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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씨가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를 만드는 법 - 『먼 북소리』
내가 이탈리아 중부의 한 소도시에서 살 때 옆집 안나마리아 할머니의 레시피는 독보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고집스러운 수공장인처럼 고독한(?) 길을 걸었다.
오두막 주변에는 포도를 쌓아두는 작은 선반들과 밭과 가축우리가 있다. 흰 개 토피아는 우비 씨의 아버지가 없을 때 그곳을 지킨다. 개집 앞에는 밥그릇이 놓여 있고, 그 안에는 리가토니(마카로니 중에서 좀 큰 것) 토마토소스가 들어 있다. 이탈리아의 개는 리가토니를 먹는 것이다.
종종 사람들은 내가 이탈리아에 살았다는 사실을 흥미로워 한다(미국이나 일본과 다른 게 뭐지?). 나로서는 이런 관심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건 서울 사람이 창원이나 마산, 군산 사람들을 신기해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설사 북극의 이누이트라고 하더라도 인간 세상이 뭐 다를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이런 호기심을 나는 거꾸로 이용해서 사람들을 웃기곤 하는데, 이런 식이다.
“글쎄, 스파게티를 좋아하신다면 공짜로 실컷 먹게 해드릴 수 있어요. 이탈리아에 가서 맘에 안 드는 녀석이 있으면 실컷 두들겨 패세요. 감옥에서 하루 두 끼 파스타를 공짜로 제공할 테니까요.” (왜 세 끼가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아침부터 파스타는 먹지 않는다고 말해드리련다).
좀 썰렁해서인지 상대방은 웃기보다는 교도소의 파스타는 어떤 식으로 나올까 상상해보느라 골똘한 표정을 짓는다. 실제 이탈리아의 교도소에서도 파스타를 줄 게 틀림없다. 한국의 교도소에서 ‘밥’을 주듯이 말이다. 그것도 온갖 모양의 파스타가 끼니마다 바뀌어 제공될 것이다. 군대에서도 물론 파스타를 준다. 나는 이것만은 꽤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요리학교나 언어학교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예비역에게 여러 번 확인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하긴, 이탈리아 군대에서 파스타 대신 무얼 밥으로 줄 수 있겠는가. 카르보나라 스파게티가 무솔리니 휘하 군대의 전투식량으로 개발됐다는 설도 있으니, 어쨌든 어지간히 신빙성이 있다.
이런 농담의 끝은 간혹 “이탈리아에서는 거지도 스파게티를 먹거든.” 하고 별로 안 웃기게 끝나기도 한다. 그러니 하루키라는 분이 『먼 북소리』에서 ‘이탈리아의 개는 리가토니를 먹는 것이다.’라고 약간은 신기한 듯 글을 쓸 만도 한 일이다. 그 특유의 건조하고 서늘하며 무심한 듯한 문체라고 하더라도 그 ‘신기하고 놀라운’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리가토니든 스파게티든, 무릇 파스타는 토마토소스와 만나서 놀라운 맛의 변화를 준다. 얼마나 토마토가 흔하면 토마토로 목욕을 하고, 투석전ㅡ아니, 이건 투과전이라고 해야 하나ㅡ을 하는 축제를 벌이는 걸로 얼추 짐작도 할 수 있는 게 이탈리아다. 한국에서 작물이 귀한 겨울에 토마토 한 개를 사는 데 천 원짜리 지폐를 내야 한다는 걸 베니스 상인이 안다면 당장 무역을 하려고 덤빌 게 틀림없다. 그만큼 이탈리아란 토마토가 흔해서 고민이고, 초여름에 멀리 시골에 가면 붉고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토마토 밭이 펼쳐져 있다. 특히 압권은 토마토를 많이 심는 나폴리 인근 내륙의 들판이다. 화산 토양의 영향을 받아서ㅡ근처에 소렌토와 베수비오 화산이 있다는 건 우리도 익히 알고 있다ㅡ검은빛을 띠는 흙은 쭉 짜면 정말 영양 성분이 뭉클거리며 떨어질 것처럼 기름져 보인다. 그 검정색 밭에 빨갛게 토마토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모양은 사진이나 회화로는 묘사할 수 없는 원색의 장렬한 경관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가 푸른빛의 토마토 줄기가 더해져 형언하기 힘든 색의 배합과 조화가 절로 감탄을 내뱉게 한다.
토마토가 흔해서 생긴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토마토는 왠지 소중하게 보호받으며 안쓰럽고 억지로 익어가는 느낌이라면, 이탈리아의 녀석들은 마치 그 민족성이나 국민성처럼, 대충 자유분방하게 익는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예쁜 소녀를 만나 바지 섶이 부풀어 오르듯 열에 들뜬 이탈리아 소년의 얼굴 같은 거다.
이탈리아의 슈퍼마켓에서 카트를 끌면서 화가 나는 건, 좋은 쇠고기를 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물가 때문이다. 그렇지만 비싸서 그런 건 아니다ㅡ두부가 치즈보다 비싸다는 점만 빼고는 오히려 물가가 싸서 한국의 마트 물가와 비교가 된다.
쇠꼬리나 쇠갈비, 삼겹살 같은 부위는 거의 거저 얻는 가격이어서 횡재라도 하는 기분이다. 소 내장은 이보다 더해서 아예 동전 몇 개만 내면 장바구니가 묵직하게 사서 올 수 있다. 게다가 냄새가 나지 않도록 도축한 후 곧바로 손질한 것이라 거의 잔손이 가지 않는다. 나처럼 게으른 요리사에게는 그야말로 제격인 재료들이다.
싱싱한 채소와 과일도 싸고 달아서 눈물나게 만드는데, 토마토는 달고 진한 향을 풍겨서 이게 복숭아인지 토마토인지 구별을 못하게 한다. 팔뚝이 뻐근하게 산다고 해도 돈 만원이 채 들지 않으니, 토마토를 맛나게 익히는 날씨와 토양이 부럽기도,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에 토마토소스만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탈리아에 살면서 봤던 모든 소스의 비율은 역시 토마토를 치지 않은 소스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지만 이탈리아만의 대표 소스는 역시 토마토소스다. 크림소스나 고기소스가 세계 어디든 흔한 소스라면, 토마토소스는 오직 이탈리아가 독보적인 위치에 있지 않은가. 그런 까닭인지 토마토소스 끓이는 방법도 다채롭고 복잡해서 사람마다 다른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게 그거 같아 보여도 미세한 맛의 차이를 가지고 있어 ‘어느 레시피가 최고야.’ 하고 엄지를 추켜세우기 힘들다. 당장 당신이 인터넷을 검색해서 비교한다고 해도 각각 다른 토마토소스 레시피가 등장할 것이다. 마치 우리들 집안의 된장찌개나 만두 조리법이 모두 다른 것처럼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저/<윤성원> 역13,320원(10% + 5%)
1986년, 하루키는 지쳐 있었다. 거미줄처럼 짜여진 강연과 원고 청탁도 문제지만, 자신이 이 생활을 끊을 수 없으며 이렇게 성큼 마흔줄에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서둘러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책은 그가 3년간 그리스와 로마 일대를 여행하며 써내려간 '생활'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