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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잊을 수 없는 그들의 음악 - 클래지콰이 & 가십 & 김경호

클래지콰이 &lt;Mucho Punk&gt; - 적정궤도에 진입한 그들의 원숙미.<br> 가십 &lt;Music For Men&gt; - 남성들을 위해 ‘페미니스트’가 손수 만든 음악.<br> 김경호 &lt;Alive&gt; - 초심으로의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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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잊을 수 없는 특징이 있는 사람이 부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빵빵 터지는 유머로 모임을 유쾌하게 주도한다든가, 많은 사람이 공감할 정도로 캐리커처를 기막히게 잘 그린다든가, 작게는 젓가락질을 특이하게 한다든가, 뭐 이런 것들이요. 그런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곤 하니까요. 맑고 신나는 댄스음악으로 우리나라 대표 일렉트로니카 그룹으로 자리매김한 클래지콰이, 육중한 몸과 모든 걸 연소해 버릴 듯한 화끈함이 매력적인 보컬 베스 디토가 이끄는 록 그룹 가십, 시원하게 내지르는 샤우팅 창법 하면 생각나는 김경호 이들 세 뮤지션은 전 앨범이 나온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특징이 있는 노래로 여전히 음악 팬들의 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클래지콰이(Clazziquai) <Mucho Punk>(2009)

일렉트로니카 팝을 기치로 든 클래지콰이(Clazziquai)는 4집 <Mucho Punk>에서도 굳건한 위용을 과시하며 순항을 위한 닻을 올리고 있다. 비록 두 꼭짓점에 위치한 알렉스와 호란이 개인 활동을 추진력 있게 병행하면서 정규 앨범이 발매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무게 중심의 끈을 잡고 있는 디제이 클래지(DJ Clazzi)는 두 보컬의 특색을 영민하게 버무릴 줄 아는 능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앨범 타이틀과 함께 앨범 재킷 전면을 수호하는 듯 그려진 복면 레슬러와는 달리 그들의 4집은 그리 도발적이지도, 매서운 타격을 선사하지도 않는다. 2년이라는 기간 동안 발표했던 여타의 리믹스, 스페셜 앨범에서도 감지되어 온 바이므로, 기존의 제작 문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록곡들은 익숙한 안락함을 재차 제공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기본적으로 하우스 비트를 토대로 구성된 트랙들은 클래지콰이 자신뿐만 아니라, 일본 시부야계 아티스트의 스타일을 반복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프리템포(freeTEMPO)를 연상케 하는 「Back in time」과 「Tell yourself」가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보컬의 측면에서는 알렉스와 호란이 상황에 따라 분업과 협업을 전환하는 기본 얼개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알렉스를 위한 곡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초콜릿 트러플」에서 미각으로 전달되는 감미는 여성 팬들에게 있어서 먹어도 또 다시 손이 가는 마시멜로와 같을 것이다. 매력적인 보이스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곡 해석과 상황에 따른 감정 변화 능력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드러내 온 호란 역시 팔색조 같은 변신을 곡마다 거듭한다. 「사랑 끝에」에서는 얼음장 같이 차가우면서 기저에 잠복하고 있는 애상의 감성을 너무나도 냉혹하게 읊조리지만, 광고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된 「Wizard of OZ」에서는 상상의 나래에 빠진 꼬마 숙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각 수록곡에서 일부 신선한 시도를 꾀한 흔적을 찾아볼 수도 있다. 침윤의 무게를 그대로 반영한 피아노 선율은 반복되는 울림을 통해 깊은 여운을 부여한다. 어쿠스틱 기타 라인이 중세의 동화적인 분위기를 세심하게 재현하는 「라푼젤」 또한 아날로그적 감성에 더욱 충실한 면모를 보여 준다. 허나 이와 같은 시도가 좀더 적극적으로 앨범 전체로 퍼져나가지 못한 연유로 인해 돋보이게 되는 대비 효과라는 점에서 뒷맛이 그리 개운치만은 않다.

