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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치 잡는 사람들 - 『노인과 바다』

나를 데리고 요리를 가르치는 주방장이자 후견인 주세페는 참치 요리를 아주 잘 다뤘다. 그는 실눈을 뜨고 오래전, 지중해의 황새치가 어떻게 어부들을 만났는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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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왼손으로 낚싯줄을 가볍게 가만히 잡고는 막대기에서 벗기었다. 이제는 고기에게 아무런 힘을 느끼지 않게 하고서 손가락 사이로 낚싯줄을 풀어 내 줄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멀리 나왔고, 또 이런 계절이니만큼 반드시 굉장히 큰 고기임에 틀림 없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먹어라, 고기야, 먹어. 제발 좀 먹어라. 그 어두운 600피트나 되는 차디찬 물 속에서 너나 그 미끼나 얼마 싱싱하겠느냐? 어둠 속에서 어서 한 바퀴 다시 돌고 와서 먹어 보려무나.

기차는 덜커덩거리면서 멈춰 섰다. 이탈리아 남부의 항구도시에서 시칠리아행 기차는 프랑크 소시지처럼 나뉘어 배에 실렸다. 어둡고 습한, 거대한 고래 뱃속 같은 배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시칠리아로 넘어가는 화물을 가득 싣고 있었다. 그 화물칸은 화물들이 각기 뿜어내는 냄새가 뒤섞여 형언할 수 없는 냄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배 특유의 쇳내 사이로 젖먹이가 토한 듯한 젖 냄새와 냉장실에서 썩어가는 채소와 빵 냄새가 났다. 사람들은 그 냄새를 피해 고래 뱃속을 더듬어 갑판으로 올라가는 나선형의 계단을 올라갔다.

코발트블루색의 지중해는 무뚝뚝하게 그 심연을 감춘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시칠리아 가는 기차를 나눠 실은 뚱뚱한 화물선은 그 바다를 힘겹게 가르면서 남진했다. 멀리 고깃배들이 그물을 끌어 올리는 게 보였다. 탐욕스러운 갈매기 떼가 그물 위로 하얗게 몰려들었다. 나는 바닷물처럼 짠물 맛이 나는 싸구려 생수 한 병을 사서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갑판 위의 철제 계단의 난간을 무심코 잡았다가 나는 비명을 질렀다. 달걀 프라이 정도는 너끈히 구울 만큼 쇳덩이들이 뜨거워져 있었다. 나는, 그러니까 시칠리아로 가는 길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참치에 미친 사람 같았다. 슈퍼마켓 진열대마다 삶은 참치 토막을 채운 통조림이 천정까지 뻗어 있는 게 예사였고, 슈퍼마켓의 광고 전단 미끼상품에는 예의 참치 캔이 올라 있었다. 한국 제품보다 더 짜지만 맛은 좋은 이탈리아 참치 캔은 아마도 김치찌개를 끓이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조직이 아주 부드러워 캔을 열고 덩어리를 꺼내는 순간 부서지기 때문이었다. 짭짤하게 소금을 치고, 제법 향기도 있는 올리브유에 푹 잠긴 참치의 살은 씹으면 목이 말랐다. 그것은, 전적으로 짠맛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지중해에서 참치의 일종인 황새치를 건졌다. 『노인과 바다』의 그 노인처럼 말이다. 남획과 기후 변화로 점차 개체 수가 줄기 전까지는 시칠리아의 해안 마을마다 손기술 좋은 작살수나 그물꾼들이 물때를 보아가며 배를 저었다. 그물이든, 주막이든 던지면 황새치가 걸려들었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풍족하게 황새치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종종 시장에 나가 황새치를 샀다. 어떤 황새치는 대서양에서 온 것도 있었고, 그런 종류는 상인들 말로는 ‘살이 무르고 쓰다’고 했다. 둔한 내 혀가 그 차이를 감지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지중해에서 잡은 황새치라고 믿으면 되는 일이었다. 어떤 황새치든 이마에 원산지를 써놓고 좌판에 누워 있는 경우는 없으니까 말이다.

황새치는 『노인과 바다』에 등장할 만큼 크지는 않았다. 그저 2미터 정도면 거물로 대접받았다. 노인이 잡은 1천5백 파운드, 즉 8백 킬로그램 정도가 되는 새치(마알린)에 비하면 작은 고기였다. 100킬로그램 넘는 것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나를 데리고 요리를 가르치는 주방장이자 후견인 주세페는 참치 요리를 아주 잘 다뤘다. 그는 실눈을 뜨고 오래전, 지중해의 황새치가 어떻게 어부들을 만났는지 설명했다. 그의 등 뒤로는 참치 잡이를 하는 주세페의 할아버지들을 찍은 낡은 흑백사진이 한 장 걸려 있었다.

