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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짙은 아름다운 계절을 동행할 음악 - 하찌와 TJ &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 & 베이지(Beige)
하찌와 TJ <별총총> -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두 사나이의 만남.<br>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 <Back On My B.S.> - 강렬한 래핑과 변칙적인 플로우의 구성.<br> 베이지(Beige) <XOXO> - <쇼바이벌>이 낳은 탄탄한 보컬의 솔직한 표현.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호텔 선인장』에 ‘계절은 아름답게 돌아오고, 재미있고 즐거운 날들은 조금 슬프게 지나간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녹음이 짙은 아름다운 계절을 음악과 동행한다면 그 말과는 다르게 즐거운 날들은 더욱 기쁘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일본인과 한국인 듀오라는 독특한 구성, 소박하고 정감 가는 노래로 많은 관심을 모은 하찌와 TJ의 두 번째 앨범, 영화배우로도 유명한 30년 경력의 베테랑 힙합 뮤지션 버스타 라임즈의 흥겨운 음악, MBC의 신인 발굴 프로그램 <쇼바이벌>에 출연해 훌륭한 가창력을 뽐낸 베이지의 감성 충만한 앨범과 함께 고운 계절이 주는 흐뭇함을 느껴보세요.
하찌와 TJ <별총총>(2009)
하찌와 TJ는 20대 한국 청년과 조금 늙은 50대 일본 아저씨의 만남이라는 점에서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두 사나이의 조합도 흥미롭지만 「장사하자」의 위트와 「남쪽 끝섬」의 낭만이 공존하는 묘한 음악은 더 강렬한 끌림을 만들어냈다. 기본적으로 어쿠스틱한 질감이었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는 포크 음악은 지루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적당한 뽕끼와 로큰롤의 단순하면서도 흥겨운 리듬을 얹은 곡들은 독특한 토속성을 띄며 친근하게 와 닿았다. 전형적인 레게풍 음악도 선보이는가 하면 옅은 전자음과 드라이브감이 도드라진 곡으로 앨범에 간간이 시원한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바람은 여름날 저녁,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마냥 뭉근하고 간지러웠다.
뭉근하고 간지러운 느낌은 신보에서도 여전하다. 은은한 에코사운드가 싸이키델릭적인 몽환을 만들어내는 「아지랑이」는 전작과 신작을 관통하는 정서를 대변한다.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소리들은 별다른 거부감없이 듣는 이의 마음속을 파고들며 행복감을 준다. 타이틀곡 「별총총」도 마찬가지다. 깔끔한 기타 연주로 풀어내는 나긋나긋한 선율이 참 아름답다. 여기에 순수와 낭만이 있는 노랫말이 어우러지면 행복감은 배가된다.
가사 이야기를 또 안 할 수가 없다. 입에 착착 감기는 노랫말들은 필연적으로 곡에 친밀감을 부여한다. 전형적인 레게 넘버 「꼭디바야」는 정감 가는 사투리의 구사로 친근감과 신선함을 동시에 가져가는 케이스다. “꼭 디바야 뜨거븐걸 아나아나아나” 하는 부분은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된다. 이어지는 「진달래」 또한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랫말을 가졌다. 발음하다 보면 입안이 둥글둥글해지는 “달래달래 진달래 달래” 대목은 애달픈 곡과는 반대로 재미있는 부분이다. 「가시나 꼬시러」의 코러스 “오늘 같은 밤에는 가시나들 꼬시러 바람 쐬러 밖으로 나가자” 하는 부분에 또박또박하는 발음이 귀에 쏙쏙 꽂힌다. TJ(조태준)야 한국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일본인인 하찌(가스가 히로후미)는 어쩜 이리도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려 가사를 쓰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놀라운 부분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전작 <행복>보다 더 차분한 모양새와 따스한 질감을 원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체적으로 번뜩이는 재치와 음악적 재기는 이전보다 줄어든 느낌이다. 이런 나른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너무 정적인 면모가 강해서 자칫 지루하다는 인상을 줄 것 같다. 「진달래」는 핵심에 도달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서 듣다가 지치게 된다. 호흡을 조금 빠르게 가져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왠지 모를 답답함과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휘릿휘릿」의 보사노바 리듬은 틀에 박힌 프레임 안에서만 왔다 갔다를 반복해 답답하게 들린다. 또한 부드럽게 잇지 못하고 끊어 부르는 TJ의 노래는 어색하게 들린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실험적인 사운드 메이킹, 노래 부르기 방식의 과감한 변화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하찌와 TJ는 부분적으로 그것들을 해결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이들에 대한 기대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인도 음악과 싸이키델릭 혹은 로큰롤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처럼 들리는 「그 여자」의 매혹적인 무드는 참 좋았다. 장르적으로 과감해지니까 훨씬 자유롭고 신나게 들린다. 「천년쯤 지나서」에서 선보인 노래 부르기 방식의 변화 또한 좋다. 목에 살짝 힘을 빼고 부드럽게 리듬을 타는 TJ 보컬은 분명 색다른 모습이었다.
솔직하고 재미있게 장사하자고 외치던 하찌와 TJ는 3년 만에 낸 신보에서 다운된 톤으로 성숙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더불어 좀더 일관된 질감으로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앨범에서 빛을 발하는 곡들은 그런 계획에서 약간 벗어난 것들이란 점이다. 「장사하자」의 개구진 모습과 「남쪽 끝섬」의 밝은 낭만이 가지는 매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것까지 억누르는 성숙은 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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