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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식의 게릴라 서점

아마 이 서점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이름의 서점일 것이다. 해석하자면 ‘반 압제적인 반 제국주의자의 할인 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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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에 소개된 모든 서점은 직접 다녀온 실제로 존재하는 뉴욕의 서점입니다. 그러나 구성된 이야기는 픽션으로 혼동 없으시길 바랍니다. 칼럼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맥주바 Gingerman

진저맨(Gingerman)에서 맥주를 마셨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근처의 직장인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뉴욕의 어느 바에서나 파는 생맥주 브루클린 라거마저도, 우리나라로 돌아가면 마시지 못하겠지……, 하는 울적한 생각이 들었다. 지난 밤 인터넷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일주일 뒤로 예약해 두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과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원고를 기다리는(어쩌면 포기한) 편집자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리고 아직도 내 방에 꼼짝없이 묶여 있을 로버트가 지난 밤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레이스가 우리 접신학 도서관에 찾아온 건 작년 여름쯤이야. 미래에서 책을 구하러 왔다는 말을 하더군. 나도 뉴에이지 방면에서 책을 꽤나 읽은 사람이지만 그녀가 정말 미쳤는지 미래에서 왔는지 끝까지 알 수가 없었어. 그런 내 바람은 오직 하나, 그녀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책, 『도서관을 태우다』를 쓰는 것이었어. 어느 출판사도 내 원고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드디어 나에게도 미래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책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거야. 누가 그걸 썼느냐고 물어봐도 그녀는 이상한 대답만 했어. 그걸 쓸 운명을 가진 사람이 쓰게 되어 있다고. 그건 4년 뒤에 완성되게 되어 있다고. 자신은 그 책이 완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왔다고 말이야. 그래, 당연히 내가 그 사람인줄 알았어. 네가 올해 뉴욕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런데 뭐야? 넌 ‘zzzz’라고 타이핑한 원고밖에 가지고 있지 않잖아? 후후, 그레이스가 틀렸을지도 몰라. 나도 서점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면서 증거를 몇 개 잡았거든. 내가 쓴 게 진짜 『도서관을 태우다』 일지도 몰라. 죽은 뒤에 빛을 보게 되겠지만 세상의 모든 책이 사라지게 할 결정적인 책 말이야. 애송이, 넌 그냥 이용당한 것뿐이야. 동양의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모르는 나라에서 온 애송이가 그런 중요한 책을 쓴다는 게 말이 돼?”

맥주를 석 잔 마시고, 팁을 남긴 뒤에 지하철을 타고 할렘의 집으로 돌아왔다. 지하철에서 자신이 쓴 단편소설을 3달러에 팔고 있는 흑인 소년을 만났다. 나는 주머니를 털어 그의 소설을 샀다. 서른 페이지 가량을 인쇄해서 스테이플러로 찍은 인쇄물이었고, 그 내용은 더 조악해서 세 페이지를 더 읽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적은, ‘z’로 시작해서 ‘z’로 끝나는 글보다는 훨씬 나았다. 제목은 『My Life』, 퀸즈를 배경으로 한 자신의 터프한 성장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순찰차를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나는 길모퉁이에 몸을 숨겼다. 사이렌을 울리고 붉은 불빛을 밝히는 경찰차를 보는 건 할렘에서 흔한 일이지만 그 차가 바로 내 집 앞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경찰차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붉은 소방차까지 길가에 두 대나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보도블록엔 불어난 강처럼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렇다, 2층의 내 방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미 불은 잡힌 것 같았다. 거실을 가득 채웠던 책들이 불쏘시개로 잘 이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방안에 갇혀 있던 로버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삼십 분쯤 지났을까? 한참을 모퉁이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들것에 남자 한 명이 실려 앰뷸런스에 실렸다. 다행히 얼굴에 산소호흡기가 대어져 있었다. 분명 로버트일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불을 질렀단 말인가? 나는 조심스레 그 자리를 떴다. 경찰에 잡혀 취조당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브루클린의 서점을 불태워버린 용의자고, 평범한 사서를 납치한 납치범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6일이 흘렀다.

