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서머셋 모옴은 “어떤 책이 누군가에게 즐겁게 읽히는 조건이 되려면 그 책이 직접적으로 그 사람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음반도 음악가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 더 큰 감동이 전달되는 게 아닐까요? 최고의 아이돌 가수에서 로커로 변신했지만 늘 좋지 않은 의견에 시달렸던 문희준은 전 곡을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미니앨범으로 발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클럽 공연과 유명 가수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무명의 세월을 거쳤던 호주 출신의 R&B 가수 다니엘 메리웨더는 두 번째 앨범으로 세계 진출의 발판을 다지는 중이고, 드라마 사운드트랙으로 먼저 인사를 건넨 여성 피아니스트 이담은 데뷔 앨범으로 비인기 장르인 뉴에이지, 연주 음악을 널리 알리려고 합니다. 이들 모두 각자의 의미가 담긴 음악으로 음악 팬들에게 다가섭니다. 이제 즐겁게 듣는 일만 남았네요.
문희준 <Last Cry>(2009)
문희준에 대해서 이제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 그의 로커로서의 진실성과 자부심은 인정해 줘야만 한다. 어떤 것이든 대상에 대한 사랑과 자기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없다. 본인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간이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자기가 한 말보다 증폭된 뒷이야기와 왜곡된 소문으로 인해 가혹한 비판을 받아온 그다. 가수라면 음악으로 비판을 받아야 한다. 음악이 아닌 다른 것들로 너무 많은 비판을 받아온 것은 뭔가 잘못된 느낌이다.
가십이 아니라 음악 자체로 문희준을 만나고 싶은 소망이 미니앨범 형태로 다 충족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정규 앨범의 방향에 대한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으리라.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곡을 써내는 능력의 향상이다. 아직도 개성이 부족하고 불필요하게 길이를 늘이거나 작위적인 멜로디들이 간혹 발견되지만 이 정도면 놀라운 발전이다. 피아노가 주도하는 발라드 「난 둘이라서... 넌 혼자라서...」는 곡이 참 예쁘다. 감미롭고 훨씬 자연스러워진 멜로디는 의외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 외의 곡들에서도 멜로디는 평균 수준을 유지한다. 아쉬움은 오케스트라 사운드까지 동원한 덩치 큰 사운드에 비해서 소리가 확 트이지 못하고 갇혀 있다는 데에 있다. 얌전하게 실수만 하지 않으려고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문희준의 유약한 보컬도 문제다. 소프트한 일렉트로니카와 록, 그리고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결합한 타이틀곡 「Toy」는 웅장한 곡에 어울리지 않게 약한 문희준의 목소리로 인해 파워가 경감된다. 몰아치는 느낌이 좋은 이모코어 트랙 「Why」 역시 후련하게 터져주지 못하고 답답한 느낌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Toy」의 오리지널 버전이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좀 덜 깎아서 매끄럽진 않지만 대신 날카롭고 더 크게 들리는 사운드가 훨씬 극적인 긴장감을 준다. 답답했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지점이다.
작위성, 개성의 부족이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곡 쓰기 능력에 있어서는 확실히 진일보한 문희준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유약한 보컬, 갇힌 듯 들리는 사운드의 약점은 언젠가는 꼭 보완해야 할 것이다. 작곡, 작사, 편곡을 다 한다고 해서 자기 음악에 대해 100% 장악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머릿속에 담긴 음악적 아이디어나 밑그림들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노래 부르는 데 있어서 풍부한 표현력과 기교를 발휘해야 한다. 로커로서의 확고한 자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의욕만큼이나 세밀한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문희준의 아티스트로서의 자부심은 그렇게 쉽게 손상되지 않을 것이다.
글 / 박효재 (mann616@hanmail.net)
다니엘 메리웨더(Daniel Merriweather) <Love & War>(2009) 몇 년간 팝계는 영국 음악 신이 짜 놓은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만 같다. 정확히 한 해마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질릴 만하면 새로워지는 양질의 빈티지 콘텐츠에 매번 경탄을 금치 못하니 말이다. 2007년 빈티지 소울의 서막을 올린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를 시작으로 2008년의 더피(Duffy)를 거쳐 2009년은 이 우락부락한 남자 가수의 차례다.
형만 한 아우 없고, 본편만 한 속편 없다는 속설이 있지만, 더피는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일으킨 빈티지 소울의 바람을 타고도 비판을 받지 않았다. 이유는 그녀만이 가지는 목소리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빈티지보다 더 빈티지한’ 더피의 보컬은 앨범 <Rockferry> 안에 깊이 스며들어 팝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2009년 출현한 다니엘 메리웨더(Daniel Merriweather)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그의 무기도 역시 ‘남다른 목소리’다. 다니엘 메리웨더의 목소리는 다양한 매력을 지녔다. 힙합 비트와 빈티지 사운드 위에 수놓아진 그의 목소리는 소울을 표방하면서도 현대적이며, 동시에 기름지거나 작위적이지 않다. 작위적이지 않기에 또한 부담스럽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아 다양한 사운드에 안정적으로 접근한다.
