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언제 박탈될지 모른다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 공포의 본질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가로등 하나 없는 외딴 도로를 자동차 한 대가 달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시야에 자전거를 탄 백발노인이 나타난다. 운전을 하던 여자가 당황해 하는 사이, 차는 자전거를 지나친다. 사이드 미러 속에서 노인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잘못 본 거겠지. 여자는 눈을 비비고 안경을 꺼내 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정면에서 방금 지나간 자전거 탄 백발노인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공포영화 <매드니스>(1995)의 한 장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무서운 장면 가운데 하나다. 몇 년 전, 봉평에서 밤새 프로그램 집중작업을 끝내고 새벽 3시쯤 먼저 서울로 올라온 적이 있다. 차가 단 한 대도 없는 어둠 속의 외딴 국도. 길 양 옆에서는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만약 그때 저 앞에서 자전거를 탄 백발노인이 달려왔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법한 그런 밤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런 상상만으로도 어찌나 섬뜩하던지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공포영화가 특수한 공간이나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문제는 그런 설정이 나와는 별 상관이 없게 느껴진다는 것. 덕분에 안심하고 공포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역시 가장 짜릿한 흥분을 느낄 수 있는 건 나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긴장감이 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스티븐 킹의
「금연주식회사」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에 「금연주식회사」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이름 그대로 금연을 청부 맡은 회사의 이야기이다. 금연을 하고 싶지만, 자기 의지에 자신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이곳에 신청을 하면, 회사 쪽에서 책임을 지고 금연에 성공하게 해준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간단히 신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는 엄중한 비밀 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정보는 소문을 통해서 사람들로부터 사람들에게로 은밀히 전해질 뿐이고, 그 가입금도 깜짝 놀랄 만큼 비싸다. 그러나 금연의 성공률은 에누리없이 100퍼센트이다. 어떤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그 회사에 금연 신청을 한다. 그러나 며칠 뒤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한 개비의 담배를 집어 들고 그것에 불을 붙이고 만다. 그런데 그러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처음 이 소설을 접하게 된 건 하루키의 에세이를 통해서였다. 하루키는 ‘끝까지 이야기를 다 해버리면 소설을 읽을 재미가 없어지니까.’라는 이유로 금연 주식회사의 비밀을 끝내 공개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죽을 뻔했다. 후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에서 이 소설을 발견하고 마치 숨겨둔 금괴라도 발견한 양 쾌재를 불렀었다. 내용의 일부를 살짝 공개한다.
#1.
금연회사
담배를 끊게 해 드립니다!
46번가 동부 237번지
예약 요망
#2.
“부인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러신다 모리슨입니다. 처녀 때 이름은 램지구요.”
“선생은 부인을 사랑하십니까?”
모리슨은 고개를 들고 도나티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도나티는 온화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물론입니다.”
#3.
“귀여운 토끼군요.”
모리슨이 말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 토끼를 보십시오.”
도나티는 창가에 있는 단추를 눌렀다. 토끼는 먹는 것을 멈추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더 높이 뛰어오르는 것 같았다. 토끼의 털이 마치 가시처럼 사방으로 뻗쳤다. 눈빛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4.
치료는 아주 간단했다. 한 번 담배를 피우면 아내 신디가 그 ‘토끼의 방’으로 들어간다. 두 번 피우면 모리슨 자신이 그 방으로 들어간다. 세 번 피우면 둘이 함께 그 방으로 들어간다. 네 번까지 피운다면, 그것은 상호 협조 관계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여, 좀더 단호한 방법이 취해진다.
#5.
첫 한 달간은 끊임없는 감시를 한다고 도나티는 말했었다. 그다음 두 달간은 하루에 열여덟 시간이다. 그러나 어느 열여덟 시간일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넉 달째는 대부분의 고객들이 다시 담배에 손을 대고 싶어 하는 때이기 때문에 다시 스물네 시간 감시로 들어간다. 그다음 여덟 달 동안은 매일 띄엄띄엄 열두 시간씩 감시한다. 그런 다음에는? 고객이 살아 있는 동안 아무 때나 골라서 감시한다.
‘살아 있는 동안!’
이 이야기가 진심으로 무섭게 느껴지는 건 그들의 감시가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비정기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예측불가능성, 그리고 불확실성이 주는 공포라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평생 러시안룰렛을 하며 살아가는 기분이 아닐까. 스티븐 킹은 ‘금연’이라는 지극히 사소한 주제를 가지고 극한의 심리적 공포를 체험시켜준다. 이 소설이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 결과가 ‘긍정적 효과’로 나타난다는 아이러니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캐리>
<미저리> <쇼생크 탈출> <스탠드 바이 미> <돌로레스 클레이본> <샤이닝> <그린 마일> <미스트>…. 모두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다. 그의 작품은 이미 수십 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군림하고 있고, 영화나 TV 드라마로 제작된 것만도 무려 70여 편에 달한다. ‘호러 킹’ ‘공포문학의 제왕’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스티븐 킹. 과연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그의 작품에는 어떤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걸까.
그(스티븐 킹)의 작품들이 지니는 강력한 대중적 호소력의 원인은 (중략) 그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 이를테면 공포물을 포함한 대다수의 작품들이 책을 읽는 내내 그것이 허구적인 이야기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현실감을 준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 조성면(문학평론가), ‘스티븐 킹, 그 오싹한 매력’ (<한겨레21>/ 2003.12.3.) 중에서
영화
<식스센스>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을 무렵,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외출을 했다가 밤늦게 귀가를 했는데 대문이 열려 있었다고 한다. 깜짝 놀란 샤말란의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집안은 무사했다. 하지만, 훗날 샤말란의 아버지는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한다. 몽둥이를 든 채 어두운 집 안으로 들어가던 순간의 공포를 잊을 수가 없다고. 그가 침실 불을 켰을 때 벌어질 어떤 상황ㅡ가령 낯선 남자가 침대에 앉아서 씩 웃는다든가ㅡ에 대한 상상 때문에 너무나 무서웠노라고. 이 에피소드는 나중에 샤말란 감독이
<식스센스>를 연출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나는 이 이야기가
「금연주식회사」의 핵심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공포의 본질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것으로 변형되어 돌아올 때 생겨나는 심리적·정서적 반응’이라고 한다. 피를 튀기며 팔다리를 마구 절단하는 전기톱 살인마가 무서운가? 아니면 공동묘지에서 떼로 달려드는 좀비나 원한을 품은 귀신의 존재가 두려운가? 오히려 이런 장면은 스크린 밖에서 팝콘을 먹으며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정작 공포스러운 것은 따로 있다. 언제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상황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우리의 상상력. 그것이 바로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공포의 정체인 것이다. 극한의 공포는 짜릿함을 준다. 어쩌면 무의식 깊은 곳에 존재하는 괴물의 정체를 확인하고픈 원초적 본능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음습한 욕망, 두려우면서도 기어이 확인하고 싶은 심리 기제가 평평하고 밋밋하게만 보이는 우리 삶에 다양한 무늬와 굴곡을 새겨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짜 무서운 이야기는 늘 우리 안에 함께하고 있다.