체 게바라식의 게릴라 서점
반 압제적인 반 제국주의자의 할인 서점(Unoppressive Non-Imperialist Bargain Bookshop)


아마 이 서점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이름의 서점일 것이다. 해석하자면 ‘반 압제적인 반 제국주의자의 할인 서점’이다. 어려운 서점 이름만큼 독특한 운영방식도 눈에 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체 게바라는 아니지만 서점 유통의 게릴라 전법을 쓰는 건 확실하다. 이곳에 파는 물건들은 일단 중고가 아닌데도 파격적으로 저렴하다. 뉴저지에 대형 창고를 차려 놓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싸게 구입한 책들을 이곳에서 팔고 있다. 물론 다른 서점에 유통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이 가능한 것은 출판사에서 남은 책들이나 유통에 남은 책들을 대량으로 구매하기 때문이란다.

UNBB 카오스적인 내부

싸게 산 책들이 모두 이곳에서 팔리는 것은 아니다. 서점에서는 팔고 싶은 책만 판다. 즉, 직원들과 오너가 자신의 취향대로 책을 골라 진열하는 것이다. 블레이크와 셰익스피어의 전집, 밥 딜런과 밥 말리, 존 레넌과 비틀즈와 클래쉬에 대한 책은 기본이다. 이곳에 일하는 청년 딜란 가렛은 재즈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재즈 관련 서적을 잔뜩 골라서 팔고 있다. 만화 섹션에는 『개구쟁이 데니스』와 로버트 R. 크럼의 만화가 섞여 있다. 주인의 아내가 히스패닉이라 스페인어로 된 책들도 진열해 놓는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책이 있는 건 당연하다. 프리다 칼로, 앨리스 워커의 미술책과 영화, 요리, 그리고 만화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급진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책들이 많다. 서점 안쪽에 따로 마련한 코너에는 아동용 도서까지 마련되어 있다.

UNBB 체 게베라의 책

놀라운 점은 할인율이다. 새 책인데도 불구하고 반값 이하에 파는 책들이 수두룩하다. 블레이크와 셰익스피어 전집을 덜컥 집으로 가져오고 싶을 정도다. 워낙 나라가 커서 출판 유통의 틈새를 찾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할인 서점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어린이용 전집 도서나 그 출처가 의심스러운 책들이다. 물론 이곳에 파는 책이 대형 서점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책은 아니다. 대량으로 만들어진 책은 아니지만 유통이 힘들고 판매가 덜 된 책들 중 스태프들에 의해서 선별되는 방식인 것이다.

아마도 60년대 뉴욕, 오래된 빌리지의 분위기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고 혼란스럽지만 주인장의 개성이 강한 곳. 그리고 그 개성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뉴요커들에게 납득 가능한 쿨한 것 말이다. 먹을 게 없어 굶어도 수중에 남은 몇 달러를 아낌없이 쓸 수 있는 곳이라면 바로 이곳이다.

참고로 이곳의 모든 책은 세금 포함이다.

UNBB 매니저 Dylan Garret

딜런 가렛Dylan Garret 씨가 구하고 싶은 세 권의 책
『The Wind-Up Bird Chronicles』
Haruki Murakami
『Brother Ray』
Ray Charles, David Ritz
『Crime and Punishment』
Fyodor Dostoevsky

Unoppressive Non-Imperialist Bargain Bookshop
34 Carmine Street
unoppressivebooks.blogspot.com

나는 여전히 서점을 방랑하고 있다. 때로는 갔던 서점을 들르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서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뉴욕의 서점이란 서점은 모두 들렀을 법한데도 길을 가다 보면 새로운 서점의 간판이 보이기도 한다. Unoppressive Non-Imperialist Bargain Bookshop도 웨스트 빌리지를 방황하다가 우연찮게 들렀다.

일주일 전 나의 방이 불타버린 뒤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의문을 풀어야 하는가?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로 유령처럼 뉴욕을 떠돌았다. 다행히 지갑 속에는 10달러짜리 다섯 장, 한도가 넘은 신용카드 한 장, 여권이 들어 있어서 일주일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은 별로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일주일 동안 어디서 지내는가 하는 점이다. 날씨가 따듯해졌기 때문에 센트럴파크나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밤을 지새웠다.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없으니 낮이 되어도 잠이 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을 하고 싶을 때엔 도서관이나 애플스토어를 이용하고, 식사는 코리아타운의 ‘우리집’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거나 블라인드 타이거의 무료 안주를 이용하기도 했다. 서점을 중심으로 목적 없이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서점 순례를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레이스를 만났던 날, 로버트를 만났던 날, 숨겨진 원고를 발견하게 된 일 등등…….