목소리를 중심으로 1960~70년대 감성을 세련되게 풀어 놓은 메이저 데뷔 앨범 <Love & War>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Back To Black>을 엮어낸 명 프로듀서 마크 론슨(Mark Ronson)이 힘을 보탰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걸쭉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던 <Back To Black>과 비교해 다소 차별화된 느낌을 풍긴다.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빈티지 사운드와 박진감 넘치는 비트의 향연은 다니엘 메리웨더의 소울풀하고 강인한 보컬과 만나 더없이 화려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뽑아냈다.
상기된 바에 가장 부합하는 트랙은 영국 싱글 차트 8위를 기록한 첫 싱글 「Change」다. 펑키한 비트의 베이스 라인과 브라스 연주가 가져다주는 경쾌함, 거기에 흩뿌리듯 내뱉는 다니엘의 보컬과 왈레(Wale)의 능숙한 랩이 조화를 이루는 이 곡은 빛바랜 소울과 힙합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묘한 중독성을 갖게 한다.
오프닝 트랙 「For your money」도 인상적이다. 간결한 피아노 선율을 바탕으로 지그시 ‘뉴욕’을 읊조리는 그의 체념적이고 건조한 보컬은 이내 신스 스트링과 숀 레논(Sean Lennon)이 연주하는 기타 사운드에 맞춰 마치 울분을 토하듯 솟아오르며 절정에 다다른다.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Red」도 마찬가지. 곡의 초반 어쿠스틱 기타에 맞춰 차분하게 진행되는 그의 보컬은 스트링 사운드가 더해지며 점차 고조되는 곡의 후반부에서 감정의 곡예를 펼친다.
이와 더불어 「Could you」는 앨범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스타일을 가장 쉽고 명쾌하게 구현했다는 점에서 핵심 트랙으로 꼽을 만하다. 둔중한 업 비트와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의 히트곡 「California dreamin'」을 차용한 60년대 빈티지 사운드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다니엘의 차진 보컬과 백업 보컬의 아련한 듯 살랑거리는 코러스는 곡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며 빈티지 사운드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앨범 전반에 깔린 론슨표 빈티지 사운드는 그가 이미 선보인 <Back To Black>이나 솔로 앨범 <Version>의 결과물과 비교해 봤을 때 특별히 신선하거나 창의적으로 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주목해 들어야 할 것은 마크 론슨의 사운드가 아닌 다니엘 메리웨더의 보컬이다. 여기에 그가 직접 써내려간 세밀하고 감성적인 가사까지 더해져 보컬은 더욱 솔직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완전히 녹아드는 다니엘의 목소리는 빈티지 사운드와 결합해 낭만적이며 여유로운 매력을 발산하면서도, 더없이 남성적이고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이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나 더피의 보컬이 채우지 못했던 알 길 없는 허전함에 대해 다니엘이 내려주는 가장 명쾌한 해답이기도 하다. 사뭇 강렬하고 인상적인 데뷔다.
글 / 성원호 (dereksungh@gmail.com)
이담 <Nostalgia>(2009) 감상적인 피아노 소리가 가득한 뉴에이지 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속에 숨어 있던 차분함과 감수성을 끌어낸다. 빠르게 변모하고 발 디딜 곳이 부족한 도시에서 건반은 곤비한 마음에 숨통을 틔워 준다. 그래서 뉴에이지의 존재는 현대사회에서 더없이 고맙다.
비록 미약한 숫자이지만 한국에서도 뉴에이지의 창작과 대중화에 새로운 수혈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지형이라는 본명을 가진 여성 피아니스트 이담은 공중파 방송과 단편영화의 배경음악으로 등장을 알리며 청중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신인이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웠다는 그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 끈을 이었고, 현재 대학 연구 조교로도 활동하는, 면학의 기간이 짧지 않은 내공의 소유자다. <Nostalgia>는 그동안의 노력이 과장되거나 포장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를 담아 정로되어 있다.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14곡은 봄이라는 단어에 잘 입혀져 있다. 「설레임」부터 「봄의 시작」까지 햇살 가득 담긴 날 실내에서 까닥 잊을 수 있는 계절의 냄새를 물씬 품고 있다. 음악으로서의 대체가 충족되는 순간이다.
피아노를 통해 곡마다 이끄는 선율은 튀지 않는다. 귀에 서성이는 멜로디보다 흐트러지지 않은 채 흘러가는 기분은 여일하다. 뉴에이지를 기반으로 어떤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기본에 초점을 맞췄다. 클래식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그래서 유일한 보컬 곡 「따뜻한 봄 햇살」에서도 표현에 있어 별도의 욕심을 부리지 않은 채 분위기를 유지한다.
감상을 중점으로 찾게 되는 장르적 개성 덕에 곡의 청취보다 앨범의 청취가 더 잦은 뉴에이지다. 이담의 <Nostalgia>는 그 특징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고, 당기고 있다. 그래서 남은 건 그녀의 존재다. ‘공중파 프로그램 <스친소>, <우리 결혼했어요>의 배경음악 삽입곡 「Ann arbor」’라는 긴 홍보 문구가 보여야 인지할 수 있는 이담의 곡이 아니라 「Ann arbor」 자체만으로도 이담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알리는, “그녀의 곡이 어느 프로그램에 쓰이고 있다”라는 역할의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곡이 필요하다.
청중들에게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장르가 가진 아킬레스건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푸념으로 넘길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담 역시 <Nostalgia>를 통해 대중과 만나면서도 욕심을 내야 할, 그녀가 넘어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
글 / 이종민 (1stplanet@gmail.com)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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