“잘 듣게. 그때는 참치가 그물 가득 올라왔지. 주낙을 드릴 필요도 없었어. 그저 그물을 던지면 참치가 줄줄이 올라왔다는 얘길세. 톤노(tonno)! 그래, 바로 톤노, 엉어로 튜나야.”

고기는 보기에도 천오백 쓆운드는 넘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혹시 더 될는지도 몰랐다. 내장 같은 것을 다 손질해 버리고 3분의 2만 팔게 된다 하고 파운드당 30센트를 받으면 전부 얼마나 될까?

사진 속의 인물들은 흐리게 보였지만, 그들의 억센 팔뚝이 금세라도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구릿빛으로 물든 우람한 팔뚝으로 그물을 걷어 올리고 작살을 내리 찍던 시칠리아의 참치잡이 어부들을 어쩌면 오래지 않아 모두 볼 수 없게 될 거라고 주세페는 슬프게 말했다. 어떻게 잡았든지 어획된 황새치는 어항에 도착하면 곧바로 경매로 팔린다. 그리고 우리 같은 요리사의 손에 들어올 때는 킬로그램 당 2만원 안팎의 값을 보인다. ‘바다의 쇠고기’라는 자연산 황새치의 가격 치고는 썩 괜찮았다. 이제 우리에게는 황새치를 난도질해서 먹기 좋게 분류하는 일이 남았다. 그 일이야말로 요리사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황새치가 사람보다 키가 크고 분홍색 살에 기름이 좔좔 흐른다면 말이다.

테라스에 자리를 잡자 어부들이 노인을 놀렸지만 노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 중 나이든 어부들은 그를 보고 서글퍼했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고, 조류(潮流)가 어떻고 어느 정도의 깊이에 낚싯줄을 내렸으며 좋은 날씨가 한동안 계속 될 것 같다는 등 경험한 여러 가지 일들만 점잖게 이야기했다. 많은 어획고를 올린 어부들은 벌써 들어와 마알린의 배를 갈라 두 장의 판자 위에 늘어놓고는 판자 양쪽에 두 사람씩 붙어 비틀거리며 어류 저장고로 운반해 갔다. 여기서 아바나의 어시장으로 실어갈 냉동 화물차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상어를 잡은 어부들은 그 상어들을 맞은편 해안에 있는 상어 공장으로 날랐다. 그 곳에서 상어를 도르래와 밧줄로 달아올려서 간을 빼내고, 지느러미를 자르고 껍질을 벗기고 살을 소금에 절이기 위해 토막을 내었다.

황새치는 가련하게도 뾰족한 주둥이는 톱으로 잘려진 채로 시장에 나온다. 먹을 수 없는, 이미 죽은 황새치의 위엄을 사람들은 존중해주지 않았다. 시장에는 황새치를 잘 다루는 칼잡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손은 거칠어서 종종 맛 좋은 황새치의 알집을 터뜨리곤 했다. 역시 정교하게 껍질을 벗겨 황새치를 나누고, 살을 뜨는 일은 요리사가 나았다. 주세페는 일당을 받고 남의 황새치를 도륙 낼 만큼 숙련된 황새치 해체 전문가였다. 그가 칼을 휘두르면 어느새 먹기 좋은 부위별로 황새치가 나뉘곤 했다.

그렇더라도 어떤 이탈리아의 황새치 해체꾼이라고 해도 한국이나 일본의 참치잡이 전문 요리사를 따라가진 못한다. 참치를 식용하는 어류를 넘어, 열광의 숭배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인 일본인의 솜씨는 그중 으뜸이 아닐 수 없다. 도쿄의 어느 식당에서 본 참치 해체는 일종의 쇼였지만, 진지한 요리사들의 눈빛과 구경꾼들의 열기는 마치 어렸을 적 보았던 무당의 신내림 굿이나 축귀(逐鬼) 굿에 버금가는 무대를 연출해냈다. 요리사가 입는 유타카를 받쳐 입은 두 명의 참치 해체 요리사들은 이마에 동여맨 수건이 다 젖도록 긴장했다. 누군가 북을 둥둥, 울리기 시작했고 작은 징 같은, 쇠북이 징징 울었다. 그러자 마치 닌자들의 장검처럼 기다란 칼이 섬찟, 형광등 불에 푸른 날을 비추었다. 내 옆의 친구가 “저것으로 참치의 배를 딴다네.” 하고 귀띔해주었다.

선임인 듯한, 귀밑머리가 허연 요리사가 칼을 빼어들었다. 그러자, 조수인 듯한 요리사는 하얀 면수건으로 칼날 부분을 칭칭 감아 조심스럽게 쥐었다. 그리고는 헛둘, 호흡을 맞추더니 대뜸 참치를 두 동강 내기 시작했다. 으흠, 사람들은 탄식조차 아끼듯 입을 다물었고 요리사들은 끙, 하고 힘을 주어 거대한 붉은살 참치의 등을 따라 칼날을 그어갔다.

