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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바람 같은 기운으로 - 한희정 & 아소비 섹수 & 이정현

한희정 <끈> - 인디와 대중의 소통을 기대하며. <br>아소비 섹수 &lt;Hush&gt; -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원한다면.<br> 이정현 &lt;Avaholic&gt; - 돌아온 테크노 여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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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을 춤추게 만드는 바람 한 점이 간절해지는 요즘입니다. 종일 내리쬐는 직사광선을 맞으며 광합성 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분에 넘치면 달아나고 싶은 게 전형적인 사람 심리인가 봅니다. 햇빛을 가리고 냉방 시설이 잘 돼 있는 곳에 들어가보아도 자연이 주는 바람만큼은 못한 게 사실이죠. 이렇게 점점 기온이 올라가는 때에는 바람처럼 산산한 느낌을 주는 음악을 찾게 됩니다. 더더와 푸른새벽 출신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홍대 얼짱 여가수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한희정의 새 앨범, 데뷔 때부터 평단의 호평을 받는 뉴욕의 인디밴드 아소비 섹수의 3집, ‘테크노 여전사’ 하면 떠오르는 그 이름, 이정현의 첫 미니앨범은 각각 미풍, 약풍, 강풍의 형태로 시원함을 제공할 것 같습니다.

한희정 <끈>(2009)

소리의 잔근육을 제거하고 목소리의 온도를 높여 부르지만 한희정의 음악은 여전히, 지독히도 1인칭이다. 문장의 주어를 너와 우리로 치환해도 노랫말은 내부로 침잠하고 있으며 멜로디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쿠스틱한 사운드로의 변신 외에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감상 후 오랜 여운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이 진한 감동으로의 끈을 끊어놓고 있는 걸까.

<너의 다큐멘트>에서는 기본적으로 소리를 공간감 있게 구성한 가운데 때로는 록킹하게, 때로는 일렉트로니카의 잔향이 묻어나오면서 나름 다채롭고 신비한 한희정의 음악 세계를 펼쳐 보였다. 전작과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앞선 탓인지 이번엔 전체가 어쿠스틱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끈>이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순전히 어쿠스틱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첫 곡 「Acoustic breath」는 제목이 암시하듯 어쿠스틱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곡이지만 귀에 잘 들어온다.

문제는 어쿠스틱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희정의 음악적 기초 체력이 그만큼 탄탄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번 미니앨범은 전체적으로 참신한 음악적 아이디어나 좋은 멜로디를 써내는 능력보다는 예술가적 이미지에 의존하는 음악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공감을 자아낼 수 없는 이런 작가적 나르시시즘은 거북스럽고 때로는 강압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인디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비춰질까 우려스럽지만, 이렇게 빈약한 기초 체력과 자의식 과잉으로 빚어진 음반이 나올 때마다 대중들과 인디의 거리감이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음악적 주관의 부재로 타인의 의견에 너무 쉽게 흔들리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의 음악을 객관적으로 볼 줄 모르고 계속해서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고집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래서는 인디와 대중의 소통은 더욱 요원해진다.

이 음반에 소통의 의지가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보다 소통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어쿠스틱으로의 방향 전환은 가수와 대중 사이에 일체의 가식을 걷어내 맨얼굴로 서로를 만나고 싶은 소망의 발현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소망은 어디까지나 맨얼굴을 드러내는 용기만 가지고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만의 세계를 깨고 나오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이다. 어쩌면 그게 더 큰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글 / 박효재 (mann616@hanmail.net)

아소비 섹수(Asobi Seksu) <Hush>(2009)

구름 위를 걷는다면 이들의 음악을 들었을 때의 기분과 같지 않을까? 뉴욕 출신의 혼성 ‘슈 게이징 드림 팝’ 밴드인 아소비 섹수(Asobi Seksu)의 신보는 슈 게이징 드림 팝이라는 밴드의 지향에 걸맞게 꿈꾸는 듯한 사운드와 몽환적인 분위기가 압도하는 앨범이다.

슈 게이징 록(shoe gazing rock)은 소수의 마니아 음악에 속한다. 그럼에도 이 스타일은 ‘예쁜 멜로디’를 강조한다. 키보드와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일본계 여성 유키 치쿠다테(Yuki Chikudate)와 미국인 기타리스트 제임스 한나(James Hanna), 둘로 이루어진 뉴욕 출신의 아소비 섹수 역시 예쁘고 부드러운 멜로디와 하모니를 생명으로 한다.

특히 이번 앨범은 드림 팝의 비중이 대폭 늘었다. 기존의 앨범들보다 노이즈가 줄어들었고 좀더 대중 지향적으로 변모, 팝적인 멜로디로 친숙함을 높였다. 이런 면에서 노이즈 슈 게이징 록에 거부감이 있던 이들에게도 듣기 어렵거나 지루하게 들리지 않을 것 같다.

