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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지금 나이가 20대 이상이신 분들이라면 아마 어린 시절 수업에서 미래의 모습에 대한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 같은 수업 과정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저도 대략 80년대 초반쯤에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였죠.)를 다녔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미래의 아이콘들이 많습니다. 해저 도시, 우주 정거장, 빛만큼이나 빠른 열차, 개인용 비행기 등등 셀 수 없이 많았죠.
정작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벌써 10여 년이 넘어가는 지금, 그때 전 세계가 예견했던 미래의 모습은 아직 진행형이라 확답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상상의 대표작 중에는 정말 우리 눈앞에 와 있는 것들도 몇 가지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빠르게 다가온 것은 바로 디지털 혁명일 것입니다.
1995년도 MIT의 미디어랩 연구소장이던 저자 네그로폰테는 미래에 대한 수많은 예언 중 디지털 분야에서의 혁명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예견은 상당히 놀라운 정확도와 논리성을 자랑하며 지금까지도 고전의 일부로 추앙받고 있는데, 바로 『디지털이다』(원제 being digital)입니다.
IT 분야에서는 거의 IT 인사이트에 관한 기본서로까지 분류되는 『디지털이다』는 1995년도에 출간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부터 쭉 써둔 글들의 모음이기 때문에 실제 사고의 연도는 그보다도 오래된 시점입니다. 1990년대 초반쯤의 IT 관련 사고란 매우 보잘것없는 수준이었기에 『디지털이다』가 제시한 이야기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당시만 해도 IT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던 시대였고, 한국에서 개인용 컴퓨터는 일종의 사교육 열풍을 타고서 인기를 끌었을 뿐, 대부분의 가정에서 고가의 게임기 수준에 머무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일부 선도적인 전산학도들에 의해 간간이 PC통신 등의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 맹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그러한 실제 수준에 걸맞게 이른바 ‘전문가’들은 신문과 방송과 잡지에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떠들어 대었습니다.
‘컴퓨터가 모두 알아서 해 주는 세상’.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정말 지금 와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 미래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뭐든지 컴퓨터를 통하면 다 자동으로 된다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뒷단에 무엇이 더 개발되어야 하는지, 어떤 방향성으로 컴퓨터라는 개념이 진화하는지에 대한 이해나 설명은 찾기 힘든 시대였습니다.
『디지털이다』가 갖는 무거운 의미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배경 덕택이기도 합니다. 1995년이라면 그나마 조금씩 한국의 환경도 발전해서 하이텔과 천리안 외에도 나우누리와 같은 제 3의 PC통신 중개업체가 등장하는 시기였고, 웹이라는 새로운 인터넷 표준에 대한 실험도 막 시작되던 즈음이었습니다. 이제 막 네트워킹이라는 개념이 단순 고립된 PC의 제한된 의미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일 무렵, 『디지털이다』는 그 디지털이라는 말이 미래에 가질 의미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디지털이다』는 단순히 ‘미래의 환경이 컴퓨터에 의해 이렇게 바뀐다’라는 스케치 식의 표현 대신 디지털 시대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생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일반 물질계의 원리를 연구하는 물리학은 물질을 구성하는 더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를 ‘만물의 근원’으로 놓고 연구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atom가 그것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원자보다 더 작은 소립자들의 존재가 밝혀져서 더 이상 원자는 물질의 최소 단위는 아닙니다.)
네그로폰테는 디지털 시대의 특징 중 하나인 ‘물질에 기반하지 않는 논리적 프레임’을 고려하여, 그 논리 체계 안에서 원자의 역할을 하는 최소 단위의 성질을 먼저 설명합니다. 물질계에 원자가 있다면, 디지털계에는 비껆bit가 있습니다.
쉽게 8비트, 16비트, 64비트라고 컴퓨터 부품 가게에서 이야기하는 바로 그 비트는 디지털 표현의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하나의 비트는 두 가지 중 하나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데, 그 두 가지 상태란 디지털의 최소 단위인 0과 1입니다. 하나의 비트는 0 또는 1로 표현될 수 있고, 이 비트는 모여서 바이트byte가 되고, 바이트는 모여서 킬로바이트KB, 메가바이트MB, 기가바이트GB, 테라바이트TB까지 그 용량을 늘려 가게 됩니다.
『디지털이다』는 먼저 이 비트의 속성과 활용을 설명합니다. 최초 전산이라는 논리 개념에서 비트라는 최소 단위가 등장하기까지의 경과, 실제 비트를 사용한 데이터 구성과 그 전송의 방식들. 그리고 이러한 비트 단위로 구성된 새로운 세계가 담보하는 비즈니스의 가능성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디지털이다』 1부의 이야기입니다.
물리적인 기반을 아예 갖지 않는, 말 그대로 논리 체계로서만 구현된 새로운 세계인 디지털계는 그 창조주인 인간과의 접점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인간에게 유용한 새로운 계로 거듭나게 됩니다. 0과 1로 구성된 디지털 체계는 그 0과 1이 기술의 진보를 통해 점점 더 작아지고, 같은 시간과 같은 저장 장소에서 다룰 수 있는 0과 1의 개수, 다시 말해 비트의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아날로그 세상에 대한 재현representation이 더욱 실재와 근접하게 되는 형태로의 진화를 시작합니다.
앞서 말한 비트 집적의 발달은 정교함을 낳습니다. 예전의 컴퓨터가 표현했던 세계는 0과 1의 경계가 눈에 구별될 정도로 뚜렷해서 삐뚤빼뚤한 세계였습니다. 컴퓨터가 디지털로 재현하는 경계선은 울퉁불퉁했고, 그나마도 느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집적 기술의 발달을 통해 디지털의 매끄럽지 못함은 사람의 눈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들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납니다. 이제는 누구나의 손에 필름카메라 대신 들려 있는 디지털카메라가 그것이고, 마치 실제 비행기에 타고 있는 것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전투기 조종사 교육용 시뮬레이터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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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시대는 가고 디지털의 시대가 몰려온다.디지털이 우리사회 전반에서 주는 의미가 그리 단순한 것 같진 않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디지털이 일상생활에 까지 파고 들어 변화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데.. 앞으로의 미래사회에는 어떤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지 그 미래를 미리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