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불가능하고 또 확실히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단식은 점진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 뿐 결실이나 파괴에는 도달할 수 없는 운명이다. (…) 단식 예술가는 너무 많이 나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이란 행위 속에 내재된 위험이다.
이것은 단식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던 어떤 남자의 이야기다. 한때 그는 충격과 감탄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가 굶주림을 관조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단식광대, 그의 얼굴은 수척하다 못해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는 우리에 들어앉은 채 관객들의 시선을 받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곤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의심했다. 일반인으로 구성된 감시인단이 번갈아 망을 보기도 했지만, 단식광대가 몰래 음식을 먹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누구도 진실로 쉴 새 없이 단식이 행해지고 있는지 자기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것을 아는 것은 다만 단식광대 자신뿐이었다. 그만이 단식하는 자이자 동시에 단식에 만족하는 관객이었다. 그런데 그는 안타깝게도 그 일로 만족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 본문 중에서
그의 유일한 불만은 단식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흥행주와의 계약에 따라 그는 최대 40일까지만 단식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좀더 오래, 무한히 오래 계속할 수 있는데, 어째서 바로 지금, 그의 단식이 최고의 경지까지 다다르지 않은 지금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가 단식을 계속하는 일을 견뎌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관중들은 그것을 참으려 하지 않는가?’ 그러나 단식을 극한까지 밀고 가려는 그의 의지는 단 한 번도 관철되지 않은 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사람들은 단식광대를 잊었다. 그들은 새로운 구경거리를 향해 떠났다. 수천 명의 관중에게 둘러싸여 환호와 갈채를 받았던 그는 이제 늙고 초라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그는 그동안 단식에 너무 열중해 있었다. 결국 단식광대는 과거의 명성을 밑천 삼아 서커스단에 고용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아무런 주목을 끌지 못한다. 사람들은 서커스 동물들에게만 열광할 뿐, 늙은 광대 따위에게는 눈길 한번 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평생 소원하던 대로 단식을 계속할 수 있었다. 잊히고 소외된 채, 죽음이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줄 때까지.
「단식광대」는 카프카 말년의 작품이다. 그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육필로 쓴 그의 마지막 편지를 본 적이 있다. 프라하에 있는 카프카 박물관에서였다. 흔들리듯 불안한 글씨 위로 각혈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제는 세월의 더께 속에 빳빳하게 말라버린 검붉은 얼룩.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 오래된 핏자국이 마치 내 마음 속에 뚝, 뚝 듣는 것처럼 아프게 느껴졌다. 임종을 앞두고 카프카는 그의 소설 속 단식광대처럼 음식물을 입으로 전혀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폐결핵이 후두까지 전이됐기 때문이다. 말년에 그의 몸무게는 두꺼운 옷을 껴입고도 49kg에 불과했다. 그는 41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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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박물관 가는 길 |
카프카 박물관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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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박물관 입구 |
카프카 박물관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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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박물관을 찾아간 것은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프라하 시내를 약간 벗어난 한적한 주택가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건물이었다. 특히 박물관 내부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마치 카프카의 소설 속으로 곧장 들어온 것처럼 극적이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지하로 이어지는 공간은 연극 무대 같은 느낌을 줬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가면 삐딱한 전신거울 하나가 붉은 조명을 받으며 서 있다. 이어지는 공간은 검은 라커들로 빽빽하게 들어찬 복도. 각 라커에는 카프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어두운 복도를 따라가면 온통 거울로 디자인된 조그만 방이 나온다. 정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하얀 스크린에서는 카프카의 장편소설
『성』을 테마로 한 묵시록 같은 영상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곳에 잠시 서 있자니 기분이 아주 묘했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혀 액자소설 속을 가로질러 통과하는 느낌이랄까. 프라하라는 낯선 도시에서, 다시 전혀 새로운 시공간으로. 약간은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한동안 마음을 빼앗긴 채 서 있었던 것 같다. 프라하에서 만난 카프카는 수수께끼 같은 그의 소설들처럼 쉽게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매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풀리지 않고, 설명되지 않은 채로. 문득, 그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예술이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1
301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요리사다. 아침마다 그녀의 주방은 슈퍼마켓에서 배달된 과일과 채소 또는 육류와 생선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그것들을 굽거나 삶는다. 그녀는 외롭고, 포만한 위장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해준다. 그러하므로 그녀는 쉬지 않고 요리를 하거나 쉴 새 없이 먹어대는데, 보통은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먹을까? 그녀의 책장은 각종 요리사전으로 가득하고, 외로움은 늘 새로운 요리를 탐닉하게 한다. 언제나 그녀의 주방은 뭉실뭉실 연기를 내뿜고, 그녀는 방금 자신이 실험한 요리에다 멋진 이름을 지어 붙인다. 그리고 그것을 쟁반에 덜어 302호의 여자에게 끊임없이 갖다 준다.
2
302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단식가다. 그녀는 방금 301호가 건네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버리거나 냉장고 속에서 딱딱하게 굳도록 버려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외롭고, 숨이 끊어질 듯한 허기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약간 상쇄시켜주는 것 같다. 어떡하면 한 모금의 물마저 단식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서가는 단식에 대한 연구서와 체험기로 가득하고, 그녀는 방바닥에 탈진한 채 드러누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하여 쓰기를 즐긴다. 흔히 그녀는 단식과 저술을 한꺼번에 하며, 한 번도 채택되지 않을 원고들을 끊임없이 문예지와 신문에 투고한다.