노이즈 슈 게이징 록에 열광했던 아소비 섹수의 골수팬들에게 그러나 신보는 실망스러울 법도 하다. 그들의 시그니처였던 노이즈 사운드를 대폭 줄이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멜로디로 대중성을 강화한 탓이다. 그들의 앨범 제목처럼 ‘hush’ 즉 ‘쉿! 조용히!’ 만들려고 했던 의도였을까. 여전히 백그라운드에서 울려 퍼지는 기타의 노이즈나 주변을 쾅쾅 울리는 드럼 비트, 떠다니는 듯한 몽환적인 유키 치쿠다테의 목소리는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상대적으로 강렬하지는 않다.

첫 곡부터 앨범의 콘셉트가 부드러움과 따뜻함임을 알려주는 「Layers」, 기타와 신시사이저로 몽롱함을 더하며 7인치 싱글로도 발매된 「Familiar light」, 타이틀곡으로 가장 밝고 경쾌해 후반부로 갈수록 빠른 드럼 비트가 인상적인 「Me & Mary」, 마치 말을 타고 달리다가 점점 전진하는 듯한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Sing tomorrow's praise」 등 다양하게 변화하는 기타 리듬과 드럼, 예전보다는 줄어들었지만 다양한 노이즈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12곡의 수록곡 모두 들어볼 만하다.

떠 있는 듯한 보컬과 휘몰아치는 듯 힘이 넘치는 드럼 비트는 자칫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어울림의 미학을 발산하며 묘한 매력을 발한다. 마치 수록곡 가운데 「Risky & pretty」가 이중적인 의미이면서도 한껏 조화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굳이 술에 취하지 않아도 이 앨범을 듣다보면 어느새 마치 반쯤 취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어둡거나 우울한 모습이 아니라, 이 앨범 재킷의 색깔처럼 순백을 간직한 소녀의 모습일 것이다. 기존의 록을 듣기 힘들었던 여성들이라면 이 앨범을 꼭 한번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아마도 록의 새로움에 흠뻑 빠져들게 될 테니까.

글 / 김아람 (84carnival@hanmail.net)

이정현 <Avaholic>(2009)

올해로 가수 활동 10주년을 맞는 이정현이 그동안 무대에서 주로 보여준 이미지는 광기로까지 느껴지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획득한 ‘테크노 여전사’와 진한 화장, 원색의 가발, 특정 코스튬으로 꾸며낸 ‘큐트 걸’에 쏠렸다. 두 번째 앨범 <Peace>의 타이틀곡 「평화」에서는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Rhythm nation」을 연상시키는 콘셉트로 뉴 잭 스윙을 시도해 남성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선호하는 테크노 댄스음악과 귀여움을 강조한 분위기의 곡, 혹은 둘의 혼합으로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구축해왔다.

처음 발표하는 미니앨범이자 지난 6집 <Fantastic Girl> 이후 근 3년 만에 발표하는 신곡의 방향성도 이때껏 거쳤던 자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트렌드를 고려해 훅 부분을 강조한 「Vogue girl」과 전자음을 탑재한 힙합풍의 곡 「넌 내꺼」는 이정현 특유의 깜찍함으로 듣는 이에게 친근감을 안긴다. 왈츠를 시도한 「Miro II」가 조금은 색다르며, 어둡고 무거운 체취를 내는 클럽튠 「Crazy」와 「2night」으로 관능미를 획득하고 있으나 10년째 굳게 뿌리를 내린 테크노 여전사와 큐트 걸의 형상을 뒤집어 놓을 만큼 위력적이지는 못하다.

독자적 스타일이 쉽게 붕괴되지 않도록 외벽을 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정현은 단순한 모양새를 고수함으로써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아성을 건립하는 데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에 유채영이 「Emotion」으로 테크노 여제의 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였으나 폭발하는 무대 장악력으로 이정현이 쾌승을 거두었으니 처음부터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또 수많은 여성 가수가 ‘섹시’라는 타이틀을 두르고 나와도 그녀와 경합을 벌일 영역은 아니어서 비교적 안전했다.

장기 군림하면서 왕좌를 지키고 있지만, 이것이 때로는 자기를 속박하는 족쇄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미지가 달라붙으면 웬만한 변신으로는 떼어내기 어렵다. 이립(而立)이 넘어 귀여움을 부각하는 게 슬슬 만족스럽지 못할 날이 올 테고, 음악에 욕심이 강하게 들면 무도회장용 댄스곡이 아닌 완성도를 갖춘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동경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노래로 가공한 인격이 피부처럼 밀착했을 때에는 간단히 벗어버릴 수 없다. 나이 듦과 함께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가수는 이를 유념해야 한다.

글 / 한동윤 (bionicsoul@naver.com)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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