이제 내일이 비행기를 타는 날이다. JFK공항에서 오후 3시 반. 올 때와는 달리 갈 때엔 짐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매디슨가의 예술 서점
어서스 서점(Ursus Books & Printed Ltd.)


서점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다는 게 상식이지만, 매디슨가의 앤티크 서점은 보통 쇼윈도도 없는 건물 위층에 있다. 보통 약속을 잡아서 오거나 벨을 눌러서 문을 열어줘야만 들어갈 수 있어서 약간 부담스럽기는 하다. 매디슨가를 걷다가 1층 호텔 광고판에서 서점 광고가 눈에 띄어,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1층은 호텔이어서 2층에 있는 서점에 들어간다는 것이 어색할 정도였다. 호텔 2층에는 로비나 커피숍, 바 등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Ursus Books & Printed Ltd. 내부

문은 닫혀 있고 벨을 누르니 문을 열어준다. 공식적으로 이 서점의 손님은 나뿐이므로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책을 둘러보기로 했다. 샤워를 안 한 지가 며칠 되어서 몸에 나쁜 냄새가 났다. 서가에 꽂혀 있는 건 주로 예술 관련 서적이다. 그리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러나 안쪽 서가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다. 프레임 없는 프린트들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은 16세기에서 19세기 영국 미술품이라고 한다. 그 시대 유럽 식물원의 분위기를 수채화로 그리는 현대 작가의 그림도 취급한다. 아마도, 어느 부잣집 서재나 거실에 어울릴 만한 그림들이다.

더 안쪽 서가는 희귀본 도서다. 가죽 정장을 한 책들이 근엄하게 꽂혀 있다. 표지 안에 정말 책이 들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한다. 매니저인 스팬서 씨가 친히 3만 달러짜리 밀로의 오리지날 프린팅 책을 펴 보여 준다.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친절하게 구는 것 보면 손님이 없어서 꽤나 심심했나 보다. 보통 서점 직원들은 나같이 꼬치꼬치 묻는 동양에서 온 이상한 작가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은데 말이다.

Ursus Books & Printed Ltd. 드로잉 갤러리

요즘 컬렉터들의 유행은 6, 70년대 일본의 아방가르드 사진책이라고 한다. 혹시 한국에도 그런 예술적 붐이 일어났을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제본과 인쇄 상태가 그럭저럭 봐줄 만한 좋은 책이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잘 모른다고 하면 한국이 무시될까봐, 분명 한국에도 흥미로운 예술 서적들이 있을 거라며, 언제 유행할지 모르니까 꼭 사두라고 했다. 예술 서적은 특히, 만들기도 비싸고 소량으로 제작되며, 재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소장가치가 높다.

“그런데, 희귀 서적은 이베이에서 살 수 있잖아요?”

“중간 퀄리티의 중고 도서는 쉽게 이베이에서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진짜 희귀한 책은 점점 사기 힘들어졌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걸 전문으로 하는 서점도 많았고, 컬렉터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그 수가 줄어드니까 희귀본의 유통경로를 파악할 수가 없어요.”

인터넷 때문에 희귀본이 유통되기 힘들다는 말이 수긍이 가기도, 가지 않기도 했다. 그는 이곳 이외에도 대여섯 군데의 고서점을 알려 주었다. 대부분 매디슨 거리에 있는 것이다. 뉴욕의 부자들이 살고 있는 어퍼 이스트에 그들의 거실을 꾸밀 만한 서점이 몰려 있는 것이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읽는 책이 아니라, 소장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배신을 당한 느낌이다. 어쩌면 미래에는 지금의 흔한 책도 소장용이 될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다. 더 이상 종이책이 실용적이지 않게 될 날이 오면 말이다.

Ursus Books & Printed Ltd. 미로의 책 원

일년에 두 번씩 나온다는 희귀본 도서 카탈로그와 일러스트레이션 도서 카탈로그를 들고 서점을 나섰다.

