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박찬일의 발칙한 섞어찌개
민어가 아무리 맛있어 봐야 민어 맛이지 - 『그 남자네 집』
민어는 식도를 자극하는 통쾌한 맛이 있었다. 두껍게 썰어 질감을 살린 횟점이 식도를 넘어가며 위에 포만의 자극을 시작한 셈이었다.
…살을 발라내고 남은 뼈와 살까지 합치니까 큰 냄비로 하나 가득했다. 곰국을 끓일 때나 쓰는 큰 솥에다 애호박 썰어 넣고 고추장 풀고 끓인 민어찌개 맛은 준칫국과는 또 다른 달고 깊은 맛이 있었다. 민어찌개 끓일 때는 보리고추장을 써야 하고, 회 먹을 때 쓰는 초고추장은 찹쌀고추장으로 만들어야 하고, 민어구이는 연탄불에 굽지 말고 숯불을 피워서 양념장을 발라가며 반짝반짝 윤기가 나게 구워야 한다는…
사실 박완서 소설의 주인공은 시댁이 철마다 치르는 미식 행사랄까, 음식 추렴에 진절머리를 낸다. 그깟 민어가 아무리 맛있어봐야 민어일 테지. 소설 속의 새댁은, 그러니까 아마도 작가의 어릴 적 분신은 혐오의 기분까지 한껏 내비치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맛있는 민어를 먹은들 그게 민어 맛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느냐는 한탄을 하고 있었던 셈이랄까. 나는 그런 선생의 태도에 동의하며 책장을 넘겼더랬다. 그러면서도 생생하게 묘사되는 민어 복달임이나 민어 요리법은 어쩔 수 없이 군침을 삼키게 했다. 그것은 어쩌면 민어의 맛이라기보다 작가의 입담이 더 좋았던 까닭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기괴한 요리 재료만 다루는 엉뚱한 요리사이자 식당 주인인 C를 떠올렸다. 그는 아마도 전국 모든 산지의 전문 수집상들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휴대폰이 ‘우르릉’ 울면 그는 “아, 김 사장!” 따위의 감탄사를 지르면서 전화를 받았다. “흥흥, 그래? 그놈들이 나타났다는 거지?” 폭력배 두목처럼 그는 보고를 받았다. 철마다 오르내리는 회유성 어류들의 길목을 지키고 있는 선장들의 전화를 받는 것이 그의 중요한 일이었다. 감성돔이 오르내리면 그는 녹동 언저리의 선장의 전화를 받았다. 여름에 갑오징어 떼가 하얗게 바다에 풀리면 그는 낚시로 잡은, 거인의 샌들만큼 큰 놈들을 특별히 받아냈다. 언젠가 그가 한여름에 남해안에서 들고 온 아이 머리통만 한 굴딱지에 사람들은 입을 쩍 벌렸다. “진짜 굴 맛은 여름에 보는 것이야.” 그는 굴칼로 딱지를 벌려 주먹 크기의 굴을 파내며 말했다. 굴이 진짜 여름에 더 맛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봄이나 가을이라고 얘기했더라도 그것은 그냥 진리였다. 바닷속에 사는 생물들에 관한 한 그는 권위가 있었다. 여름 굴에서 훅 달아오른 여름 바다 냄새가 훅 끼쳐왔다.
민어도 그의 손아귀에 있을 것이다. 장마나 태풍이 와도 녀석의 수족관에는 괴물이 늘 들어앉아 있었으니까. 빨래판처럼 거대한 자연산 광어라든가, 하다못해 주먹 크기의 전복이라도 수족관 창에 들러붙어 있었다. 아무나 C를 흉내 낼 수는 없었다. 바닷속이란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저 바다 밑 푸른 파도 아래 심해의 일을 우리가 어찌 알랴. C는 자신이 구한 해물 요리를 비싸게 받았다.
“누구든 축산시장에 가면 좋은 고기를 구할 수 있지. 푸른색 등급 도장을 받고 잘 정돈된 살코기가 냉장고에 들어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냥 손가락으로 그 고깃덩이를 가리키면 된다네. 그러나 바다 한가운데 나가 검푸른 바다를 가리켜 보게나. 누구도 당신들에게 생선을 내주지는 않지.”
