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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밝음, 탁함과 생기로 장식된 앨범 - 김현식 <비처럼 음악처럼>(1986)

조용필이 여전히 주류를 호령하던 시기였지만 ‘가왕’에 맞선 ‘가객’의 풍모가 상대적으로 날것과 거친 것에 잘 반응하는 20대, 언더그라운드를 매료시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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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인디 음악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음을 실감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장기하를 비롯해 재치 있는 표현과 실험성 강한 음악을 하는 가수들이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되고 공중파 방송 출연도 잦아진 것을 보면 문득 오래전 한국 대중음악의 언더그라운드 활동의 포문을 열었던 선배 음악가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성지였던 동아기획의 대표 가수, 3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해 아쉬움이 컸던 젊은 절창 김현식이 그런 인물 중 하나입니다. 다른 가수들에게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진한 혼이 느껴지는 보컬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던 그의 세 번째 음반을 소개합니다.

김현식 <비처럼 음악처럼>(1986)

고(故) 김현식의 가장 빛나는 절창은 「비처럼 음악처럼」이다. 국내 대중 음악사를 수놓은 명곡 설문을 할 때마다 이 곡은 그 절창과 완성된 구성 때문에 늘 높은 순위에 꼽히곤 한다. 성숙과 쇠락을 모두 겪은 그의 부침 많은 음악 인생은 「비처럼 음악처럼」과 이 곡을 타이틀로 내건 3집 앨범에서 포물선의 꼭짓점에 도달한다.

술로 나날을 보냈다는 김현식의 목소리는 앨범이 더해지면서 점점 탁해진다. 2집의 「어둠 그 별빛」 「사랑했어요」가 상대적으로 여리다면, 4집의 「언제나 그대 내 곁에」는 약간 쉰 듯하게 들린다. 그러다가 6집이자 유작인 「내 사랑 내 곁에」에 가면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목소리만 보더라도 이때 가장 정력적인 톤을 구사했다. 어둠과 밝음, 탁함과 생기가 가장 이상적으로 만나 있는 시기다.

「비처럼 음악처럼」의 가치는 온몸으로 쏟아내듯 부르는 것이 얼마나 큰 음악적 감동을 자아내는지 증명한다는 데에 있다. 대중들의 고강도 반응만 보더라도 이는 명백하다. 「비처럼 음악처럼」은 발표 당시에 앨범 판매고를 30만 장 이상 끌어내며 빅 히트했다. 특히 노래는 대학가에서 인기가 많았다. 조용필이 여전히 주류를 호령하던 시기였지만 ‘가왕’에 맞선 ‘가객’의 풍모가 상대적으로 날것과 거친 것에 잘 반응하는 20대, 언더그라운드를 매료시켰을 것이다.

나중 ‘봄여름가을겨울’과 ‘빛과 소금’으로 독립하는 김종진, 전태관, 박성식, 장기호가 이 앨범에서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도 경이다. 바로 다음해인 1987년에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해 놀라운 재능을 쏟아낸 뒤 요절한 유재하도 참여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한 봄여름가을겨울이란 밴드를 통해 김현식은 전작의 스트링 위주의 발라드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밴드적 색깔을 내기 시작한다.

에너지가 훨씬 강해진 쩌렁쩌렁한 사운드가 흘러나오자 그의 탁성은 한층 탄력을 받는다. 「비 오는 어느 저녁」에서 들리는 센 소리와 라이브에 강한 편곡은 그의 음악을 훨씬 박력 있고 살아 있게 만들었다. 「눈 내리던 겨울밤」과 「떠나가 버렸네」의 후반부 포효도 이런 밴드적 사운드가 받치고 있지 않았다면 훨씬 감동이 덜했을 것이다.

장기호가 작곡한 「그대와 단 둘이서」와 김종진이 작곡한 「쓸쓸한 오후」는 강하고 거칠었던 앨범에 재즈의 편안함과 세련됨을 더했다. 작곡으로 참여한 두 사람의 음악적 취향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백 밴드로 오해된 봄여름가을겨울의 앨범 속 지분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유재하도 훗날 자신의 앨범에 실리게 되는 팝의 금자탑 「가리워진 길」을 내놓는다. 유재하의 곡이 가진 쓸쓸한 부드러움을 알았던지 김현식은 보컬에 효과까지 써가며 최대한 부드럽게 부르려 애쓴다.

방송국 피디들의 후문에 의하면 그의 생활은 상당히 방탕했다고 한다. 한번은 출연료를 먼저 지급하자 그 돈으로 이미 진탕 술을 마시고 와서 라이브를 했다고. 하지만 그런 얘기를 듣고도 큰 실망이 들지 않는 것은 적어도 음악 속에 그걸 속여서 담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를 노래해도 처절하고 애가 타게 불렀다. 외로웠을 것이다. 그 절절함이 전성기의 가창력 속에 녹아든 진짜 절창이 바로 <비처럼 음악처럼>이다.

글 / 이대화 (dae-hwa82@hanmail.net)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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