Ursus Books & Printed Ltd.
Carlye Hotel 2F
www.ursusbooks.com


아방가르드 미술 전문 서점 & 갤러리
존 맥와인 서점(John Mc WHINNIE at Glenn Horowitz Bookseller)


John Mc WHINNIE 서점 내부

이름이 조금 어렵지만, 이 서점 주인의 이름이라고 여겨 두자. 그것도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이 서점은 갤러리와 희귀 예술 서적을 전문으로 하고, 미술 관련 서적 출판사도 겸하고 있다. 주소도 50 1/2로 좀 어렵다. 보통 타운 하우스의 반지하의 문을 밀고 들어가면 서점이 나온다. 사실, 문을 열기도 전에 찌이익 하는 소리가 들르며 문이 열렸다. 반 지하 거실엔 작은 갤러리다. 안쪽에는 머리를 민 차가운 인상의 매니저가 일을 하고 있다. 그 주위. 그리고 뒤편엔 많은 책들이 널려 있는 건 당연하고. 갤러리에는 마침 『Purple Anthology』라는 아방가르드 미술 잡지 퍼플의 인상적인 사진과 기사가 전시되고 있었다.

John Mc WHINNIE 서점의 예술 관련 서적

이 서점은 194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부터 현재의 팝아트까지, 아방가르드 미술에 관련된 책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특히 작가나 미술가들의 사인이 담긴 한정판 서적을 수집하고 판매한다. 미술 서적은 보통 서적보다 인쇄가 까다롭고 한정판으로 대형, 고급으로 찍어내는 경우가 많아 이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혹은 그 책 자체가 미술품이 되기도 한다.

John Mc WHINNIE 서점의 에로틱 소설

서점의 또 다른 재밌는 소장품은 5, 60년대 성인 에로틱 소설의 페이퍼백과 그림들이다. 지금도 에로티카가 나오지만 사진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당시의 책 표지는 펄프적인 느낌이 가득 묻어나는 것과, 만화풍, 사실적인 것 등 다양하다. 보기 민망할 정도의 책 표지가 많은데 이는 서점의 하이엔드 수집품이 로엔드 수집품과 결합을 해서 순화를 하기 위한 전략인 듯싶었다. 출판사로서는 ‘JMc & GHB’이라는 약자로 갤러리의 전시나 수집품에 대한 책도 만들고 있다.

John Mc WHINNIE at Glenn Horowitz Bookseller
50 1/2 East 64
www.johnmcwhinnie.com


모든 사람에게 문은 열려 있지 않다
제임스 커민스 서점(James Cummins BookStore)


매디슨가의 7층에 위치한 이 서점을 갈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입구에서 벨을 누르고 들어가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문으로 된 서점 안에는 서가가 주욱 있고 책상과 빈 의자가 놓여 있었다. 용감하게 벨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렸다. 흰머리가 희끗희끗 난 매니저가 나와 용건을 물었다. 나는 뉴욕의 서점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는데 협조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래위로 나를 훑어보았다. 괜히, 내 모습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이것 봐요. 여기는 내 사무실이고, 열심히 일해서 임대료도 내야 합니다. 굉장히 바빠요. 당신의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위해서 내가 시간을 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 당신을 즐겁게 대우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바쁘니까, 8월이 지나면 한번 들러주지 않을래요? 여름이 되면 한가해집니다.”

영국식 억양이 섞인 빠른 말투였다. 그러나 공손함을 잃지 않았는데,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서점이 대중에게 문을 여는 서점이긴 하지만 취급하는 도서의 특성상 공개적일 필요는 없어서 그의 말에 일리가 충분히 있었다. 거절당했다는 불쾌함도 있고, 이해되는 마음도 있어서 맘속이 복잡했다.

이 서점을 방문하고 나서 문득, 빨리 뉴욕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더 이상 서점을 돌아본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으니까. 그때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제니스다. 며칠 동안 계속 통화를 시도했는데 받지 않더니 이제야 전화를 하는구나. 나는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 서진 씨? 나 그레이스야. 돌아왔어.”

뭐지, 분명 제니스의 콜러 아이디가 떴는데 또, 그레이스라니. 반가운 마음과 의심스러운 마음,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이 복잡하게 얽혀서 멍하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 다음 마지막 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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