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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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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폭발적인 지식의 온 힘을 이용해 일생 동안 모든 분야에서 자신만의 망상을 가진 독선적 광신자들과 싸웠다.

나는 고전에 담긴 교훈을 실감하지 못한다. 고전으로서의 가치에 대해서도 별다른 감응은 없다. 물론 고전적 가치는 고전에 담긴 교훈보다 약간 무게감이 있기는 하다.

고전의 참맛은 무엇보다 재미에 있다. 이는 제목에서도 나타난다. 『우신(愚神) 예찬』이 고전적 지위를 반영한다면, 『바보 예찬』(문경자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2006)은 재미가 앞선다.

『에라스무스 격언집』(김남우 옮김?김태권 그림, 아모르문디, 2009) 또한 흥미 만점이다. 에라스무스의 대표작 두 권을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정민영 옮김, 아롬미디어, 2006)과 겹쳐 읽으면 책 읽는 재미는 배가된다. 특히 평전과 격언집은 상호 보완적이다.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 평전』을 통해 전기 작가로서 그의 뛰어난 역량을 과시한다.

『에라스무스 평전』의 독일어판 원제목은 ‘로테르담 출신 에라스무스의 승리와 비극(Triumph und Tragik des Erasmus von Rotterdam)’으로 옮겨진다. 에라스무스의 풀네임은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로테로다무스(Desiderius Erasmus Rotterodamus, 1469-1536)다. 세례명인 에라스무스를 뺀 나머지는 자신이 가져다 붙였다.

데시데리우스는 히에로니무스의 글에서 찾아낸 것으로 1496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로테로다무스는 “‘로테르담에서 태어난’ 이란 뜻의 Rotterdammensis라는 말을 Rotterdamus라고 세련되게 고쳤다가, 나중에는 희랍 식으로” 재차 개명한 것이다(『에라스무스 격언집』 ‘옮긴이의 말’).

단지 로테르담에서 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에라스무스의 국적을 네덜란드로 한정하면 곤란하다. 그는 세계인, 아니, 적어도 유럽인이었다. 에라스무스는 평생 동안 유럽 이곳저곳을 쏘다닌다. 그는 8년간 장기 체류한,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더 오래 살았던 스위스 바젤로 되돌아와 세상을 뜬다.

“어느 나라에도 정주하지 않았고 머무는 곳은 모두 고향으로 알고 지낸, 최초의 의식 있는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이었던 그는 결코 다른 나라에 대한 어느 한 나라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18쪽)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 평전』의 첫머리에서 에라스무스가 오늘날까지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는 연유를 이렇게 간추린다.

“그것은 그가 서양의 모든 저술가와 창조자 중에서 최초로 의식 있는 유럽인이었으며 최초의 투철한 평화 애호가였고 인문주의의 이상과 세계 우호 및 우호 정신이라는 이상을 위한 달변의 변호사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넘어 우리의 정신세계를 더욱 정의롭고 더욱 화합된 모습으로 만들려던 싸움에서 패배자로 남은 그의 비극적 운명은, 우리로 하여금 그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게 한다.”

생각의 자유는 에라스무스에게 자명한 것이었다고 덧붙인다. “그 스스로가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려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는 어떠한 종교적?정치적 교리도 강요받지 않기 위해 단호하게 저항했다.” 또 “그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폭발적인 지식의 온 힘을 이용해 일생 동안 모든 분야에서 자신만의 망상을 가진 독선적 광신자들과 싸웠다.”

츠바이크가 파악한 에라스무스의 사명과 삶의 의미는 대립하는 것의 조화로운 통합이었다. “그는 모든 일을 조화롭게 연결하고 대화로 푸는 천성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다.” 한편 츠바이크가 에라스무스의 풍모를 일컫는데 쓴 다양한 표현은 현란하기까지 하다. 그 일부를 보자.

“진실로 편견이 없는 공정한 사람” “정신적이며 진보적인 인간” “초국가적이고 전 세계에 속하는 정신의 최고 상징” “독립 광신자” “유목민” “새로운 시대의 첫 번째 위대한 문장가” “학자이며 책의 인간” “위대한 인문주의자” “세계 우호적 영혼” “최초의 평화주의 문학 이론가” “진정한 마음을 가진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오성을 가진 회의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승리는 곧 이성의 승리다. 에라스무스가 이뤄낸 이성의 승리는 “그의 신성한 세계시간이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짧고 덧없는 세계시간이기도 했다.”

‘세계시간’은 인문주의를 세계화하려는 인문주의자들의 기획을 포괄하는 츠바이크의 용어다. 에라스무스의 비극은 그의 좌우명에서 연원한다. “나는 평온을 원한다(Consulo quieti meae).”

나무는 가만있으려하나 바람은 그칠 줄 모르네(樹欲靜而不風止).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았던 에라스무스는 모든 자유로운 사상을 적대시하는 광신에 전적으로 홀로 맞선다.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정신적 보물, 인류에 대한 믿음을 자기 시대의 끔찍한 증오와 폭풍으로부터 안전하게 구”한 것은 의미가 있다는 게 츠바이크의 지적이다.

