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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토익 990이 네이티브를 만들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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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우리 스스로의 독서와 공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소유냐, 존재냐』를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쁨일 것입니다.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내 차를 보여주었습니다.”

집과 차로 스스로를 말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광고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인기 베스트셀러 도서의 제목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인 적도 있었고, 젊은이들에게서 존경받는 직업군 1위는 CEO라는 결과 발표가 그리 놀랍지 않은 시대입니다.

저 광고문구들이 품고 있는 뜻을 풀자면 대략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소유가, 존재를 말한다.’ 그리고 하필 그 광고 메시지가 말하는 주제를 정확히 다루는 고전이 한 권 존재합니다. 무려 제목도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 제목만 들어도 어느 정도 내용이 짐작 갈 이 책은 그러나 독자의 짐작 이상으로 풍부한 사고의 흐름을 보여 주어 많은 이들에게 지금도 큰 감동을 남기는 책으로 자리합니다.



 

독일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저술한 『소유냐 존재냐』는 처음 우리나라에서는 ‘소유냐, 삶이냐’로 번역되었습니다만, 최근 들어 삶보다는 존재라는 표현이 보다 가깝다는 주장에 힘입어 신번역서들은 대부분 『소유냐 존재냐』의 타이틀로 출간되고 있습니다.

본 코너에서 앞서 소개했던 책, 『계몽의 변증법』에서는 인간 이성의 발흥 이후 제기된 이성의 역기능에 문제를 제기했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야기를 드린 바 있습니다.(☞ 보러 가기) 에리히 프롬도 심리학자지만 그가 다루는 주제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주제와 동일합니다. 『소유냐 존재냐』는 그러한 에리히 프롬의 문제의식과 철학적 작업들이 총화된 책입니다. 프롬 또한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마찬가지로, 이성과 계몽에 의해 보장되었던 인류의 아름다운 미래상이 실제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이유를 찾고 있으며, 그 속에서 특히 ‘소유’라는 개념에 집중합니다.

프롬에 의하면, 애초에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 개념인 사유재산은 약탈의 개념을 포함합니다. ‘Private’라는 단어의 어원이 라틴어 ‘privare(빼앗다)’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암시합니다. 종교의 시대였던 중세에 표면화되지 않았던 소유에 대한 갈망은 그 소유가 스스로의 계급을 대변했던 부르주아지들의 득세가 시작된 근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덕목의 하나가 됩니다.

사유재산으로부터 발생한 권력이 득세하는 산업혁명 이후의 시대부터는 그래서 소유가 본격적으로 개인과 계급의 존재를 드러내는 수단이 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산업혁명과 부르주아지의 시발점으로 이야기되는 영국의 인클로저encloser 운동은 바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울타리 치기에서 비롯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함으로써 개인은 주장한 소유 재산만큼의 권리를 얻고, 이를 통해 결국 사회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이 초기의 소유 형태는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함께 발전하며, 이제 소유가 곧 존재를 대변하는 시대를 이끌어 냅니다.

이와 동시에 진행된 것이 언어에서의 소유 개념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 변화와 동시에 진행된 언어에서의 소유격 변화를 주시합니다. 기존의 화법에서 ‘나는 잠을 잘 못 잔다.’는 갈수록 ‘나는 불면증을 가지고 있다.’로 옮겨가는 경향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언어학계의 연구에 프롬은 주목합니다. 소유로 존재를 드러내는 사회 형태가 언어생활에도 영향을 주며, 이는 곧 의식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통찰입니다.

에리히 프롬
(Erich Pinchas Fromm, 1900~1980)
이렇게 소유 양식은 단순히 물질적인 소유뿐 아니라 다방면으로의 확장을 보여 줍니다. 단순히 위에서 언급된 언어생활뿐 아니라, 여러 무형의 가치들, 독서나 토론, 지식과 대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등 소유 양식은 비물질적이고 자본과 관계없는 인류의 모든 생활양식에 변화를 가져오며, 이러한 소유 형태로의 전환은 결국 또 다른 소외를 낳습니다.

그 소외란, 쉽게 말하면 ‘체화되지 않은 채 소유되는’ 형태를 의미합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불면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중요한 건 본인의 삶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자는 현상이 지속되어 괴롭다는 것이지만, 소유 양식으로는 이는 주체가 ‘불면증을 가지고 있’을 뿐으로 묘사됩니다. 언뜻 보면 같은 의미겠지만, 이미 우리가 소유 양식이 보편화된 시대를 살고 있음을 감안하고 자세히 생각해보면, 잠을 못 자서 괴로운 것의 주체가 ‘본인’이 아닌 ‘불면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차이지만, 이렇게 작은 차이들이 낳는 소외의 가능성은 측정이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이러한 소외는 주체와 객체 모두를 사물화 하는 병폐를 낳습니다. 우리는 거리에서 유행하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그로부터 만족감을 얻지만, 그 만족감의 주체는 ‘유행상품’이지 스스로의 문제는 아닙니다. 성인 남성은 결혼을 통해 아내를 ‘소유’하고 자녀를 ‘소유’함으로써 소유 양식을 유지하지만, 가장의 소유 형태로 구성된 가족 체계는 여성의 도구화와 같은 병폐를 불러옵니다.

프롬은 이러한 소유 양식의 폐해를 넘어서기 위해 존재 양식으로의 변화를 촉구합니다. 사물이든 비사물이든, 주체와 관련되는 모든 것에서 자본주의식의 소유 양식을 넘어서고 관계와 관계가 가지는 본원적인 가치를 재구성하는 것이 새로운 인류의 미래를 위한 방식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공유와 창조, 소통을 통해 소유 - 타인과 나, 주체와 객체를 가르는 단절의 양식을 벗어나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제시한 것이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가지는 의미입니다.

당장 책을 좋아해서 찾아오는 예스24의 웹진 칼럼 독자라면 프롬의 이와 같은 통찰은 더욱 의미 있고 중요한 지적이 될 수 있겠습니다. 갈수록 독서의 트렌드는 지식에 대한 소유와 과시를 강조하는 분위기입니다. 책들은 갈수록 무언가 외워야 될 듯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XX해야 할 YY가지’와 같은 나열형의 주제 배분이 두드러집니다. 이른바 독서가,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이들은 심지어 ‘나는 1년에 몇 백 권을 읽었다.’라는 수치상의 자랑에 목을 매고, 많은 이들이 책 전체의 맥락보다는 특정 문구와 경구를 외우고 인용하는 데 목을 매고 있습니다.

이것도 분명 소유 양식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독서일 것입니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행간에 있다는 옛 말이 틀린 말이 아니겠지요. 단순히 격언을 외우고, 누가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 독서가 끝난다면 그것은 책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능으로부터 주체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프롬이 굳이 소유 양식을 물질적인 것에 한정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러한 우려를 예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순 독서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든 공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토익 990점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이른바 ‘스펙’을 인정받는 사회가 그렇고, 학점 4.0의 성적표를 소유함으로써 대학 학부 4년의 공부를 증명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소외입니다. 4.0의 친구들도 정작 커리큘럼 자체를 통해 자기 분과의 흐름을 꿰고 있는 사람이 드물고, 990점의 토익 보유자가 외국인과 소통이 불가능한 뉴스상의 현실이 바로 그 소외를 증명합니다.

한번쯤 우리 스스로의 독서와 공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소유냐 존재냐』를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쁨일 것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소유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 책과 저자가 걸어갔던 생각의 산책로를 내 머릿속에도 같이 내어 주고, 그 생각과 생각의 교감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얻는 존재 양식으로서의 독서, 그것이 에리히 프롬이 채널예스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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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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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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