나는 그가 궤변을 늘어놓는다고 느꼈지만 표시를 낼 수는 없었다. 그의 표정은 단호했고, 바닷속의 입체적 깊이를 꿰고 있는 사람의 권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크고 귀한 생선이나 해물을 자신의 수족관에 들어오게 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최고급 호텔의 구매담당도 그에게는 뒷줄로 밀리기 일쑤였다. 그는 뚝심 있는 거래처였고, 무엇보다 전국의 선장들과 도매상들을 뚜르르 꿰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마치 우럭의 거죽처럼 검고 윤기가 흐르는 얼굴과 아귀처럼 단단한 턱, 민어의 눈처럼 붉게 충혈되어 부리부리한 눈빛에 기가 죽지 않는 이가 드물었다.
C와 여름 복달임으로 민어를 추렴하기로 한 것은 얼떨결에 이루어진 약속이었다. 아직 이른 여름, 누군가 술자리에서 민어 복달임을 다부지게 했던 자랑을 늘어놓았다. 술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던 C는 씩 웃으며 “진짜 민어를 보긴 보았소?” 하고 물었다. 파장이 다 되어 김빠진 술맛처럼 밍밍하던 술자리에 아연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다들 ‘그래, C의 민어를 한번 먹어보자’는 결기가 가득했다. 잊고 있었던 그날의 약속은 C가 불쑥 내게 전화를 걸어오면서 상기됐다. 한 달은 일찍 시작된 폭염 탓이었다. 그는 전화기 너머에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씨가 더우니 바닷물도 일찍 뒤집어졌답니다. 오늘 수산시장에 가봅시다. 자정에 만나시지요.”
나는 단골 생선가게로 직행했다. …장수가 긴 막대 끝의 갈고리로 아가미 있는 데를 콱 찍어서 반쯤 들어올려 보여준 민어는 어마어마하게 큰 생선이었다. 아가미 속엔 시뻘건 점액질의 진이 흐르는 듯했고 눈도 붉게 충혈 돼 있었다.
C의 차를 얻어 타고 올림픽대로를 달리자 멀리서 오징어 집어등처럼 환하게 불을 밝힌 수산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술꾼들을 태운 택시와 늦게 귀가하는 승용차들이 필사의 속도로 내달리며 소음을 뱉어냈다.
수산시장에서 어리숙하게 행동했다가는 경을 치게 된다. 특히 자정 무렵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매 시간에는 생선 궤짝에 치여도 사과 한마디 얻어 들을 수 없다. 그게 선수들이 우글거리는 생존 현장의 룰이었다. 고등어와 오징어 같은 서민 생선들이 차곡차곡 들어찬 궤짝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 틈을 천천히 걸었다. 그는 어느새 장화로 갈아 신고 있었는데, 수산시장에 도매상 하나쯤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여유로웠다. 그는 경매사들의 마이크 소리가 시끄러운 경매장을 흘긋 보더니 난전에서 작은 문어 한 마리를 샀다. 그리고는 수산시장 지하의 식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아직 경매가 이르오. 속이나 덥힙시다.”
소주를 두어 병 비우고 그는 다시 경매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민어 경매가 막 시작될 참이었다. 좀 과장해서 어린애 손톱만 한 크기의 커다란 비늘을 달고 있는 거대한 민어들이 시멘트 바닥에 늘어섰다. 손가락을 연신 펴 보이며 경매를 하는 경매사들 사이로 그는 구경꾼처럼 돌아다녔다.
“오늘은 대물이 별로 보이지 않는군요. 쓸 만한 녀석들은 산지에서 바로 채가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그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역시 산지에서 귀물들을 찍어올리는 꾼이었다. 그의 시들한 표정에도 제법 실해 보이는 민어들이 눈에 띄었다. 민어는 잡혀 올라오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죽어버린다. 사람들은 그걸 ‘성질이 급해서’라고 표현한다. 고등어나 멸치 같은 생선도 그렇다고들 한다. 정말 성질 급한 생선이 먼저 죽는 걸까. 잡힌 후에도 좀체 죽지 않는 조개는 성질이 아주 느긋한 걸까. 하긴, 조개가 수관을 발처럼 느긋하게 내밀었다가 거둬들이는 동작을 보면 느긋하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긴 하다.