이내 참치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아하! 사람들은 감탄사를 뱉었고, 요리사들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커다란 탁자 위에 반분된 참치를 쿵 하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참치를 해체해 나갔다. 반분된 참치의 가운데 선을 따라 다시 두 토막으로 나뉘어졌고, 뱃살 부위인 분홍색 살을 조심스럽게 떠냈다. 2백 킬로그램쯤의 거대 참치였지만, 뱃살은 그다지 많은 양이 아니었고 사람들은 그 기름이 흐르는 분홍색의 살점 하나에 수만 원도 기꺼이 지불했다. 뱃살은 어찌나 기름이 많은지 저미는 칼이 쩍쩍 달라붙어 요리사가 애를 먹을 지경이었다.

“입에 넣으면 아이스크림처럼 빠르게 녹지. 참치 뱃살에 맛들이면 집의 대들보도 팔아먹을 걸세.” 친구는 웃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일본인만큼은 안 되어도 주세페는 제법 황새치의 배를 가를 줄 알았다. 그는 일본도를 쓸 필요는 없었다. 황새치는 일본처럼 등뼈를 따라 칼집을 넣어 반분한 후 부위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잘라 스테이크를 하기 때문이었다. 수직으로 자르면, 한 점의 스테이크감에 등살부터 귀한 뱃살까지 두루 붙어 있게 된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황새치를 먹는 사람들은 더욱 평등해진다. 일본처럼 참치가 사시미칼에 의해 계급이 나뉘는 일은 없는 셈이다.

주세페는 익숙한 솜씨로 배를 갈라 알과 내장을 꺼내고 지저분한 횡경막 따위를 손질했다. 주세페가 가장 잘하는 황새치 알절임 요리를 하려면 우선 좋은 알이 필요했다. 그는 잘 씻은 알에 좋은 소금을 치고 말린 후 갈아서 멋진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그의 황새치 알 스파게티를 먹기 위해 멀리서까지 일부러 방문하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서 황새치 알을 구해 똑같은 소금절임을 시도했다. 그러나 소금의 질이 달라서인지, 황새치 알이 다른 것인지 비슷한 맛은 나되, 주세페의 손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주세페는 나의 국제전화 질문에 곰곰 생각하더니 “햇빛이 달라서 그럴 거야.” 하고 진단을 내렸다. 충분히 그럴 것이다. 주세페가 사는 곳은, 만지면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코발트블루 하늘과 밀도가 다른 태양을 가진 땅이니 말이다.

주세페는 알은 소금을 치고, 수직으로 자는 황새치의 몸통은 그릴을 해서 팔았다. 황새치 그릴 요리는 몸통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일부터 시작된다. 두꺼운 부위는 좀 얇게, 꼬리 쪽으로 가늘어지는 부위는 좀 두껍게 썰어야 한다. 그래야 무게가 비슷해진다. 무시무시한 막칼로 몸통을 자르면, 올리브오일과 허브로 양념을 먹인다. 마늘을 잘라 문지르는 경우도 있다. 마늘을 자르면 표면에 즙이 맺히는데, 이걸 황새치살에 문지른다. 구워서 입에 넣으면 마늘향이 은은해서 아주 맛깔스러운 황새치구이의 비법으로 통했다.

그릴 밑에는 숯불이 지글지글 타고 있다. 그릴은 붉게 변한 숯불의 열기를 받아 소라도 통째 익힐 기세로 벌겋게 달아오른다. 오일을 바른 참치를 턱, 그릴에 얹는다. 치익, 연기가 나고 그릴 자국을 온몸에 아로새기며 황새치 몸통 스테이크가 맛있게 익는다. 이 스테이크는 사실 매우 조심스러워서 주세페는 나 같은 동양인 견습생에게 집게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는 집게를 요령 있게 놀려 스테이크를 획 뒤집었다. 그리고는 속이 촉촉해질 정도로만 익혀서 테이블에 냈다. 생선 요리도 구울 때는 슬쩍 덜 익혀서 먹는 이탈리아는 지나치게 구우면 낭패였다. 스테이크 표면은 잘 익어서 흰색으로 변하지만, 속살은 원래의 색인 분홍빛과 익어서 나는 흰색의 중간색을 띠어야 했다. 주세페는 따로 시계를 쓰지 않고서도 그 타이밍을 기막히게 잡아냈다. 그저 손가락으로 스테이크 표면을 꾹꾹 눌러보면 구운 정도를 알았다. 달인의 솜씨는 맛있는 황새치 스테이크로 변해 손님을 만족시켰다. 고소하고 씹을수록 진한 육즙이 나오게 구웠다. 주세페의 황새치 스테이크 기준은 이랬다.

“겉은 바게트처럼, 속은 달걀 반숙처럼 굽게나.”

올 여름은 어디서 기름을 발라 붉은 참치라고 구워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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