈을 꾸며」에도 오롯이 새겨져 있다. “이젠 알아 꿈은 곁에 있잖아. 손 내밀면 느껴져. 내게로 와 사랑 곁에 있잖아. 아무것도 말하지 마 지금은.”

이제 공연 쪽으로 음악 활동의 무게중심을 옮긴 조용필이기에 그 모습을 브라운관을 통해서 보기는 어렵다. 확실히 소통이 용이하지는 않다. 분명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정을 앨범에도 또한 쏟아 부은 그이기에 지금도 음반을 통한 만남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 조용필의 존재가 낯선 요즘 신세대들에게도 통하리라 본다.

더군다나 나중에 이승철에게도 영감을 준 (‘미국에 가서 녹음한다!’) 세련된 사운드와 최고의 연주로 채워진 13집이라면 더 말할 것이 없으리라. 시간을 거슬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모든 아티스트의 꿈이다. 조용필은 <The Dreams>로 자신의 오랜 꿈을 실현시켰고, 이제 다른 이의 꿈이 되었다.

글 / 박효재 (mann616@hanmail.net)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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