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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서울, 1964년 겨울』

나는 선배를 따라 참새 머리를 씹었다. 너무 타서 쓴맛이 났지만, 씹으니 고소한 ‘무엇’이 혀에 닿았다. 그것은 생명의 원형질 같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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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을 쓰겠다고 대학에 들어가서 첫 번째 받은 열등감은 김승옥과 관련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김승옥의 소설을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명백한 분절이 그 대학 문예창작과에 있었다. 나는 물론, 읽지 않은 축에 속해 있었고 술자리에서 김승옥이 거론되면 마치 읽은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밤새 김승옥을 들여다보곤 했었다. 김승옥을 모르고는 도대체 문청들 사이의 술자리에 앉아 있는 건 가시방석이었으니까 말이다.

기이하게도, 나는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김승옥 소설의 도저한 흐름을 붙잡지 못했다. 그저 그의 소설에서 묘사되는 거친 에칭 같은 시대 풍경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서울, 1964년 겨울』도 그런 소설 중의 하나였다.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軍用)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 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중략) 자기소개는 끝났지만, 그러고 나서는 서로 할 얘기가 없었다. 잠시 동안은 조용히 술만 마셨는데, 나는 새카맣게 구워진 참새를 집을 때 할말이 생겼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군참새에게 감사하고 나서 얘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실제 서울의 거리에서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는 포장마차 내지는 선술집을 찾고 싶었다. 80년대 후반쯤의 어느 시절이었다. 몇 차인지 알 수 없는 술자리를 정리하고 비척거리며 집으로 가던 내게 비친 건 누런 간유리창에 ‘오뎅 참새 정종’이라고 씌어진 메뉴판이었다. 소설 속처럼 차가운 바람이 씽씽 부는 겨울 광화문 어디쯤이었다. 아마도, 알코올 70%쯤 되는 주취 상태의 망막이라 그 정경이 분명한지는 모르겠다. 나는 드르륵, 아귀가 안 맞는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귀신처럼 그 술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파장 시간이 다 되어선지 주인 아낙은 오직 가게 안에 구겨져 있는 술걸레들을 얼른 해치워야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보였다. 술주정을 건성으로 받아치며 뭔가를 혼자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는 ‘이걸 받아 말아?’ 하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턱짓으로 앉을 자리를 지정했다. 그리고는 내게 “참새하고 정종 줄까?” 하고 말했다. 나는 진작 그 메뉴를 고를 심산이었지만, 그녀는 ‘다른 메뉴 따위는 아예 시킬 생각도 말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아 비로소 가게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내 자리는 옹색하게도 입구를 등지고 있는 의자 두 개짜리 소탁이었다. 그나마 한쪽 의자 옆에는 분홍색 공중전화가 있어서 누군가 전화를 건다면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야 상대방과 대작이 가능할 빌어먹을 자리였다. 좁은 술집이었지만, 안쪽에 너른 4인 탁자가 있었다. 하지만 주인 여자는 혼자 들른 내게 그런 자리를 주고 싶지 않았을 터였다.