이미 검증된 디제이 클래지의 프로듀싱 능력은 그나마 잔존하던 의심까지 본 앨범을 통해 불식해 버렸다. 클래지콰이가 지금까지 대중을 유인해 온 상큼한 이미지도 어느덧 두 보컬의 성장과 함께 원숙미를 형성하며 적정궤도에 진입한 듯 보인다. 다만 트렌디한 사운드가 범람하는 물결 위에서 항로를 잃지 않기 위해 좀더 독특한 파장이 필요하다. 이미 대중의 기대치는 은근히 상승하고 있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가십(Gossip) <Music For Men>(2009)

라이브의 힘은 강력했다. 국내 록 마니아들은 지난해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광란의 밤을 선사했던 살집 그득한 그녀를 잊지 못했다. 오아시스(Oasis)가 뒤를 받쳐 주고 있는 카사비안(Kasabian)이야 이미 유명 인사로 통하고 있었으니 난리였던 건 당연지사, 미국의 인디 밴드가 이다지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줄 누가 알았을까. 록 수요가 많지도 않은 우리나라에, 더군다나 인디밴드로 분류되어 국내에 발매된 앨범이라곤 라이브 한 장이 전부였던 가십은 단 한 번의 공연 이후로 다음 앨범이 가장 기대되는 아티스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우선 앨범 제목을 보자. 페미니스트 레즈비언으로 알려져 있는 보컬 베스 디토(Beth Ditto)가 ‘남성들을 위한 음악’이란 말을, 그것도 메이저 데뷔작에 붙인다는 것에 동의했다는 사실에 의문이 들지 않는지? 속뜻은 따로 있었다. 남성들을 위해 ‘페미니스트’가 손수 만든 음악이라는 거다. ‘억압받는 여성들을 너희 남자가 알아야 한다’는 의미라나.

댄서블한 연주에 넋을 빼고 춤추느라 모르는 이도 많았겠지만 가십의 빅 히트곡 「Standing in the way of control」은 그저 정신 놓고 놀자고 바람 잡는 디스코가 아니다. 동성애 결혼법에 반대하는 미국 정부에 맞서 싸우자는 내용이 실린, 진지하고 무거운 곡이다. 그렇다면, 대놓고 ‘남자는 들어라!’라고 외치는 이 앨범 속엔 얼마나 강력한, 살 떨리게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을까. 「Standing in the way of control」의 터지는 한 방이 어떤 스케일로, 또 어떤 말로 녹아나 있을지 들여다 보자.

첫 곡 「Dimestore diamond」는 육중한 드럼과 기타, 슬그머니 들어선 보컬로 차분히 워밍업을 한다. 쇼가 곧 시작됨을 알리는 인트로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전장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면 타이틀 「Heavy cross」가 뒤를 이어받는다. 어두운 멜로디는 베스 디토의 소울풀한 목소리를 타고 더욱 진한 색채로 샘솟는다. 드럼과 신시사이저로 여백을 준 브리지를 지나 한 번 더 내지르는 후렴까지 폭발적이고도 패셔너블한 에너지는 심박수를 사정없이 올려 버린다. 「8th wonder」로 무차별적 공격을 퍼붓는가하면 「Love long distance」와 「Pop goes the world」에서는 적재적소에 얼굴을 내미는 전자음으로 다채로움을 줘 춤추게 만든다. 이 두 곡을 듣고도 몸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불감증이랄 수밖에. 예상을 비트는 시도가 반가운 록 넘버 「Vertical rhythm」과 1980년대 뉴웨이브를 살짝 떠올리게 만드는 「Men in love」의 펑키한 베이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새 회사와 계약을 맺은 후에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곡을 뽑아내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For keeps」를 포함한 몇 곡에서 멜로디에 난조가 있었다는 게 느껴진다. 허나 비교적 단출한 악기 구성에도 불구하고 빈자리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이들에겐 흥미로운 작업임이 분명했을 「Four letter word」, 아직 덜 영글긴 했어도 실험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Spare me from the mold」에서 다시 본래의 얼굴로 돌아와 기합을 힘껏 불어넣으며 앨범은 마무리된다.

