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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아름다움이 서린 노랫말 - 이소라 <눈썹달>(2004)

꾸밈없이 빚어내는 가사와 가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숨어 있는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는 건, 진지한 자세로 감정을 살피는 그녀이기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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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포미닛, 원더걸스, 카라 등 지금의 대중음악계에서는 아이돌 여성 그룹이 어느 때보다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199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중견 가수들은 최근 들어 큰 힘을 내지 못하는 형편인데요, 댄스 음악의 강세로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의 입지가 줄어든 것이 그 원인인 듯합니다. 하지만 작년 말 이소라가 일곱 번째 앨범 <겨울, 외롭고 따뜻한 노래>로 건재함을 과시하자 젊은 음악 팬들도 중견 가수를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오래되고 고리타분한, 10대들의 감각에 맞지 않는 음악이 아니라 ‘깊이와 폭이 갖추어진 음악’으로 말입니다. 이별을 기록한 노랫말이 슬프면서도 무척 아름다운 이소라 6집 <눈썹달>을 통해 그녀의 가까운 과거를 되짚어 봅니다.

이소라 <눈썹달>(2004)

이소라 음악의 8할은 가사에 있다. 어떠한 유명한 시보다도 깊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마지막 눈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앗아가 버리는 슬픔이 있기 때문이다. 데뷔곡이자 최대 히트곡이었던 「난 행복해」부터 「제발」 「안녕」 「이제 그만」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들려주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사랑이 쉬어 가는 이별이다.

1995년 어느 날, 짧은 머리에 짙어 보이는 화장, 긴 드레스를 입은 여가수가 TV 음악 프로그램(<가요 Top 10>)에 출연했다. 일그러지는 표정으로 한 곡을 부르고 별다른 말없이 내려 간 그녀는 그날의 1위 후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가수에게 있어 TV 출연은 무조건 따야만 하는 홍보 수단이었다.

앞다투어 출연을 잡고 부지런히 활동해도 흥행을 장담할 수 없는 치열한 가요계. 더군다나 여가수들의 파워가 턱없이 부족했던 당시, 이소라는 라디오 플레이만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대중들의 ‘귀’가 노래를 찾아낸 것이다. 참 잘나가던 가요계였다. 정상의 자리에 서 있는 가수는 100만 장을 그냥 팔아 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현철과의 듀엣곡 「그대안의 블루」의 인지도로, 그저 슬픈 노래를 찾는 20대의 힘만으로 그녀 역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고 보기엔 힘들다. 그렇다면 또 다른 그녀의 힘은 무엇일까.

「난 행복해」의 폭발적인 인기는 같은 앨범의 「처음 느낌 그대로」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해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발표한 2집 <영화에서처럼>의 「기억해줘」 「청혼」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1990년대 가요계에 그녀의 존재는 뚜렷한 윤곽을 잡게 된다. 그 후 2년마다 한 장씩 앨범을 발표하고 꾸준히 사랑의 단편들을 짚어 왔지만 그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3집에서 슬픔은 분노로 치달아 앨범의 반이 넘는 곡들이 파격적인 변신을 보였고, 때문에 팬들은 한 걸음 물러나야 했다. 4집에서는 약간 밝아진 톤에 시선을 맞춰야 했으며 5집에서는 한 번 더 들뜬 마음을 잡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2년 뒤인 2004년, 6집 <눈썹달>이 나왔다.

어느 곳으로 이사를 가든지 보통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게 된다. 낯선 동네에 대한 설렘도 있으려니와 길을 잃을 때를 대비해 주위의 풍경을 익혀 두기 위함이다. <눈썹달>은 이제 막 동네 한 바퀴를 빙 돌고 제자리에 돌아온, 이방인의 안도감이 밴 앨범이다. 총 11곡에 걸쳐 이별을 겪어 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그렸는데, 크게 세 개의 맥락으로 나뉜다. 헤어진 후 겪게 되는 쓰라림, 가슴에 스치는 그리움, 마지막으로 다시금 원점을 향하는 에필로그.

‘일기예보’ 출신이지만 ‘러브홀릭’으로 더 유명한 강현민의 곡 「tears」와 「Midnightblue」가 앨범의 문을 장식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첫 곡이 발라드가 아닌 모던 록이 된 것은 당연한 일. 이어지는 두 곡은 앨범이 그리는 가장 높은 곡선에 이른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바람이 분다」에서 그녀는 분노를 삼키고 슬픔을 걸러냈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남 얘기하듯 한 편의 소설을 읽어 내려 가듯 덤덤하게 내뱉는 말투는 그렇기에 더욱 와 닿는다.

뒤를 잇는 타이틀곡 「이제 그만」에서는 다시 얼굴을 바꿔 처?하리만큼 울부짖는다. 누구나 일기에 한번쯤 끼적여 봤던 말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바닥까지 무너져 내린다. 가장 쉽지만 막상 하기는 어려운 양면의 표출이기에 이 두 곡은 대중들로부터 크게 사랑받았다. 여기까지 작곡가별로 곡을 묶어서 나열하다시피 한 진행은, 평범하다 할 순 없으나 이별의 순차적 흐름이라는 테마로 본다면 더없이 적합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덧 곡은 짙은 그리움의 길로 접어든다. ‘델리스파이스’ 혹은 ‘스위트피’로 잘 알려진 김민규가 작곡한 「별」 과 「듄」 이다. 5집에서는 밝고 아기자기한 「첫사랑」과 「데이트」로 멜로디 메이커 역할을 소화해냈지만 이번엔 스스로의 최면에 빠져 기억의 메아리 속을 부유하는 이의 모습을 표현해냈다.

앨범은 중반부를 넘어 한숨 쉬어 간다. 수록곡 중 가장 빠른 비트를 지닌 「쓸쓸」, 미디엄 템포의 모던 록 「아로새기다」를 지나면 생뚱맞게도 일렉트로니카를 연상시키는 도입부가 나오는데, 당황스러움도 잠시, 이내 재지(Jazzy)한 전주가 펼쳐진다. ‘시나위’의 신대철이 만든 「fortuneteller」로 느긋한 비트와 끈적이는 보컬이 섞인 블루스는 반가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바다 괴물과 같은 이름의 열 번째 곡 「siren(세이렌)」은 가사 없이 허밍으로만 채워졌다. ‘세이렌은 감미로운 노래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을 유혹한다.’는 신화의 내용과도 같은 설정이다. 마침내 「봄」이 오고, 이 곡으로 앨범은 실질적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에필로그로 칭한 마지막 곡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쓰라림과 그리움 두 파트를 모두 아우르는 현실로의 복귀를 나타낸다. 결국 누구도 이별을 이기지 못하며, 사랑 역시 끊을 수 없다는 진실을 늦은 밤 두 여인의 전화 통화 형식을 빌려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진부하고 터무니없이 구차한 사랑 이야기, 표현할 것조차 없다고 여겨졌던 사소한 감정들을 이소라는 ‘이것이 당신 스스로의,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겪는 일들은 영화처럼 화려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꾸밈없이 빚어내는 한 줄 한 줄의 가사와 가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숨어 있는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진지한 자세로 감정을 살피는 그녀이기에 가능하다. <눈썹달>은 눈물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녀리지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어깨 같은 앨범으로 남게 될 것이다.

글 / 조아름 (curtzzo@naver.com)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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