허옇고 두터운 가죽, 붉게 충혈된 눈, 촘촘하고 억세 보이는 이빨이 민어의 모습이다. 살아 있는 민어의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녀석이 바닷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헤엄치고 노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우리가 보고 있는 민어는 어쨌든 몇 시간 전 어느 어부의 낚시나 그물에 걸리기 전까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기가 사후 경직이 일어나듯 생선도 그렇다. 붉거나 푸르거나 선명한 색채의 몸통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산소 부족으로 청색증이 돌 듯이 사악하고 창백한 푸른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그것이 생명이 사라지는 과정이다. 요리는 생명을 위해 복무하지만, 그 재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에서 얻는다. 육식하는 사람의 태생적인 딜레마랄까, 번민은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나는 민어의 붉은 눈과 코끼리 가죽 같은 피부 빛깔을 보면서 그 묘한 부조화에 호기심이 일었다. 피돌기가 멈춘 몸통은 푸른빛을 띠는데, 눈은 어떻게 충혈된 것처럼 붉게 보일까. 차가운 피를 가진 생선의 숙명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C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는 “시장 구경 잘 했느냐”고 물었다. 수산시장이 물개쇼장도 아니고, 요리사인 내가 뭘 새롭게 구경할 게 따로 있겠나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민어 경매는 빠르게 끝났다. 대물이다 싶은 것들은 금세 임자를 찾아 사라졌고, 작아서 마릿수로 박스에 담겨진 것들만 중간도매상들의 손을 기다리며 경매장 한켠에 쌓아졌다. 그는 민어를 사지 않았다. 그리고는 전화를 기다리라고만 말했다.
시어머니가 그 늠름하고 잘 생긴 생선을 어떻게 요절을 내는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대가리를 자르고 뱃속에서 조심스럽게 알과 부레를 꺼내는 걸 보면서… (중략) 시어머니는 두 주머니쟀 기다란 알이 다치지 않도록 채판 위에 눕히고 소금을 뿌렸다… (중략)
"저게 군내 안 나고 윤기 있게 말라 어란이 되기만 하면 오늘 이 민어는 거저먹는 거나 마찬가지란다. 명월관이나 국일관 같은 고급 요릿집에서 어란은 최고로 비싼 술안주라는 구나. 피리창처럼 얇게 썰어서 접시에다 펴놓고 몇 천 원씩 받는다니까."
C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의 멤버들이 모두 모였고, 모두 C의 민어가 도대체 어떤 놈일까 궁금해서 목을 빼고 앉아 식전에 나온 해물 나부랭이를 지분거리고 있었다. C가 주방 식구의 도움을 받아 참치를 해체하는 커다란 도마에 생선 한 마리를 얹어서 멤버들 앞에 섰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감탄 대신 탄식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끙 하고 뱉었다.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민어였던 까닭이다. C라면 1미터가 넘는 도마가 모자라 머리 두엇쯤은 더 튀어나올 만큼 큰 대물을 구해올 것이라 다들 믿었으리라. C는 좌중의 실망의 탄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어의 커다란 머리만 쓰다듬고 있었다.
“민어라고 다 민어가 아니지요. 임자도에서 낚시로 올린 민어요. 산지에서는 뻘민어라고도 하지요.”
임자도는 목포 앞바다에 보석처럼 흩어진 신안군에 속하는 섬이다. 소금밭으로 유명한 증도 가는 길에 있는 제법 큰 섬이다. 예전에는 이 섬에서 파시가 열렸고 민어가 거래됐다. 이젠 모두 꿈같은 일이다. 민어는 이제 대부분 도시의 대형 어시장으로, 백화점으로, 호텔로 곧바로 실려 간다. 임자도 앞바다는 물이 흐리다. 뻘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새우와 작은 갑각류 같은 민어의 먹이가 풍부하다. 가장 맛있는 민어가 이곳에서 나온다는 말은 거저 생긴 얘기는 아닌 것 같다.
C가 맛보기로 돌린 회가 한 점 입에 들어오자 다들 씹으면서 입을 다물었다. 광어회 같이 혀에 감기면서 잇몸에 찰싹 들러붙을 것 같은 차진 맛도 아니고, 참돔회처럼 고소한 맛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방어회처럼 기름져서 입천장이 미끌거리는 풍성한 맛도 아니었다. 뭐랄까, 저 원시의 뻘에서 나는 나무 냄새가 났다. 살은 탄력이 적은 대신 묵직하게 씹혔다. 크림을 한 스푼 떠먹은 것처럼 고소한 맛이 돌면서 풍부한 질감이 살아났다. C는 “민어는 광어나 돔처럼 얇게 편을 떠서 먹는 회가 아니지요. 두껍게 썰어서 속살 맛이 우러나오도록 꾹꾹 씹어줘야 합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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