술이 확 깨게 놀라운 광경은 그때 일어났다. 명명하자면 광화문통 물리학 실험실이 열렸던 셈이다. 참새 굽는 연기인지, 담배연기인지 자욱한 연무를 뚫고 어떤 아낙이 누런 주전자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홀 가운데에 놓여 있던 석유난로 위의 주전자였다. 그 주전자 안에는 무언가가 끓고 있었는데, 아낙은 탁, 하고 소리 나게 사기 컵을 내 탁자에 올려놓고는 그 주전자 주둥이를 잔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주전자를 허공으로 한껏 치켜 올렸다. 나는, 이 여자가 무슨 마술을 하나, 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주전자 안에서 뜨거운 액체가 폭포수처럼 잔에 쏟아졌다. 더 놀라운 것은 정확하게, 너무도 완벽하게 사기 컵 내용량 100%의 정종, 아니 청주가 따라졌다는 사실이었다. 맹세코 단 한 방울의 술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가득 찼다. ‘아줌마, 술이 적네.’ 또는 ‘왜 아까운 술을 흘리느냐?’는 식의 술꾼들 잔소리를 원천봉쇄하는 아름다운 솜씨였다. 그녀가 얼마나 완벽한 기술을 선보였는지는 그 술집에서 30분만 앉아 있으면 알게 된다. 모두들 그 술을 마시느라 넙죽넙죽 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잔을 손에 들었다간 아까운 술이 쏟아지므로 먼저 고개를 숙여 눈과 잔 끝을 맞춰야 한다. 그 다음에 입술을 잔에 가져가 흐릅, 하고 술을 조금 마셔야 원활하게 음주가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더운 청주는 잔의 끝과 일치하게 따른 게 아니라, 물리적 한계까지 더 담아져 있었다. 그걸 우리는 일찍이 표면장력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그 주취의 밤에도 나는 떠올렸다. 초등학교 자연 시간, 실험조의 당신 짝이 눈을 부릅뜨고 만들던 그 표면장력 말이다. 나는 청주 잔 표면을 마치 초등학생처럼 손가락으로 찍어 누르며 장력을 몸소 체험했다. 아아, 놀라워라. 넘칠 듯 넘치지 않는 청주는 탱탱한 탄력을 보이며 내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아래위로 움직였을 뿐, 한 방울도 넘치지 않았다. 만화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천재 소믈리에의 디캔팅질이 이것만 하랴. 나는 그 여자의 신기의 솜씨ㅡ적어도 <생활의 달인> 연말 결선에 나올 만한ㅡ에 탄복했다. 내 친구가 ‘서울 바닥에 파는 참새는 대부분 병아리나 메추리 새끼다.’라고 했던 폭로가 사실이었다고 해도 좋았다. 병아리면 어떠냐. 주인아줌마가 밤이면 몰래 서울 시청 옥상의 비둘기 둥지에서 갓 깨어난 비둘기 새끼를 집어온들 어떠랴. 그 표면장력의 미학을 몸소 체험한 것만으로 그 밤의 음주 만행은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그날 나는 어떻게 병아리, 아니 참새구이를 먹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표면장력의 신비 체험에 너무 압도되었던 까닭이다. 사실, 참새구이는 나 같은 서울 변두리 인생에게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요리였다. 어디나 그랬겠지만 내가 살던 동네에도 사철 기다란 공기총을 둘러멘 참새 사냥꾼이 야산에 늘 있었다. 푸른빛이 도는 납탄을 약실에 재고 공기총을 두어 번 꺾어 공기를 압축하고 빵! 하고 쏘는 그런 유치한 총이었다. 토끼가 맞으면 엉덩이를 한번 쓱 문지르고서 사냥꾼을 한번 노려보고 제 갈 길 간다는 말이 나올 만큼 위력이 없는 총이 많았다. 잘은 몰라도 공기 압축장치가 낡아서 그럴 터였다. 그래서 참새나 사냥 하면 딱 맞는 그런 총이었는지 몰랐다.

참새 사냥꾼은 참새를 잡으면 실에 꿰어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멋을 부렸다. 사실, 참새는 떼로 몰려다니고 워낙 수효가 많았으니 사냥했다기보다 대충 쏘면 한 마리는 떨어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머리통을 맞아 떨어진 참새는 사냥꾼이 그닥 탐탁하게 생각지 않는 점이었다. 상식적으로 머리통을 맞춰야 한 점의 살이라도 더 먹을 게 있을 것 아니냐, 그게 당연한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그걸 나는 나이가 들어 그 광화문의 참새집이었는지, 『서울, 1964년 겨울』처럼 포장마차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상황에서 알게 됐다.

“참새는 머리가 일미지.”

그리고 선배는 참새 머리를 입에 넣고 우드득, 씹었다. 두개골 파열음ㅡ이런 말이 있는가 모르겠지만ㅡ이 앞에 앉은 내 귀에도 생생하게 들렸다. 우적우적 씹어 삼키고 나서 선배는 정종을 쭈욱 들이켰다.

“왜 머리가 일미냐…….”

선배는 뜸을 들이고는 씨익 웃었다.

“골이 제 맛이기 때문이지.”

선배의 말을 종합 정리하면 이렇다. 참새는 모기만큼이나 뜯어먹을 살이 없다. 결국 머리가 그나마 먹을 게 있는데, 따뜻하게 데워진 골이 일미다. 원래 ‘어두일미’라고도 하지 않느냐. 마장동에 가봐라. 술꾼들이 소 골 안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운다. 뭐 대충 이런 거였다.

나는 선배를 따라 참새 머리를 씹었다. 너무 타서 쓴맛이 났지만, 씹으니 고소한 ‘무엇’이 혀에 닿았다. 그것은 생명의 원형질 같은 거였다. 단순히 단백질과 지방과 수분의 조합을 넘어 자신의 날개에 사냥꾼의 총을 피해 날아다니라고 말하던 명령어의 집합이었다. 아니, 그것이 메추리 새끼였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참새 머리를 떠올리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하고 지낼 때, 도살된 송아지의 뇌가 소스로 변모하던 광경을 보기 전까지는 잊고 있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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