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명가 ‘블루 노트(Blue Note)’. 모던 재즈의 분수령이라 칭송된 이 레이블엔 비밥(bebop)과 하드 밥(hard bop)으로 진행되는 모던 재즈 전성시대의 주역들이 포진되어 있다. 비밥의 작가 델로니어스 몽크와 버드 파웰을 시작으로 존 콜트레인, 아트 블레이키, 소니 클락, 캐논 볼 애덜리, 덱스터 고든, 호레이스 실버로 이어지는 명연 일대기는 그 자체로 재즈의 역사였다.
그 블루 노트가 올해 2009년으로 창립 70주년을 맞이한다. 1939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재즈의 고장 미국으로 이주한 유태계 독일인 알프레드 라이언이 설립한 블루 노트는 평소 그가 심취했던 재즈를 음반으로 직접 만들어보자는 소망에서 비롯했다. 1939년 1월 6일, 부기우기 피아니스트 알버트 애먼스의 78회전 SP 음반 50장을 출시하며 출범한 블루 노트는 이듬해 1940년 6월, 색소포니스트 시드니 베시에의 「Summertime」이 히트를 치며 레이블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지속적인 레코딩 작업으로 레이블의 규모와 카탈로그를 구축하게 된 알프레드 라이언은 1947년 델로니어스 몽크, 팻츠 나바로, 버드 파웰 등 비밥 주역들의 앨범을 연이어 출시하며 당대 재즈의 중심으로 부상했고, 1954년 2월, 하드 밥 시대의 개막을 알린 아트 블레이키의 역작 <A Night At Birdland Vol.1>을 시작으로 블루 노트의 전성시대는 시작된다. 아트 블레이키, 호레이스 실버, 소니 클락, 리 모건, 웨인 쇼더, 허비 행콕, 프레디 허바드 등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블루 노트를 통해 데뷔해 대가로 자리매김했고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던 소니 롤린스,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캐논볼 에덜리도 블루 노트 사단에 동참한다.
블루 노트가 이런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을 보유할 수 있었던 건 ‘아티스트 지상주의’로 집약되는 운영 철학을 고집한 설립자 알프레드 라이언의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다. 어느덧 “블루 노트에는 거장들의 레코딩만이 있다”라는 일반적 인식이 통용될 정도로 알프레드 라이언은 아티스트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실험성을 적극 수용했고 그 결과 독창성과 예술성이 빛나는 명연들이 탄생될 수 있었다. 아울러 대가의 음반 녹음 사이드 맨으로 참여했던 아티스트를 적극 발굴, 음반 발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젊은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성을 펼칠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 다시 말해 “아티스트를 위한 아티스트에 의한 레이블”이 바로 블루 노트였던 셈이다.
재즈사가 기억할 명연과 명인을 배출했다는 의미에 더해 블루 노트는 재즈 사운드와 재킷 디자인으로도 재즈 레이블의 독보적인 위치를 획득했다. 1953년부터 활동한 전속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는 풍성한 베이스의 울림, 수정같이 맑은 피아노의 타건, 경쾌하고 명징한 색소폰 사운드를 주조하며 루디 반 겔더 사운드(RVG Sound)라는 재즈 사운드의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레이블 동업자 프란시스 울프가 포착한 생동감 있는 사진과 독특한 문자 도안을 활용한 리드 마일스의 아트 웍이 만난 쿨(cool)한 자켓 디자인은 재즈 관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하며 “재즈 미학의 절대 기준”으로까지 칭송된다.