에라스무스의 명성은 마흔 줄의 10년간 최고조에 이른다. “사람들은 그를 때로는 ‘만물박사’로, 때로는 ‘학문의 군주’, 때로는 ‘연구의 아버지’, 때로는 ‘고귀한 신학의 보호자’라 칭송하며, 그를 ‘세상의 빛’ 또는 ‘서양의 피티아(Pythia, 그리스 델피에 있는 아폴로 신전의 무녀ㅡ인용자)’ ‘견줄 데 없는 인간이자 불멸의 박사’라 부른다. 그에겐 어떠한 칭송도 과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인문주의자들의 ‘문화 낙관주의’에 공감하지 않는다. 외려 “신이 부여한 힘을 현세의 이성 속에서 인식하는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를 신뢰한다. 나는 그의 일관된 정직한 태도에 호감을 갖는 것일 게다. “그는 그 자체로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는 진실의 힘을 믿는다.” 나도 그렇다.

또한 에라스무스의 어찌하지 못하는 ‘귀차니즘’은 백번 공감한다. “내가 광대한 토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토지를 얻기 위해 소송을 해야만 한다면, 난 차라리 그 토지를 포기할 것이다.” 아울러 “천성이 객관적인 사람들에겐 확신이 거의 없다”는 츠바이크의 발언엔 십분 공감한다.

격언집에 실린 격언의 숫자는 엄청나다. 초판은 800여 개가 실렸는데 판을 거듭하며 4,100여 개로 늘었다. 『에라스무스 격언집』은 이 가운데 60개를 골라 싣고 있다. 이마저 “되도록이면 에라스무스의 짧은 글들을 추려 옮기되, 전문 번역을 목적에 두었다.” 하여 슈테판 츠바이크가 그 개요를 전하고 있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에게만 전쟁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논문’의 전모는 한국어판 속편이 나와야 파악할 수 있다.

격언집은 일정한 형식을 취한다. 격언의 뜻풀이부터 그 유래와 전거 톺아보기에다 에라스무스의 코멘트가 이어진다. 격언마다 군더더기 없는 서술이 인상적이다. 폭넓은 인용 전거는 에라스무스의 방대한 독서량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현자는 자신의 보물을 지니고 다닌다」와 「인생은 나그네 길」은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이나,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현명한 사람은 늘 자신의 모든 보물을 지니고 다닌다. 내가 틀리지 않다면, 이 말은 비아스라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당신은 왜 불타는 당신의 고향 도시에서 아무 재산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내 모든 재산을 가지고 나왔소.’라고 답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렇게 말한 비아스의 뜻은 우리의 모든 소유는 바로 우리의 내적인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즉 교육과 성격이 바로 그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우리의 모든 가난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현자는 자신의 보물을 지니고 다닌다」) 이 둘보다 짧은 「뱀이 뱀을 먹지 않으면 결코 용이 될 수 없다」는 예외에 속한다.

『에라스무스 격언집』은 서양고전학자의 라틴어 원문 번역과 격언마다 덧붙인 김태권 화백의 명화를 패러디한 일러스트가 돋보인다. 패러디한 그림의 제목은 각 꼭지의 맨끝에 적어 놨다. 그런데 보티첼리의 작품 중에서 “<베누스의 탄생>”이라는 제목은 아직 낯설다. 베누스는 그간 비너스로 알려졌다. 완역한 서문을 각 꼭지 사이에 나눠서 배열한 것은 재치 있는 편집이다. 다만 격언과 금언의 구분은 퍼뜩 와닿지 않는다.

격언집은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설명에 따르면 격언집이 잘 팔린 것은 그 시대의 속물근성 덕분이다. 때마침 유럽에선 라틴어가 크게 유행하였고, ‘교양인’을 자처하는 자들의 편지, 논문, 연설문에 라틴어 격언을 끼워 넣는 것은 당연시되었다.

“에라스무스의 적합한 선별 작업은 이제 모든 속물 인문주의자들에게 그들 스스로가 고전을 읽는 노력을 면하게 해주었다. 이제 편지를 쓰려면, 그 무겁고 큰 책을 오랫동안 뒤적일 필요 없이 『격언집』에서 멋진 미사여구를 재빨리 낚으면 되는 것이다. 속물들이란 모든 시대에 무수히 존재하고 또 존재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그는 빠른 속도로 출세 가도를 달린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묘사력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한스 홀바인의 에라스무스 초상화를 필설로 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홀바인이 그린 에라스무스 초상 중에서도 특별히 걸작으로 꼽히는, 『헤라클레스의 업적들』이라는 책에 손을 얹은 그림을 『격언집』에서 볼 수 있다. 다음은 『바보 예찬』의 생명력에 대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서술이다.

“문학의 공간에서는 대개 작은 책자가 크고 무거운 책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180여 권이나 되는 볼테르의 작품 중 살아남은 것은 단지 풍자적인 간명한 소설 『캉디드』 뿐이며, 글쓰기를 좋아하는 에라스무스의 수많은 대형 서적 중 살아남은 것은 단지 즐거운 기분에서 우연히 얻은 아이, 그 반짝거리는 정신 유희, 『바보 예찬』 뿐이다.” (필자의 『바보 예찬』 독후감은 <독서평설> 2006년 10월호에 실린 필자의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야콥 브로노우스키와 브루스 매즐리시는 『서양의 지적 전통』(차하순 옮김, 학연사, 1998)에서 에라스무스의 성공과 실패를 이렇게 바라본다.

“에라스무스의 입신출세가 의미하는 것은 휴머니즘과 같은 관용운동이 단 하나의 불관용운동에 직면하고 있는 한, 사람들의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몰락이 의미하는 것은, 적대하는 불관용의 양파(兩派ㅡ인용자)가 충성을 소리 높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하나의 이상으로서의 관용은 더 이상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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