3
어느 날, 세상 요리를 모두 맛본 301호의 외로움은 인육에까지 미친다. 그래서 바싹 마른 302호를 잡아 수플레를 해먹는다. 물론 외로움에 지친 302호는 쾌히 301호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모두 끝난 것일까? 아직도 301호는 외롭다. 그러므로 301호쟀 피와 살이 된 302호도 여전히 외롭다.
단식광대가 단식을 멈추지 않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단식광대에게 단식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은 장정일의 산문시,
「요리사와 단식가」였다.
<301·302>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시는 탄탄한 서사구조와 명확히 대비되는 두 개의 캐릭터, 그리고 충격적인 막판 반전까지 극적인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핵심 키워드는 ‘외로움’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두 여자가 느끼는 결핍의 결과물일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결핍된 존재다. 그 불완전함과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소망하고 욕망한다. 물론 그 대상은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운전하면서 자주 슈베르트를 듣는 것은 그 때문이야. 아까도 말한 것처럼 그게 대부분의 경우, 어떤 의미에서든 불완전한 연주이기 때문이지. 질이 높은 치밀한 불완전함은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일깨워주거든. 이것 이상은 없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완벽한 음악과 완벽한 연주를 들으면서 운전을 하다간, 눈을 감고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어질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D장조 소나타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인간이 영위하는 한계를 듣게 되지.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야. 그것이 나를 격려해 주거든. 내가 뭘 말하는지 알겠어?”
당연하게도 단식광대에게 결핍돼 있던 것은 그가 추구하는 예술이었다. 단식광대는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단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서커스단 감독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단식광대는 다시 그의 귓가에 대고 마지막 힘을 모아 속삭인다. “그건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은 그대로 무시된다. 단식광대의 시신은 썩은 짚과 함께 묻혀 버린다. 그리고 그가 머물렀던 우리에는 표범 한 마리가 사육된다.
단식광대의 절망,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예술은 세상 사람들에게 결코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의 쓸쓸한 죽음, 보잘것없어 더욱 비참한 최후가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단식광대는 어쩌면 카프카의 분신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의 불화, 3번의 약혼과 파혼, 끈질기게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던 질병. 평생 고독하고 우울했던 영원한 이방인, 카프카. 그는 누구보다 문학을 사랑했지만, 그의 뜨거운 예술혼은 생전에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일례로 카프카의 첫 출판서인 『관찰』이 세상에 나왔을 때, 당대 유명 인사였던 로베르트 무질은 카프카를 ‘하찮은 감정에도 반응을 보이는 작가’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평전을 읽을 때 이런 구절과 마주쳤었다. 카프카가 살던 집 아래에는 넓고 쭉 뻗은 길이 있고, 그 길의 끝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길을 천천히 또는 아주 빨리 걸어서 강변까지 간 후 갑자기 몸을 던져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강물에 투신자살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원래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방식이었다가 점차 남자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고 한다. 카프카는 그 길을 자살 방조 활주로라고 불렀다고 한다.
수척한 얼굴의 카프카가 자신이 자살 방조 활주로라고 부른 거리를 걷는 동안 그의 번민에 찬 사색은 아마도 종종 끝이나 죽음이라는 문제에 이르렀을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카프카는 폐병으로 죽었지만, 그의 일기는 온통 죽음의 기척으로 가득했고, 벌떼처럼 밀려드는 기괴한 느낌들은 시종 그로 하여금 위험에 처했다는 느낌을 전해줬을 것이다. 카프카는 자신을 정리할 수단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대단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남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마감하기 위해 자살이라는 강제적 행위를 취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그냥 차분히 기다렸던 것이다. 마치 낯선 연인을 기다리듯, 어두운 밤이 내리길 기다리듯.
|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1883 ~ 1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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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계를 위해 문학을 희생하지는 않았다. 그가 썩 내키지 않는 ‘법학’을 전공으로 삼은 것도, 글을 쓰는 데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고정 수입을 확보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낮에는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서 법률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이중생활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카프카의 일기에는 ‘기도의 형식으로서의 글쓰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이 표현이 왠지 슬프다. 절망에 빠진 인간이 신을 향해 간절히 구원을 바라듯이, 이 여린 사내는 소설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을 메워버리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결핍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단식광대가 끝내 단식을 포기하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사진 속 카프카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창백한 얼굴과 짙은 눈썹,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서글서글한 눈동자, 그리고 수줍은 미소. 특히 그의 미소가 마음속 가득히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보듬어주고 꼭 끌어안아 주고 싶다.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누구에게나 삶은 힘겹고 버거운 거라고, 누구에게나 어찌해볼 수 없는 결핍은 존재하는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이유로 끝없이 소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오히려 결핍 없는 영혼이, 추구해야 할 대상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남루한 오늘이 부끄러울 뿐이라고.
그는 소심하고 불안해했으나 부드럽고 선량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잔인하고 고통스럽다. 그는 무방비 상태인 인간을 절멸시키는 보이지 않는 악마로 가득 찬 세계를 보았다. 그는 살아가기에 너무 예민했고, 아름답고 고결한 존재가 그렇듯이 투쟁하기에는 너무 허약했다. 이들 아름답고 고결한 존재들은 몰이해와 무례함, 지적인 거짓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싸움에 참여할 수가 없다. 싸움이 헛된 것이며 패자가 다시 승자를 치욕으로 뒤덮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을 알 수 있는 위대한 감식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별나고도 심오한 방법으로 세계를 파악했던 그는 그 자신이 유별나고도 심오한 하나의 세계였다.
- 밀레나 에젠스카, <나로드니 리스티>(1924년 6월 7일자)에 실린 카프카 추모기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