이렇듯 모던 재즈의 분수령이라 칭송된 블루 노트, 하지만 존폐 위기의 시련도 있었다. 1960년대 중후반, 비틀즈와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으로 대변되는 록음악 인기 대세에 밀린 블루 노트는 차츰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당시 록음악의 부상은 재즈의 위기를 뜻했고, 이 여파는 최고의 재즈 레이블이었던 블루 노트마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설립자 알프레드 라이언은 은퇴를 선언하며 1965년 레이블을 리버티 레코드에 매각했고, 알프레드가 떠난 자리를 대신한 동업자 프란시스 울프도 1971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블루 노트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블루 노트 재건을 선언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프로듀서 마이클 쿠스쿠나였다. 마이클 쿠스쿠나는 그동안 블루 노트를 통해 발표된 명연들에 미 발표곡을 수록해 재발매하는 식으로 블루 노트의 존재를 알렸고, 재즈 마스터피스의 보고 블루 노트를 살리려는 그의 노력에 대중들도 차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자칭 ‘블루 노트 폐인’이었던 메이저 음반사 EMI 사장 브라이스 룬더발은 블루 노트 재건 지원군을 자처하며 레이블을 인수, 마이클 쿠스쿠나와 함께 본격적인 레이블 재건 작업에 돌입한다. 영원한 전설로 기억될 뻔한 블루 노트, 하지만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찬란히 부활했고, 1985년 2월 22일, 뉴욕 타운 홀에선 블루 노트 재건 축하 공연 ‘One Night With Blue Note’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블루 노트의 전성기의 주역들과 재건된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 활동하게 된 뮤지션들이 함께한 이 콘서트는 블루 노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른 재즈사의 위대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재건된 블루 노트는 이후 과거의 영화에 안주하지 않고 포스트 밥, 신 정통주의 등 현대 재즈의 새로운 경향을 주도하며 모던 재즈 시대에 비견될 재즈 왕국으로 거듭난다. 블루 노트는 재건 1호 아티스트인 스탠리 조던을 시작으로 미쉘 페트루치아니, 다이안 리브즈, 카산드라 윌슨, 재키 테라슨, 조 로바노, 곤잘로 루발카바를 소개했고 이들을 대가로 부상시킨다. 아울러 90년대 초 에이시드 열풍의 진원지가 된 US3와 밀레니엄 수퍼 디바로 등극한 노라 존스을 통해 빌보드 차트와 그래미상을 휩쓰는 이변을 낳은 블루 노트의 저력은 지금까지도 신선한 충격으로 기억된다.
3장의 CD로 구성된 블루 노트 70주년 기념 앨범은 블루 노트의 출범을 알린 알버트 애몬스의 「Boogie woogie stomp」(1939)를 시작으로 블루 노트의 현재 진행형이라 할 슈퍼 디바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2002)에 이르는 ‘재즈의 위대한 순간들’을 연대기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초기 블루 노트 시절부터 모던 재즈의 전성기였던 1950년대의 명연들을 집약한 CD 1엔 소프라노 색소폰을 대중화시킨 시드니 베시에의 고전 「Summertime」(1940), 비밥 피아니즘의 창시자 델로니어스 몽크의 「Criss cross」(1947), 존 콜트레인의 「Blue train」(1957)과 캐논볼 애덜리의 「Autumn leaves」(1958), 하드 밥의 지존 아트 블레이키의 「Moanin」(1958), CBS FM <올 댓 재즈> 시그널 음악으로 유명해진 소니 클락의 「Cool struttin'」(1958)을 수록했다.
블루 노트의 전성기인 1960년대의 명연을 수록한 CD 2엔 펑키 재즈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의 「Song for my father」(1964), CF 음악으로도 친숙한 허비 행콕의 「Cantaloupe island」(1964), 블루지한 기타 선율이 압권인 케니 버렐의 「Midnight blue」(1963)를 소개한다.
블루 노트의 현재와 미래를 소개한 CD 3엔 재출범한 블루 노트 1호 뮤지션인 스탠리 조던의 「Freddie freeloader」(1984)를 필두로, 에시드 재즈 붐을 몰고 온 US3의 「Cantaloop (Flip fantasia)」(1993)와 여전히 진행 중인 블루 노트 신화의 주역들인 노라 존스, 다이안 리브즈, 재키 테라슨, 카산드라 윌슨, 테렌스 브랜차드의 대표곡들을 담고 있다.
글 / 정우식 (jassbo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