「Heavy cross」에서 베스 디토는 줄곧 ‘너를 믿는다.(I trust you.)’고 외치지만 실은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소리치는 게 아닐까. 뚱뚱한 운동선수가 성적이 좋으면 관중들은 그의 실력이 몸에서 나오는 거라고, 살 좀 더 쪄도 무방하다고 칭찬하기 바쁘다. 반대로 기대에 못 미치거나 성적이 예상을 벗어나게 되면 저 선수는 살을 먼저 빼야 한다고, 움직임이 둔해서 뭘 해먹겠느냐고 비아냥거린다. 날씬한 베스 디토도 나쁘진 않겠지만 나는 그녀가 좀더 후덕해지길 바란다. 보컬의 파워가 몸집에서 나오건 아니건 그건 중요치 않다. 사람들이 그녀의 거대한 엉덩이를 탓할 일 없이 지속적인 열광을 쏟길 바랄 뿐. 메이저에서의 첫 학기를 맞이한 그들은 벌써 무단횡단으로 길을 가로지르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글 / 조아름 (curtzzo@naver.com)

김경호 <Alive>(2009)

얼라이브. 앨범 제목에서부터 결연한 의지가 묻어난다. 성대결절, 다리와 골반 사이 관절이 썩는 희귀병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던 그다.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을 불식시키려는 듯 이번 앨범은 대단한 파워와 속도감을 장착했다. 애절한 록발라드로만 김경호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는 원래 열혈 메탈 키드이며 순종 록 사운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사람이다. 이번 앨범의 포인트는 초심으로의 복귀다.

인트로를 지나 펼쳐지는 전형적인 스피드 메탈 「Face to face」는 부활의 화려한 신호탄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희망찬 메시지와 힘이 넘치는 김경호의 가창은 스피드 메탈의 모범 답안을 보여 주는 듯하다. ‘김경호’ 하면 슬픈 록발라드를 떠올렸을 이들에게 이 곡은 거의 충격 수준으로 다가갈 것이다. 케이블 채널 투니버스에서 방송 중인 애니메이션 <은혼>의 주제곡으로 쓰이고 있는 「질주」 또한 짜릿한 속도감을 만끽하게 해준다. 물 만난 물고기마냥 김경호는 속도감을 앞세운 곡들에서 더욱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아마도 김경호 본인은 질주감이 도드라지는 곡들로만 앨범을 채우고 싶어 했을 것이다. 고속도로를 내달리듯 단숨에 올라가는 김경호의 고음과 농익은 비브라토는 스피드 메탈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중에 대한 고려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대중적인 록발라드로 이름을 알린 김경호이기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 스타일만 하며 대중을 외면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부담이 될 법하다.

타이틀곡 「데려오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반영된 곡이다. 하지만 이전 스타일과는 또 다르다. 슬픈 무드에만 갇히지 않고 시원하게 터지는 목소리는 곡이 뭔가 열려 있다는 인상을 준다. 데려오고 싶다는 가사가 전달하는 짠한 감정은 한편으로 감정의 농도를 높여 준다. 한마디로, 그저 그런 록발라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외에도 신곡 「Promise u」와 「는개비」도 김경호가 가진 매력을 보여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특히 「는개비」의 산뜻한 코러스와 희망적인 무드는 정말 좋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리메이크를 끼워 넣은 것이다. 자신의 지향점이 결국은 록임을 알리는 효과는 있었겠으나 원곡과 다른 아우라를 전달하는 데는 부족한 모습이다. 박완규를 불러들여 중량감을 높이는 데에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 질감과 톤에 있어서 너무도 이질적인 이승철과 김태원의 보컬이 묘한 조화를 이뤄 냈던 원곡의 매력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덧붙였을 테지만 트랙 수가 많다고 청취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리메이크와 인스트루멘틀 버전의 삽입은 오히려 듣는 이에게 피로를 유발한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신곡들만 보자면 김경호의 9.5집 <Alive>는 김경호의 힘들었던 상황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될 만하다. 메탈의 힘과 스피드, 록발라드의 끈끈한 서정을 모두 목격할 수 있는 이번 작품은 10집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이며 나름의 가치를 뽐낸다.

글 / 박효재 (mann616@hanmail.net)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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